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CSL(중국 슈퍼리그)을 아는가? 최근 중국 프로축구 시장은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중국 주석 시진핑의 ‘축구굴기’라는 구호 아래, 중국 프로축구의 각 구단들은 무서운 자금력을 바탕으로 자기 자신과, 리그를 빠른 속도로 성장시키고 있다.
우리나라에게 중국 축구는 그저 ‘거칠고, 한국 보다 한 수 아래’인 이미지였다. 하지만, 최소한 프로축구 리그에서는 이러한 공식이 깨지고 있다. K리그의 스타 플레이어들이 중국 무대로 진출하고, 영입 경쟁에서도 중국에게 밀리고 있다. 이는 곧 ACL(AFC 챔피언스리그)과 같은 국제 대회 성적에서도 명백히 드러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중국 축구, 그리고 CSL을 더욱 잘 알아야 한다. 중국의 빠른 경제 성장과 함께 중국 축구 시장은 더욱 커질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중국 축구를 아직도 얕잡아 보고 있다. 바로 옆 나라에 무한한 스포츠 산업 시장이 열리고 있지만, 우리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래서, SIRI는 5편의 기사를 통해 여러분께 CSL을 이해할 수 있는 흥미롭고, 주목할 만한 정보들과 이야기를 제공하려고 한다. 이번 특집을 통해 중국 시장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편집자 주>
대체로 중국의 구단들은 1950년대 중, 후반에 지역 축구협회와 체육회의 주도로 창설된 구단과 94년 부근의 프로화 진행으로 인해 창설된 구단이 많다. 전자의 경우 기존의 클럽들이 투자 기업들과 함께 재창단을 하거나 공동 경영의 형태로 시작한다. 후자의 경우에도 흔히들 지역 축구협회와 함께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CSL 팀들의 역사는 굉장히 복잡할 수 밖에 없다. 수많은 기업들이 들어왔다 나가고, 연고이전과 팀 명 변경이 수시로 일어난다. 본격적으로 CSL에 대해 알아보기 전에, 그들이 어떤 팀들로 구성되어 있는 지 기본적인 정보를 알아보자.
1. 광저우 헝다 타오바오 广州恒大淘宝
연고지 : 광저우성 광주시
창단 : 1954년
홈 구장 : 톈허(티엔허) 체육장(스타디움)
주요 경력 : CSL 우승 5회, 중국 FA컵 1회, ACL 2회
K리그 천하였던 AFC 챔피언스리그(이하 ACL)의 판도를 중국으로 가져온 구단. CSL의 자금력을 언급할 때 빠지지 않는 구단이기도 하다. 모기업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다리오 콘카, 호비뉴, 파울리뉴 등 세계적인 선수들과 마르셀로 리피, 파비오 칸나바로, 루이스 펠리페 스콜라리 등 세계에서 알아주는 명장들로 팀을 운영해왔다.
이 팀은 광저우 체육위원회가 운영하다가 93년 태양신 그룹의 경영 참여로 인해 중국 최초로 지역 체육위원회와 사기업의 합작투자 클럽이 됐다. 2010년 헝다 그룹이 인수, 이후 2014년 마윈의 온라인 상거래 사이트로 유명한 IT 업체 알리바바 그룹과 부동산 그룹 헝다가 각각 50%씩 지분을 보유해 현재의 광저우 헝다 타오바오가 완성됐다.
지금의 ‘광저우 헝다’ 이미지가 시작된 것은 2011년부터. 헝다 그룹이 본격적으로 투자를 시작하면서 다리오 콘카, 조원희, 펑샤오팅 등 세계 각국의 대표급 선수들을 불러 모으기 시작했다. 결국 2011년 CSL 승격 첫 시즌에 우승 트로피를 차지하는데 성공했다. 당시 헝다의 감독은 한국인 이장수 감독이었다.
2012년에는 다른 구단들 역시 적극적인 투자에 뛰어 들었으나, 광저우 헝다는 그래도 한 수 위였다. 황보원, 김영권 등을 추가로 영입했다. 이 해는 선수 영입보다는 감독 선임으로 인해 많은 관심을 받았다. 2011년 팀 역사상 최초로 CSL 우승컵을 안겨준 이장수 감독을 내치고 이탈리아에게 우승컵을 안긴 바 있는 마르셀로 리피 감독을 선임한 것. 이후 광저우 헝다는 승승장구 하며 ‘물량공세’의 대표적 아이콘이 됐다.
