우리나라 모 대기업에서 이례적으로 스포츠마케팅 직무에 신입사원을 모집한다는 최근 채용공고가 알려져 이슈이다. 당장 네이버에 ‘스포츠 마케팅’이라는 단어를 치면 연관 검색어 첫 번째로 뜰만큼 사람들의 관심이 큰 상황이다. 이미 블로그와 카페를 통해 이와 관련된 각종 정보가 올라와 있으며 나름의 분석을 통해 자소서에 대한 이견을 더한 사람들도 있다. 지금 말하는 대기업뿐만이 아니다. 하반기가 시작되면서 여러 기업에서는 자신들이 원하는 인재를 찾고 있다며 채용공고를 올리고 있다. 나 역시 스포츠 마케팅을 전공하고 있는 학생으로서 자연스레 눈이 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문득 스포츠 마케팅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나의 시선이 과거 스포츠가 마냥 좋다며 이쪽 분야를 전공하고자 마음먹었을 때의 시선과는 상당한 온도 차이가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빡세다…’ 거친 표현을 썼지만, 머릿속에 스쳐 가는 분명한 이미지라는 것은 확실하다. 왜 현재의 나는 ‘스포츠 마케팅’이란 직무를 이처럼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는가… 아직 학생이나 학생 신분이기에 나름대로 현장에서 수 개월간 경험하며 느꼈던 스포츠 마케팅의 현실을 조심스레 적어보고자 한다.

스포츠마케팅이란 것을 알게 되다

한창 진로에 대한 고민이 많을 고등학생 시절, 나는 다른 대부분의 또래 친구들과 비슷하게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분명한 꿈이 없었다. 아니, 꿈을 잃었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사실 나는‘프로게이머’라는 꿈이 있었었다. 전교에서 늘 1등을 하였고 전국 대회에서도 2등의 수상경력이 있었던, 내가 제일 자신 있어 했고 자랑스러워 했던 분야. 바로 게임이다. 당시 잘 나가는 게이머들은 재미있는 게임을 하면서도 억대 연봉을 받을 뿐 아니라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었기에 나에게는 상당히 매료 있는 직업이었다. 하지만 나 역시 저렇게 되리라 자신 있었던 나만의 꿈은 부모님의 반대라는 현실적인 벽 앞에서 산산이 조각나 버렸다. 이렇게 된 바에 그래 그냥 공부나 하자며 고등학교에 진학했으니 꿈이 있을 리 없었다. 여담이지만 그렇게 열정을 쏟아부었던 게임이 요즘 다시 리메이크되어 화두가 되고 있으니 그때의 향수가 다시 떠오른다.

