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CSL(중국 슈퍼리그)을 아는가? 최근 중국 프로축구 시장은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중국 주석 시진핑의 ‘축구굴기’라는 구호 아래, 중국 프로축구의 각 구단들은 무서운 자금력을 바탕으로 자기 자신과, 리그를 빠른 속도로 성장시키고 있다.
우리나라에게 중국 축구는 그저 ‘거칠고, 한국 보다 한 수 아래’인 이미지였다. 하지만, 최소한 프로축구 리그에서는 이러한 공식이 깨지고 있다. K리그의 스타 플레이어들이 중국 무대로 진출하고, 영입 경쟁에서도 중국에게 밀리고 있다. 이는 곧 ACL(AFC 챔피언스리그)과 같은 국제 대회 성적에서도 명백히 드러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중국 축구, 그리고 CSL을 더욱 잘 알아야 한다. 중국의 빠른 경제 성장과 함께 중국 축구 시장은 더욱 커질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중국 축구를 아직도 얕잡아 보고 있다. 바로 옆 나라에 무한한 스포츠 산업 시장이 열리고 있지만, 우리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래서, SIRI는 5편의 기사를 통해 여러분께 CSL을 이해할 수 있는 흥미롭고, 주목할 만한 정보들과 이야기를 제공하려고 한다. 이번 특집을 통해 중국 시장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편집자 주>
로컬 더비(Local Derby).
한 지역 안에 두 개 이상의 프로 스포츠단이 있어 이들이 서로 맞붙는 경기를 우리는 로컬 더비라 부른다. 해당 지역의 대표라는 자존심을 걸고 벌이는 승부인 만큼 지역 내에서도, 지역 밖에서도 이에 대한 관심은 대단하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 레알 마드리드(스페인)의 마드리드 더비, 갈라타사라이와 페네르바체의 이스탄불 더비는 축구 팬들에게 익숙한 ‘빅 매치’다. K리그에서는 수원FC가 K리그 클래식으로 승격하며 수원 삼성과 K리그 역사 상 첫 로컬 더비를 기다리고 있다.
물론, 중국에도 로컬 더비가 존재한다. K리그, 또는 AFC 챔피언스리그(ACL)를 즐겨보는 축구팬이라면 광저우 헝다와 광저우 푸리라는 이름 정도는 들어봤을 것이다. ACL에 종종 등장하는 두 팀은 같은 광저우를 연고지로 삼아 CSL에서 치열하게 로컬 더비를 벌인다. 상하이 션화와 상하이 상강 역시 마찬가지.
하지만, 이번 CSL 특집에서는 광저우와 상하이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예정이다. 대신,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미래에 다가온다면 상상 이상으로 치열해질 로컬 더비를 소개하려고 한다. 이야기는 중국의 축구 특별시, 톈진에서 시작된다.
먼저, 톈진 테다(天津泰达权健)라는 팀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CSL 특집②] 대륙의 패권을 놓고 경쟁하는 16龍 기사에서 이 팀을 자세히 소개하긴 했지만, 다시 한 번 톈진 테다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자.
1956년 톈진 축구팀이 창설되면서 이 팀의 역사는 시작된다. 약 60년에 달하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CSL의 명문 구단 중 하나. 1989년에는 팀을 세 팀으로 나누어 1부리그, 2부리그, 3부리그에 나눠 참가시키는 등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톈진은 지금도 ‘축구특별시’라고 부를 만한 지역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1995년부터 97년까지는 톈진 산싱(삼성)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 국내 기업 삼성의 중국 법인이 톈진 팀을 스폰한 것. 이는 국내 기업이 처음으로 중국 축구 팀을 후원한 사례로 남아있다. 현재는 톈진 테다 그룹 등 여러 기업이 공동으로 소유 및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
평화롭던(?) 톈진에게 잡음이 일어난 것은 2015년이었다. 톈진 테다는 2015년부터 취엔지엔(权健)이라는 기업과 네이밍 스폰서를 체결하고, ‘톈진 타이다 취엔지엔’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게 된다. 취엔지엔이라는 기업은 우리에게 너무나 생소한 이름이다. 하지만, 알고 보면 취엔지엔을 주목하고 있는 한국 기업들은 꽤 많다.
