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RI=이수영 기자] 이슬비가 내리던 25일 세종중앙체육공원의 한적한 오후. 원정 2연승으로 물오른 상승세를 보이던 세종스포츠토토가 창녕 WFC를 안방으로 불러들였다.

세종은 전반전 김소은의 멀티 골로 손쉽게 승리를 가져가는 듯 했으나, 후반전에 네 골을 내리 실점하며 쓰라린 역전패를 당했다. 이로써 세종은 리그 3위 자리를 그대로 유지하며 2위 화천KSPO와의 격차를 좁히지 못했다.

강가애 선수 인스타그램

이날 골키퍼 강가애는 WK리그 통산 200경기의 대기록을 달성했다. 전 국가대표 출신이자 현 KPFA(한국프로축구선수협회)의 이사로도 활동하고 있는 그녀를 위해 하프타임에는 구단의 기념식도 진행됐다.

강가애는 한국 여자 축구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기둥이다. 그녀는 FIFPRO(국제축구선수협회)의 정식 멤버로 승인된 단체인 KFPA의 일원으로서 선수들의 권익 보호와 사회공헌활동을 통해 한국 축구 발전을 위한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지는 분야가 있으니, 바로 여자축구발전이다. 우리나라가 높은 경제 성장을 이루고, 국민의 인식 수준이 선진국에 걸맞게 형성되어 있음에도 아직도 축구계에는 기본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선수들이 많다. 특히 여자축구로 이 범위를 좁히게 되면 그 정도는 더욱 심각하다.

“WOMEN’S FOOTBALL IS THE ONLY SPORTS IN KOREA TO HAVE A WAGE-LIMIT, WHICH IS HEART-BREAKING.”

지난 24일 FIFPRO(국제축구선수협회)는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강가애 선수와의 인터뷰 내용을 공개했다. 인터뷰에서 강가애는 여자 선수들이 현재 얻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나은 권리를 보장받을 자격이 있으며, 그들 스스로가 자신의 권리를 알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남자 프로축구리그인 K리그가 1983년 출범 이래 많은 인기를 누려온 것과 대비되게, 2009년 창설된 여자축구리그 WK리그는 존재 자체도 모르는 사람이 많다.

여자축구연맹

여자 축구는 현재 ‘가시성’이 부족하다. 경기 시간만 보더라도 평일 오후는 경기장에 찾아올 수 있는 사람이 한정적이다. 실제 이 부분에 대해 KPFA는 WK리그와 지속적인 협의를 해왔지만 크게 진전이 없는 상태다. 당장 2023 WK리그 일정표만 보더라도 정규리그 총 84경기 가운데 주말 경기는 4경기에 불과하다. 공휴일까지 포함해도 11경기다.

공휴일 경기에 관중 수가 늘어난 모습이 증명되었는데도, 선수들 역시 주말과 휴일 경기를 선호한다고 하는데도 평일 경기가 다수 포진한 부분은 계속된 검토가 필요해 보인다.

다양한 이벤트 프로그램 역시 필요하다. 지난해 진행된 KPFA 자선경기나 유소년 클리닉 프로그램은 여자 리그를 알리고 경기력의 중요 변수인 선수들의 동기부여를 이끌어낼 수 있었던 좋은 선례였다. 이러한 기회를 통해 선수와 협회는 대중에게 여자 리그를 알릴 수 있어야 한다.

한국프로축구선수협회

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여자 리그에서 가장 시급하게 해결되어야 할 문제는 바로 근무 조건이다. 여자 리그와 여자 축구의 위상이 중요해진 만큼, 선수들은 그에 걸맞은 환경 속에서 운동에 전념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 WK리그 상위 선수들은 그들이 받는 연봉으로 생활하는 데 큰 문제가 없지만, 어린 선수들은 그렇지 못하다. 지난 2009부터 WK리그에는 연봉 상한제가 존재했다. 13년 동안 생활비와 물가는 크게 늘었지만, 최고 임금은 그대로 유지됐다. 많은 선수가 최고 임금에 도달하고, 좋은 성적을 거두고, 열심히 노력해도 연봉은 더 오르지 않았다. 여자 축구는 한국에서 현재 유일하게 연봉 상한이 있는 스포츠다. 강가애 선수는 이 부분에 대해 “가슴이 아프다”라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한국프로축구선수협회