아무튼, 이처럼 부모님의 반대가 심해 마음을 접고 나니 자연스레 게임이라는 것을 멀리하게 되었다. 컴퓨터 앞이 아닌 책상에 앉기 시작하였고 텔레비전을 틀면 자연스레 게임 프로로 채널을 돌렸던 나는 애써 다른 채널로 눈을 돌리곤 했다. 그렇게 의욕 없이 지내던 어느 어두컴컴한 주말 새벽. 여느 때처럼 잠들지 못한 채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가 박지성 선발이라는 화면과 함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경기가 중계되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초등학교, 중학교를 나오며 운동장에서 공 차며 놀기보다 늘 컴퓨터 앞에서 게임을 하기 좋아했던 나이기에 국가대표 축구경기 외의 다른 스포츠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는데 그날따라 축구 중계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내가 그동안 즐겼던 게임처럼 스포츠경기를 보는 것도 이렇게 흥미진진할 수 있구나 하고 느꼈던 순간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주말 새벽만 되면 텔레비전 앞에 나와 해외축구 중계방송을 시청하기 일쑤였다. 그런데 그렇게 축구 중계를 보다 보니 선수들 뒤편에 보이는 수많은 관중들에게 시선이 갔다. 젊은 청년들은 물론이고, 아버지와 아들, 할아버지와 할머니, 휠체어에 앉아 머플러를 흔들고 있는 장애인까지 남녀노소 상관없이 자신이 응원하는 팀을 향해 목이 터지라고 함성을 지르고 있었다. 그때 나는 스포츠라는 것에 대해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스포츠라는 것은 장벽이 없었다. 단순한 재미를 넘어서서 남녀노소, 장애인, 비장애인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것이 바로 ‘스포츠’라는 것이었다. 스포츠에 대한 진정한 매력을 느끼고 나니 가슴이 너무나 두근거렸다. 스포츠라는 분야에 뛰어들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스포츠 선수 외에는 스포츠와 관련된 직업에 문외한이었기에 “이게 뭐지? 내가 지금 축구선수가 되기엔 너무 많은 나이인데…” 하는 괜한 걱정을 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스포츠에 빠진 나는 이날 이후 집에 오면 스포츠 쪽에서 할 수 있는 분야가 무엇이 있는지 인터넷 검색을 하며 시간을 보냈는데 검색하면 할수록 감독, 코치, 팀 닥터, 행정가 등등 내가 알지 못했던 신세계들이 펼쳐지는 것 같았다. 그 중 ‘스포츠 마케터’와 ‘피파 에이전트’라는 직업에 관심이 많이 갔다. 지금은 없어진 제도이지만 그때 당시만 해도 피파에서 주관한 자격증 시험을 거쳐 공식적으로 자격이 인증된 에이전트들만 국제적으로 활동할 수 있었는데, 그러한 피파 에이전트는 내가 좋아하는 선수들과 같이 일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주어 더욱 관심 갖게 된 직업이었다. 또한, 스포츠 마케터는 내가 좋아하는 스포츠를 가지고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제안하며 여러 활동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그저 재미있겠다 하는 마음으로 접근을 하게 되었다. 나름의 신세계에 눈을 뜬 나는 그 이후로 스포츠 마케팅이라는 분야에 더욱 관심을 가졌다. 선수가 아니어도 스포츠 쪽에서 종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난 뒤 어떠한 공부를 해야 하는지 내가 갈 수 있는 곳은 어딘지. 그렇게 몇 일간은 관련 대학 조사에만 매달린 것 같다.

조사하며 알게 된 것은 관련 학과가 너무나도 적다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처럼 많은 사람이 스포츠산업에 관해 관심을 두고 있지 않았을뿐더러 국내 스포츠 시장 자체가 작았기 때문이다. 나의 고등학생 시절이었던 2009년도 당시의 체육백서 자료를 찾아보니 스포츠마케팅 업의 시장규모가 2007년 487억 원에서 2008년 2,733억 원으로 늘어났던 것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이때가 우리나라 스포츠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시기가 아닌가 싶다. 그러다 보니 많은 정보를 확인할 수가 없었고 당연히 내가 갈 수 있고 관련 공부를 가르치는 대학을 찾기는 더욱 힘들었다. 물론 체육대학은 많았으나 당시 체육대학 하면 생리학이나 운동실습을 가르치는 대학이었다. 지금도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그렇게 이해하고 있지만 많은 체육대학이 요즘에는 스포츠마케팅과 같은 비즈니스 쪽으로 학문을 가르치고 있다고 들었다. 아무튼, 내가 당시 조사해본 바로는 2개 대학이 최적의 학교였다. 한국외국어대학교의 국제스포츠 레저학부와 한양대의 스포츠 산업학과. 이 2개의 대학을 목표로 늦은 공부를 시작했고 결국 나는 목표로 삼았던 대학에 들어가게 되었다.

스포츠마케팅을 배우다

대학에 입학하고 나니 모든 것이 술술 풀릴 것만 같았다. 어느 언론에서는 스포츠산업이 미래유망산업이라며 자료를 나타내었고 정부가 앞으로 스포츠산업을 키울 것이라는 말도 돌았다. ‘내가 전공을 잘 선택했구나’라는 뿌듯한 마음만이 가득했다. 당장이라도 잘나가는 비즈니스 맨이 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그런데 기대감이 가득 찼던 첫 전공수업, 나는 충격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그 이유는 바로 ‘영어’였다. 교수님은 우리의 경쟁상대가 한국에 있는 다른 대학교가 아닌 미국에 있다며 첫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영어로 자기소개를 시켰다. 한 사람 한 사람 앞에 나와 영어로 자기소개를 하는데 나는 영어를 전혀 할 줄 몰라 안절부절못해 하며 이 시간이 가기만을 기도했던 것 같다. 아직도 기억나는 것은 그때 수업에서 1학년 수업을 들어왔던 이중전공 선배가 있었는데 자신은 영어를 못하니 한국말로 하겠다고 교수님께 말했다가 앞으로 이 수업 안 들어도 된다며 나가라고 하셨던 교수님의 대답에 한 순간 얼어붙은 교실의 모습이었다. 영어… 생각지도 못한 복병을 맞이했던 것이다. 사실 교수님께서 그렇게 영어를 강조하신 것이 이제 생각해보면 당연했다고 생각한다.