취엔지엔 그룹은 중국 직소판매 부문에서 4위를 기록하고 있는 꽤 큰 기업이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취엔지엔 그룹을 통해 중국 시장 진출을 노리는 경우가 많다. 주로 화장품, 의약품, 생활용품 업체들이 취엔지엔 그룹과 MOU를 맺고 중국 시장에 자사 제품을 납품한다. 한 기업의 경우 취엔지엔과 손을 잡은 이후 기업의 총 매출 중 수출 매출의 비중이 약 3배 가까이 뛰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취엔지엔이 CSL에 뛰어든 이유는 다른 기업과 여타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취엔지엔에게는 CSL에 참여해야 할 또 다른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바로 ‘기업의 이미지 쇄신’이었다.
앞서 언급했듯 취엔지엔은 중국 내에서 직소판매 4위를 기록하고 있다. ‘직소판매’라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굉장히 생소한 개념이다. 이를 쉽게 풀어 말하자면 네트워크 마케팅, 나쁘게 말한다면 ‘다단계’다. 그렇다. 취엔지엔은 이른바 ‘다단계 회사’였던 것이다.
이미 우리나라도 그렇듯 다단계 회사에 대한 시선은 그리 곱지 못하다. 이는 중국도 마찬가지다. 취엔지엔은 직소판매를 통해 많은 부를 쌓았지만, 그만큼 부정적인 이미지 역시 함께 쌓았다. 이를 개선할 좋은 방법이 바로 CSL에 스폰서십으로 참여하는 것이었다.
스폰서십 참여로 기업 이미지 개선에는 어느 정도 성공한 듯 보였지만, 취엔지엔에게는 중요한 목표가 하나 더 있었다. 바로 업계 수위를 탈환하는 것. 톈진 테다의 스폰서로 참여하면서 어느 정도 효과를 본 취엔지엔은 단순히 스폰서십으로는 업계 수위 탈환이라는 목표까지 달성하기는 어렵다는 판단을 내린다. 그래서, 이 기업은 스폰서십을 넘어서 톈진 테다를 소유하려는 야망을 드러낸다.
만일, 톈진 테다가 갑부 구단주 한 사람에 의해 운영되는 구단이었다면 취엔지엔의 인수는 쉬웠을 수도 있다. 하지만, 톈진 테다는 쉽게 인수할 수 있는 구단이 아니었다.
첫 번째로, 톈진 테다는 소유 구조가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스폰서십을 제외하고도, 톈진 테다에게 투자하고, 공동으로 관리하는 기업이 많다. 현재 알려진 기업만 톈진 테다 그룹, 톈진 테다 투자회사, 톈진 개발구 건설 그룹, 북방 국제신탁 투자회사, 개발구 국유자산경영공사가 있다. 취엔지엔이 구단을 인수하기 위해서는 이 모든 기업들을 하나하나 찾아가 설득한 다음 각자가 가지고 있는 지분을 일일이 인수해야 했다.
두 번째로는 이미 뿌리깊게 박혀 있는 취엔지엔의 기업 이미지가 문제였다. 취엔지엔이 구단 인수에 본격적으로 나서자, 톈진 지역 사회에서는 당연히 논란이 일 수 밖에 없었다. 다단계 회사가 지역의 자존심인 톈진 테다를 인수한다는 것은 지역 주민들에게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
결국, 톈진 체육회는 취엔지엔의 구단 인수를 공식적으로 거부한다. 그들은 다단계 회사에게 중국 축구 역사의 산 증인이자, ‘축구 특별시’라 불리는 톈진의 대표 구단을 넘겨줄 수 없다고 선언한다. 돈보다 지역의 자존심을 선택한 것.
