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레스터 시티‘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마치 영화와 같은 스토리를 써내려가며 우승을 차지하였다. 16/17 시즌, 분데스리가에 레스터 시티처럼 영화의 스토리를 써내려갈 축구 클럽이 등장하였다. 12라운드 기준으로 분데스리가에서 1위를 달리고 있는 ’RB 라이프치히‘가 그 주인공이다. 12경기 동안 무패행진(9승 3패 승점 27점)을 이어가고 있는 RB라이프치히는 리그 팀 중 가장 많은 골(27골)을 넣고 있고, 실점에서도 3위(10실점)를 기록하고 있다. RB라이프치히의 장점은 젊은 선수들과 많은 활동량이다. 평균 연령 23.7세로 분데스리가 팀 중 가장 낮은 선수들로 팀이 구성되어있다. 지금만이 아니라 미래도 내다볼 수 있는 스쿼드를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RB라이프치히의 축구 스타일은 많은 활동량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특히, 평균 활동량은 116.34km로 분데스리가 내에서도 1,2위를 다툴 정도이다. 점유율을 버리고, 더욱 효율적인 축구를 추구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RB라이프치히는 독일의 전통의 강호이자 매년 우승 후보로 꼽히는 바이에른 뮌헨과 유럽의 강호 중 하나인 도르트문트를 제치고 순위표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RB라이프치히의 돌풍이 가장 놀라운 점은 RB라이프치히가 레스터 시티처럼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축구 클럽이 아니라 창단을 한 지 7년 만에 이러한 성과를 올렸다는 점이다. 물론 아직 시즌의 반도 지나지 않아 속단하기에는 이르지만 많은 언론들은 RB 라이프치히의 돌풍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RB 라이프치히가 돌풍의 핵으로 자리 잡기까지 글로벌 에너지 드링크 제조 기업인 ‘레드불(RedBull)‘의 역할이 매우 중요했다. 레드불은 2009년 독일 작센에 위치한 축구클럽인 SSV 마르크란슈태트를 인수하며, RB 라이프치히를 창단하였다. 레드불은 스포츠 마케팅에서 성공 사례로서 손꼽히는 글로벌 기업 중 하나이다. 특히, 월드컵이나 올림픽에 치중한 대기업들과는 달리, 익스트림 스포츠나 모터 스포츠에 적극적인 마케팅 활동을 하였다. 레드불은 독일의 RB 라이프치히뿐 아니라 미국의 뉴욕 레드불스, 오스트리아의 레드불 잘츠부르크, 브라질의 레드불 브라질 등의 축구 구단을 운영하고 있다. 레드불의 막대한 자본 덕에 RB 라이프치히는 2009년 5부 리그에서 1부 리그까지 승격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대표적인 예로, 2부 리그에 속해 있을 당시 이적료로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였다. 14/15 시즌에는 2400만 유로(약 300억 원)의 순 지출액을 기록하였고, 15/16 시즌에는 2600만 유로(약 324억 원)의 순 지출액을 기록하였다. 이는 당시 2부 리그 소속 팀들의 전체 이적료를 합친 것과 비슷한 수치였다. 승격한 이번 시즌에는 총 5000만 유로(623억 원)을 추가로 지출하면서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돌풍에도 불구하고 RB 라이프치히는 독일 분데스리가 팬들에게 환영받지 못하며 공공의 적으로 불리고 있다. 지난 8월, 라이프치히와 분데스리가 2부의 드레스덴 디나모의 포칼컵 경기 중 드레스덴의 팬들이 소머리를 투척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드레스덴 팬의 몰상식한 행위는 곧바로 독일축구협회의 중징계(벌금 및 관중 입장 금지)로 이어지게 되었지만, 라이프치히가 독일 팬의 미움을 받고 있음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라이프치히가 1부 리그에 등장한 지 한 시즌도 되지 않았지만 독일 팬들의 미움을 사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독일의 분데스리가는 다른 유럽 축구 리그와는 달리 보수적인 운영 기조를 따르고 있다. 리그 및 축구 클럽의 지나친 상업화를 지양하는 것과 동시에 리그의 형평성을 강조한다. 이는 리그 경기의 티켓 가격을 통해 알 수 있다. 2014년 BBC 통계를 보면, 분데스리가는 평균 220달러로, 다른 유럽리그와 비교해서(프리미어리그 808달러, 세리에A335달러, 라 리가 293달러) 낮은 수준이었다. 독일에서의 축구는 공공재이자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 축구협회와 마찬가지로 독일의 팬들도 리그와 축구 클럽의 상업화를 반기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독일축구협회는 재정적인 안정성, 조직 운영 등에 대하여 엄격한 기준을 가지고 축구 클럽에게 리그 라이센스를 발급하고 있다. 특히, 상업화를 지양하기 때문에 기업을 중심으로 하는 기업은 분데스리가에서 라이센스를 발급받기 어렵다. 그래서 분데스리가 소속의 팀들은 시민구단으로 구성이 되어있다. RB 라이프치히의 ‘RB’는 레드불의 약자로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RB 라이프치히는 분데스리가의 라이센스를 받기 위하여 RB를 RasenBallsport로 변경하였지만, 레드불의 약자를 연상케 한다. 여기에 구단의 앰블럼은 레드불의 로고는 두 마리의 황소가 맞대고 있는 모습이 흡사하다(물론 RB라이프치히의 앰블럼에는 레드불이라는 명칭이 빠져있다). 이것이 영리한 마케팅인지 교묘한 마케팅인지는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달리질 수 있으나, 독일 팬들에게는 교묘한 마케팅으로서 받아들여지고 있다.
