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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RI=이수영 기자] 필자는 지난 기사에서 유무형의 유산으로서 메가 스포츠 이벤트를 바라보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강조한 바 있다. 메가 스포츠 이벤트가 남긴 유산은 사회문화적 요소로서 후대까지 사회적 가치로 이어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메가 스포츠 이벤트가 남긴 유무형의 유산은 여러 방면에서 확인할 수 있지만 이를 대표적으로 상징하는 것은 단연 경기장이다. 대회를 개최하는 국가와 지역은 이벤트를 열기 위해 천문학적인 금액을 투자해 경기장, 도로, 선수촌 등 산업기반시설을 건설한다. 그러나 문제는 대회 이후다. 대회가 끝나고 시설 사후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투자 금액 회수는커녕 지역주민들에게 부담을 안기고 지역경제를 악화시키기도 한다. 경제학에서는 이렇게 대규모 스포츠 이벤트 이후 유지비가 많이 들어가지만, 막상 활용할 곳이 없거나 쓸모없는 시설물을 가리켜 ‘하얀 코끼리(White Elephant)’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메가 스포츠 이벤트 개최를 위해 건축된 모든 시설물이 ‘하얀 코끼리’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체계적인 사후 관리 계획과 활용을 통해 대회 유산을 잘 관리하고 보존한 사례도 존재한다.



이러한 시설물 가운데 축구에 고스란히 묻어나 필자의 시선을 사로잡은 건축물이 있다. 바로 영국 런던에 위치한 ‘런던 스타디움’. 현재 프리미어리그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의 홈 경기장으로 알려지기도 한 이 경기장을 통해 런던올림픽의 유산 활용을 면밀하게 검토해보도록 하겠다.

2012년 열린 런던올림픽은 유산의 사후 활용과 도시 재생 등 다방면에서 성공한 올림픽으로 평가받고 있다. 런던올림픽이 성공적인 올림픽으로 평가받을 수 있었던 기저에는 그들이 올림픽 개최를 위해 내건 ‘유산계획’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BOA(영국올림픽위원회)는 이전에도 맨체스터, 버밍엄을 올림픽 개최 도시로 내세우는 등 올림픽 유치를 위한 움직임을 보인 바 있었지만, 빈번히 지방 도시라는 현실적 한계에 부딪혀 실패했다. 이러한 흐름 속에 BOA는 2012 올림픽을 앞두고 이번에는 반드시 올림픽을 유치하겠다는 단념 속에 설득력 있는 아이디어 계획을 발전시켜나갔다.

BOA가 내건 핵심 슬로건은 낙후된 동 런던 재생이었다. BOA는 1960년대 이후 산업의 쇠퇴로 악화된 동 런던 지역의 사회 경제적 여건 개선을 위해 1990년부터 지속해서 추진돼오던 동 런던 지역 재개발사업의 움직임과 이전부터 제안돼오던 동 런던에서의 올림픽 개최 목소리, 런던 시 스포츠계의 올림픽 개최 지원 등에 힘입어 2003년 7월 IOC(국제올림픽위원회)에 런던을 2012년 올림픽 개최 후보지로 등록했다.

이후 올림픽 개최지 최종 5개 후보지에 선정됐으나 올림픽의 막대한 교통 수요를 런던의 낙후된 교통 인프라가 감당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이에 BOA는 도시 재생올림픽 유산 활용에 초점을 맞춰 제안서를 발전시켰다. 올림픽을 이용해 청소년들에게 스포츠 참여 기회를 확대하는 등 런던이 가진 세계적인 미디어 파급력을 통해 청소년 스포츠 참여율을 높이고자 한 것이다.

결국 런던은 설득력 있는 유치 계획과 비전에 힘입어 2005년 7월 5일 제117회 IOC 총회에서 2012 올림픽 개최지로 최종 결정됐다. 파리를 54대 50으로 꺾고 얻어낸 결과물이었다. 당시 외무성 장관 잭 스트로는 “올림픽의 미래는 스포츠 축제와 더불어 도시재생의 추진력이 될 것이다. 올림픽은 런던의 매우 가난한 지역들을 변화시킬 것이다. 올림픽을 통해 수천 개의 일자리와 주택을 만들어낼 것이고, 기업들을 위한 새로운 기회를 동 런던 지역과 런던 전체에 제공할 것이다.”라고 말하며 런던올림픽이 가진 도시 재생적 측면 강조했다.

