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토레스가 경기를 뛰다가 머리를 부딪치면서 의식을 잃어 모두를 놀라게 했다.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니었지만 자칫하다간 생명의 위협까지 받을 수 있던 순간이었다. 관중석 역시 안전한 공간은 아니다. 프로야구 관중석에서는 크고 작은 안전사고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심할 경우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스포츠는 오래전부터 우리의 놀이 수단이었고, 소통의 공간이었으며, 생계를 꾸리는 직업으로 존재해왔다. 그리고 그 역할은 점점 커지고 있다. 그렇다면 스포츠에서 중요한 가치는 무엇일까? 그 안에는 스포츠 정신, 승부, 과정, 그리고 결과 등 다양한 요소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 무엇 보다 우선되어야 할 것은 ‘안전’이다.
경기장 내에는 수많은 위험 요소들이 존재하고 있지만, 선수들이나 관중들이 안전하게 보호받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그리고 그 누구도 이들의 안전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이런 시점에서 우리는 냉철하게 현 상황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 당신은 안전하십니까?
[일촉즉발의 그라운드]
경기장에서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해 뛰는 선수들을 보면 전쟁터의 군인들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이 둘 사이에는 크나큰 차이점이 있다. 전자는 공정한 규칙의 틀과 모두의 안전이 어느 정도 보장된 상태에서 승리를 따내는 방식이라면 후자는 상대편의 죽음이 곧 자신의 생존이자 승리로 가는 길이다. 이런 전쟁과도 같은 경기에서 선수들은 어떤 종류들의 사고에 노출이 되어있고 어떻게 이에 대처 되고 있는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서 대한민국 프로스포츠 선수들의 사례를 위주를 소개하겠다.
첫 번째는 몸의 갑작스러운 증상으로 인한 사고다. 이러한 종류의 사고는 사고의 당사자인 본인도 심지어 예측하지 못한다. 故 임수혁 (롯데 자이언츠)과 신영록 (제주 유나이티드)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2000년 4월 18일, 롯데와 LG 간의 경기에서 2루에 서 있던 임수혁 선수는 심장 부정맥으로 인한 심장마비로 의식을 잃었다. 당시 이 상황을 인지하거나 대처할 인력이 없어, 임 선수는 수 십분 동안 그라운드 바닥에 방치되었다. 덕아웃에 옮겨졌지만 마땅한 구급차나 의료진도 없어 별다른 조치가 취해지지 못했다. 뒤늦게 병원으로 후송됐지만 결국 식물인간 판정을 받고, 긴 투병 생활 끝에 숨을 거뒀다.
2011년 5월 8일, 제주와 대구 간의 경기에서 신영록 선수 또한 부정맥에 의한 심장마비로 의식을 잃었다. 하지만 빠른 초동 대처로 큰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당시 신영록 선수가 쓰러지자 주변에 있던 선수들은 재빨리 그의 기도를 확보했고 의료진을 불렀다. 또 구단 의료진은 빠른 심폐소생술을 실시했고, 호흡의 회복을 유도해 냈다. 이후 경기장에 배치된 구급차는 신영록을 제주한라병원으로 7분 만에 신속히 옮겼고 결국 신 선수는 50일간의 긴 사투를 이겨 내고 깨어났다.
두 번째는 경기 중 과격한 플레이로 인해 발생하는 경미한 부상부터 큰 부상을 아우르는 사고이다. 이 부분이 경기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경우를 차지한다. 스포츠 경기의 특성상 승리에 대한 선수들의 열정이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부상은 경기에 수반되는 당연한 속성일지도 모른다. 패배는 없고 오직 승리뿐이라는 집념과 집념이 부딪히는 곳이 그라운드이다. 과도한 집념이 어떨 때는 부상을 낳기도 하고 심할 경우 죽음이라는 극한의 상황까지 내몰기도 한다. 그렇기에 선수의 안전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심장마비와 같이 선수 자신도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사고의 안전은 그 누구도 보장해 줄 수 없다. 그렇기에 이러한 종류의 사고는 예방보다는 사고가 발생한 후가 중요한 것이 사실이다. 사고가 발생한 즉시 응급처치의 시행 여부, 즉시 투입이 가능한 의무진의 배치여부 그리고 경기장과 병원과의 거리 등 선수의 안전을 위해서는 많은 부분이 고려되어야 한다.
