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의 두 강호 첼시와 아스날이 6일 오후 10시(한국시간)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커뮤니티 실드 경기를 가졌다. 커뮤니티 실드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이하 EPL)의 우승팀과 잉글랜드 FA컵 우승팀이 맞붙는 경기로서 2017-2018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가 개막하기 전 잉글랜드 축구의 열기에 불을 지피는 첫 경기다.
런던을 연고로 하는 두 팀은 이날 역시 ‘런던의 주인’을 가리는 치열한 경기를 펼쳤다. 경기 시작 전, 지난 6월 영국 그렌펠 타워 화재로 인해 80명의 사상자를 낸 사고에 대한 추모식이 거행되었다. 웸블리 스타디움을 가득 채운 팬들과 그라운드 위의 선수들은 그들의 죽음을 함께 슬퍼했고 묵념의 시간을 가졌다.
양 팀은 같은 3-4-3포메이션을 가지고 나왔지만, 초반 경기를 주도한 것은 아스날이었다. 6분 이워비가 챔벌레인과의 2대1 패스를 통해 첼시의 측면을 무너뜨렸다. 끝선까지 드리블을 치고 들어가서 패스를 시도했으나 쿠르투아 골키퍼의 선방에 막혔다. 이어 22분 이적생 라카제트는 문전 안에서 감각적인 오른발 감아차기 슈팅을 때렸으나 아쉽게 골대를 맞고 나왔다. 라카제트의 장점이 돋보이는 플레이였다.
전반 27분 메르테사커는 케이힐과의 공중볼 경합과정에서 케이힐의 팔꿈치에 맞아 눈 근처가 찢어지면서 피를 흘리고 쓰러졌다. 벵거 감독은 메르테사커를 세드 콜라시냑와 교체했다. 이때부터 경기의 흐름이 조금씩 첼시 쪽으로 넘어오기 시작했고 34분 페드로가 유효슈팅을 기록했다. 그러나, 득점 없이 0대0으로 전반전이 마무리되었다.
첼시는 후반전이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이른 시간에 선제골을 집어넣었다. 코너킥 상황에서 2선에 있던 케이힐은 헤딩으로 볼을 안쪽으로 밀어 넣었고 모제스가 그 공간으로 파고 들어가 안정적인 가슴 트래핑 후 침착하게 마무리했다. 이후 첼시가 1대0으로 리드하면서 양 팀 간의 치열한 공방이 계속되었고 후반 35분 페드로가 거친 태클로 인해 레드카드를 받았다. 페드로의 퇴장과 이적생 뤼디거의 투입으로 첼시는 세트피스 수비에 혼란을 겪었다. 어수선한 분위기를 이용한 아스날은 사카가 프리킥을 올렸고 전반에 교체된 콜라시냐크가 바로 헤딩 동점골을 넣었다.
90분이 끝난 뒤 1대1로 승부를 짓지 못한 양 팀은 승부차기로 돌입했다. 잉글랜드 축구협회(FA)는 이번 커뮤니티실드 경기부터 기존 ABAB 방식이 아닌 ABBA방식의 승부차기를 적용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ABBA 방식은 A팀이 선축하고 B팀이 연달아 두 번을 차고 A팀이 그다음 두 번을 번갈아 차는 방식이다. 승부차기는 아스날 팬 진영의 골대 쪽에서 진행되었다. 첼시의 선축으로 시작된 승부차기는 두 번째 키커 쿠르투아와 세 번째 키커 이적생 모라타가 골을 넣지 못하면서 아스날이 4-1 승부차기 승리로 구단 역사상 15번째 커뮤니티 실드 우승을 가져갔다.
아래는 이번 경기와 관련해서 주목해야할 점들과 첼시와 아스날의 각별한 인연에 대해 소개하겠다.
신입생
첼시는 모라타를 아스날은 라카제트를 각각 ‘9번’ 최전방 공격수를 영입했다. 두 선수 모두 팀 내의 가장 많은 이적료를 주고 데려온 선수들이다. 따라서 두 팀 모두 신입생들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콘테 감독은 “모라타는 첼시에서 훈련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나는 모라타가 9번 위치에서 뛰길 원하지만 10번 역할(아자르 롤)도 잘 해낼 수 있는 자질을 갖췄다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벵거 감독은 프리 시즌 라카제트의 활약에 대해 “최전방 공격수에게 득점 능력은 가장 중요하다. 내 생각에 라카제트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만족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이번 대결을 비롯해 앞으로 두 선수가 EPL에서 잘 적응할 수 있을지의 여부가 기대된다.