특이한 점은 연고이전이 빈번했던 중국 축구 리그에서 단 한 차례도 연고이전이 없었다는 것. 54년 창단 이래로 쭉 광저우를 연고지로 삼고 있다.
2. 상하이 상강 上海上港
연고지 : 상하이시
창단 : 2005년
홈 구장 : 상하이 체육장(스타디움)
주요 경력 : 중국 갑리그(2부리그), 을리그(3부리그) 각 1회 우승
중국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되겠다는 야심을 가진 구단. 상하이 션화와 지역 라이벌을 형성하고 있다.
중국 유소년 축구계에서 유명한 쉬건바오가 창단의 중심이었고, 결국에는 그 자신이 초대 GM으로 취임했다. 2014년까지는 동야 그룹의 네이밍 스폰서로 상하이 동야란 이름이었으나 2015년부터 ‘상해국제항무주식회사’의 매입으로 상하이 상강으로 클럽명을 변경. 이 회사는 중국 최대의 항구 물류운송 업체.
3. 산동 루넝 타이샨 山东鲁能泰山
연고지 : 산동성 제남시
창단 : 1956년
홈 구장 : 지난 올림픽 스포츠 센터 경기장
주요 경력 : CSL 우승 3회, 중국 FA컵 우승 4회
산동성 전력공사 소유의 구단으로 산동성 지역 축구협회가 1956년 처음 창단했다. 산동은 다롄 스더 (大连实德), 샹하이 션화(上海申花), 베이징 궈안(北京国安)과 함께 CSL 전통의 4대 강호에 속한다.
이 4클럽의 경기를 중국 축구팬들은 국가 더비(내셔널 더비)라고 부른다. 하지만, 현재는 3팀 만이 중국 축구 리그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바로 다롄 스더가 사라졌기 때문. 보시라이 비리사건에 연루된 스더그룹이 해체되는 바람에 클럽의 권리도 포기했다. 결국 다롄 스더는 2012년 클럽 라이선스를 박탈당했다. 명문 구단의 리그와 ACL 커리어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 셈.
4. 베이징 궈안 北京国安
연고지 : 베이징시
창단 : 1955년
홈 구장 : 노동자 경기장
주요 경력 : CSL 우승 1회, 중국 FA컵 우승 3회
베이징 궈안의 역사는 베이징 축구클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55년 창설되어 중국 축구 리그에서 활약했으나, 1997년 베이징시와 종신궈안그룹의 협약으로 종신궈안그룹(위성통신 등의 IT계열 회사)의 직접 경영체제로 돌입하게 된다.
하지만, 종신궈안그룹의 독점 체제도 조만간 끝날듯 하다. 현재 중국의 거대 동영상 포탈 사이트 LETV가 베이징 궈안의 주식 50%를 매입한 상태며 경영에 참가할 예정이다. 내년부터 클럽명도 베이징 궈안 러싀(北京国安乐视)로 바뀔 예정.
이 구단은 한국과 인연이 깊다. 2003년부터 2007년까지는 베이징 현대 자동차의 스폰서로 베이징 셴다이(현대)란 클럽명을 사용했다. 그래서 현 베이징 궈안의 클럽 컬러와 엠블럼이 전북 현대와 매우 유사하다.
‘중국의 히딩크’라 불리는 이장수 감독이 2007년 베이징 감독으로 취임하기도 했다. 이 때 이장수는 각 팀의 비주전급 선수들을 모아서 부임 첫 해 리그 준우승을 달성. 베이징의 첫 ACL 참가권을 획득하게 된다. 하지만, 구단 수뇌부와의 갈등으로 2009년 해임.
한국에서는 이장수 감독 재임 당시보다 최근 베이징 궈안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졌다. FC서울의 우승 주역이었던 데얀과 하대성이 베이징 궈안으로 이적하게 된 것. 하지만, 2년 만에 베이징 궈안이 전력 강화를 위해 두 선수를 모두 정리하면서 짧은 인연은 끝이 나고 말았다.
5. 허난 젠예 河南建业
연고지 : 허난성 (광역 연고)
창단 : 1958년
홈 구장 : 정저우 항하이 경기장
허난성 축구팀이 1958년에 창설되면서 이 팀의 역사도 자연스럽게 시작된다. 이후 젠예 주택 그룹과 하남성 축구협회가 팀을 재조직하나 1999년에 젠예 그룹이 구단의 주식 전부를 인수한다. 젠예 그룹 역시 분류하자면 헝다와 같은 부동산, 개발회사다.
