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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최동원 10주기] ‘무쇠팔 사나이’의 일생 (1) 한국 최고의 투수가 되기까지

[SIRI=이영재 기자] 고등학교, 대학교, 실업야구까지 아마추어 야구를 지배한 최동원은 롯데 자이언츠 유니폼을 입으며 1983년 프로 무대에 데뷔하게 된다. 프로 첫해부터 팀의 에이스로 활약했지만 팀이 최하위로 쳐지며 당시에는 기대에 못 미치는 평가를 받았다. 최동원은 겨우내 절치부심하며 다음 시즌을 준비했고 운명의 1984년을 맞이하게 된다.

1984시즌, 최동원은 최고의 퍼포먼스로 리그에서 독보적인 에이스의 모습을 보여준다. 다승, 이닝, 탈삼진 등 주요 지표에서 모두 최상위권에 오르며 정규시즌 MVP를 수상하게 된다. 최동원의 활약을 바탕으로 롯데는 후기리그 1위를 차지했고 팀은 한국시리즈 진출에 성공한다.



마, 함 해 보입시더

1984년 한국시리즈에서 전기리그 우승팀 삼성과 후기리그 우승팀 롯데가 맞붙게 됐다. 시리즈 전 객관적인 전력은 삼성의 우세로 평가됐다. 롯데 자이언츠는 한국시리즈에 진출하긴 했으나 전, 후기 통합 승률이 리그 4위에 불과했다. 후기리그 막판에 1위가 결정되지 않은 가운데 삼성은 OB를 피하기 위해 대놓고 롯데를 밀어주기도 했다.

삼성은 김일융-김시진의 원투펀치를 비롯해 황규봉, 권영호까지 탄탄한 투수진을 갖췄다. 반면, 롯데는 임호균, 배경환과 같은 투수들이 있었지만 상대적으로 최동원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다. 그렇게 시리즈가 시작됐다.

KS 1차전 (9월 30일) 롯데 4:0 삼성 – 최동원 9이닝 무실점 승
롯데는 1차전 선발로 당연히 최동원을 꺼내 들었다. 상대 선발은 김시진이 등판했다. 경기 초반부터 롯데 타선이 김시진을 공략해내 4점을 뽑아내 경기를 손쉽게 풀어나갔다. 삼성 역시 최동원을 상대로 안타 7개를 뽑아내며 분전했지만 점수는 한 점도 얻어내지 못했다. 최동원은 삼진 7개를 기록하는 등 9이닝 동안 무실점으로 완봉승을 기록했다.

KS 2차전 (10월 1일) 롯데 2:8 삼성 – 김일융 9이닝 1실점 승

KS 3차전 (10월 3일) 삼성 2:3 롯데 최동원 9이닝 2실점 승
2차전에서 패배한 롯데는 3일 만에 다시 최동원을 선발로 내세웠다. 상대 선발 역시 1차전과 같은 김시진이었다. 양팀은 8회까지 동점으로 팽팽한 경기를 이어갔다. 그러나 8회말 홍문종의 타구가 김시진의 왼쪽 정강이 아래쪽을 강타하며 김시진이 경기에서 빠졌다. 롯데는 9회말 김시진을 대신해 등판한 권영호를 상대로 끝내기 안타를 뽑아내며 3차전을 가져왔다. 최동원은 2실점을 기록했으나 9이닝 동안 12개의 삼진을 뽑아내는 등 완투승을 거뒀다.

KS 4차전 (10월 4일) 삼성 7:0 롯데 – 김일융 8이닝 무실점 승

KS 5차전 (10월 6일) 롯데 2:3 삼성 – 최동원 8이닝 3실점 패
최동원은 다시 3일 만에 선발 등판했다. 김시진이 부상으로 빠진 가운데 삼성은 권영호를 선발로 냈다. 롯데가 먼저 2점을 뽑아내며 앞서갔지만 최동원 역시 6회 2점을 허용하며 동점을 이뤘다. 그리고 7회 최동원은 대타 정현발에게 솔로홈런을 맞으며 역전을 허용했다. 롯데 타선은 구원 등판한 김일융을 상대로 고전했고 점수를 뽑아내지 못하며 패배를 기록했다. 최동원은 8이닝 3실점으로 분전했으나 타선이 많은 점수를 내지 못하며 완투패를 기록했다.

KS 6차전 (10월 7일) 삼성 1:6 롯데 – 최동원 5이닝 무실점 승
시리즈 스코어 2:3으로 롯데가 벼랑 끝에 몰린 상황에서 맞이한 6차전이다. 롯데는 2선발 임호균을, 삼성은 부상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김시진을 냈다. 임호균이 4이닝 1실점으로 분전하며 롯데가 1:3으로 앞선 가운데, 5회 초 삼성이 공격에 나선다. 이때 롯데의 강병철은 최동원 카드를 꺼낸다.

