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 하나: 2018년 1월 15일
한국프로축구연맹은 2018년 첫 번째 이사회를 개최했다. 이 날, 연맹은 리그에 큰 영향을 미칠 굵직굵직한 안건들을 처리했다. ▲K리그 발전위원회 설립, ▲프로계약 가능 연령 하향, ▲VAR 2부 리그까지 확대, ▲관중 집계 방식의 변경 등이 그것이었다. 그중, ‘관중 집계 방식의 변경’이 팬들의 큰 눈길을 끌었다. 2018 시즌부터 오직 ‘유료 입장 관중’만을 관중 집계에 포함하겠다는 것이 변경 사항의 골자였다.
이전까지는 관중 집계에 유료 입장 관중뿐만 아니라 무료입장 관중, 경기 관계자, 기자 등 신분에 상관없이 경기장에 입장한 모든 사람들을 포함했다. 이 때문에 지난 2012년, 인천 유나이티드가 무관중 징계를 받았던 경기조차도 82명의 관중이 집계된 바 있다.
연맹은 이러한 집계 방식의 변경이 ‘리그의 질적 향상’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이것이 지금 당장은 아프겠지만 성장을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라고 덧붙였다. 사실 연맹의 이런 노력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2년, 연맹은 ‘K리그를 스포츠 산업으로 성장시키기 위함’이라는 이유로 리그에 만연했던 관중 부풀리기 관행에 칼을 빼 들면서 당해 평균 관중이 전년에 비해 30% 줄어든 바 있다. 그로부터 6년 후, 연맹은 다시 리그의 성장을 위해 유료 관중 집계라는 초강수를 꺼낸 것이다.
장면 둘: 2018년 3월 1일
드디어 2018 KEB하나은행 K리그가 개막했다. 리그가 개막하면서 개막전 입장 관중 수에도 그 어느 때보다 관심이 주목되었다. 변경된 관중 집계 방식이 평균 관중 수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 것인지가 관심사였기 때문이었다. 결과는 평균 관중 9,142명. 지난 시즌 개막전 평균 관중 16,392명보다 40% 넘게 감소한 수치였다. 어느 정도 예상된 수순이었지만 그래도 뼈아픈 결과가 아닐 수 없었다.
관중 집계에 있어서도 구단과 연맹 사이에 불협화음도 발생했다. 제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제주와 서울의 경기에서 제주 구단이 총 관중 수와 유료 관중 수를 같이 발표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일어난 것이다. 연맹 관계자는 “유료 관중만 발표한다는 방침을 모든 구단에게 전달했다”면서 이 날 제주 구단의 행태에 의아해했다. 제주 구단 측은 “만들어 놓은 포맷대로 한 것”이라면서 향후엔 유료 관중만 발표하는 것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장면 셋: 2018년 5월 5일
서울과 수원과의 시즌 두 번째 슈퍼매치가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펼쳐졌다. 수원에서 열린 직전 슈퍼매치에서 무득점 무승부와 함께 ‘유료 관중 13,122명’이라는 초라한 결과로 언론의 지탄을 받았던 양 팀은 처음으로 공동 마케팅을 기획하고 어린이는 무료로 입장을 시키는 등 어린이날 슈퍼매치를 살리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그 결과, 이 날 경기에는 30,202명의 유료 관중이 입장했다. 흥행 대성공이었다.
서울 구단은 경기 종료 후 무료 관중을 포함한 총 관중 수가 36,788명이라고 밝혔다. 이는 곧 6,586명의 무료 관중이 입장했다는 뜻인데, 관중 집계 방식의 변경으로 20%가량의 관중들이 공식 기록에서 제외된 것이다.
유료 관중 집계, 득일까 실일까?
연맹은 관중 집계 방식을 변경하면서 ‘리그의 성장을 위해서라면 당장은 아프더라도 민낯을 공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맹의 말처럼 K리그의 현실은 위태위태한 것이 사실이다. 지난 시즌 K리그 1의 평균 유료 관중 비율은 83%였다. 그리고 객단가는 평균 6,137원이었다. K리그 2의 상황은 더 심각한데, 평균 유료관중 비율이 49%였고 객단가는 평균 2,420원이었다.
이 수치로 볼 때, 유료 관중 집계가 리그의 질적 성장을 위한 것이라는 연맹의 설명이 터무니없는 것은 아니다. 유료 관중 집계가 그동안 초대권, 무료 표, 할인권 등을 남발하여 숫자 늘리기에만 급급했던 구단들이 각성하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곧 유료관중 비율 증가와 객단가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고 연맹이 기대한 것도 이런 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시즌 시작 2개월이 지난 현재, 무엇이 달라졌을까? 모든 팀 간 한 차례씩 경기를 한 11라운드 기준 이번 시즌 평균 관중은 5,220명이다. 지난 시즌 같은 기간 평균 관중 7,808명에 비해 3분의 1가량 감소한 수치다. 앞서 말했듯이 지난 시즌 유료 관중 비율이 83%였던 것을 감안하면 오히려 유료 관중 수가 줄어든 것이다.
아직 2개월밖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섣부르게 판단할 수는 없겠지만, 유료 관중 집계를 통해 연맹이 기대했던 효과는 하나도 나타나고 있지 않다. 그 어떤 구단도 유료 관중 비율과 객단가를 높이기 위해 여태까지 했던 것과는 차별화된 정책을 시행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유료 관중을 포함한 총 관중 수는 어느 때보다 큰 폭으로 줄고 있다.
아직은 시기상조다
스폰서십, 경기장 광고 등의 단가를 결정할 때 관중 수가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한다. 하지만 질적 성장이라는 명목으로 공식적으로 발표되는 관중 수가 뚝 떨어지면 어떨까? K리그는 계속해서 ‘관중 없는 리그’이자 ‘갈수록 관중 수가 떨어지는 리그’라는 오명을 얻을 것이며 가뜩이나 부족한 K리그가 더욱 매력적이지 않은 시장이라고 여겨질 것이다.
K리그는 성장과 발전이 절실하다. 이에 대해 연맹이 내놓은 대책 중 하나가 유료 관중 집계이다. 연맹의 말처럼 K리그의 낮은 유료 관중 비율과 객단가는 훗날 리그 존립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구단들의 무분별한 초대권이나 무료 표 배포는 장기적으로 근절되어야 한다. 하지만 초대권과 무료 표도 적절하게 활용되면 좋은 마케팅의 일환이 될 수 있기에 팬층이 얕은 구단들에게 당장 무조건적으로 근절을 요구할 수는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기에 지금 이러한 상황에서 굳이 제 살을 깎아내는 정책을 시행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연맹은 지금까지 시즌 종료 후 각 구단의 유료 관중 비율, 총 수입과 객단가를 공개해왔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민낯을 공개하는 것이며 구단에게 경각심을 줄 수 있다. 또한 다른 방식을 통해서도 충분히 구단들이 유료 관중을 늘리려는 노력을 하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질적 성장을 이유로 공식 기록에 유료 관중만을 표기하는 것은 연맹이 바라는 성장은커녕 역효과만 부를 공산이 크다. 특히나 지금처럼 유료 관중 집계 정책을 시행함에도 불구하고 기대되었던 효과가 보이지 않으면 더더욱 말이다.
김민재 기자
mj99green@siri.or.kr
[2018.5.8., 사진=FC 서울, 한국프로축구연맹, 전북 현대 모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