한국 선수나, 한국과 인연과 있는 선수가 이 팀을 많이 거쳐갔다. 가장 이름값 높은 선수는 2002년 월드컵 당시 한국이 가장 경계했던 남자. 올리사데베(폴란드)가 있다. K리그에서 뛰었던 이보(前 인천)와 라이언 존슨(前 서울 이랜드)도 허난 젠예 출신. 한국인 선수 중에는 이지남(現 전남)이 거쳐간 바 있고, 현재는 정인환이 뛰고 있다.
6. 상하이 뤼디 션화 上海绿地申花
연고지 : 상하이
창단 : 1953년
홈 구장 : 홍커우 스타디움
주요 경력 : 중국 갑리그 2회 우승, 중국 FA컵 1회 우승
모체는 상하이 축구단으로 1953년에 창단했다. 여타 다른 구단들처럼 90년대 프로리그화와 함께 93년 션화그룹의 투자를 받는 프로 구단으로 재창단했다. 이 션화그룹이 2000년 투자에서 물러나고 2개의 국영기업(전자와 미디어쪽)이 참여해 클럽명이 샹하이 션화 SVA로 바뀐다.
2007년 사업가 주쥔(朱骏)이 클럽을 인수했다가 2014년에는 상하이뤼디그룹이 다시 인수하게 된다. 이 뤼디(绿地)그룹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녹지) 부동산 그룹이며 포츈 매거진이 선정한 세계 500대 기업 중 258위의 규모를 자랑한다.
상하이 션화의 역사는 굉장히 복잡하다. 바로 중국 축구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자 사업가인 주쥔 때문. 그에 대한 자세한 얘기는 ‘[CSL 특집③] 중국을 뒤흔든 괴짜 구단주, 주쥔’ 편에서 읽어볼 수 있다.
이 팀은 디디에 드록바의 팀으로도 유명하다. 뿐 만 아니라 니콜라스 아넬카, 모하메드 시소코, 뎀바 바, 팀 케이힐 등 세계적인 슈퍼스타들이 상하이 션화를 거쳤거나, 현재 뛰고 있다. 최근에는 뉴캐슬 유나이티드의 체이크 티오테가 이 팀과 링크되어 있는 상황. 앞으로도 상하이 션화의 이런 정책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축구를 모르거나, 역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상하이 션화라는 이름 보다는 이 팀의 홈 구장에 더 눈길이 갈 수도 있다. 상하이 션화의 홈 구장은 바로 홍커우 스타디움. 꽤 낯익은 이름이다. 바로 일제 시대 윤봉길 의사가 폭탄을 던졌던 홍커우 공원과 이름이 같다. 위치도 가깝다. 홍커우 스타디움에 가본다면 홍커우 공원 역시 함께 방문할 수 있다.
7. 스좌장 용창 石家庄永昌
연고지 : 허베이성 스좌장시
창단 : 2011년
홈 구장 : 유퉁 국제 스포츠 센터
광동성 하문지역에서 2011년 을리그에서 창단한 시아먼 준하오가 전신. 2012년 허베이 용창 부동산개발그룹이 클럽 지분 70%을 매입하며 클럽을 스좌장시로 연고이전 시킨다. 이후 2014년 이 그룹이 100% 클럽 지분을 매입함과 동시에 2015년 처음으로 CSL에 승격하게 된다.
첫 해는 7위라는 준수한 성적을 거두며 성공적인 시즌을 보냈다. 현재 한국인 선수는 조용형이 뛰고 있다. 그는 2015년 1월 스좌좡과 계약해 성공적인 첫 CSL 시즌을 보내는데 일조했다.
8. 충칭 리판 重庆力帆
연고지 : 충칭시
창단 : 1994년
홈 구장 : 충칭 올림픽 스포츠 센터
주요 경력 : 중국 FA컵 우승 1회
우한에서 창단된 우한 축구팀이 96년 공안부 체육회와 환바오 그룹의 합작 투자, 공안부 체육회산하 무한 공안국 축구팀과의 합병으로 환다오 축구팀이 된다. 그 해 갑B(당시 2부리그)에서 갑A(당시 1부리그)로 바로 승격하는 쾌거도 달성한다. 하지만, 1996년 말 이 구단은 충칭으로 연고이전을 하고나서 1998년 다시 강등을 당한다.
