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 외국인 골키퍼의 역사
한국축구에 있어서 1980년대까지 골키퍼는 그동안 가장 홀대받는 포지션 중의 하나였다. 사람들은 골키퍼라는 포지션의 중요성을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던 1992년 ‘발레리 사리체프’라는 한 타지키스탄 출신의 골키퍼가 천안 일화(現 성남FC)에 입단하면서 이러한 기존의 패러다임이 점차 바뀌기 시작했다. 그는 뛰어난 선방 능력을 보여주면서 천안 일화의 K리그 3연패를 이끌었고 1992년부터 1995년까지 4년 연속으로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도 선정되었다. 그로 인해 사리체프는 우리나라 축구계에 골키퍼의 중요성을 부각했다. 그러자 다른 K리그 구단들도 외국인 골키퍼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고 외국인 골키퍼는 우후죽순 늘어나기 시작했다. 드라간, 샤샤, 알렉세이, 일리치 등의 수준급의 외국인 골키퍼들이 K리그 구단의 주전으로 자리매김하면서 국내 키퍼를 주전으로 사용하는 팀은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결국 국내 골키퍼의 경기 감각을 잃지 않게 보호해줘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면서 1996년부터 외국인 골키퍼에 대한 규제가 생기기 시작했고, 결국 1999년 외국인 골키퍼를 금지했다. 발레리 사리체프의 경우 ‘신의손’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나라에 귀화해서 2004년까지 선수로 활약했지만, 그 이외에 외국인 골키퍼들은 우리나라에서 자취를 감췄다.
▲발레리 사리체프(신의손)
17년간의 외국인 골키퍼 금지 성공적이었나
1999년에 생긴 외국인 골키퍼 금지 조항이 어느덧 17년이 되었다. 17년 동안의 규제가 국내 골키퍼를 양성하는 데에는 어느 정도 도움이 된 것은 분명하다. 국내 골키퍼들은 외국인 골키퍼가 없는 가운데에서 이전과는 달리 비교적 쉽게 주전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고 이는 경기 감각을 유지하는 부분에도 유리했다. 이러한 환경으로 인해 골키퍼의 수요가 꾸준히 이어져 왔고 많은 국내 골키퍼들의 실력향상까지 가져올 수 있었다. 규제 이전부터 활약해오던 김병지, 이운재, 최은성 등의 골키퍼들뿐만 아니라 김영광, 김용대, 정성룡, 신화용, 권순태 등 수많은 골키퍼가 유망주 시절부터 꾸준한 출전시간을 보장받아오면서 국가대표급의 선수로 성장할 수 있었다. 이러한 성과에 맞추어 본다면 그동안의 골키퍼 규제는 꽤 성공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제는 바뀌어야 할 때
우리나라의 축구는 4강 신화를 이룬 2002년 이후로 큰 발전을 이루었다. 많은 선수가 세계 최정상급의 리그를 경험하게 되었고, 이는 우리나라 축구의 발전을 가져왔다. 더불어 우리나라 축구 팬들이 바라는 우리나라 국가대표의 수준도 꾸준히 향상되어왔다. 그러나 최근에 있었던 2010년과 2014년 월드컵에서 우리나라의 축구팬들은 우리나라 국가대표팀의 골키퍼에 대해서 불만을 많이 가졌다. 특히 2014년의 경우 오초아, 나바스 등의 능력이 출중한 골키퍼들이 각자 팀(멕시코와 코스타리카)의 선전을 이끌어 주목을 받으면서 골키퍼의 능력이 주목받았다. 이런 세계적인 수준의 우리나라 골키퍼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K리그 외국인 골키퍼 규제를 폐지해야 한다. 외국인 골키퍼 규제는 앞서 언급했듯이 골키퍼를 어느 정도 수준으로 길러내는 데에는 큰 도움이 되었지만, 그 이상은 아니었다. 어느 정도 수준의 골키퍼에게 주전 경쟁은 외국인 선수들이 존재하는 다른 포지션과는 다르게 쉽다. 이는 골키퍼 능력의 향상을 제한하게 했다. 외국인 골키퍼 규제가 폐지되어서 수준급의 외국인 골키퍼가 K리그에 오게 된다면 그 팀의 다른 골키퍼 역시 주전 경쟁을 위해서 열심히 노력할 것이고 다른 팀의 골키퍼들까지 동기부여가 될 것이다. 이는 질적으로 K리그의 실력까지 끌어 올릴 수 있다. 세계적인 수준의 골키퍼를 배출해내기 위해서는 외국인 골키퍼를 규제를 푸는 것이 그러지 않을 때보다 장점이 더 많다. 이미 우리나라 국가대표에 뽑히는 골키퍼들은 우리나라를 떠나 일본에서 활약하며 한 단계 발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들에게 있어서 언어소통 등이 어려울 수 있는 해외무대 진출이 골키퍼 능력의 향상을 이끈 것이다. 이렇듯 더는 K리그 골키퍼는 한국인의 전유물이 되어야 할 필요는 없다.
▲ 김승규, 정성룡 선수
(사진 제공 = youtube.com)
잉글랜드처럼 되지 않으려면
하지만 K리그 외국인 골키퍼 규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지나친 외국인 선수유입으로 인해 힘을 잃어가고 있는 잉글랜드 국가대표팀 골키퍼 진을 근거로 들고 있다. 잉글랜드의 경우 자국 리그인 프리미어리그 20팀 중에서 잉글랜드 국적의 골키퍼가 주전으로 활약하는 팀은 5팀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외국인 골키퍼 비율이 상당히 높다. 그로 인해 골키퍼의 숫자가 적어서 경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고, 국제 대회에서 매번 골키퍼의 능력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는 의견이 많다. 먼저, K리그 외국인 골키퍼 규제가 폐지된다고 무조건 잉글랜드처럼 될 수 없는 이유로 독일 분데스리가의 예시를 들고 싶다. 독일 분데스리가는 외국인 선수에 대한 특별한 규정이 없을 정도로 외국인 선수에 대해서 개방적이다. 그러나 체계적인 유소년 시스템이 뒷받침된 덕분에 상당한 수준의 많은 독일 골키퍼들이 주전으로 활약하고 있다. 그래서 잉글랜드 골키퍼 문제는 지나친 외국인 선수 유입보다 유망한 골키퍼를 잘 길러내지 못하는 유소년 시스템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또한, K리그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보다 보유할 수 있는 외국인 선수가 적다. K리그는 기본적으로 3+1(3명의 외국인 선수와 아시아 쿼터 1명)명만을 외국인 선수로 등록할 수 있는데 대다수의 팀은 뛰어난 우리나라 선수가 부족한 공격진에 주로 외국인 선수를 사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골키퍼 수준이 아시아에서는 높은 수준이라고 할 수 있으므로 이러한 추세가 쉽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골키퍼진의 수준이 높지 않은 팀들은 능력 있는 외국인 골키퍼를 데려올 것이고, 이를 통해 우리나라 골키퍼들과 긍정적인 경쟁 구도를 만들어갈 수 있다. 즉 잉글랜드처럼 되지 않으려면 어린 골키퍼들을 세계적 수준의 선수들로 육성할 수 있는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이 글을 마치며
K리그는 우리나라 축구의 뿌리이다. 우리나라 축구의 성장을 위해서는 K리그의 역할이 중요하다. K리그의 긍정적인 방향으로의 변화가 우리나라 축구 수준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세계적 수준의 골키퍼가 등장해서 유럽 축구 리그를 누빌 미래를 기대해 본다.
유한결 기자
hangyul9696@siri.or.kr
[2017-01-17, 사진=pixba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