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단일팀 구성에 대한 논의가 뜨겁다. 보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단일팀 구성에 대한 언론의 반응과 국민들의 관심이 매우 뜨겁다. 2018년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 이후 단일팀 성사에 대한 언론의 예측이 있었고,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가 결정된 이후 언론은 그야말로 관련 기사를 엄청나게 쏟아내고 있다.
단일팀 구성에 대한 구체적 논의 기간이 실질적으로 1주일도 채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언론재단이 운영하는 www.kinds.or.kr 에 등록된 ‘남북단일팀’ 관련 기사 수는 1주일 동안 무려 650건이 넘는다. 단일팀 구성이 결정된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 관련 뉴스도 이에 뒤지지 않는데, ‘여자아이스하키팀’ 키워드로 검색되는 관련 뉴스는 지난 일주일간 7백 건에 육박한다. 민감한 남북관계 주제임을 고려해도, 스포츠를 매개로 하는, 스포츠 관련 기사 숫자로는 소위 ‘역대급’에 해당된다. 아래 관계도를 보면 기사의 광범위함과 숫자의 복잡성이 잘 드러난다.
하지만 대부분 기사의 논조나, 해당 주제에 대한 여론은 차갑기만 하다. 실제로 관련 기사에 대한 포털 댓글들을 살펴보면, 댓글의 내용이 상당히 비판적일 뿐만 아니라, 정부의 결정에 대해 비판을 넘어 비난과 조롱하는 댓글들도 상당수다. 댓글 여론을 보면 누가 과연 반대의견을 개진할 수 있을까 싶다.
하지만 남북단일팀 구성에 대한 본인의 생각은 대다수 언론이 전하는 논조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본인은 그 생각을 강요하거나 단순 주장하기 위한 마음은 추호도 없다. 단, 균형 잡힌 시각과 사실관계에 입각한 올바른 정보 전달의 기능을 언론이 담당하지 못할 때, 누군가 감히 반대의견을 개진하지 못할 정도로 여론이 쏠릴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성의 가치가 존중받아야 할 때. 응당 그 부담을 짊어지고라도 자기 목소리를 내야 하는 부류가 소위 전문가라고 불리우고 대접받는 학자나 교수들일 것이다.
현재 남북 단일팀에 대한 엄청난 반대 여론, 즉 뜨겁고 격한 반대의 감정을 잠시 내려놓고 반대 의견에 대한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반대의 논리는 의외로 매우 단순하다. 반대에 대한 근거 논리는 크게 개인과 팀, 원칙 등으로 정리될 수 있다. 즉, 북한 선수들 때문에 혹시라도 우리 선수들에게 참가시간 등의 제약이 발생할 경우, 그동안 올림픽만 생각하며 흘려온 엄청난 땀과 노력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선수들은 결국 일방적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또한, 팀 스포츠의 특성상 북한 선수들의 참가가 팀워크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고, 이는 결국 팀 분위기는 물론 성적에까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팀을 위한 주장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동안 민주적인 과정과 합리적 절차를 강조했던 문재인 정부가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 이후 너무도 급박하게 일 처리를 진행하였고, 따라서 응당 거쳐야 할 민주적 절차를 훼손하면서까지 스포츠를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고 변질시켰다는 주장이다.
이 두 가지의 큰 주장은 모두 일리가 있는 주장이며 충분히 공감을 살만한 내용이다. 본 칼럼을 쓰는 본인도 고개를 주억거릴 만큼 해당 주장들에 동의하는 바이다. 하지만 언론과 여론의 압도적 지지를 받는 해당 주장과는 다른 의견이 존재할 수 있고, 이를 자유롭게 개진하는 것이 우리 사회가 북한과는 다른 민주주의 국가임을 입증하는 것이다.
선수의 땀과 노력은 물거품이 되는가?
먼저 선수 개인과 팀의 문제를 살펴보자. 이 문제를 논하기에 앞서 사실관계를 보다 명확하게 하고자 한다.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의 최종 명단은 총 23명이다. 이는 한국 대표팀의 숫자이고, 북한팀은 5~6명의 선수가 합류할 수도 있다는 언론의 보도가 있었다. 정부는 국내 선수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고자 소위 ‘23+α’ 안을 IOC와 IIHF(국제아이스하키연맹)에 요청한 상태이다.