그래서 구단 수뇌부는 빠른 승격을 위해 특단의 대책을 세웠다. 바로 외국인 감독을 영입한 것. 그가 바로 훗날 ‘충칭의 별’로 불리게 되는 이장수 감독이었다. 당시 이장수는 1996년 천안 일화에서 박종환 감독의 후임으로 부임했지만, 1년 만에 부진한 성적으로 사퇴하고 브라질을 배회하던 중이었다. 이 때가 이장수의 중국 데뷔였다. 그는 이후로 중국과 많은 인연을 맺게 될 줄 알았을까?
2000년에 중국의 중앙당과 군은 기업경영이 금지되어 공안부 산하 기업인 환다오 그룹은 경영에서 철수하고 지금의 리판 그룹이 클럽을 매입한다. 중국 최대 민영그룹 중 하나인 충칭 리판 그룹의 주 업종은 자동차, 오토바이, 금융 등이다.
2016 시즌부터 충칭 리판은 다시 한국과의 인연을 맺는다.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을 지냈던 장외룡이 충칭 리판의 지휘봉을 잡게 된 것. 충칭 리판은 이와 함께 국가대표 미드필더 정우영을 영입하며 ‘코리아 커넥션 시즌 2’를 준비하고 있다.
9. 장쑤 수닝 江苏苏宁
연고지 : 강소성 광역연고
창단 : 1958년
홈 구장 : 난징 올림픽 스포츠 센터
주요 경력 : 중국 갑리그 1회, 을리그 1회 우승, 중국 FA컵 1회 우승
이 구단의 전신은 1958년 창단한 강소성 축구단으로서 2000년 장쑤 슌티엔 그룹이 주 투자사가 된다. 2008년부터 궈신(國信)그룹이 클럽 네이밍 스폰서로 참가하여 정식명칭은 장쑤 궈신 슌티엔 (江苏国信舜天)이 된다.
궈신 그룹은 공기업으로 국가소유의 자산을 경영, 관리, 판매, 투자 등의 업무를 담당하고, 슌티엔그룹은 수출입 무역회사다. 하지만, 2015년 12월 21일을 기해 이 구단은 수닝 그룹에게 한화 약 938억에 클럽이 매각된다. 많은 한국 축구팬들이 이 팀을 ‘장쑤 슌티엔’이라는 이름으로 알고 있는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 수닝 그룹은 전자, 생활용품의 마트 SSM 운영 및 유통회사. 이 클럽도 긴 역사 동안 연고이전을 한 적이 없다.
수닝 그룹은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인수 초기부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100년 명문구단을 만들겠다”며 야심찬 포부를 밝힌 수닝 그룹은 야야 투레에게 영입 의사를 타진하고, 아드리아누(AC밀란)을 영입하기 위해 1400만 유로를 들이기도 했다. 하지만, 중국 입국 후 메디컬 테스트까지 마친 아드리아누가 갑작스럽게 원 소속 구단으로 복귀하면서 영입이 무산됐다.
10. 창춘 야타이 长春亚泰
연고지 : 길림성 장춘시
창단 : 1996년
홈 구장 : 창춘시 경제개발구 체육장
지린 야타이 그룹이 창설했다. 야타이 그룹은 부동산만이 아니라 제약, 무역, 금융 등의 광범위한 사업을 하고 있다. 역사가 비교적 길지 않은 만큼 특별한 사건은 없는 편.
11. 항저우 뤼청 杭州绿城
연고지 : 절강성 항주시
창단 : 1998년
홈 구장 : 황룡 스포츠 센터
뤼청 부동산회사, 치엔탕 부동산 회사, 절강 대학, 절강 축구협회가 함께 클럽을 창설했다. 현재 클럽지분은 뤼청 그룹의 계열사들이 96%, 절강 대학이 4%를 보유하고 있는 중. 뤼청 그룹은 중국의 대표적인 부동산, 개발 그룹. 뤼청(녹색 성)이라는 그룹 이름에서도 부동산의 향기가 물씬 난다! 뤼청의 영문 명을 따라서 ‘항저우 그린타운’이라고도 부른다.