          출처 : 2015 스포츠산업 백서

 문화체육관광부가 최근에 발간한‘2015 스포츠 산업 백서’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우리나라 스포츠 산업의 규모는 43조 원이다. 동년 기준으로 미국은 569조로 가장 최근의 자료임에도 우리나라는 미국의 13분의 1 크기로 여전히 비교도 안 될 만큼의 시장규모를 가진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자연스레 미국의 영향이 많이 있는 산업이며 영어를 하지 못하면 기회가 그만큼 줄게 되는 산업이었다. 많이 성장했다 하는데도 이 정도이니 스포츠 산업에 종사하기 위해 영어를 구사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그렇게 미리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과 두려움을 가지고 학기가 시작되었고 스포츠 마케팅이라는 것에 대해 조금씩 조금씩 배우기 시작했다.

처음 배워보는 마케팅 용어들과 수업을 하며 듣게 되는 스포츠 산업의 여러 이야기는 눈을 반짝이게 하였고 재미있었다. 마냥 현장에 뛰어들어 아이디어를 내면 되는 줄 알았는데 체계적인 이론들이 있었고 배운 이론들을 가지고 적용하다 보니 한 가지의 아이디어를 내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고민과 분석이 있어야 하는지 몸소 깨달았다. 그렇게 전공 수업을 통해 무지했던 부분을 하나씩 하나씩 배우고 나가는 기쁨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새로운 배움에 대한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수업과 과제가 대부분 영어로 진행되면서 적응하기 힘들었다. 왕복 4시간의 통학시간도 힘든데 과제를 하기 위해 밤새며 피피티를 만드는 작업은 더욱 견디질 못하게 하였다. 그러다 보니 1년만 학교에 다니고 덜컥 휴학 신청서를 내버렸다.

스포츠마케팅을 듣다

1년 휴학을 하고 나서 나는 내 나름의 방식대로 스포츠 마케팅에 대해 배우고자 하였다. 영어 때문에 제대로 배우지 못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디서 관련 세미나가 열린다 하면 유로 세미나여도 찾아가서 들었다. 전문가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으면 늘 흥미진진했고 나도 하루빨리 현장에 뛰어들고 싶었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분야는 축구이기에 축구와 관련된 이야기를 들으면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있었다. 어느 세미나이건 여러 강사가 나와서는 하나같이 공통으로 말하는 것이 있는 것이었다. 그것은 바로 ‘힘듦’이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처럼 화려하기만 한 직업이 아니에요”, “이쪽에서 일하려면 야근은 물론이고 주말을 희생할 마음은 갖고 있어야 합니다.” 심지어 “왜 이 직업을 하려고 하세요?”라고 말하는 분도 계셨다. 이해할 수 없었다. 본인들은 그렇게 자신들이 종사하는 곳에서 수년에서 수십 년간 일하며 어느 정도 위치에 서 있었고 대부분이 선망하는 종목, 선수들 혹은 관련된 분야의 스토리들을 웃으면서 말하고 있는데 힘들다고 말하다니 참으로 모순되어 보였다. 그들의 모습은 힘든 모습이 아니라 즐기고 있는 모습이었기에 더욱 공감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1년을 보내고 군대를 갔다 온 후 마음을 다잡고 2학년으로 복학을 하였는데. 달라진 것은 없었다. 그런데 여전히 영어와 통학 거리 등의 문제들은 나를 힘들게 하여 괴로워하던 도중 우연히 교회 간사님에게 내 비전에 관해 얘기할 기회가 있었다. 간사님은 나의 이야기를 듣고 선배 중에 나와 비슷한 비전을 갖고 이쪽 분야에 나가 계신 분이 있으니 말씀드려보겠다 하였고. 몇 주 뒤 간사님께 연락이 왔다. “현일아, 외대에 이런 학생이 있다고 말씀드렸는데 영어는 필수라고 말씀하시네?”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영어가 진짜 내 발목을 잡는구나 싶어. 복학한 지 한 학기 만에 바로 두 번째 휴학하고서 영어공부를 시작했다. 집안이 여유로운 형편이 아니기에 어학연수를 갈 수도 없었다. 그냥 도서관에서 관련 도서를 여러 권 빌려다 공부했다. 강남에 학원을 다니며 6개월간 미친 듯이 영어공부를 하였다. 그렇게 영어로 기본적인 대화는 주고받을 수 있는 수준으로 끌어올리게 된 후 영어가 조금은 가능하다고 생각하니 알게 모르게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자신감이 충만했던 탓일까? 다짜고짜 선배님에게 인터뷰하고 싶다는 연락을 드려 회사에 찾아갔다.