문제는 취엔지엔이었다. 취엔지엔은 자신들이 톈진 테다를 인수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들은 톈진 테다 인수에 대비해 국가대표 미드필더 순커(孫可)를 109억 원의 이적료를 주고 장쑤 슌티엔에서 톈진으로 데려오기로 합의한 상태였다.
하지만, 톈진 체육회는 취엔지엔의 인수 제안을 거절하면서 동시에 기존 취엔지엔의 네이밍 스폰서, 그리고 순커의 영입까지 모두 거부했다. 취엔지엔은 김칫국을 잔뜩 들이켜놓고 낙동강 오리알이 될 신세에 처해졌다. 동시에 순커의 앞날도 예측할 수 없었다.
분노로 가득 찬 취엔지엔은 여기서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들은 톈진 테다를 대신해 테다의 지역 더비 클럽, 톈진 송지앙(天津松江)을 인수해 톈진 취엔지엔(天津权健, 국내 언론들은 ‘톈진 콴잔’이라는 표기를 사용하지만 ‘콴잔’은 취엔지엔의 병음 표기인 ‘Quan Jian’을 한국 표기대로 읽은 것. 따라서 원 표기는 ‘취엔지엔’이 맞다). 그리고 순커는 본인의 요청에 따라 원 소속팀인 장쑤 슌티엔에 임대하기로 결정했다.
이제 취엔지엔의 목표는 분명해졌다. 자신들을 내친 톈진 테다에 대한 복수다. 하지만 현재 톈진 콴잔은 2부리그에 머물러 있는 상태. CSL에서도 명문 구단 중 하나로 인정받는 톈진 테다와는 분명한 차이가 존재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취엔지엔은 최대한 빨리 CSL에 승격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일단 테다와 동등한 리그에서 뛰어야 복수의 기회라도 잡을 수 있기 때문. 그들이 택한 해결책은 다른 중국 프로축구의 구단들과 마찬가지로 ‘스타 플레이어 영입’이었다.
톈진 취엔지엔은 감독부터 거물을 영입했다. 브라질 대표팀과 레알 마드리드 등을 역임했던 룩셈부르고가 톈진 취엔지엔의 초대 감독으로 취임했다. 그는 취임과 함께 “파투와 카카를 영입하겠다”고 포부를 밝혀 많은 관심을 모은 바 있다. 결과적으로 파투와 카카는 결과적으로 영입하지 못했다. 하지만, 세비야에서 뛰던 파비아누, ‘제 2의 메시, 네이마르, 호빙요’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던 제우바니우를 브라질 산토스에서 데려와 전력을 갖췄다.
이제 톈진 취엔지엔이 계획대로 갑리그 우승, 또는 CSL 승격 티켓을 손에 쥔다면 우리는 2017 시즌부터 CSL에서 톈진 테다와 톈진 취엔지엔의 지역 더비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이 경기가 성사 된다면 CSL 내 지역 더비 중 가장 치열한 경기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비록 중국 프로리그의 역사가 긴 편은 아니지만, 흥미로운 스토리는 계속해서 연출되고 있다. 반드시 전통이 있어야만 더비가 성립되고 이야깃거리가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는 것을 톈진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알 수 있다.
스토리텔링.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그들의 이야기는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고, 이는 팬들의 흥미를 더욱 이끌고 있다. 비단 스포츠뿐 만 아니라 문화 콘텐츠 산업에서 스토리텔링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톈진의 사례는 어떤 이야기들이 관심을 받는 지, 이러한 이야기들을 어떻게 가공해야 하는 지 많은 시사점을 안겨준다.
글 = 김덕용
편집 = 조성룡
[SIRI CSL 특집 시리즈]
[CSL 특집①] ‘축구굴기’, 중국 축구가 일어나고 있다
[CSL 특집②] 대륙의 패권을 놓고 경쟁하는 16龍
[CSL 특집③] 중국을 뒤흔든 괴짜 구단주, 주쥔
[CSL 특집④] 중국판 ‘마드리드 더비’, 톈진을 주목하라
[CSL 특집⑤] 한국 미디어-팬의 CSL 향한 편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