하지만 ‘23+α’ 안이 받아들여져도 선수들의 흘려온 땀과 노력이 짓밟힌다는 주장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이 주장이 증명되려면, 북한 선수들의 경기출전시간이 보장되고 확정되어야 하는 것이 선결 조건이다. 하지만 이 전권은 머레이 감독이 가지고 있다. 이는 감독의 고유 권한이며, 정부 역시 이 권한을 존중하고 있다. 머레이 감독이 밝힌 대로 북한의 몇몇 선수는 팀에 도움이 될 만한 수준이라지만, 선수들의 기용은 오롯이 감독의 몫인 것이다. 어찌 보면 선수들의 노력이 짓밟힌다는 주장은 정부가 선수 선발에 압력을 가했을 경우와, ‘23+α’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정말 국내 선수들이 국가대표명단에서 탈락한 다음에 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감독의 선수 선발과 운용에 대한 권한 때문에, 북한 선수들이 엔트리에 포함된다 할지라도 경기에 투입되지 못할 수도 있다. 물론 꿔다놓은 보릿자루 마냥 뽑아놓고 안 쓰는 것도 참 난처할 것이며, 감독의 입장도 참으로 곤란할 것이다. 하지만 그 단계의 고민을 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20일 IOC와 IIHF의 회의 결과를 먼저 기다려야 한다. 해당 회의에서 결정된 내용을 전적으로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바라보는 단일팀에 대한 비판의식과 governing body인 IOC와 IIHF의 시각 차이를 냉정하게 인정하고 어떤 결과든 받아들이는 게 먼저다.
물론 우리가 미리 준비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감독이 더욱 정확하고 객관적인 방법으로 선수를 기용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돕는 것이다. 그와 같은 노력이 다른 어떤 것보다 우선 되어야 한다. 지금도 훌륭하게 도움을 주고 있겠지만, 정부와 협회는 정확한 의사 결정을 위해 풍부한 데이터를 제공하고 전문가를 고용하여 객관적 분석을 더욱 더 도울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어떤 상황에서도 감독이 본인의 고유 권한을 100% 지키고 활용할 수 있도록, 정부와 국민이 버팀목이 되어줄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줘야 할 것이다.
또한, 이전의 두 차례 단일팀 구성은 타국에서 열리는 대회 참가를 위해서였지만, 이번은 국내에서 열리는 올림픽을 위한 단일팀 구성이다. 북한 선수의 합류 시 팀워크 등의 문제가 없을 수는 없겠지만, 올림픽이 개최될 바로 그 장소에서 충분히 훈련할 기회를 가짐으로써 이를 최대한 극복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야 할 것이다.
미국인인 머레이 감독도 사람이기에 통역을 통해 기사 내용과 여론을 거의 실시간으로 접하고 있다. 냉정한 분석과 준비보다 ‘harsh’ 한 비난과 비판만 있으면 감독 역시 여론의 프레임 안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감독이 위축되고 눈치를 보게 되면 선수 역시 그 피해를 고스란히 받게 된다. 즉 북한 선수들 때문에 국가대표팀이 위축되기보다는, 이에 대한 반대 언론과 비난 여론 때문에 되레 팀은 더 흔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귀화 선수는 되고 북한 선수는 안 된다?