필자는 여기서 BOA가 내건 올림픽 유산 활용에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런던이 내건 ‘올림픽 유산 활용계획’을 검토하고 올림픽의 가장 큰 유산이라고 할 수 있는 경기장 활용이 어떻게 도시 재생계획의 주요한 전략으로서 이루어졌는지 살펴봤다. (참고로 런던올림픽 유산 활용의 또 다른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주택공급을 통한 도시재생사업은 이번 기사에서는 담아내지 않았다.)

(1) 체계적인 올림픽 추진 기관 역할 분담

우선 2012년 올림픽 개최가 확정되자, 런던은 분주하게 올림픽 추진체계를 마련했다. 크게는 올림픽 개최 주관 업무, 경기장 및 공원 관련 사업, 선수단 관련 업무로 역할을 나눈 뒤 각각에 맞는 위원회 및 회사를 설립해 체계적인 올림픽 유산 활용계획을 수립했다.

비정부 공공기관인 LDA(런던개발청)은 중앙정부의 재정지원을 받으며 여러 법적 권리를 토대로 올림픽공원 부지 확보를 위한 토지 수용을 시행한 후 토지소유권을 ODA(올림픽조달청)에 이관했다. 또한 올림픽 유산 활용계획을 수립하기 시작했다.

문화미디어체육부 산하기관인 ODA는 올림픽 경기장을 건설하고, 올림픽과 관련한 교통 인프라를 계획하며 사업 자금을 지원했다. 다국적 건설 회사 CLM을 실행업체로 선정한 후 올림픽 준비를 위한 전략적 역할과 CLM 관리 업무를 맡았다. CLM은 올림픽 경기장 설계와 건설, 운송과 보안 등의 업무를 수행했다. 올림픽 조달청은 올림픽이 끝난 2014년 해산됐다.

2009년 5월에는 보리스 존슨 런던시장이 ‘올림픽 종료 후 경기장 활용계획’을 수립하기 위해 OPLC(올림픽공원유산회사)를 설립했다. OPLC는 중앙정부와 런던 시가 똑같은 지분을 갖고 올림픽 이후 올림픽공원의 장기 활용계획을 바탕으로 올림픽 경기장을 운영, 정비하기 시작했다. 이후 OPLC는 2012년 LLDC(런던유산개발회사)에 합병됐다.

한편 2011년 보수당 중심의 연립정부는 ‘작은 정부’를 모토로 지방주권 법에 따라 중앙정부 분권화와 공공부문 구조조정을 시작했다. OPLC 역시 그 대상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2012년 4월 런던 시가 중앙정부의 지분을 인수하며 신설한 회사가 바로 LLDC다.

LLDC는 OPLC의 자산 및 설립 목적과 템즈 개발공사 및 LDA의 도시계획 권한을 이어받았다. 올림픽공원 및 인근 지역 부지의 도시재생사업을 추진하였으며 주요 스포츠 경기를 유치하고 이를 통해 발생하는 이익이 지역 주민들에게 돌아가도록 계획을 수립하는 등 올림픽 유산계획 실행을 주도했다.

이렇듯 유산 활용 측면에서 런던올림픽이 모범사례로 꼽힐 수 있었던 것은 올림픽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여러 기관이 역할을 분담해 유산의 사후 활용계획에 대한 구체적인 ‘유산계획’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2) 친환경 방식의 경기장 건설

거듭 말하지만, 경기장 활용은 올림픽의 가장 대표적인 살아있는 유산이다. 런던올림픽은 기존 인프라와 경기장을 최대한 활용했을뿐더러 가설 건축물도 다수 설치해 낙후된 동 런던을 재생한, 역대 올림픽 중 ‘친환경 올림픽’이라는 이름에 가장 근접한 올림픽이다.

