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박주봉-김문수, 1996년 애들란타 올림픽 김동문-길영아, 2004년 아테네 올림픽 김동문-하태권, 이동수-유용성,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이용대-이효정, 2012년 런던 올림픽 정재성-이용대가 차례로 등장하면서 대한민국 배드민턴은 세계 배드민턴 중심에 서 있었다.
2016년 리우 올림픽이 끝난 후 이용대를 비롯하여 유연성, 고성현이 나란히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하면서, 대한민국 배드민턴은 세대교체가 불가피했다. 배드민턴 대표팀 강경진 감독은 새로운 선수를 발굴하겠다며 대대적인 세대교체를 선언했다.
국가대표 배드민턴 세대교체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세대교체 후 약체로 평가 받던 대표팀은 2017년 세계 혼합단체 선수권대회에서 강력한 우승후보 중국을 이기며 우승을 차지했다. 깜짝 우승을 차지한 대표팀은 성공적인 세대교체가 이루어질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그 이후 대표팀은 세계대회에서 유럽 강호 덴마크를 비롯하여 인도네시아, 중국의 벽을 넘지 못하며 세계 배드민턴 중심에서 서서히 멀어지기 시작했다. 결국 배드민턴 대표팀은 올해 영국에서 열린 2018 전영오픈에서 남자단식에서 동메달 한 개를 차지하면서 세대교체의 실패를 스스로 증명하고 말았다.
베테랑의 부족
현재 대표팀이 세대교체에 실패한 이유 중에 가장 큰 이유는 베테랑의 부재다. 2016년 리우 올림픽이 끝난 후 이용대, 유연성, 고성현, 김기정이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했다. 대표팀의 중심을 잡아줄 선수가 한순간에 사라졌다.
과거 대표팀 사례를 살펴보면 젊고 유망한 선수들을 곧바로 국가대표로 선발하지 않았다. 우선 상비군으로 발탁하여 베테랑 선수들과 훈련을 같이 받게 한 후 국가대표로 발탁했다. 젊고 유망한 선수들이 무한한 잠재력이 있으나 경험과 기술면에서 베테랑 선수에 비하면 많이 뒤처진다. 이 부분을 베테랑 선수들과 훈련을 통해 실전 경험과 다양한 기술을 쌓게 만들었다.
이용대는 중학교 3학년 최연소로 국가대표 상비군에 발탁되어 당시 최고의 복식 조였던 김동문-하태권, 이동수-유용성 조와 같이 훈련을 하면서 어린 나이에 많은 경험과 기술을 습득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이용대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이효정과 혼합복식에 출전하여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현재 대표팀 복식조에는 젊은 선수들을 이끌 수 있는 선수가 몇 안 된다. 여자 대표팀 경우에는 리우올림픽 여자복식 동메달 리스트 정경은, 신승찬이 현재도 태극마크를 달고 있기 때문에 남자대표팀에 비해 성적이 괜찮다. 하지만 남자 대표팀 경우에는 복식조에 젊은 선수들을 이끌 선수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매 대회마다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기본 플레이의 문제
박주봉, 김동문, 하태권, 이용대의 시합 플레이를 보면 기본기가 잘 갖춰져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기본기가 잘 갖춰져 있으면 시합 도중 어처구니없는 실수가 발생하지 않는다. 배드민턴을 하는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기본적인 실수만 줄여도 세트에서 이길 확률이 높아진다”라는 말을 한다. 그만큼 다른 종목에 비해 기본기가 가장 중요한 종목이 배드민턴이다.
최근 대표팀의 플레이를 살펴보면 기본적인 부분에서 실수가 많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기본적인 부분에서 잦은 실수가 발생하자 심적인 부담과 함께 소극적인 플레이로 경기를 펼쳤다. 자연스레 상대편에게 공격권을 쉽게 내주면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2018 전영오픈 2위를 차지한 덴마크 보에, 모겐센 조는 한국 대표팀 정의석, 김덕영 조와의 경기에서 일방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경기가 끝난 후 보에, 모겐센 조는 인터뷰에서 한국 대표팀의 과거 탄탄했던 기본기가 사라졌다고 말했다. 현재 대표팀은 과거 기본기로 바탕으로 한 한국 고유의 색깔은 잃어버린 채 플레이를 하고 있다. 기본기 문제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한국 배드민턴은 세대교체는커녕 암흑기가 찾아올지도 모른다.

일본의 성장
세계 배드민턴 강국은 덴마크,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중국, 한국이었다. 하지만 리우 올림픽을 기점으로 세계 배드민턴 판도에 큰 변화가 생겼다. 상대적으로 배드민턴이 약한 국가였던 일본이 급격하게 성장하기 시작했다. 리우 올림픽에서 마츠토모 미사키와 다카하시 아야카 여자복식조가 일본 배드민턴 사상 첫 금메달을 땄다. 그 이후 일본 배드민턴은 덴마크, 말레이시아, 중국, 인도네시아와 함께 세계 배드민턴 중심 국가로 자리 잡았다.
일본 배드민턴이 급격하게 성장한 요인은 일본 대표팀 감독 박주봉 감독의 영향이 가장 컸다. 2004년 일본 대표팀을 처음 맡으면서 박주봉 감독은 ” 향후 10년 뒤에 세계 배드민턴계에 일본이 들어설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는 말을 했다.
박주봉 감독은 선수, 코치 시절 풍부한 경험과 남다른 리더십으로 일본 대표팀 선수들의 체질을 개선하기 시작했다. 외부 간섭이 심하던 일본 대표팀 훈련 방식을 뜯어고친 뒤 한국식의 팀워크와 체력을 강조했다. 박주봉 감독은 직접 일본 유망주를 발굴하면서 어릴 때부터 기존의 일본 방식이 아닌 자신의 방식으로 선수를 키웠다.
박 감독의 일본 대표팀 지도 방식은 한국의 태릉선수촌에 대표 선수를 모아 단련하는 것과 닮아있다. 일본 배드민턴은 이른바 ‘한국식 훈련’으로 강해진 셈이다. 일본의 성장은 한국 대표팀에게는 위기다. 과거에 일본이 한국 대표팀을 훈련 방식과 경기 스타일을 따라 한 것이라면 현재는 한국 대표팀이 일본 대표팀의 훈련 방식, 경기스타일을 따라 하고 있는 모양이다. 이젠 일본 배드민턴은 한국보다 한 수 아래의 기량을 가진 국가가 아닌 우리가 넘어야 할 산이다. 일본 대표팀은 2018 전영오픈에서 남자 단식을 제외한 전 종목에서 메달을 획득하면서 다가오는 2020년 도쿄올림픽 전망을 밝게 했다.
강경진 대표팀 감독은 2018 전영오픈이 끝난 후 인터뷰를 통해 대표팀을 다시 재정비해서 2018 자카르타 아시안게임을 준비하겠다고 했다. 자카르타 아시안게임까지 남은 기간은 4개월 정도 남았다. 준비 기간이 그다지 길지 않다. 그렇다고 짧은 기간도 아니다. 남은 기간 동안 지금까지 보인 문제점을 어떻게 해결하는가에 따라 2018 자카르타 아시안게임 성적도 좌우될 것으로 판단된다.
2018 자카르타 아시안게임 결과로 배드민턴 세대교체가 다시 이루어질 수 있을지 아니면 실패인지 판가름 날 것이다. 배드민턴 팬으로써 과거 화려했던 한국 배드민턴 계의 금빛 계보를 다시 한 번 이을 수 있기를 바라본다.
최호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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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08, 사진= BWF, badminton pho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