둘째, 귀화 선수의 문제이다. 더불어 이를 다루는 언론의 시각도 문제이다. 사실 언론의 보도행태 때문에 이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본인은 귀화 선수 문제 때문이라도, 단일팀 구성이 선수 개개인의 땀과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든다는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 현재 여자아이스하키 대표팀의 경우 3명, 남자 대표팀의 경우 7명, 총 10명의 특별 귀화 선수가 있다. 일부 한국계 선수들도 있지만 그야말로 대부분 ‘파란 눈의 대표선수’이다. 북한 선수로 인해 국내 선수들의 노력이 물거품 되었다면, 귀화선수로 인해 국내 선수들의 기회가 원천적으로 봉쇄당한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남자대표팀의 경우 25명 엔트리 중 7명이 외국인인데, 최초 37명의 선수가 25명으로 줄어들 때까지 이들은 철옹성과 같이 빠짐없이 최종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물론 특별 귀화 선수들의 맹활약으로 대표팀이 올림픽에 참가할 수 있었지만, 역설적으로 그들 때문에 가뜩이나 선수층이 얇은 국내 아이스하키 선수들은 더 위축되게 되었다.
학문적 관점에서 살펴본 올림픽 개최의 가장 큰 당위성은, 경제효과 홍보 효과도 아닌 바로 스포츠의 발전(sport development)이다. 스포츠 자체가 발전되고 관련 시설들이 발전되었을 때 경제효과도, 국민들의 삶의 질 제고도, 지역사회의 발전도 마치 부록처럼 따라온다는 것이 소위 SAD(Sport-Anchored Development) 모델이다.
올림픽이라는 거대 무대를 경험하는 것은 선수로서는 환상적인 일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경험은 매우 귀중한 유산이 되어 선수의 발전은 물론, 해당 종목 자체의 발전을 견인하는데 매우 큰 영향력을 미칠 것이다. 하지만 우리 선수들이 서있어야 할 그 자리에 혹시 귀화 선수들이 서 있는 것은 아닌가?
또한, 특별 귀화선수들의 활약과 스포츠의 발전이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고 확신할 수도 없다. 이를 위해서는 올림픽 이후의 계획 수립이 필수적인데, 본인은 아직도 올림픽 이후에 특별 귀화 선수들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구체적 계획을 들어본 적이 없다. 귀화 선수의 역할과 중요성은 여자 아이스하키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사항일 것이다.
귀화 선수를 용인하는 것이야말로 눈앞의 보암직한 열매를 따기 위해 현혹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의 경기력은 압도적이기 때문에 괜찮고, 북한 선수들은 실력이 안돼서 혹은 선수들과 상의 없이 일방적으로 내려진 정치적 의사결정이기 때문에 선수들의 노력이 물거품 된다는 것인지, 쉽게 이해할 수가 없다.
이와 같은 갈등을 더 부추기는 우리 언론의 민낯도 참으로 부끄럽다. 귀화 선수의 활용에 대해서는 승리지상주의를 바탕으로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우리 선수들이 입을 피해에 대해서는 함구한 언론. 하지만 파란 눈의 특별 귀화선수가 아닌, ‘진짜 우리 민족’ 선수가 한 팀에서 뛰는 것은 무슨 논리를 근거로 반대하는지, 정말 우리 선수들의 피땀이 물거품 되는 것을 걱정해서 반대하는지 진지하게 묻고 싶다
우리는 이미 승리지상주의 온전한 추구를 위해, 국가와 민족의 ‘외부’로부터 선수를 데려와 사용하고 있다. 즉, 국가와 민족의 승리라는 목적의 추구를 위해, 이에 반(反)하는 귀화제도를 수단으로 사용하는 모순을 범하고 있다. 이미 이 과정에서 우리 선수들은 큰 상처를 입은 것이며, 그 상처의 발생에는 언론도 한몫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시기는 적절했고 과정은 공정하였는가?
마지막으로 과정과 원칙의 문제이다. 사실 이 문제야말로 문재인 정부가 마땅히 비판과 비난을 감수해야 할 부분이다. 왜냐하면, 이 정부의 태생부터가 참 민주주의에 대한 갈급함에서 촉발된, 촛불 혁명에서 비롯된 정부이기 때문이다. 보다 더 선수단과 국민들을 설득하고 정의로운 과정이 수반된 결정이었다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이는 본인도 100% 동감하는 부분이다.