전날 완투했던 선발이 다음 날 바로 등판하는, 현재 시점에서 보면 믿기 힘든 상황이 발생했다. 최동원은 9회까지 삼성 타선을 무실점으로 묶었고 롯데는 시리즈를 3:3 동률로 맞춘다.

 

KS 7차전 (10월 9일) 롯데 6:4 삼성 – 최동원 9이닝 4실점 승
운명의 7차전이 다가왔다. 삼성은 에이스 김일융을, 롯데는 당연히 최동원을 다시 내세웠다. 시작은 삼성이 좋았다. 삼성은 2회말 3점을 먼저 뽑아내며 기선을 잡았다. 3회초 롯데가 1점을 따라가기도 했으나 6회말에 다시 삼성 오대석의 솔로홈런으로 3점차 리드를 지켰다. 김일융의 호투가 이어지며 승부가 점차 기우는 듯했으나 롯데도 추격을 멈추지 않았다.

7회초 롯데는 유두열이 중전안타로 출루한 가운데 한문연의 3루타, 정영기의 적시타로 2점을 쫓아갔다. 이제 점수는 겨우 한 점 차로 좁혀졌다.

운명의 8회초 롯데 공격, 선두타자 홍문종이 중견수 플라이로 물러났지만 후속타자 김용희와 김용철이 연이어 안타를 뽑아냈다. 1사 1, 3루의 승부처에서 5번 타자 유두열이 타석에 들어선다. 유두열은 시리즈 20타수 2안타로 타율이 1할에 불과했다. 이런 상황에서 유두열은 김일융의 3구를 잡아당겼고 타구는 그대로 좌측 담장을 넘겼다. 롯데 선수들은 마치 끝내기 상황인 것처럼 모두 홈 플레이트로 쏟아져 나왔다.

이제 남은 이닝만 막아낸다면 롯데의 우승이었다. 8회와 9회, 롯데는 연이어 득점권에 주자를 허용하며 위기를 맞는다. 누적된 피로로 지친 상황에서 최동원은 마지막 투혼을 불살랐고 실점을 허용하지 않았다. 삼성의 마지막 타자 장태수에게 삼진을 잡아내며 롯데 자이언츠는 창단 첫 우승을 차지한다.

1984년 한국시리즈 결과
KS 1차전 (9월 30일 일요일) 롯데 4:0 삼성
KS 2차전 (10월 1일 월요일) 롯데 2:8 삼성
KS 3차전 (10월 3일 수요일) 삼성 2:3 롯데
KS 4차전 (10월 4일 목요일) 삼성 7:0 롯데
KS 5차전 (10월 6일 토요일) 롯데 2:3 삼성
KS 6차전 (10월 7일 일요일) 삼성 1:6 롯데
KS 7차전 (10월 9일 화요일) 롯데 6:4 삼성

최종 성적 5경기 4선발 4완투 40이닝 4승 1패 35삼진 ERA 1.80
최동원은 한국시리즈에 7경기 중 5경기에 등판해 40이닝을 소화하는 괴력을 보였다. 롯데가 거둔 4승은 오로지 최동원의 몫이었다. 세계 야구사에서 찾아보기 힘든 전대미문의 대기록이다. 한편으론 당시 투수의 몸 관리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둔감했는지 알 수 있다. 앞으로도 나오기 힘들겠지만 나와선 안 될 기록이다.

“동원아, 우짜노? 여까지 왔는데…”
“알겠심더. 마, 함 해 보입시더”
– 1984년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

시리즈를 앞두고 강병철 감독은 최동원에게 1, 3, 5, 7차전 선발을 낙점했다. 나머지 경기를 지더라도 최동원이 등판한 경기는 최대한 잡겠다는 전략이었다. 상대적 약세인 롯데가 우승하기 위해선 이 방법밖에 없다는 선택이었다.

최동원은 정규시즌에 이미 284.2이닝을 던져 체력이 온전치 않은 상태였다. 그렇지만 최동원은 팀을 위해 묵묵히 마운드로 올랐다. 남은 힘을 다 짜내 타자들을 상대했고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한국시리즈 우승, 정규시즌 MVP, 투수 골든글러브까지 최동원은 그 해 프로야구 최고의 선수였다. 이듬해에도 좋은 활약을 이어가고자 최동원은 다시 훈련에 돌입했다. 1985년, 새해가 밝고 프로야구에도 새로운 태양이 떠오르기 시작하는데…

3편에서 계속

이영재 기자(youngjae@siri.or.kr)
[2021.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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