선배님은 한 스포츠마케팅 회사의 대표였는데 그 분을 통해 어떠한 일을 해오셨는지, 어떠한 일을 진행하시는지 등등 현장에 대한 이야기를 1대1로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한참 이야기를 듣다 보니 나도 모르게 끓어오르는 마음이 생겼고. 걸레질이라도 배울 테니 배울 기회가 있으면 배우고 싶다고 말해버렸다. 그런데 대표님의 반응은 웃으면서 기존에 세미나에서 들었던 강사님들의 말씀과 다르지 않은 답변을 하셨다. “힘들 거에요. 직원들 밤새기 일쑤예요.” 하아, 도대체 현장은 어떻길래 다들 이런 말을 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모든 일이 그렇지 않겠냐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대표님은 이어서 뜻이 있다면 기회가 있지 않겠냐며 대화를 마무리 지었고 우리의 대화는 그렇게 끝이 났다. 그 이후로 몇 개월의 시간이 지났다. 나는 여전히 복학은 하지 않은 채 영어공부를 더 하고자 캐나다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취득하였고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한창 일에 몰두하던 중 휴대폰 전화가 울렸다. “현일 학생, 일거리가 좀 있는데 해보겠어요?” 대표님의 전화였다. 놀란 마음에 허겁지겁 인사를 드리고 현재 풀타임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어 당장 일을 하기에는 힘들지만, 집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해보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렇게 나는 아침부터 저녁까지는 사무보조 아르바이트를 하고 집에 와서는 새벽까지 대표님이 건네주신 일들을 마무리하였다. 쉴 틈 없이 일하느라 잠을 하루에 2시간씩 잤던 것 같다. 흔한 기회가 아니라는 생각에 빠져있다가 보니 힘든 건 둘째 치고 재미있었다. 주어진 일은 한 프로스포츠 구단 관계자들의 녹취록을 정리하는 일이었는데 내가 알지 못하는 프로축구의 이야기들을 듣고 있으니 신기하기도 하였다. 그렇게 밤새며 정해진 기한 내에 자료를 건네주는 모습을 좋게 보셨는지 대표님께서는 아르바이트 기간이 끝나면 다른 일을 요청할 게 있으니 바로 회사로 나오라는 연락을 주셨다.