신인선수 최저임금 인상 역시 KPFA가 2023년 새해를 맞이하며 최우선 과제로 거론한 문제다. 2023년 하루 8시간, 주 40시간 근로를 기준으로 한다면 주휴수당 포함 약 24,126,960원의 연봉이 책정된다. 현재 신인선수들은 고용노동부가 정한 최저연봉과 같은 임금을 받고 있다. 그러나 선수들의 근무 형태는 일반적인 근로자들과 같지 않다. 실질적으로 최저연봉보다 낮은 액수로 선수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고 봐야 한다.

우리나라 프로야구의 최저연봉은 3,000만 원, 프로농구는 3,500만 원, 프로배구는 4,000만 원, LCK-e스포츠는 6,000만 원이다. 물론 WK리그가 프로 리그가 아닌 준프로 체제라는 점은 고려해야 하지만, 질적 저하를 자처하지 않기 위해서는 반드시 검토가 필요하다. 이 점을 두고 염기훈 KPFA 부회장은 “운동에만 전념해야 하는,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선수들이 생활조차 되지 않는 돈을 받는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다.”라며 한탄했다.

연봉 상한은 13년째 변함없고, 최저임금보다도 낮은 연봉을 받으며 선수 생활을 하는 신인선수들. 더 깊이 파고들지 않아도 KPFA가 왜 임금 문제를 2023년 최우선 과제로 내밀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끊임없이 움직이는 KPFA”

한국프로축구선수협회

거듭 말하지만 운동선수에게 가장 중요한 건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이다. 선수에게 이러한 환경을 제공해주는 단체는 꼭 필요하다.

선수들의 신뢰를 받을 수 있는 단체를 목표하는 KPFA는 2012년 설립 이래 선수 기본권 보장을 위해 열심히 뛰어왔다.

최근에는 ‘태국 리그 급여 미지급 건’으로 억울함을 호소하던 조상범 선수를 도와 소송을 진행해 승소하기도 했으며, 지난해에는 제1회 KPFA 자선경기 대회 개최를 통해 선후배가 함께 만들어가는 존중 받는 축구 문화를 선도하고 축구 꿈나무들을 위한 기념비적인 추억을 선사하기도 했다.

한국프로축구선수협회

이밖에 KPFA는 올해 선수 멘탈 케어 플랫폼 <와이제이플랫폼>과 공식 협약을 맺고, <힘찬병원>과 MOU를 맺는 등 선수들의 건강한 삶을 지키는 데에도 주목하고 있다.

허츠버그 2 요인 이론을 기억하자.

미국의 심리학자이자 경영학자인 프레더릭 허츠버그. 그가 제시한 동기부여 2 요인 이론에 따르면 직무에 대한 만족은 동기 요인과 위생 요인이라는 두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이 두 개념은 서로 반대되는 개념이 아니다. 즉, 동기 요인이 없다고 불만이 바로 생기는 건 아니고, 위생 요인이 충족된다고 만족이 바로 증가하는 것도 아니다.

동기 요인에는 성취감, 인정, 칭찬, 책임감, 자신의 성장 등이 있다. 위생 요인에는 정책, 규정, 임금, 작업 조건, 상사 및 동료와의 관계 등이 있다.

인간이 한 조직의 구성원으로서, 그리고 하나의 인격체로서 권리를 보장받고 직무에 대한 만족과 동기부여를 형성하는 데에는 동기 요인과 위생 요인 모두 관리가 필요하다.

성적과 칭찬만이 운동선수들을 충분하게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선수가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게 하는 환경 제공과 인권 보장. 이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걸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된다.

선수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KPFA와 함께, 선수들이 더 나은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그들 역시 하나가 되어 목소리를 내기 바란다.

이수영 기자(sdpsehfvls@naver.com)

[2023.04.26. 사진=한국여자축구연맹, 한국프로축구선수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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