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말에 부자는 망해도 삼 년은 간다고 했다. 무한경쟁의 프로야구에서 이 말은 틀렸다.
삼성의 2017년
두 번째로 만나볼 팀은 이번 시즌 9위를 차지한 삼성 라이온즈다. 삼성은 이로써 2년 연속으로 9위에 머물게 됐다. 이전까지 가장 낮은 순위가 6위였던 삼성에게 이는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심지어 올해는 작년보다 더 추락했다. 총 144경기에서 55승 94패 5무로 승률 0.396을 기록했다. 1982년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삼성이 이보다 낮은 승률을 기록한 적은 없었다. 3할대 승률 역시 처음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이번 시즌 삼성은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개막부터 4월의 마지막 날까지 4승 20패 2무라는 처참한 성적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동안 리그에서 삼성보다 많은 승수를 기록한 투수는 4명이나 있었다(맨쉽- 6승, 헥터, 양현종, 류제국- 5승). 외국인 타자 다린 러프는 1할대 타율을 유지하다 4월 중순 이후 2군으로 내려갔다. 지난겨울 FA를 통해 합류한 이원석 역시 2할대 초반의 타율로 부진했다. 여러 차례 선발 기회를 받은 장원삼과 최충연은 극도로 좋지 않았다. 투타에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한 선수들이 많아 팀은 요동쳤다. 팀은 압도적으로 꼴찌를 달렸고 사상 첫 100패를 걱정하게 됐다.
5월이 돼서야 팀은 정상 궤도를 찾기 시작했다. 2군에서 돌아온 러프는 4월과는 완전히 다른 선수가 됐다. 러프는 5월에만 7개의 홈런을 쏘아 올리며 KBO리그에 적응하는 듯했다. 구자욱은 5월 팀 내 가장 높은 타율-출루율-장타율(0.337-0.421-0.674)을 기록하며 러프와 함께 타선을 이끌었다. 투수진에선 부상으로 빠져있던 앤서니 레나도가 신고식을 치렀고 윤성환과 우규민이 나란히 2점대 평균자책점으로 선전했다. 그러나 불펜은 크게 흔들렸고 선발들은 제대로 된 승수를 올리지 못했다. 5월 성적은 11승 14패로 4월보단 좋아졌지만 여전히 팀은 최하위에 머물러 있었다.
6, 7월이 되고 삼성은 전통적으로 여름에 강한 팀답게 상승세를 탔다. 이승엽은 선수로서의 마지막 여름을 뜨겁게 보냈다. 이승엽은 두 달 동안 팀 내에서 가장 많은 10개의 홈런을 몰아치며 전설의 품격을 보여줬다. 러프와 구자욱 역시 여전히 좋은 타격감을 보여주며 구자욱-러프-이승엽으로 이어지는 클린업 트리오는 불을 뿜었다. 투수진에선 장원삼-장필준-심창민 불펜 3인방이 든든하게 뒷문을 틀어막았다. 선발로 부진했던 장원삼은 6월부터 불펜투수로서 성공적으로 자리 잡았다. 장필준은 본격적으로 팀의 마무리로 자리매김했고 심창민은 두 달간 0.147의 피안타율로 타자들을 제압했다. 팀은 6월 중순 이후부터 탈꼴찌에 성공했고 7월 말에는 8위까지 오르기도 했다. 6월 13승 12패 1무, 7월 11승 10패 1무로 두 달 모두 5할 이상의 승률을 기록했다.