스포츠마케팅 현장을 경험하다

<사진> 2017 FIFA U-20 월드컵 비딩 PPT 자료

아르바이트 기간이 끝나고 캐나다 워킹홀리데이도 포기했다. 실무를 경험해 볼 좋은 기회라는 생각에 바로 회사에 나가게 되었다. 사실 어떠한 업무가 주어질지 모른 채로 가게 되었는데 사무실에 들어가서 노트북이 주어지며 듣게 된 업무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 어느 한 도시가 2017 FIFA U-20 대회를 개최할 수 있도록 피파 사절단 앞에서 발표할 비딩 자료를 만드는 업무였다. 피파 사절단이라니… 주어진 업무가 너무나 크게 다가왔다. 프로젝트 담당자와 인사를 나누고 우선은 기본적인 자료조사를 맡게 되었다. 하나라도 틀릴까 긴장하며 자료를 찾았던 것 같다. 그런데 그렇게 자료를 찾고 피피티를 만들고 미팅을 하고 수정하고 다시 자료 찾고 반복하다 보니 희한하게 낯설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왜 그런가 하니 학교에서 매번 밤새우면서 했던 작업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밤새우면서 해야 하나 억울해하고 쓸모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실제 실무에서 이뤄지고 있는 것을 보면서 괜히 반성하는 마음이 생겼다. 좀 더 열심히 할 걸 하는 아쉬움은 물론이였다. 학교에서의 밤샘은 밤샘도 아니었다. 학교는 하루 수업이 끝난 뒤에 발표준비를 하느라 밤을 새웠지만 회사는 아침부터 한 업무만 붙들고 있는데도 새벽이 되어서야 집에 갈 수 있었다. 시간이 촉박하다 보니 주말에도 출근하여 자료를 만들었다. 만약 학교에서 이렇게 해보지 않았다면 견디질 못하였을 것 같은데 그래도 해봤던 낯설지 않은 일들이라 참고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매일 새벽 늦게까지 비딩 자료를 만들다 보니 시간이 금방 흘러 어느새 학교로 복학해야 하는 날이 다가왔다. 시간이 흐르고 어느 날 팀장님께서는 조용히 나를 불러 근처 카페로 데려갔는데 깜짝 놀랄 제안을 하셨다. 시간표를 조절해서 회사에서 인턴으로 병행하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이었다. 대표님께서 불러 이 자리에 앉았지만 대표님이 아닌 나를 맡고 있던 팀장님께서 직접 인턴으로 데리고 있고 싶다고 건의하여 생긴 기회였다. 주중 2일이라도 괜찮으니 학업을 병행하면서 일을 배우는 게 어떻겠냐는 말에 흔쾌히 그렇게 하겠다고 하였다. 그렇게 복학을 하고서 20학점을 월,화,수에 다 몰아넣고 목,금,토 회사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사진>A사 축구교실

<사진> A사 프로그램 기획안

인턴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피파 비딩자료는 마무리가 되었고 피파 사절단 앞에서 한 발표도 무사히 끝이 났다. 나는 수업이 있어 비딩 현장에 있지는 못했지만, 피피티에 대한 반응이 상당히 좋았다고 하더니 이는 곧 개최 도시로 선정이 되는 쾌재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밤새 작업한 보람이 있구나 하며 뿌듯함을 느끼게 된 순간이었다. 피파 비딩 프로젝트가 끝난 후에는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 A사와의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다. A사의 사회공헌활동 중 하나인 소외계층 아동들에게 축구교실을 열어주는 프로젝트였는데. 프로젝트에 들어가며 내가 생각했던 스포츠마케팅의 그림과 비슷하다고 느꼈었다. 스포츠에는 벽이 없어 남녀노소가 즐길 수 있는 문화. 그 문화를 통해 누구에게나 궁극적인 가치를 심어주는 일.

어떻게 보면 소외계층 아동들에게 축구교실을 열어준다는 일은 내가 꿈꿨던 일과 밀접한 일이었다. 그렇게 배울 것들로 가득 찰 거라는 설렘과 함께 일이 진행되었다. A사가 선정한 비영리 시설을 통해 교육을 진행할 어린아이들을 선정하고 강사들과 장소를 섭외하였으며 교육 프로그램 등등 여러 작업을 착수해 나아갔다. 그런데 배움의 즐거움도 잠시, 이게 말로만 듣던 갑질인가 하는 순간들이 많이 생겼다. 같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대리님은 매일같이 한숨을 내뱉으시고 요구에 맞춰서 그때그때 수정하는 일들이 많이 생기면서 야근하는 일이 많이 생기기 시작했다. 프로젝트 특성상 주말에 나가야 하는 일들도 많았다. 적당히 무언가를 만들고 던지기만 해서는 안 됐다. 근거 있는 피드백을 건네줘야 했다. 예를 들면 언론에 얼마나 노출이 되었는지 교육을 받은 아이들의 만족도는 어떠한지 참여율은 어떠한지 등등의 일들이었다. 몇 달에 한 번은 A사 임직원들과의 운동회 등 전체 행사가 있었는데 이러한 큰 행사가 다가오면 피파 비딩자료를 만들었던 때처럼 다시 새벽에 집에 들어가기가 일수였다.

