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에는 어떠한 가치들이 있는가? 도전 정신, 스포츠맨십, 땀과 열정, 스포츠를 통한 하나 됨과 승리. 경쟁이 하나의 사회적 생존 수단이 되어 버린 지금의 시점에서 승리의 본래적 의미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도를 지나친 경쟁으로 인해 진정한 승리의 의미가 퇴색되었고 ‘과정’의 중요성을 망각한 채 결과만을 중시하는 ‘승리지상주의’를 야기했다.

스포츠에서도 어떠한 수단을 써서라도 기어코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종종 보곤 한다. 그중 하나가 ‘귀화’다. 이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귀화 선수들은 부모 중의 한 사람이라도 한국인이 아니거나 한국에서 출생하지 않아서 한국과는 혈연적 관련이 없는 선수들을 지칭한다.

지난달 13일 서울 삼성 썬더스 소속의 리카르도 라틀리프(28·미국)의 특별귀화가 추진되었다. 15일 대한체육회 심사를 통과했고, 현재 법무부의 최종심사만 남겨두고 있다. 미국출신 운동선수인 그가 특별귀화의 ‘혜택’을 받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그의 귀화가 남자 농구대표팀의 경쟁력에 큰 보탬이 되기 때문이다.

2018년 대한민국 평창에서 동계올림픽이 개최된다. 각계각층의 사람들 노력으로 일궈낸 결과물이다. 안방에서 개최되는 대회인 만큼 체면은 살리고 가겠다는 움직임이 보인다. 대한민국 선수단의 규모는 130명 안팎인데, 현재 귀화가 이뤄진 선수는 19명이다. 단순계산으로 약 15%, 적어도 10명 중 한 명은 귀화선수인 셈이다. 저마다 태극마크를 달게 된 이유는 다르지만 분명한 것은 역대 올림픽 가운데 대한민국 선수단의 귀화선수 비율이 가장 많은 대회라는 점이다. 이러한 배경 역시 메달의 개수 즉, 결과에 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스포츠. 특히 태극마크를 달고 뛰는 경기에서 승리는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가? 먼저 스포츠가 대한민국에서 본격적으로 꽃을 피우기 시작한 때부터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1960년대부터 90년대 초반까지 군사정권이 대한민국 위에 군림하고 있었을 때 ‘스포츠’라는 새로운 문물이 본격적으로 유입되었다. 당시 전두환 정권은 국민의 시선과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3S(Screen·Sex·Sport) 정책을 폈고 정권의 바람대로 국민은 정치에 소홀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스포츠는 대한민국에 본격적으로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군사정권의 틀 아래에 ‘엘리트 체육’도 이때부터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재능이 있는 소수의 유망주를 어릴 적부터 집중적으로 육성해 나라를 대표하는 선수로 키우는 것이다. 반세기 동안 다양한 국가대표들이 거쳐 간 1966년에 건립된 태릉선수촌도 군사정권을 방증하는 건축물이다. 이 같은 특성을 지닌 곳은 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선수가 대회에서 금메달을 따오면 그것 자체가 애국 행위이자 국위선양이었고 그것을 응원하고 지지하는 국민 또한 자신들이 애국 행위를 한다는 착각에 빠지게 했다. 이러한 모습은 아직도 관찰할 수 있는 현상이다.

이러한 시대의 흐름 속에 1998년 서울 올림픽이 개최됐다. 전 세계에 대한민국이 어떠한 국가인지를 증명할 기회이자 군사정권을 예쁘게 포장한 하나의 ‘무대’이기도 했다. 대외적으로는 전쟁을 치른 대한민국이 단시간에 성장한 나라임을 보여주는 동시에 대내적으로는 국민을 통합하여 그간의 상처를 올림픽을 통해서 씻어내고자 했다. 올림픽에서의 좋은 성적은 단순히 대한민국이 훌륭한 운동선수를 보유하고 있다는 의미를 넘어서서 사회·경제·문화적으로도 세계열강의 반열에 들 수 있다는 점을 간접적으로도 말하고 있었다.