항저우 뤼청의 터닝 포인트는 2009년이었다. 당시 뤼청은 15위로 강등을 확정 지으며 시즌을 마쳤으나, 광저우 헝다와 청두 셰페이롄이 승부조작 혐의가 드러나는 사건이 발생했다. 결국 중국 축구협회는 두 팀을 강등 시켰고, 항저우 뤼청은 이로 인해 강등이 취소되는 행운을 얻었다. 그리고, 단 1년 만인 2010년 이 팀은 4위에 오르며 다음 해 ACL 진출을 확정지었다.
최근 이 팀은 한국 언론의 집중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도 했다. 2014 브라질 월드컵 이후 야인 생활 중이던 홍명보 감독이 새 감독으로 취임한 것. 홍 감독은 취임 이후 오범석을 자신의 팀으로 데려가기도 했다. 항저우의 2016 시즌은 한국에게도 많은 관심사가 될 것으로 보인다.
12. 랴오닝 판진 홍윈 辽宁盘锦宏运
연고지 : 요령성 광역연고
창단 : 1954년
홈 구장 : 판진 진시우 경기장
주요 경력 : ACL 우승 1회, CSL 우승 8회, 갑리그 우승 1회, 중국 FA컵 우승 1회
요령성 축구협회가 요령성 심양에서 창설했다. 이후 1995년 요령성 체육위원회 비준으로 중국에서는 처음으로 주식회사 등록을 한 구단이기도 하다. 현재 대주주는 홍윈 그룹이며 이 그룹은 평범한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 물론 그 안에는 부동산이나 개발도 있다.
이 클럽은 2003년 딱 한 시즌 베이징 위엔산이란 이름으로 베이징을 홈으로 시즌을 보낸 특이한 이력이 있다. 스폰서의 문제로 인해 벌어졌던 사건인데, 그 한 시즌으로도 베이징 축구팬과 이전 연고지 팬들의 복귀 요구에 따라 연고이전은 단지 한 시즌의 해프닝으로 끝나고 랴오닝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13. 톈진 테다 天津泰达权健
연고지 : 천진시
창단 : 1956년
홈 구장 : 테다 축구 경기장
▲ 톈진 테다는 ACL에서 여러 한국 팀과 맞붙은 경험이 있다
56년 톈진 축구팀이 창설되면서 이 팀의 역사가 시작된다. 톈진시야 말로 중국 내에서도 축구특별시에 해당하는 유구한 역사를 갖춘 곳으로 알려져 있다. 1989년에 톈진은 팀을 세 팀으로 나누어 갑A와 갑B등의 디비전에 참가시킨다.
1995년에서 1997년까지는 중국 삼성 법인의 스폰서로 구단 명이 톈진 삼성(정확히는 톈진 산싱)이 된다. 이는 한국 기업의 중국 진출이 90년대부터 활발히 있었다는 뜻. 많은 축구팬들이 현대 자동차가 첫 번째라고 생각 하지만, 삼성이 현대 자동차보다 진출이 더 빨랐다.
톈진 산싱 시대 이후 1998년부터 현재까지는 테다 그룹의 이름을 사용하게 된다. 이 때 구단이 유한책임공사(구단 법인화)가 되기도 한다. 현재는 톈진 테다 투자회사, 톈진 테다 그룹, 톈진 개발구 건설 그룹, 북방 국제신탁 투자회사, 개발구 국유자산경영공사가 공동 투자하고 공동관리하고 있다.
테다(泰达)는 천진경제기술개발구(Tianjin Economic and Technology Developing Area)의 영문약칭 TEDA를 중국어 음역한 이름. 특히, 톈진 테다에서는 2015년 스폰서 기업이었던 취엔지엔(权健)과의 이야기가 굉장히 흥미롭다. 자세한 내용은 ‘[CSL 특집④] 중국판 ‘마드리드 더비’, 톈진을 주목하라‘ 편에서 확인할 수 있다.
14. 광저우 푸리 广州富力
연고지 : 광동성 광주시
창단 : 1986년
홈 구장 : 웨이슈산 체육장
전신은 심양시 체육회가 1986년 창설한 심양시 축구단. 약 20년 간 심양에서 뛰었지만, 심양에 ACL(AFC 챔피언스리그) 규격에 맞는 구장이 없다는 논의가 시작되고 나서 결국 2007년 이 팀은 호남성 장사시로 연고이전 한다.