학교에서 학생들이 이벤트를 직접 기획하고 운영해보는 수업이 있었는데 이 수업과 크게 다르지 않은 작업들이었지만, 더 세밀한 작업과 야근이 수반된다는 게 몸을 힘들게 했다. A사와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서울을 연고지로 하는 프로축구구단의 마케팅 업무도 도왔다. 주로 SNS 마케팅을 진행했는데 매주 새롭고 기발한 콘텐츠를 기획하고 SNS에 올려야 했기에 아이디어를 기획하는 작업만 해도 상당한 시간 투자를 요구했다. 이 프로축구구단이 진행하는 아마추어 축구대회를 홍보하는 일도 도맡았는데 경기가 일요일에 있어 아침 일찍부터 저녁까지 경기 모습을 취재하고 편집하여 SNS에 올리는 일을 하기도 하였다. 그럴 때면 나의 주말은 아예 없었다. 오히려 수업을 듣기 위해 온 종일 학교에 있는 시간이 나의 쉼이 되었다.

<사진> 축구사랑 나눔의 밤 행사 모습

그러고 보면 왜 직장인들이 학창시절이 좋은 거야 하고 말하는지 알 것도 같다. 그렇게 실무를 경험하면서 큰 인물들도 만나게 되었다. A사의 한국지사 대표도 볼 기회가 있었고 한 프로축구구단의 단장도 보게 되었다. 회사가 아모레퍼시픽 사회공헌 활동도 하고 있어서 아모레퍼시픽 본사에도 들어가 행사를 진행해 보기도 하였다. 그중에 가 장 눈이 돌아갔던 것은 대한축구협회와 관련된 일을 진행한 순간이었다. 회사의 많은 업무 중 하나는 대한축구협회에서 파생된 비영리 재단을 운영하는 일이었는데 이 재단은 축구를 통한 많은 의미 있는 사업들을 진행하였고 한 해 마무리를 ‘축구사랑 나눔의 밤’이라고 해서 후원자들과 수혜자들 등등 축구 유명인사뿐 아니라 여러 사람이 모이는 큰 행사로 진행하고 있었다.

나는 이러한 비영리 재단을 운영하는 팀에 속해 있진 않았지만, 워낙 큰 행사였기에 나를 포함한 모든 직원이 행사에 참여하게 되었다. 현장에는 텔레비전으로만 보던 사람들이 있었는데, 정몽규 대한축구협회는 물론 국가대표 감독님, 배성재 아나운서, 차범근 등등 이름만 대면 알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생각만 해도 멋지고 화려한 일이지만 이제는 안다. 이렇게 하나의 행사가 진행되기 위해서는 뒤에 수많은 사람이 수많은 시간을 들여서, 야근을 밥 먹듯이 하며 준비했다는 것을. 그렇게 하나둘 실무를 경험하면서 조금은 알 수 있게 되었다. 세미나를 찾아 돌아다닐 때마다 들었던 공통된 조언들을 말이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만큼 화려하기만 한 직업이 절대 아니에요.”

<사진> 당시 월드컵 기념관 내부 모습

 축구사랑 나눔의 밤 행사가 끝나고 나서 A사의 사회공헌 사업도 마무리가 되었다. 그 후 방학을 맞이해 본격적으로 풀타임 인턴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한 프로젝트가 끝나면 쉴 틈 없이 바로바로 다른 프로젝트에 투입되었다. 방학 때 맡은 업무는 서울월드컵경기장에 있는 2002한일월드컵 기념관에 있는 자료들을 모두 조사하는 작업이었다. 듣자 하니 대한축구협회에 노후화된 월드컵 기념관을 리모델링 하여 수익을 내도록 사업모델을 제안했는데 성사가 되어서 자료조사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각종 자료와 도서, 물품들로 수북이 쌓인 지하 창고에 들어가 자료를 하나하나 사진으로 기록하고 내용을 기재하여 정리해 나갔다. 이러한 시설도 뚝딱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정말 많은 자료조사가 필요하다는 것을 이때서야 깨달은 것이다.