RB 라이프치히는 단순 네이밍과 앰블럼에서 멈추지 않고 있다. 독일은 다른 유럽리그와는 다르게 ‘50+1’이라는 규정을 가지고 있다. 50+1 규정은 특정 개인이나 단체가 구단의 50%이상의 지분을 소유할 수 없도록 제한하는 규정으로, 독일 분데스리가를 지탱하는 규정 이며, 외부의 자본으로서 축구 클럽을 보호하기 위한 규정 중 하나이다. 예외적으로, 특정 개인이나 단체가 구단에 20년 이상 지원을 한 경우에는 50+1 규정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였다. 이 예외조항의 대표적인 구단이 바이엘 레버쿠젠과 VfL 볼프스부르크로 50+1 규정이 생기기전에 모기업의 노동자들이 팀을 창단하여 운영하였기에 예외로 하고 있다. 또한, TSG 1899 호펜하임의 경우는 소프트웨어 기업인 SAP가 20년 이상 지원하며 예외의 경우로서 남게 되었다. 하지만, RB 라이프치히는 20년 이상 투자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예외조항에 해당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RB 라이프치히는 팀 네이밍에서 레드불을 제외하였다. 이와 더불어 주식 보유 현황을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고, 49%이하의 주식을 레드불이 소유하고 있다고 발표하고 있다. 독일 언론들은 나머지 지분 역시 레드불의 관계자들이 소유하고 있으며, RB 라이프치히의 99%가 레드불의 소유일 것이라는 보도를 하고 있다. 이에 독일 팬들은 독일 축구의 근간인 50+1 규정을 위협하는 행위라고 바라보며, 2014년 2부 리그에 있을 당시 ‘RB 반대(Nein zu RB)’ 운동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RB 라이프치히는 레드불 축구 마케팅의 마지막 최종 고리의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레드불은 다양한 지역에 축구팀을 운영하고 있다. 레드불의 축구팀은 아시아를 제외한 모든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북중미, 남미, 브라질, 유럽). 지역에 있는 유망주들을 영입하고 육성한다. 그 다음에는 오스트리아의 레드불 잘츠부르크에서 유럽 축구에 대하여 적응토록 한 후, 라이프치히로 이적하는 것이다. 많은 선수들이 잘츠부르크에서 라이프치히로 이적하였으며, 특히 하말류는 레드불 브라질과 잘츠부르크를 단계별로 거친 선수이다. 한국의 젊은 공격수인 황희찬(잘츠부르크 소속) 선수도 이러한 프로젝트의 결과로서 독일 1부 리그에 이적할 가능성이 있기에 관심 있게 보는 팬들도 있다. 하지만, 과거 뉴욕 시티 램파드의 맨시티 이적 당시의 논란과 마찬가지로 레드불의 축구팀 간의 연계는 공정한 이적 시장을 방해할 것이라는 의견도 존재하고 있다.
기업 구단의 존재에 대하여 익숙한 한국의 축구팬의 경우는 RB 라이프치히의 등장이 왜 논란이 되는 지에 대하여 의문을 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독일 축구 팬들에게 있어 RB 라이프치히는 마치 독일 축구 생태계를 파괴하는 ‘황소개구리’라고 느낄 수 있다. 단순히 이적료를 많이 지출하거나 티켓 값을 올리는 것에도 민감할 정도로 상업화를 지양하고 있는 독일 축구 팬들이기에 RB 라이프치히의 등장은 매우 불쾌할 수 있다. 하지만 RB 라이프치히가 단순히 1부 리그에서의 성적만을 위해 투자하고 있지 않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유소년 육성을 위한 투자도 멈추지 않고 있고, 새로운 구장 건립과 인프라를 위한 지역사회 투자도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또한, 맨체스터 시티의 경우 중동의 막대한 자본을 획득하면서 지역사회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투자가 이어졌던 경험을 본다면, 외부 자본의 유입이 마냥 나쁜 선택이 아니란 것을 알 수 있다. RB 라이프치히가 과연 분데스리가의 생태계를 파괴한 ‘황소개구리’였는지, 아니면 성공의 새로운 모델이 될 지는 아직 판단하기에 이른감이 있다. 이것이 단순 시즌이 끝나더라도 판단하기에 어렵다. 그만큼 레드불의 라이프치히에 대한 투자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RB 라이프치히가 어떠한 결과를 이끌고 어떻게 구단을 운영하는 지를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