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RI, 현계원 기자] “제가 유럽에서 뛰고 있을 때 유럽 생활에 만족했지만, 사실 한국을 사랑해서 정말 한국에 오고 싶었어요. 한국 농구 발전에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막연하게 있어서, 라스베이가스 트라이 아웃에 무려 네 번이나 참가했어요. 근데 자꾸 안 되더라구요(웃음). 그런데 마지막 한 번만 더해보자 하고 참가했는데, 운 좋게 뽑혀서 한국에 왔어요. 그게 2009년… 벌써 10년이나 됐어요”
전태풍이 스포츠미디어 시리와 단독으로 만나서 털어놓은 이야기다. KCC와의 FA 협상 결렬 사인서에 서명을 하고 나온 오늘, 어쩌면 한국 프로농구에서 선수로서의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날이었지만, 그의 한국 사랑은 변함이 없었다.
전태풍(39)과 전주 KCC 간 자유계약 협상(FA)은 결국 결렬됐다. 그리고 그 과정 가운데 느꼈던 섭섭함을 전태풍은 14일 자신의 SNS에 올렸고, 이는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다. 따라서 본보를 단독으로 만난 자리에서 인터뷰의 주제는 자연스레 SNS 내용에서 시작될 수밖에 없었다. 정확한 내용 전달을 위해 인터뷰 내용 전문을 싣고자 한다.
시리) 전태풍 선수의 SNS 내용으로 오늘 하루 많은 기사가 쏟아졌다. 코치직과 연봉 금액, 그리고 구단이 FA 규정에 대해 제대로 설명해 주지 않아 서운했다는 다른 매체의 기사 내용은 모두 사실인가?
전) “(다른 기사에 나온 내용은) 모두 맞는 이야기다. 사실 내가 KCC에 엄청 애정이 많다. 구단은 선수가 못하면 계약을 안 할 수도 있는 거고, 선수는 못하면 은퇴해야 한다. 그건 당연한 거다. 그런데 왜 그런 이야기를 나한테 직접 하지 않는지 정말 이해를 못하겠다. 그 정도는 쿨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데 엄청 서운했다.”
시리) 혹시 경기력 저하 때문에 구단과 재계약이 실패한 게 아닌가?
전) “나이가 드니까 예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몸상태는 매우 좋다. 경기에 뛰지를 못했는데 안 좋고 좋고가 어디 있겠는가? 힘도 넘친다. 오늘 밤에도 KBL 젊은 선수들과 농구하러 간다. 매주 수요일 한 번씩 하는데 아마도 내가 체력이 제일 좋을 거다”
시리) 경기를 뛰지 못했다?
전) “그렇다. 올해 플레이오프에도 전혀 뛰지 못했다. 이해가 안 갔다. 사실 내가 못하면 은퇴하는 게 맞다. 하지만 나는 아직 내 실력과 체력에 자신이 있다. 그리고 지난 2년간 많이 뛰지 못했기 때문에 이렇게 아쉬움을 남기고 선수 생활을 끝내고 싶지 않다.
시리) 그럼 못 뛴 다른 이유라도 있다는 것인가?
전) “아마도 내가 예전 같지 않아서이지 않겠는가? 그래도 구단에서 정확하게 말해주지 않으니 알 방법은 없다. 얼마 전 전 구단 관계자를 만났을 때 왜 이렇게 출전 기회가 줄어든 것인지 물었더니 자세히는 말해줄 수 없지만, 자기도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라 했다. 이게 정확히 무슨 뜻인가? 나는 정확히 잘 이해가 안 간다.”
시리) 2주 안에 다른 팀과 계약이 안되면 은퇴를 할 수밖에 없는데?
전) “맞다. 은퇴하더라도 KCC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팀이었는데 작은 은퇴식이라도 갖고 그만두고 싶었다. 사실 그게 내가 제일 속상한 부분이다.”
시리) 그렇다면 서운한 마음이 들겠다
전) “한국에서의 내 농구 인생의 전부는 KCC에서의 생활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유럽에서 큰 어려움 없이 선수생활할 수 있었지만, 가족, 특히 어머니의 권유로 한국에 왔고, 오기 전부터 너무 큰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네 번의 도전 끝에 KCC에서 날 뽑아줬고, 그래서 KCC에 참 감사했다. 대부분의 기간 동안 한국에서 참 행복했다. 그저 잘 끝내고 싶은 마음뿐이었는데 오늘 (협상 결렬) 사인하고 오니 마음이 이상하다.”
시리) 구단측 사람들과 인사는 하고 나왔나?
전) “(웃음) 직원 만나서 사인하고 나왔다. 그래도 마지막인데 윗분들 얼굴도 못 보고 인사도 못하고 나왔다. 그리고 사인하러 갔는데 직원이 6천만 원 이야기를 누구한테 들었는지 물었다. 좀 전에 전화 와서 다시 묻더라… 그럼 나는 나한테 얘기해준 사람 이름을 얘기하거나 셋이 얼굴이라도 맞대고 얘기해야 하는 건가? 그건 선수를 바보 만드는 짓 아닌가?”
시리) 그래도 비록 플레잉 코치 포지션이지만 구단에서 나름 신경을 써주지 않았나?
전) “사람들이 잘 모르는 부분이 있다. 한국 농구에서 플레잉 코치라는 게 흔한 포지션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난 구단과 재계약할 때 계약서에 플레잉 코치가 아닌 선수로 재계약을 했다. 물론 내가 한국말이 완벽하지 않아서 다시 확인해봐야 한다. 사람들은 내가 플레잉 코치로 통역도 하기 때문에 경기에 많이 못 나오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플레잉 코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구단 외부에서는 나를 플레잉 코치라고 알고 있다.”
시리) 혹시 재계약이 안된다면?
전) 모르겠다. 이렇게 농구를 그만두는 건 생각도 해본 적이 없는데.. 2주 안에 연락이 안 오면 끝나는 거 아닌가? 머리가 아프다. 인스타도 잘 안 하는데 어제 너무 충격을 받고 (사진) 올려서 이제 다른 구단에서 날 미워할 테니 다른 팀이 날 데려갈지 모르겠다(웃음). 단장님들 단톡 방도 있다는데(웃음)”, “그래도 한국 와서 내 플레이 스타일도 완전 다 바꿔버렸고, 미국 시민권도 버리고 한국 사람이 될 만큼 한국을 정말 사랑하는데 한국에서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2편에서 계속됩니다)
현계원 기자
gyewon@siri.or.kr
[2019.05.16, 사진 = 현계원, 전주 KCC 제공]
아 진짜 kcc는 진짜 못됐다 해명이라고 하는게 저따구인거 보면 구라치는거 같은데
아 태풍이형 너무 좋아하는데 꼭 다른팀에서 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넵! 거짓없는 목소리를 전달드리겠습니다.
[…] = 현계원 기자] 1부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