이러한 사회적 배경과 현대 스포츠는 맞물려 승리지상주의를 빚어냈다. 승리지상주의는 많은 사람의 생각 속에 스며들어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귀화 선수들은 이런 욕망의 ‘부산물(by-product)’이고 국가뿐만 아니라 국민 또한 욕망의 ‘생산자’이다. 어느 순간부터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의 선전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예를 들어 종목을 불문하고 대한민국은 ‘영원한 라이벌’ 일본을 언제나 이겨야 하고 월드컵 본선 진출은 기본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스포츠의 진정한 가치는 매몰되었고 승리에 대한 갈망은 심화하였다. 우리는 결과의 가치를 재확립하고 ‘과정’의 중요성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시상대 제일 맨 위에 서 있는 선수가 그보다 아래 있는 모든 선수보다 훌륭한가? 그가 이루어낸 성취는 박수받아야 마땅하지만, 나머지 선수들의 피나는 노력과 땀방울 역시 찬사의 대상이 아닐 수가 없다. “올림픽 대회는 승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참가하는 데 의의가 있으며,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성공보다 노력하는 것이다” 근대 올림픽 경기의 창시자 피에르 데 쿠베르탱의 말은 우리가 올림픽을 대해야 하는 올바른 자세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성적 부진으로 고개를 숙이는 감독 혹은 선수를 비난하기 전에 우리 자신부터 먼저 되돌아보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 아닐까?

위와 같은 바람직한 자세를 갖춘 뒤 귀화에 대한 논의를 이어나가는 것이 옳다. 이미 19명의 선수가 귀화를 완료한 지금, 어떤 방향의 귀화가 올바른 것인가?

귀화를 찬성하는 사람들 대부분의 입장은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실력 있는 외국 선수의 귀화는 해당 종목의 경기력 향상은 물론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다는 것이다. 실례로 귀화한 선수들의 종목을 보면 세계수준과 격차가 나는 종목의 선수들뿐이다. 세계정상급이라고 볼 수 있는 쇼트트랙이나 스피드스케이팅 종목의 경우, 귀화선수는 없다. 따라서 귀화의 본질적인 이유는 ‘결과’라고 결론지을 수 있다. 당장 눈앞의 결과물만 보고 외국으로부터 선수를 귀화시키는 것은 숲은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는 것과 똑같다.

귀화선수들로 국가대표 자리를 빼앗기게 된 국내 선수들은 어떠한가? 취약종목의 경우, 국내의 열악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피땀 흘리며 노력해온 국내의 선수들을 좌절시키는 것이 아닐까? 열심히 해도 안 된다는 스포츠 정신에 위배되는 정서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이제껏 피땀 흘려 훈련해오던 국내 선수들은 물론 미래의 유망주들에게까지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다. 국내 자원의 뿌리에 물을 주고 비료를 대기는커녕 외래종의 유입으로 생태계의 커다란 혼란을 초래할 것이다.


올림픽 개막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 ‘최상’의 결과를 위해서 귀화가 어떻게 보면 ‘최선’의 결정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장기적인 관점과 체계적인 ‘시스템’이 필요하다. 귀화가 아니더라도 꾸준히 최상의 결과를 낼 수 있는 그런 시스템. 유망주 육성 프로그램을 강화하고 선수들이 훈련하는데,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시설 부분에서 대대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과 같은 빛 좋은 게살 구식의 주장은 하기 싫다. 어쩌면 그런 부분은 개선 중이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무엇인가? 귀화한 ‘선수’들과 선수들을 받아들이는 ‘협회’ 2가지로 압축된다.