남북단일팀과 한반도기 사용 등을 비판하는 이들은 과정이 사라진 훼손된 원칙을 언급하며 너무나 급박한 결정을 비판한다. 하지만 우리는 국가적 재난사태나 북한의 핵 위협이야 말로 늘 예상치 못하고 급박하게 발생하여 왔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한반도의 안정을 위협하는 그 무엇도 용납될 수 없을 것이며, 국내외 정세를 안정시킬 수 있는 대책이 있다면 아무리 작은 불씨라도 살려야 함은 자명하다.
평창동계올림픽을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최순실 농단으로 평창올림픽은 철저히 국민들에게 무시당했고, 북한 위협으로 몇몇 나라는 아직까지 출전을 보류하고 있는 상태다. 이대로 가다가는 소위 ‘망하는’ 올림픽이 되는 것은 당연 사실이다. 경제효과? 평창올림픽 자체로는 절대 흑자를 만들 수가 없다. 이것은 올림픽이 끝날 때까지 굳이 기다리지 않아도 누구나 쉽게 예측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렇다면 명분도 실리도 없는 올림픽을 어떻게 할 것인지, 흑자든 적자든 명이든 암이든 남겨진 것을 짊어지고 갈 강원도와 평창의 사람들은 또 어찌해야 할 것인가.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평창올림픽을 평화올림픽으로 만들겠다고 지속해서 주장하였고, 대통령이 되어서도 항상 같은 논리와 방법론을 주장하였다. 또한, 스포츠와 관련된 주제는 아니지만 신고리 원전 5, 6호의 건설 여부를 ‘숙의 민주주의’에 기반을 둔 공론화 과정을 통해 결정하여,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매우 신선한 충격을 남겼다.
즉, 단일팀 추진이 급하게 추진된 감은 분명히 있지만, 정부의 태생적 성향으로 볼 때 이는 일회성 깜짝쇼나 정치적 치적 쌓기의 목적은 아닐 것이다. 평화올림픽에 대한 관심과 갈급함이 그나마 평창올림픽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돌리는 계기가 되었고, 이번 공동입장과 단일팀을 계기로 어찌 됐든 평창올림픽을 국민적 관심사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와 같은 이슈를 통한 올림픽을 재각인 시키는 것이 현 정부의 계획된 전략은 아니었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를 계기로 마치 ‘남의 나라 행사’와 같았던 평창올림픽을 ‘우리’의 범주 안에 끌어들이고, 다시 생각하고, 인지하게 될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아울러 IOC 입장에서는 올림픽의 지속가능성이 크게 훼손된 최근, 올림픽의 확장성과 함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것이 조직 생존을 위한 최우선적 당면과제이다. 또한, 스포츠를 통한 사회 발전과 평화를 늘 강조하고 있는 IOC가 북한의 참가를 마다할 이유가 전혀 없다. IIHF도 남북한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북한 선수들의 참가가 올림픽의 이상을 긍정적으로 반영하고 있다고 적극적으로 환영했다. 즉 국내를 제외하곤 남북단일팀에 대한 반대여론은 찾아보기 쉽지 않지만, 어찌된 일이지 국내 언론은 이를 소개하는데 매우 소극적이다.
우리는 왜 올림픽과 같은 메가 스포츠이벤트를 유치하는가? 앞서도 일부 언급했지만, 메가이벤트의 4대 목적은 스포츠 발전, 경제효과, 지역사회 홍보와 자부심 고취 및 미디어 스폰서를 통한 상업성의 극대화 4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이 4가지 목적 중 평창올림픽이 끝나고 성공적 유산으로 남겨지고 성취될 목적들이 과연 단 하나라도 확실히 존재할 것인가? 본인은 이에 대해 매우 비관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국내외의 이러한 특수 상황에서, 단일팀의 추진은 전쟁과 테러 위협을 크게 낮추는 것은 물론, 평창올림픽 참가에 여전히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는 국가들을 설득해 대회 자체의 흥행에도 도움이 된다. 이렇게 확보된 평화의 무드는 현재로서는 전혀 없다시피 한 평창올림픽의 잠재적 경제효과 유발에도 도움이 되고, 국제사회에서 한국에 대한 이미지 제고와 올림픽 홍보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결국, 성공적인 단일팀 구성은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이끄는데 도움을 주며, 앞서 언급한 올림픽의 4대 목적의 달성을 담보할 수도 있는 거의 유일무이한 카드인 것이다.