기존 스타플레이어의 불출전
첼시의 아자르 아스날의 산체스, 각 팀의 크랙(경기의 흐름을 바꿔놓을 수 있는 플레이어)이 출전하지 않았다. 아자르는 부상으로 인해 출전을 못 했고 산체스는 사연이 복잡하다. 챔피언스 리그 경기 출전을 원하는 산체스는 이번 시즌은 그러지 못할 전망이다. 아스날은 지난 시즌 리그 5위로 마감하여 유로파 리그에 참가하기 때문이다. 현지 언론에서도 산체스의 이적을 예상했지만 아직은 그런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다.
첼시에서도 이적과 관련된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선수가 있다. 바로 16-17시즌 리그를 우승시킨 장본인인 간판 공격수 디에고 코스타이다. 지난겨울부터 팀에 대한 불만을 표한 코스타는 감독과의 문자사건 이후 자신의 SNS에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이적하고 싶은 마음을 노골적으로 표했다. 현재 변호사를 선임해 첼시와 법정에서의 만남을 예고했다.
아스날, 알고 보면 첼시 3백을 탄생시킨 장본인
16-17시즌 EPL 6라운드 당시 아스날 홈에서 치러졌던 첼시와의 경기에서 첼시는 전반전에만 무려 3골을 내주며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안토니오 콘테 감독이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팬들은 그의 역량에 대한 의문을 품을 시점이었다. 그러나 콘테 감독은 후반전에는 3백 전술을 가지고 경기를 운영했다. 그 결과, 득점에는 실패했지만 훨씬 훌륭한 경기력을 확인했고 그 이후의 경기부터 3백을 본격적으로 활용하여 13연승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수비와 공격을 극대화한 콘테의 3백은 축구계의 트렌드 세터(trend setter)였다. 선두 첼시를 뒤쫓던 토트넘도 3백 전술을 활용해 토트넘만의 3백을 구사했다. 아스날 역시 리그 중후반부터 이 전술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오늘의 커뮤니티실드 경기에도 3백 전술을 들고 나왔다. 프리미어리그 20팀 중 17팀이 적어도 한 번은 3백 전술을 시험해보았을 만큼 잉글랜드 축구계의 한 획을 그어놓았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끈질긴 두 팀 간의 승부
런던 라이벌인 두 팀은 지난 2016-2017시즌 FA컵 결승에서 맞붙은 바 있다. 당시 리그 우승을 확정 지은 첼시는 FA컵 우승을 노리며 더블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스날 팬들은 팀의 부진한 리그 성적 때문에 ‘벵거 아웃(Wenger Out)’이라는 팻말을 경기장에 들고나올 정도로 감독에 대한 지지가 바닥까지 치달은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첼시가 아스날보다 좋은 흐름을 타고 있었던 것은 분명했다. 위기의 뱅거 감독은 극적인 2-1 승리로 FA컵 우승을 차지했다. 더불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따돌리고 FA컵 13회 최다 우승팀이라는 타이틀을 챙겼다. 벵거의 체면을 조금이나마 살린 셈이었다. 그 이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팬들의 바람과는 달리 벵거는 아스날과 2년 재계약을 맺었다.
지난달 22일 중국에서 열린 인터내셔널 챔피언스컵(ICC)에서도 두 팀은 한 차례 맞붙었다. 첼시가 아스날을 3-0으로 완파하며 좋은 상승세를 보여주었고 이후 바이에른 뮌헨 그리고 인터밀란과 경기를 치렀다. 아스날은 ICC에서 바이에른 뮌헨과 경기를 치른 뒤, 런던 홈으로 돌아와 벤피카 그리고 세비야와 에미레이츠 컵 경기를 치렀다.
박영웅 기자
yeongung98@siri.or.kr
[2017년 8월 7일, 사진 = 첼시 FC 공식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