프로축구연맹은 ‘신영록 사건’을 계기로 안전 대책을 강화했다. 이경태 프로축구연맹 의무위원장은 K리그 경기장에 의료진 3명과 자동심장충격기를 의무화했다. 또한, 3분 30초간 15단계로 이뤄진 응급상황 대처 매뉴얼도 만들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들의 희생으로 인해 규정이 만들어지고 더 이상 제2의 임수혁과 신영록 사건이 터지지 않도록 모두가 노력하게 된 셈이다. 하지만 선수들의 안전을 명시적으로 공식화한 규정은 아직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프로축구의 경우 프로축구연맹에서 밝힌 경기안전 관련 내용은 제 6조 의료시설 내용이 전부인 실정이다.
제6조 의료시설
홈경기를 실시하는 클럽(이하 홈 클럽)은 선수단, 관계자, 관중 등을 위해 경기개시 90분 전부터 경기종료 후 모든 관중 및 관계자가 퇴장할 때까지 의료진(의사, 간호사, 1급 응급구조사)과 특수구급차를 반드시 대기시켜야 한다.
그 외에는 K리그 안전 가이드라인을 제정해 놓았을 뿐 그 외에 특별한 조치는 없다. 이마저도 강력한 강제성을 띠지 않기 때문에 구단들의 태도에 따라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아래는 K리그 안전 가이드라인을 선수 안전 관련 내용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제16조 의료
응급치료실 (*클럽 라이센싱 기준 A)
1) 경기 시 의료 관련 지원요청 건은 안전영역 내에서 미아 발생과 더불어 가장 많은 빈도수를 나타낸다. 따라서 의료사고 발생 시 현장 초동 대응은 안전 대상의 소중한 생명을 지키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2) 홈 구단은 경기 시 의료지원을 필요로 하는 안전대상을 위해 구성요소를 구비한 현장 응급치료실을 갖춰야 하며, 안전시간 동안 이를 운영해야 한다.
3) 홈 구단은 안전시간동안 다음과 같이 응급치료실을 구성하여야 하며 구급차의 위치로
응급치료실 및 경계시설이 가까운 지점이어야 한다.
구분 | 구성(구비)요소 | 비고 |
장비 및 시설 |
-자동제세동기, 응급처치물품 및 약품과
그것의 보관장소·보관함 -간이침대 및 침구류, 내부조명, 환기시설, 냉·난방시설, 남녀화장실, 식수공급시설 |
선수용 응급치료용품
별도 추가 |
인력 | 간호 자격 취득자 또는 1급 응급구조사 1명 | 의사 또는 의료기관(병원)
과의 연락체계 구축 |
의료진 대기
홈 구단은 안전대상을 위해 최소 경기 시작 90분 전부터 안전 대상의 퇴장 시까지 의료진을 구성하여 반드시 대기시켜야 한다. 의료진 구성은 다음과 같다.
<최소기준>
– 현행법상 의사면허를 취득한 의사 또는 주치의 1명
– 현행법상 간호자격을 취득한 간호사 1명
–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이 시행하는 1급 응급구조사 자격을 취득한 자 1명
– 현행법상 인정되는 특수구급차(운전자 포함) 1대 (일반 구급차 + 의료장비 추가 허용)
자동제세동기
홈 구단은 홈경기 안전 대상을 위해 심폐소생술을 행할 수 있는 자동제세동기를 의무 설치해야 한다. 아울러 각 구단은 선수단 훈련, 이동 시 자동제세동기를 의무 휴대해야 한다.
선수단 건강검진 실시 (*클럽 라이센싱 기준 A)
각 구단은 구단에 소속(등록)된 선수들을 대상으로 매년 심혈관 검사를 포함한 건강 검진을 시행해야 한다.
이러한 수칙들이 단순 가이드라인으로 남아있는 것이 아니라 보다 강화되고, 의무화되어야 제2, 3의 피해자를 막을 수 있다.