스포츠마케팅을 다시보다

<사진> L사 전국 배드민턴 대회

방학 내내 자료조사를 진행하고 나는 다시 학교로 돌아갔고. 그렇게 1년을 학업에 집중한 뒤 다시 인턴으로 한 학기 동안 회사에서 일하게 되었다. 자료조사를 진행했던 기념관은 완전히 새로 리모델링 되어 세간의 화두가 되었고 직원들은 이 시설을 마케팅하기 위해 끊임없이 무언가를 기획하고 있었다. 그러는 와중에 나는 국내 스포츠 브랜드 L사와 전국배드민턴대회를 진행하는 프로젝트에 투입되었다. 이틀간 진행되며 2천 명이 넘게 참여하는 큰 행사였다.

이벤트를 진행하게 될 현장에 수시로 조사를 나갔고 클라이언트들과의 미팅을 토대로 여러 가지 이벤트들을 기획했으며 사람들을 모으기 위한 바이럴 마케팅까지 진행하였다. 6시 정시에 퇴근하는 일은 손에 꼽았고 야근은 수없이 많았다. 흔히‘갑질’이라고 말하는 요소들에 직원들 모두가 분을 내기도 하였고 기획한 것이 잘 진행되면 크게 웃어보기도 하였다. 준비한 프로젝트가 끝나면 큰 보람이라는 보상이 주어졌다. 준비하는 과정 가운데 실수를 해 혼을 내던 상사의 모습은 수고했다며 격려해주는 훈훈한 모습으로 미소를 지어 주시기도 하였다. 회사는 늘 수익을 내야 하니, 하나의 프로젝트가 끝남과 동시에 다른 일들을 줬다. 대한축구협회 SNS 마케팅, 대기업 A사의 마라톤 행사 비딩 프로젝트, 기념관 워크숍 프로그램 등등 업무적으로 많은 것들을 배우게 된 시간이 주어졌다.

앞서도 말했지만, 이 시간 중 가장 크게 느끼고 배운 것은 하나의 행사, 마케팅이 진행되기 위해 수많은 인고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직접 부딪혀야 깨닫게 된 걸 보니 기존의 나는 참으로 어리석었던 것 같다. 스포츠 마케팅은 마냥 화려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는 걸. 왜 그렇게 이미 앞서나가 있는 분들께서 쉽지 않은 길이라고 말했는지 이제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정말로 스포츠 분야는 열정이 빠지면 종사하기 힘든 분야라고 생각 든다.

하나의 예를 들어 프로축구 경기가 있다하면 이는 일반 사람들에겐 주말에 즐길 수 있는 하나의 문화생활이지만 업으로 삼은 사람들에게는 주말 남들이 쉴 때 현장에서 일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 때문에 열정이 없이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한 일로 여긴다면 버티기 힘든 분야라고 생각한다. 물론 내가 대행사 성격이 강한 업무에 있어서 이렇게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현장에서 경험하기 전과 후에 스포츠마케팅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학교에서 배운 이론들을 적용하기에는 시간에 쫓기는 일들이 너무 많았다. 네이버에서 검색해보니 스포츠 마케팅은 이처럼 정의가 내려져 있다. ‘스포츠를 이용하여 제품판매의 확대를 목표로 하는 마케팅 기법’ 정의는 쉬우나 그저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을 좇기에는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사진> 대한축구협회 어린이날 행사

회사에 다니며 대한축구협회와 관련된 일을 두루 하다 보니 주변에서의 반응은 늘 부러워하는 반응들이었다. 올해 5월 5일은 대한축구협회 어린이날 행사를 진행했는데 전 국가대표 감독이었던 슈틸리케 감독부터 시작해서 얼짱 축구선수로 유명한 이민아 여자축구 선수, 설기현 코치 등등 많은 이들을 모시고 아이들과 프로그램을 진행한 시간이었다. 축구를 좋아하는 주변인들은 그 행사를 했다는 이야기 자체만으로 부러워하기도 했다. 또 국가대표 경기든 프로축구경기든 어떠한 경기가 있을 때면 현장에서 내부 직원들과 소통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 자체만으로도 부러워했다. 이승우 선수, 이영표 해설위원, 샘 헤밍턴 등 여러 유명인사를 마주칠 때도 그러했다.