첫 번째로 선수다. 진심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대한민국에 헌신하기 위해서 온 그들을 활용하는 것이다. 이 헌신의 범위가 올림픽에 국한되어서는 안 된다. 올림픽은 물론 그 이후까지 이어져야 한다. 올림픽이 끝난 뒤 경기장의 사후방안을 논의하듯이 선수들도 마찬가지로 그런 논의가 필요하다. 박성희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스포츠레저학과 교수는 “귀화 이후를 준비해야 한다”며 “귀화선수제도의 용인 귀화 이후에 대한 준비가 전제되어야 한다. 귀화제도를 통한 우수한 성적을 거두는 것이 단기간의 성과목표라면, 성과의 열매에서 어떤 씨앗을 장기적 유산으로 싹틔울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성희 칼럼] 파란 눈의 아이스하키 국가 대표팀: 귀화선수, 국가 그리고 민족)

적재적소. 어떤 일에 탁월한 재능을 가진 자에게 적합한 지위나 임무를 맡긴다는 의미의 사자성어다. 귀화선수가 특별귀화의 혜택을 받게 된 것은 그들의 ‘실력’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가지고 있는 능력, 즉 무형의 유산을 국내의 새싹들의 잠재력을 꽃 피울 수 있는 양분으로 주는 것이 가장 적합한 활용방법이다. 귀화한 선수들을 통해서 그들 재능의 밑거름이 된 선진화된 시스템의 좋은 점이 우리나라에 반영되어 더는 귀화의 큰 도움 없이도 자생력을 갖출 수 있는 것이 추구해야 할 방향성이다. 만약, 귀화선수들이 나중에 지도자로서 또 다른 방식으로 기여하게 된다면 그것 또한 훌륭한 선수의 재능을 활용하는 방법일 것이다.

두 번째로 협회다. 이들이 해야 할 우선순위는 무엇일까? 귀화할 선수를 잘 고르는 것이다. 귀화선수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메달 획득 가능성뿐만 아니라 그들이 대한민국 언어를 배우거나 고유의 문화를 받아들일 진정성 있는 마음이 있는지 또한 그들의 인성과 성장 과정, 인간적인 면모에 좀 더 관심을 가질 필요도 있다. 이것들을 확인한 뒤 협회는 선수들이 잘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은 물론 선수의 역량이 충분히 발휘될 수 있도록 다양한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선수로서 바짝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역할을 수행하여 대한민국에 기여할 수 있도록 말이다.

선수가 찾아오게끔 매력적인 시스템을 갖춘 국가가 되어야지 성적에 연연해서 협회가 ‘스카우터’ 같이 아등바등 선수를 찾는 일은 지양해야 한다. 국가의 제의를 받은 선수는 솔깃한 조건으로 본질적인 것 이외에 다른 것에 눈이 멀어 귀화를 결심할 가능성도 있다. 그렇다면 국가에 돌아가는 이익은 적거나 아예 없을 수도 있다. 벌들이 꽃을 찾아다니듯이 대한민국 또한 많은 선수가 오고 싶어 하는 ‘꽃’과 같은 나라가 되어야 할 것이다.

협회 내의 분쟁이나 파벌로 인해서 선수를 잃는 일 또한 없도록 해야 한다. 쇼트트랙 안현수 선수, 이제는 ‘빅토르 안’이라고 불러야 할 그의 사례가 잘 말해준다. 당시 영향력 있는 인물과의 갈등은 물론 복잡한 파벌싸움에 휘말려 러시아의 부름에 응한 빅트로 안을 국가를 배반한 선수라고 마냥 비난만 할 것이 아니다. 언젠가는 없어져야 할 인습으로 인한 피해자가 생긴 것이다. 어떻게 보면 빅트로 안은 그가 사랑하는 쇼트트랙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곳으로 간 것이다. 협회는 외국에서 선수를 데려오는 것은 고사하고 국내의 우수한 선수를 지키는 것이 먼저가 아닐까 싶다.

승리와 귀화. 귀화와 승리. 개막까지 120여 일 앞둔 지금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인 둘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태도를 정립할 필요가 있다. 승리에 목마른 관중들과 어쩔 수 없이 갈리게 될 시상대 위의 1, 2, 3위 그리고 나머지 선수들. 분명한 것은 모두의 노력은 귀중하고 진정한 스포츠 가치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박영웅 기자
yeongung98@siri.or.kr
[2017년 10월 10일, 사진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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