[위기일발의 관중석]
국내 프로야구의 관중 수는 2016년 800만을 넘어섰고, 이제는 900만, 그리고 1,000만을 바라보고 있다. 응원 문화 역시 급속도로 성장했다. 관중석은 더 이상 경기만 보는 좌석이 아니다. 클리닝 타임에 조명을 이용해 라이트 쇼를 보여주고, DJ를 섭외해 경기 후 클럽으로 변신하기도 한다. 이렇듯 구단은 경기 외적의 엔터테이너적인 요소로도 사람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그러나 팬들의 안전문제는 제자리걸음이다. 많은 팬이 여전히 위험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야구장에서 관중에게 가장 큰 위협은 파울볼이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전희경 의원이 공개한 최근 3년간 프로야구 경기장 관중 안전사고 현황에 따르면 야구장 안전사고의 95%는 파울볼 사고로 785건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연도별로 보면 2014년 237명, 2015년 356명, 2016년 192명이다. 이는 매일 최소 1~2건은 파울볼로 인한 안전사고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파울볼 안전사고의 피해는 단순 타박상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뼈가 부러질 수도 있고, 심할 경우 생명의 위협까지 받을 수 있다. 지난 2014년, 부산 사직구장에서 한 여생이 경기를 관전하던 도중 눈에 파울볼을 맞아 병원으로 이송됐고, 두개골 골절과 뇌출혈을 진단받아 10시간이 넘는 수술을 받았다. 이외에도, 수원KT위즈파크에서는 파울볼 사고로 인해 눈에 영구 장애를 입은 관중도 있었다. 이만큼 파울볼의 크기는 작지만 위력은 매우 크다.
이런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몇 가지 방법이 있다.
첫 번째로 호루라기를 불어 관중들에게 알리는 방법이다. 경기장 곳곳에 있는 안전요원들이 파울볼이 날아올 때마다 소지한 호루라기를 불어 위험을 알린다. 이 방법은 관중들이 날아오는 공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간혹 시끄럽다는 의견이 있고, 돔구장의 경우엔 소리가 울려 더욱 그렇다.
두 번째로, 경기장 내 그물을 설치해 파울볼을 막는 방법이다. 이는 파울볼 자체를 관중석으로 오지 못하게 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물을 더 높여야 한다는 의견이 있지만 이는 양날의 검과 같다. 그물이 높을수록 관중석의 시야 방해는 심해지므로 고척스카이돔은 완공 초반에 항의가 빗발치기도 했다.
메이저리그의 경우엔 그동안 포수 바로 뒤쪽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안전 그물이 없었다. 하지만 2016년 시즌 전 사무국의 권고로 안전 그물의 확대가 이루어 졌다. 롭 만프레드 커미셔너는 “팬들에게 보호 그물 뒤에 앉을 수 있는 선택권을 줘야 한다.”는 취지에서 이런 결정을 내렸다. 이 권고 사항의 목적은 경기 전과 경기 도중 특별한 경험을 하고 싶어 하는 팬들의 수요와 균형을 맞추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내야 전 좌석에 그물이 덮여 있는 KBO의 사례와는 좀 다르다.
세 번째로, 헬멧이나 글러브를 대여해주는 방법이다. 이는 그라운드와 가장 가까운 익사이팅 존에 앉는 관중이 주 대상이다. 현재 익사이팅 존에서의 헬멧 착용은 권고 사항으로 있다. 하지만 답답하다는 이유로 중간에 벗는 경우가 많고, 다른 좌석 대부분의 관중들에게 모두 대여해주기는 어렵기 때문에 여전히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사고 이후에는?
현재 경기장 내 의료 부분에 관해 KBO 리그 규정에는 다음과 같은 의무사항이 있다.
제29조 의무
홈구단은 경기가 열리는 당일 홈구단 연습 시작 시간(경기 전)부터 경기종료 후 모든 관객이 퇴장할 때까지 다음과 같은 의무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
1) 경기장 내에 의무실 설치
2) 의무실에 의사(또는 응급조치가 가능한 전문가)와 간호사 각 1인 배치
3) 의무실 내에 산소호흡기 및 들것 비치
4) 경기장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응급후송차량 대기
그라운드에서 선수 부상 및 관객 안전사고가 발생할 경우 부상자의 신속한 치료 및 이동을 위하여 응급후송차량의 그라운드 진입이 가능하도록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
5) 응급조치병원 지정
6) 상기사항을 위반할 경우 해당구단을 제재할 수 있다.