8월은 다시 추락의 달이었다. 타격에서의 문제는 없었다. 8월 한 달간 팀타율은 0.306으로 전체 1위였고 득점은 전체 4위로 좋았다. 하지만 투수진에 큰 구멍이 생겼다. 두 용병 투수 모두 부상의 악몽에 시달렸다. 그렇지 않아도 부진했던 레나도는 부상으로 시즌을 조기 마감했고 재크 페트릭은 약 1달간 이탈해 있다가 8월 말이 돼서야 복귀했다. 선발진의 한 축인 윤성환, 우규민 또한 부진의 늪에 빠졌고 불펜은 붕괴 직전이었다. 8월 팀 평균자책점은 6.26으로 전체 10위였다. 10이닝 이상 소화한 투수 중 4점대 이하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투수는 아무도 없었다. 모두 5점대, 혹은 그 이상이었다. 8월 7승 17패로 팀은 다시 9위로 내려앉았다.
9월 이후 팀의 가을야구 탈락은 이미 확실시되어 있었고 초점은 이승엽에 은퇴투어에 맞춰져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도 러프의 타격은 끝까지 불을 뿜었다. 러프는 9월 이후에도 홈런 7개와 타점 28개를 뽑아내며 31홈런 124타점으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외야로 전향을 성공한 구자욱은 21홈런-107타점으로 생애 첫 20홈런과 세 자릿수 타점을 기록했다. 마지막까지 투수진은 좋지 않았고 결국 삼성은 시즌 팀 평균자책점 5.90으로 이 부문 최하위를 기록했다. 두 외국인 투수는 도합 5승밖에 기록하지 못하며 삼성은 2년 연속 외국인 투수 듀오의 실패를 맛봤다. 팀 투수 중 윤성환만이 유일하게 규정이닝을 채우며 팀 선발을 지켰다. 최종 성적 55승 94패 5무로 김한수 감독은 감독 데뷔 해에 제대로 쓴맛을 느꼈다.

시즌 MVP: 타선의 해결사 러프
이번 시즌 2군에 다녀오기 전의 러프와 다녀오고 난 후의 러프는 전혀 다른 선수였다. 다녀오기 전의 러프는 홈런 2개에 타율-출루율-장타율 0.150-0.301-0.250으로 극도로 부진했다. 당시 팀의 상황 또한 좋지 않았기 때문에 당장 퇴출당해도 할 말이 없던 성적이었다. 하지만 110만 달러의 고액 연봉을 받는 선수를 쉽사리 방출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때 러프를 방출했다면 삼성은 땅을 치고 후회했을지도 모른다. 2군에서 복귀한 5월 2일 이후의 성적은 홈런 29개 타점 119개 타율-출루율-장타율 0.336-0.409-0.611로 4번 타자의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본인 역시 2군에서 차분한 마음으로 머릿속을 정리할 수 있었다고 말한 바 있다.
러프의 활약은 득점권에서 더욱 빛났다. 러프는 올 시즌 189번의 득점권에서 0.379의 타율로 본인의 시즌 타율보다 높았다. 타점 124개는 올 시즌 프로야구 전체 1위에 해당하는 기록으로 타선에서 해결사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이로써 삼성은 작년 최형우에 이어 2년 연속 타점왕을 배출해냈다. 당연히 구단은 러프와 재계약하길 원하고 있으며 현재 협상 중에 있다. 삼성 팬들은 내년에도 1루, 그리고 4번 타순에 러프가 자리 잡고 있기를 바랄 것이다.
이승엽의 은퇴는 올해 삼성뿐만 아니라 프로야구 전체의 관심사였다. 시즌 전부터 예고된 은퇴 투어는 KBO 역사상 처음으로 열리는 행사였다. 이승엽이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76년생 만 41세의 나이에도 이승엽은 마지막까지 이승엽다웠다. 물론 전성기만큼의 성적을 뽑아낼 순 없었지만 본인의 트레이드 마크인 홈런을 24개나 때려내며 마지막 시즌을 마무리했다. 홈런 24개는 역대 41세 이상의 선수가 뽑아낸 한 시즌 최다 홈런에 해당한다. 20홈런은 커녕 두 자릿수 홈런을 뽑아낸 것도 2006년 호세(22개)와 올해 이승엽이 전부다. 특히, 은퇴 경기에서의 활약은 모두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은퇴식을 앞두고 연타석 홈런을 때려낼 줄 누가 예상했을까? 정말 이승엽답다라는 말 밖에 나오지 않았다.