올림픽에 사용된 30개 경기장 가운데 신축 경기장은 9개에 불과했고, 이 중 6개 경기장(농구장, 실외 하키장, 수구 경기장)은 가설 건축물로 설치돼 경기 후 해체해 재활용하도록 계획됐다. 올림픽 후에도 영구 활용될 경기장은 6개(주 경기장, 수영장, 다목적경기장, 사이클 경기장, BMX)에 불과했다.

LLDC는 이러한 계획을 토대로 올림픽 개최 중에 ‘올림픽공원 경기장 건설 및 운영계획’과, 해체 경기장 부지 재활용 계획을 포함한 ‘올림픽 종료 후 올림픽 유산계획’을 수립했다.

한편 ODA는 올림픽에 사용될 경기장 건설을 준비하며 ‘친환경적인 방법’을 앞세웠다. 건설과정 중 부지에서 나오는 토양 80% 이상과 폐자재 60% 이상을 경기장 건설에 재활용하도록 했고, 토양 오염이 심각했던 주요 개최지 스트래트포드 지역 토양을 단시간 내에 정화하기 위해 다양한 최신 과학 기술과 인력을 동원했다. 구체적으로는 부지 내 5개 토양 세척 공장을 설치하고 영국 최대 엔지니어링 회사 앳킨스가 토양정화 프로젝트를 담당하도록 해 토양을 깊이에 따라 용도에 맞는 수준으로 정화했다. 이밖에 친환경 기술을 이용해 인근 수로의 수질을 정화하고 환경을 재정비했다.

  • 살아 숨 쉬는 유산, 올림픽 스타디움(런던 스타디움)

메인 경기장이라고 할 수 있는 올림픽 스타디움(런던 스타디움)을 가지고 이야기를 구체화해보자. 개막식과 폐막식, 육상 경기가 열리기도 했던 올림픽 스타디움은 과거 쓰레기 매립지였던 런던 북동부 지역에 지어졌다. 주변의 낡은 공장과 창고들로 오염된 땅에는 4000그루에 해당하는 나무를 심었다.

경기장을 건축하는 과정에서는 영국의 첨단 과학 기술과 재활용이 돋보였다. ‘분리 가능한 세계 최초의 올림픽 경기장’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총 8만석 가운데 약 5만 5천 개 좌석을 폐 가스관으로 만들어 설계 당시부터 올림픽이 끝나고 철거가 가능하도록 제작했다. 이외에도 건물을 허물고 나온 철골과 콘크리트, 그동안 런던 경찰이 압수한 다양한 무기류 등을 녹여 만들어진 어마어마한 양의 철을 건축물 제작에 활용했다. 가능한 범위 내에서 환경 친화적인 경기장을 만들고, 분리 가능한 경기장을 제작함으로써 올림픽 이후 다른 스포츠 종목과 지역사회를 위한 공간으로 활용하는 것이 그들의 계획이었다.

한편 OPLC는 올림픽 스타디움 활용 방안을 검토하며 2010년 8월 5가지 기준(적정한 가격, 올림픽 유산정책 부합, 단기간 내 경기장 재개장, 경기장의 물리적 상징 보존, 다양한 용도로의 활용)을 바탕으로 올림픽 경기장 소유 및 운영 주체를 모집했다. 그리고 2011년 2월 웨스트햄 컨소시엄을 운영 주체로 최종 선정한 뒤, 3월 중앙정부와 런던시장의 허가까지 받았다. 그러나 최종 후보 중 하나였던 토튼햄 컨소시엄 측이 선정 과정에서의 절차적 정당성에 대해 법원 제소를 했고, 이로 인해 웨스트햄 컨소시엄에 대한 사업자 선정이 취소됐다. 결국 올림픽 스타디움은 공공이 소유권을 가지되 민간 사업자가 임대 운영하게 됐다. 이러한 까닭에 올림픽 이후에서야 올림픽 스타디움 사업자를 선정하게 됐다.

올림픽 종료 후 재차 사업자 응모를 진행한 뉴햄 자치구는 2013년 3월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와 주경기장 임대계약(99년)을 체결하며 사람들의 우려를 다그쳤다. 그러나 이후 경기장 공사가 순탄하게 진행되지만은 않았다. 기존에 올림픽스타디움은 대회 이후 2만 5천 석으로 좌석 규모를 축소하려 했다. 하지만 웨스트햄이 6만 석 이상의 경기장 좌석을 요구했을 뿐더러, 개조 시공사가 주 지붕 설치에 어려움을 호소하면서 대대적인 추가 공사비용이 불가피했다.