파울볼에 맞은 관중은 의무실에서 응급 처치를 받을 수 있고, 심각한 경우엔 곧장 병원으로 이송된다. 그렇다면 그 이후에 치료도 구단이 책임져야 할까?
‘운동장 내에서 본인의 부주의(연습 혹은 경기중 파울볼 등)로 인한 사고에 대하여 책임지지 않으니 특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이는 야구장 티켓 뒷면에 적혀 있는 유의사항 내용이다. 법률적으로 구단이나 선수가 다친 관중의 병원 치료비까지 책임질 의무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치료비 대부분을 고스란히 본인이 책임져야 할 수도 있다.
NC 다이노스 프런트에 문의해본 결과, 현재 마산구장에서 일어난 사고의 경우엔 “필요할 경우, 가입된 관중상해보험으로 치료비를 보험 처리해주고 있다.”라고 전했다. 다른 구단도 보통 도의적인 차원에서 약간의 보험금이나 치료비를 지급하는 정도가 관행이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파울볼 사고를 완전히 막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려면 그물로 관중석을 아예 덮어버리거나 타자가 공을 안 치는 수밖에 없다. 사고를 최소화하려면 가장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이 바로 관중의 인식이다.
메이저리그 관중석은 KBO보다는 응원의 요소가 훨씬 적기 때문에 경기 자체에 대한 집중도가 높다. 그리고 생활 스포츠가 발달한 미국의 특성상 글러브 사용법의 숙지가 우리나라보다 잘 되어있다. 그렇기 때문에 관중석에서 자발적으로 글러브를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국내든 해외든 맨손으로 잡는 걸 시도하는 무모한 도전자들은 언제나 있다.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경식구를 맨손으로 잡는 건 프로 선수들도 쉽지 않다. 그렇기에 글러브를 착용하고 있지 않은 이상 공은 최대한 피해야 한다.
경기 중 스마트폰 사용을 자제할 필요도 있다. 응원 팀이 수비 중이라고 하더라도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않을 경우엔 위험하다. 언제든지 파울 타구가 자기 방향으로 날아올 수 있기 때문에 항상 경기에 집중해야 한다.
구단과 협회 측에서도 노력이 필요하다. 우선 구단은 관중들이 경기에 어느 정도 집중할 수 있도록 과도한 응원은 자제해야 한다. 응원은 경기를 더 재미있게 만들어주지만 최우선은 안전이다. 몸을 과도하게 사용하는 응원은 지양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경기장에서 관중들에게 파울볼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지속적으로 심어줘야 한다. 당장은 효과가 안 나올 수 있지만 사람들의 인식 자체가 변하면 그게 가장 효과적이다.
협회 측에서는 안전 관련 수칙의 가이드라인을 좀 더 강화하고,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높일 필요가 있다. 지난 2015년, 메이저리그에서 한 팬이 머리에 파울볼을 맞고 쓰러진 일이 있었다. 그 모습을 본 투수가 구심에게 알렸고, 1루심이 경기를 중단시켰다. 경기장 내에 모든 사람의 이목이 다친 팬에게 모였고, 조치가 이뤄진 후 20분 만에 경기가 재개됐다. 이는 국내에선 볼 수 없었던 일이다. MLB와 KBO 모두 경기 시간을 줄이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사람의 생명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
“경기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떠날 수 없었습니다”
2008년, K리그 경기 도중 쓰러진 인천의 임중용이 한 말이다. 그는 4~5분간 의식을 잃었지만 곧바로 병원에 가지 않고, 경기가 끝날 때까지 라커룸에서 동료들의 경기를 지켜봤다. 그리고 과거 롯데의 최동원은 ‘일구일생 일구일사(一球一生 一球一死)’의 정신으로 공 하나하나에 본인의 목숨을 걸며 던졌다. 이처럼 많은 선수들은 경기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자신의 몸을 희생한다. 관중들도 마찬가지로 선수와 한 몸이 된 듯 그들의 플레이를 열광적으로 응원한다.
하지만 이들이 가지고 있는 열정의 결과물이 아픔으로 돌아와서는 안 된다. 선수, 팬, 구단, 협회 모두가 경기장을 가장 안전한 전쟁터로 만들기 위해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박영웅 – 이영재 기자 공동 작성
[2017-05-24, 사진 제공 =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