그뿐만 아니다. 스포츠 브랜드를 상대하다 보면 그 브랜드의 제품을 얻을 기회가 종종 생기는데 그렇게 물품을 얻다 보면 주변에선 나도 하나 얻어달라며 부러워하는 기색을 보였다. 기념관을 리모델링하며 박지성 선수를 만날 기회가 생겼던 적도 있었는데 그 이야기를 하니 주변이 더 호들갑이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들의 반응은 예전의 나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그 화려함만 보는 시선 말이다. 축구 경기가 있으면 현장에서 직접 선수들을 눈앞에서 보고 있는 관계자의 모습이 그저 부러웠고 그들과 무언가를 꾸밀 수 있다는 게 멋있어 보이는 일이었다. 그런데 실상도 이러한 모습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늘 밥 먹듯이 하는 야근과 주말에 혹은 밤늦게까지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그러한 모습이 없이 말이다.

스포츠마케팅의 상황

현재 세계적으로 스포츠 마케팅 시장규모는 2000년대에 들어 꾸준히 성장해왔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사람들이 삶의 여유를 찾으면서 자연스레 스포츠라는 여가 활동, 문화생활을 찾는 데에 이유가 있다고 본다. 미디어의 발전 또한 큰 원인이다. 이는 많은 사람이 스포츠를 접할 수 있게 도왔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스포츠는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다가갈 수 있는 대중적인 문화로 더욱 성장을 이뤄왔던 것 같다. 그렇게 체험형 스포츠이든 관람형 스포츠이든 대중과 소통하기 쉽다 보니 스포츠를 매개체로 마케팅하는 추세가 계속해서 성장하지 않았나 싶다. 관심이 커지고 산업이 커지면서 자연스레 관련 직종도 인기를 끌게 됐다.

직종만 인기를 끄는 것이 아니라 관련 학과들도 경쟁률이 많이 올라갔다. 현재 내가 다니고 있는 학과만 해도 동 대학 모든 학과를 통틀어서 최근 몇 년간 경쟁률이 가장 높은 학과로 나오고 있으며 최근엔 이런 학과에 들어가고 싶다며 상담을 요청한 동생도 있었다. 그렇게 산업이 커지다 보니 대기업들은 스포츠마케팅을 빼놓을 수 없게 됐는데 이는 대중과 소통하기 쉬운 스포츠를 통해 자신의 브랜드 이미지를 더욱 구축하기 위해서, 또 자신들의 상품을 팔기 위해서 당연한 모습이 되었다. 옛날에는 스포츠 마케팅이라 함은 단순히 경기를 후원하거나 스포츠 선수를 모델로 쓰는 등의 스폰서십 활동으로만 봤다고 한다.

다시 …

<사진> 사원증

얼마 전 프랑스 리그앙 인기구단인 PSG가 바르셀로나에 2억 2200만 유로. 우리 돈 3,000억이 넘는 정말 ‘억’ 소리 나는 이적료를 지급하고 네이마르를 영입하였다. 이는 수많은 이슈를 낳아 아직도 말이 많은 사건이 되었는데 많은 사람에게는 그저 어떠한 유명 선수가 새로운 팀에 들어가게 된 재미있는 사건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나는 PSG 구단과 바르셀로나 구단의 마케팅 담당자들이 얼마나 많을 일을 진행하게 될 것 인가 생각하게 됐다. 그들도 밤새며 작업을 할까? 하며 괜한 걱정이 되기까지 했다. 그래. 분명히 스포츠마케팅이라는 직무는 쉽지 않은 길이다. 그러나 정말 다양한 매력이 있는 길인 것 또한 확실하다. 이제 화려함의 겉모습을 보던 시선도, 고군분투하는 내부를 보는 시선도 갖게 되었다. 양쪽에 눈을 갖고 접근하면 힘든 상황에도 웃으며 더욱 다양한 지식을 습득하고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으리라… 각 기업이 스포츠마케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스포츠마케팅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이 더욱 많이 나올 것이다. 화려함 속에 숨겨져 있는 가혹한 현실을 뛰어넘어 이 길을 걷고자 하는 모든 이들이 스포츠의 진정한 가치를 빛낼 수 있기를 기원한다.

글=조현일 인턴 기자
johyful@gmail.com

2 COMMENTS

  1. 잘 읽었습니다. 스포츠 마케팅을 진로로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좋은 조언이 된 것 같습니다. 필력이 좋으시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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