결과적으로 경기장 개조 비용과 추가 공사비용, 소규모 계약 비용 등 기존 경기장 건설비용 4억 2900만 파운드에 2억 7200만 파운드에 달하는 추가 비용이 발생했다. 이 추가 비용은 초기 계획됐던 개조 공사 예산과 비교할 때 1.7배 증가한 수치다. 자연스레 공사 기간도 예상보다 더 늦춰지게 됐다. 사후 활용 목적이 비교적 뚜렷하게 정해졌음에도 불구하고 개조 추가 비용이 계속 들어가며 이른바 ‘돈 먹는 하마’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그럼에도 올림픽 스타디움은 현재 영국에서 5번째로 큰 축구 경기장인 ‘런던 스타디움’으로 재탄생해 생생한 축구 역사를 담아내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다목적 경기장의 특이성을 살려 대형스포츠 이벤트를 다수 개최하며 올림픽 유산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2017년에는 세계 육상 선수권대회가, 2019년에는 유럽에서 처음 열리는 메이저리그 경기인 ‘런던 시리즈’가 이곳에서 개최됐다. 2016년에는 밴드 AC/DC가 이곳에서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런던 스타디움 공식 홈페이지에 접속해보더라도 스포츠, 음악 등 다양한 행사가 예정되어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영국 내 주요 스포츠 이벤트 유치를 담당하는 UK 스포츠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런던은 2012 올림픽 개최 이후 6년 동안 약 1.34억 파운드(약 1966억 원)의 경제효과를 창출했다. 2017 세계 육상 선수권대회로만 범위를 좁혀도 약 7900만 파운드의 경제효과를 거뒀다. 이러한 결과에 UK 스포츠 대형스포츠 이벤트 담당을 맡았던 Esther Britten은 “각종 시설에서 성공적으로 개최한 대회들로 인해 영국의 국제적인 명성이 상승했고, 앞으로도 런던을 포함한 영국에 국제적인 대회들을 유치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Christophe Dubi IOC 총괄국장 역시 “런던과 UK SPORTS의 성공 축하한다. 이는 올림픽이 사람들의 생활을 바꾸고, 개최도시에 지속적인 이익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라고 평가했다.

  • 올림픽 유산에만 매몰되지 말고 현실과 타협하자

물론 런던 스타디움을 비롯해 다양한 유무형의 올림픽 유산을 런던이 효율적으로 활용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실제 런던올림픽을 향한 사람들의 호평이 끊이지 않았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우리는 ‘올림픽 유산’이라는 유혹 아닌 유혹으로 인해 올림픽 유치의 본질과 현실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당연히도 올림픽 유산은 올림픽을 개최에 있어 핵심적인 요소다. 그러나 최근 들어 과도한 비용 지출과 적자로 인해 여러 국가가 올림픽 유치를 꺼려하고 있다. 이 가운데 IOC는 올림픽 유산을 일종의 마케팅 전략으로 이용할 수도 있다.

실제 2013년 제작된 ‘올림픽 레거시 안내서’에는 올림픽 유산이 올림픽 유치 개최 명분을 위한 이론적 근거를 제시한다는 설명이 담겨 있다. 대놓고 홍보하고 있지는 않지만, IOC 측에서도 올림픽 레거시를 하나의 유치 명분으로 삼고 있다고 이해할 수 있다. 자칫 유치 단계부터 유산 활용에 대한 치밀한 계획을 세우지 못한다면 2016 리우 사례처럼 또다시 크나큰 재정 문제로 불러일으킬 수 있다.

올림픽 레거시, 그 실체에 대한 계속된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이수영 기자(dnsall123@gmail.com)

[2021.09.24. 사진=런던스타디움 공식 홈페이지, 위키피디아, IOC 공식 홈페이지, BBC, e-architect, World Athletics, 논문 ‘런던 올림픽 후 관련시설 재활용과 주변지역 재생사례 분석’ (맹다미, 오도영, 백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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