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뜻 보면 평화롭다 못해 적막한 모습이었다. 오가는 사람은 거의 없고 차량마저도 한산한 이곳. 불과 두 달 전 세계의 관심을 불러 모았고, 남북이 뜨겁게 하나가 되었던 곳이라고는 믿기 힘든 이곳. 그렇다. 이곳은 바로 평창이다. 필자는 그 평창을 올림픽이 끝나고 다시 방문하였다. 쥐 죽은 듯이 고요하여 일견 오싹할 정도였지만, 거리를 가만히 둘러보자니 희미하게 들리는 소리들이 있었다. 덤프트럭이 지나가는 소리, 포크레인이 움직이는 소리, 여기저기서 들리는, 나직했지만 분명한 작업현장의 분주한 소리.
평창동계올림픽이 끝난 지도 두 달이 훌쩍 지났다. 생각해보면 평창의 시작은 걱정과 우려로 가득했다. 국정농단, 주민갈등, 환경파괴, 적자올림픽, 북한위협까지. “우리는 과연 올림픽을 치를 수 있을까?” 모두가 자문했던 질문이었지만, 그 대답에 대해서는 애써 무심한 척했던 시간들. 그 시간들이 불과 얼마 전의 이야기다.
하지만 모두의 걱정과 근심과는 다르게 평창올림픽은 성공리에 마무리됐다. 그것도 소위 ‘역대급’으로 기억될 만큼 훌륭한 결과를 남긴 올림픽이었다. 평화올림픽, 남북 단일팀, 한민족의 자부심, 강원도 발전의 토대 마련 등, 평창이 남긴 위대한 유무형의 유산은 그 종류도 다양하고 우리 사회에 미친 영향력도 매우 크다.
그렇지만 평창이 남긴 유산이 모두 훌륭한 것만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메가 스포츠이벤트의 부정적 유산 내지는 후유증에는 경제적 손해, 난개발, 사후활용안 없이 남겨진 시설, 자연환경 파괴, 지역사회 구성원들의 동의 없는 삶의 터전 훼손 및 파괴, 이로 인한 갈등 등 다양한 문제점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평창올림픽이 남겨놓은 부정적 유산의 경우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무엇보다 평창은 올림픽의 유형적 유산 중 하나인 올림픽 시설의 사후 활용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특히 인구 4천 명의 횡계 지역 주변에는 평창올림픽 주 경기장뿐만 아니라, 바이애슬론, 크로스컨트리, 정선 알파인 경기장 등 여러 시설이 밀집되어 있고, 앞서 언급했듯이 이 시설의 사후활용은 아직도 불확실한 상황이다.
두어 달 만에 다시 가본 평창에서 느낀 고요함, 하지만 그 고요함으로 인해 역설적으로 더욱 드러났던, 도시를 뚜렷하게 관통하던 희미하지만 분명한 소리. 이는 마치 평창의 미래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는 듯, 무심하게 반복되는 공사판의 단순 소음 같으면서도, 기계적으로 계속되는 올림픽 역사(歷史) 해체의 묵직한 증명이었다. 평창동계올림픽 개폐회식이 열렸던 올림픽 주 경기장 해체의 역사(役事)에서 비롯된 이 소음은, 평창의 현 상황을 무엇보다 직설적으로 묘사하는 가슴 아픈 상징이었다.
그리고 지금, 평창올림픽의 역사를 해체하고 있는 우리는 다음과 같은 거대 담론적 질문 앞에 서 있다. “어떻게 평창을 떠나보내며, 어떻게 평창을 기억하며, 어떻게 평창을 보존할 것인가?” 그리고 이 질문들은 앞선 질문과는 다르게, 회피나 무관심으로 끝날 문제들이 아니다. 왜냐하면, 유치 당시에는 단순 미래의 문제가, 지금은 올림픽의 과거-현재-미래의 문제로 확장되었고, 국가의 총역량을 동원했던 국가적 관심사의 문제가, 인구 4천의 평창이라는 물리적 경계로 축소되었으며, 눈부신 경제성장을 뽐냈던 30년 전 서울올림픽의 단순 아젠다가, 올림픽의 진정한 가치를 묻는, 올림픽 ‘이후’의 삶의 질로 귀결되는 복잡한 아젠다로 변화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평창올림픽을 어떻게 떠나보내야 하며, 어떻게 기억해야 하며, 어떻게 보존해야 할 것인지, 지금부터라도 진지하게 그리고 의식적으로 자문해야 한다. 올림픽 전부터 꾸준히 제기되어왔던 이 문제가 더는 예산과 지자체와 정부의 갈등과 같은 문제들로 지연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이 힘들지라도, 올림픽의 유산들을 공공성과 상징성, 그리고 경제성의 복합 논리로 마주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것이 평창을 떠나보내고 기억하고 보존하는 가장 현명한 방법일 것이다.
앞서 서술했듯이, 평창동계올림픽의 물리적 유산들은 지금 한창 해체되고 있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올림픽의 역사 역시 함께 해체되고 있다. 하지만 경제성의 충실한 추구가 상징성의 말살로 항상 귀결되어야만 하는가? 단순 돈의 문제가 올림픽 흔적 해체의 당위성이라면, 강원도에서 이미 잘려나간 수만 그루 나무의 아픔과 그로 인한 손실은 무엇으로 보전할 수 있단 말인가? 따라서 지금이라도 올림픽 유산을 두고 벌이는 경제성과 역사성의 외줄 타기에서 내려와, 공공성의 관점으로 시설들을 재조명해보는 것이 어떨까? 올림픽 이전에도 올림픽 중에도 계속해서 이야기했지만, 우리는 평창주민들이 올림픽의 주인임을 자주 망각한다. 왜냐하면, 평창올림픽 이후 무엇이 남든 남겨진 것을 짊어지고 갈 당사자는 그들이기 때문이다.
평창의 적막함을 가르는 오늘의 그 소리가 역사의 해체가 아닌, 올림픽 이후 새 시대를 여는, 올림픽의 진정한 역사(歷史)를 세우는, 평창주민들을 위한 빛나는 역사(役事)가 되길 소망한다.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스포츠레저학부. 박성희 교수(sportmkt@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