언론에게.
일부 언론에서는 급작스러운 단일팀의 추진을 두고, “체육계가 얕보이고 힘이 없기 때문에 정부가 이런 횡포를 벌이고 있다”, “선수들을 지킬 수 없어 괴롭다”라는 자조 섞인 익명 체육관계자의 말을 그대로 전하고 있고, 다른 언론들의 논조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본인은 이렇게 말하고 싶다.
“스포츠라서 다행이고, 우리를 통해 일어나서 다행이다”
올림픽이 평화의 목적으로 사용되는 것은 체육계가 한탄할 일이 아니라 자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이다. 스포츠는 어떤 첨예한 갈등도 봉합시킬만한 만국공통어이자 보편타당한 매개체라는 사실을 재입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나라의 올림픽 참가 역사에도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다. 우리나라는 한국전쟁 중이던 1952년 헬싱키 올림픽에 선수단을 파견함으로써 평화에 대한 갈망과 의지를 대내외에 표출하였고, 30년 전에 열렸던 1988년 서울올림픽은 이데올로기 간의 갈등을 종식하고 동서 화합과 제3세계 국가들이 대거 참가를 이끌어 내는 성공적 대회가 되었다. 이후 서울올림픽은 올림픽의 평화 추구를 대변하는, 평화올림픽의 아이콘이 되었다.
하지만 정반대의 재앙이 벌어진 올림픽도 있었다.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 발생한 검은 9월단의 테러로 20명 가까운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안전이 담보되지 않은 대회는 결국 선수도 나라도 국민도 위험에 빠뜨리게 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재확인시켜준 대회이다.
“선수들을 지킬 수 없다”라는 체육관계자와 그 말을 여과 없이 전하고 있는 언론에게, 선수들을 지킨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묻고 싶다. 선수들을 신체적으로 안전하게 지킨다는 뜻인가? 그렇지 않으면 엔트리에서 빠지지 않도록 지킨다는 뜻인가? 신체적으로든 지키든 엔트리에서 지키든 대회 자체의 안전성이 담보되지 않으면 선수들은 결코 지켜질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선수를 엔트리에서 지키기 전, 신체적으로 먼저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지부터 묻고 싶다. 여자아이스하키 단일팀이 대서특필 된 바로 그 날, 그 뉴스로 인해 심석희 선수가 코치로부터 당한 폭행은 묻히지 않았는가?
이제 우리도 ‘올림픽은 주인은 선수’라는, 승리지상주의와 엘리트스포츠 중심에서 비롯된 논리에서 한 걸음 더 나가야 하는 시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언론이 해야 할 일이 분명히 존재한다. 언론이 균형 잡힌 시각으로 “우리는 왜 경기에서 승리하여야 하는가?”, “우리는 왜 단일팀이 필요한가?”와 같은 질문에 근본적-철학적 고민을 균형있게 나눌 수 있어야 한다.
여전히 승리지상주의를 부추기고, 특별 귀환 선수들에게는 찬사를 보내지만 같은 민족인 북한 선수들은 반대하는 언론. 현안 뒤에 존재하는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는 언론의 역할이 참으로 아쉬운 대목이다. 왜냐하면, 대중은 ‘기레기’라 비난하고 조롱하지만, 여전히 그 언론과 기자로부터 대중은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평창올림픽의 주인은 선수인가? 결단코 그렇지 않다. 평창올림픽의 주인은 바로 평창주민과 강원도민들이다. 당장은 북한 마식령스키장에 선수들을 파견하고 이로 인해 경기장 주변이 다소 한산해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단일팀으로 인해 더 많은 손님이 평창을 찾을 것이며, 더 많은 사람이 평창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평창이 평화의 관문이었음을 세계가 기억할 것이다.
오늘의 단일팀이 훗날의 강원도민들에게 잊지 못할 역사로 기록되기를 소망한다.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스포츠레저학부. 박성희 교수(sportmkt@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