당시 장사로 막상 연고이전은 했지만, 너무 인기가 없어서 관중은 물론 홈경기의 인터넷 중계조차 없었다는 후일담이 있다. 하지만, 4년 뒤 미국의 스포츠 의류업체인 MAZAMBA란 회사가 클럽을 인수하면서 2011년 또 다시 광동성 심천으로 재차 연고이전을 한다.
그러나, 이 팀은 또 한 번 연고이전을 한다. 2012년에 그 미국 업체의 재정악화로 다시 광저우 푸리 부동산 투자 회사에게 인수되면서 바로 근처인 광동성 광주시로 다시 한 번 홈 구장을 옮긴다. 현재의 연고지에 정착하기까지 이 팀은 중국의 동북 끝에서 화남 지역의 광동까지 중국의 극과 극을 이주한 셈.
한국 축구팬들에게 광저우 푸리는 성남FC와의 ACL 경기로 유명해졌다. 팽팽하게 양 팀이 맞서던 중, 광저우 푸리의 장현수가 이해 할 수 없는 행위로 퇴장을 당해 성남의 승리에 기여했던(?) 것. 이후 이 사건을 놓고 한국 팬들은 ‘장현수의 애국퇴장’이라고 불렀다.
15. 옌벤 챵바이샨 延边长白山
연고지 : 길림성 연변 조선족자치구 광역연고
창단 : 1955년
홈 구장 : 연길 인민 경기장
주요 경력 : CSL 우승 1회, 갑리그 우승 2회
중국 동포(조선족)들이 주를 이루어 구성되어 있는 팀. CSL의 빌바오라고도 불린다.
1965년 박만복 감독 아래 당시 최고리그인 갑리그에서 우승컵을 차지했고, 94년엔 삼성, 95~96년엔 현대로부터 네이밍 스폰서를 받은 바 있다. 1997년에는 한국인 최은택 감독의 지도로 갑A리그 4위를 차지했는데, 이 때 최은택 감독이 한국에서 유행하던 3-5-2 전술을 기반으로 한 전원 공격, 전원 수비를 선보였다고 한다.
2000년엔 갑A(1부리그)에서 강등됐는데, 2001년 저장 뤼청(浙江旅城)에 갑B 참가권과 주요 선수를 매각하고 비주전 선수들을 모아 을리그(3부리그)에 간다. 하지만, 2004년 고휘 감독 아래 갑리그 복귀에 성공한다.
2014년 시즌 후에는 성적 부진으로 인해 을리그로 강등됐어야 했다. 그러나 을리그에서 승격하기로예정되어 있던 샨시 우저우가 기한 내에 승격에 필요한 필요 서류를 제출하지 못해 기적적으로 강등을 면한다. 그리고, 소중하게 얻어낸 갑리그에서의 2015년 시즌은 모두가 잘 알게 되는 스토리로 흘러간다. 박태하 감독과 하태균의 활약으로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CSL에 입성하게 된다.
승격의 열매는 달콤했다. 2015년 12월 승격이 확정된 이후 중국 보험업계의 대표 기업으로 꼽히는 푸더 그룹은 구단의 지분 70%를 매입하고 첫 해 운영자금으로 300억원을 제공했다. 리그 중계권과 기존의 스폰서를 종합하면 총 500억 규모의 운영자금이 확보된 것. 2016 시즌을 준비하면서 윤빛가람과 김승대를 K리그에서 영입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자금력이 바탕이 됐다.
16. 허베이 화샤 싱푸 河北华夏幸福
연고지 : 하북성 광역연고
창단 : 2009년
홈 구장 : 친황다오 올림픽 스포츠 센터 스타디움
전운회(중화인민공화국전국운동회, 우리나라의 전국체전과 비슷한 개념)에 참가한 하북성 전운회팀을 기초로 2010년 종지 그룹이 창설했다. 2015년 화샤 싱푸 그룹이 클럽을 인수한 이후로 하북성 석가장에서 하북성 진황도로 홈구장을 이전한다.
그리고 2015년 전북의 에두를 비롯해 중국의 전 국가대표 선수들 등 영입하며 CSL 승격에 공을 들인 덕에 승격한다. 참고로, 이 팀의 모기업 화샤 싱푸 그룹은 부동산 개발회사로 업계에서는 헝다보다 더 큰 규모로 알려져 있다. 조만간 K리그의 적은 광저우 헝다가 아니라 허베이 화샤 싱푸가 될 수도 있다.
글 = 김덕용
편집 = 조성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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