국민타자. 이 칭호만 보더라도 이승엽은 삼성의 이승엽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대한민국의 이승엽이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부터 시작해서 2002 부산 아시안 게임, 2006년 WBC, 2008년 베이징 올림픽까지 국민 모두가 이승엽의 스윙 하나하나에 열광했다. 합법적 병역 브로커라는 말이 붙을 정도로 국가대표 경기에서 결정적인 순간마다 이승엽은 해결사가 어떤 것인지 몸소 보여줬다.
KBO 통산 MVP 5회, 골든글러브 10회, 홈런왕 5회, 통산 최다 홈런, 타점, 득점, 2루타, 장타, 루타 등 이 밖에도 많은 기록들이 있지만 모두 나열하기엔 끝도 없다. 이 기록들은 한동안 깨지기 어려울 것이다. 중간에 일본 프로야구에서의 8시즌이 제외된 기록이라는 점이 더욱 놀랍다. 주저 없이 KBO 최고의 타자라고 말할 수 있다.
이제 내년부터 삼성에 ‘라이온킹’ 이승엽은 없다. 당장 삼성은 이승엽의 자리를 메꿀 선수가 필요하다. 이승엽의 뒤를 이어 삼성의 상징이 될 선수는 누가 있을까? 지금으로써는 구자욱이 가장 유력한 후보다. 이승엽처럼 전형적인 홈런 타자는 아니지만 충분히 장타력을 갖추고 있고 타율 면에서는 오히려 더 좋다. 실력으로는 이승엽의 뒤를 이을 잠재력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 하지만 진정으로 이승엽의 뒤를 잇기 위해서는 이승엽이 야구를 대하는 태도와 인성, 그리고 팀을 우승시킬 수 있는 해결사 능력이 필요할 것이다.
사자는 다시 포효할 수 있을까?
삼성의 내년은 올해 많은 위기를 맞이했고 내년에도 위기가 지속될 것이다. 관중 수를 작년과 비교해봤을 때 작년 851,417명에서 올해 704,857명으로 상당수 줄어들었다. 부진이 계속됨에 따라 점점 관중들도 외면하고 있다. 올해 이승엽을 보기 위해 많은 관중들이 찾아왔던 것을 감안하면 이런 성적이 반복될 경우 관중 수는 더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삼성 구단이 제일기획으로 넘어가고 구단의 자립성을 키우기 위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 이렇게 계속 관중이 줄어들어선 곤란하다.
외국인 투수의 선택에 있어서 더 이상의 실수를 막는 것이 중요한 관건이다. 2016년에는 외국인 투수 도합 6승, 올해는 5승이다. 물론 몇 년 전에 삼성이 왕조로 불리던 시절에는 외국인 투수에 대한 절대적인 의존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릭 밴덴헐크, 알프레도 피가로 등의 성공이 팀에 분명히 큰 도움이 됐었다. 지금처럼 몇 년 전 활약했던 토종 투수들이 대거 이탈한 상황 속에서 외국인 투수들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내년에 만 37세가 되는 윤성환에게 언제까지나 의존할 수는 없다.이제는 스카우트 팀의 추가적인 실수는 용납되기 어려울 것이다.
삼성은 KBO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운 명문 팀이다. 그동안 그들에게 암흑기란 없었다. 삼성이 위기를 딛고 일어나 예전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을지 혹은 암흑기로 들어서게 될지 내년은 팀의 운명을 바꿀 한 해가 될 것이다.
이영재 기자
leeyj8492@siri.or.kr
[2017-11-09, 사진=By WiiWii (http://wiiwiivivi.tistory.com/21), (http://wiiwiivivi.tistory.com/22) [CC BY 4.0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4.0)], via Wikimedia Commons, 삼성 라이온즈 홈페이지 캡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