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RI=이수영 기자] “웸블리스타디움의 총수용 가능 인원은 9만 명이에요. 첼시의 스템포드 브릿지(Stamford Bridge), 레스터시티의 킹파워스타디움(King Power Stadium), 그리고 브렌트포드의 지테크커뮤니티스타디움(Gtech Community Stadium) 좌석 수를 모두 합친 것과 비슷하죠.”
얼마 전 필자가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의 홈구장 웸블리스타디움(Wembley Stadium) 투어를 하며 가이드에게 들은 말이다. 이 말을 듣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9만 명이라는 숫자 때문은 아니었다. 첼시 홈구장의 관중석이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적었기 때문이다.
곧바로 인터넷을 켜 스템포드 브릿지 수용 규모를 검색했다. 40,173석. 구장 크기를 대강이나마 가늠하고자 자주 가던 국내 경기장을 떠올려봤다. 대전월드컵경기장이 40,903석, 서울월드컵경기장이 66,704석, 그리고 전주월드컵경기장이 36,781석.
첼시 같은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빅 클럽이 4만여 석만이 수용 가능한 경기장을 홈구장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은 필자로 하여금 여러 궁금증을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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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리서치 전문기관 STATISTA가 발표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22/23 시즌 프리미어리그 빅6 구단이 거둔 총수익은 다음과 같다.
첼시는 해당 시즌 총 5억 8,940만 유로(한화 약 8,525억 원)의 수익을 거뒀다. 최하위를 기록한 아스날이 UEFA 챔피언스리그(UCL)에 진출하지 못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첼시는 UCL에 진출한 빅6 구단 중 최하위의 수익을 기록했다.
첼시가 높은 수익을 기록하지 못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관중 수익이 적기 때문이다.
해당 시즌 첼시의 매치 데이 수익은 8,800만 유로(한화 약 1,272억 원)로 이 역시 빅6 구단 중 뒤에서 두 번째다. 혹자는 최하위에 기록된 팀(맨시티)보다는 나은 것이 아니냐며 반문할 수 있지만, 맨시티는 22/23 시즌 총 8억 2,600만 유로(한화 약 1조 1,947억 원)를 벌어들였다. 이는 빅6 구단 중 압도적인 1위다. 전 세계로 범위를 넓히더라도 레알 마드리드(스페인)에 이은 2위다. 맨시티는 이미 다른 수입원을 통해 막대한 이윤을 창출했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첼시의 22/23 시즌 매치데이 수익이 08/09 시즌 (8,740만 유로) 수준이라는 점이다. 아스날과 맨유도 비슷한 추세를 보이지만, 이 두 구단은 첼시와 기본 액수에서부터 차이가 난다. 지난 시즌만 놓고 봐도 아스날은 3,000만 유로, 맨유는 5,000만 유로 가까운 매치 데이 수익을 첼시보다 더 챙겼다. 두 구단 모두 특별한 매치 데이 수익 내림세도 없다(팬데믹으로 인한 무관중 시즌 제외).
한편 나머지 빅6 세 구단은 08/09 시즌 대비 22/23 시즌 모두 꾸준한 매치 데이 수익 상승률을 보였다. (리버풀(49.9>103), 토트넘(46.3>135), 맨시티(24.4>83)) 특히 토트넘은 새 구장을 신축한 18/19 시즌부터, 맨시티는 첫 리그 우승을 거둔 11/12 시즌부터 기하급수적인 관중 수익 상승을 보였다는 점이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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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론으로 돌아가 보자. 그렇다면 첼시는 왜 라이벌 구단들에 비해 낮은 매치 데이 수익을 거두고 있을까? 이에 대한 대답은 ‘경기장 수용 인원’ 문제로 귀결된다.
빅6 구단 가운데 첼시의 홈구장 수용 인원은 최저치다. (맨유 74,310/토트넘 62,850/리버풀 61,000/아스날 60,704/맨시티 53,400). 이 중 50,000명 아래인 팀은 첼시가 유일하다.
그렇다면 다음 질문으로 이어질 수 있다. “왜 첼시는 새로운 구장을 짓지 않는 걸까?” 실제 첼시는 지난 10여 년간 구장 이전/증축과 관련해 수많은 움직임을 보였다. 지난해 말 첼시가 8,000만 파운드(한화 약 1,356억 원)에 가까운 고액을 들이며 인근 부지를 매입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첼시는 해당 부지를 매입하며 ‘구장 재건축’으로 어느 정도 시공 방향을 틀었음을 암시했다.
그러나 아직도 이후 계획에 대한 명확한 발표는 나오지 않고 있다. 여기에는 재정, 법, 정치 등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최근 첼시의 구장 재건축 흐름을 통해 하나하나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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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2년 첼시의 전 구단주 로만 아브라모비치(Roman Abramovich)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문제로 영국으로부터 제재를 당하며 구단을 매각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때 미국의 사업가 토드 볼리(Todd Boehly)는 컨소시엄 형태의 입찰을 통해 구단 인수에 성공했다. 지난 20여 년간 이어져 오던 로만 시대가 막을 내리게 된 순간이었다.
볼리는 구단을 인수하며 새로운 경기장 건립을 약속했다. 이는 첼시의 숙원 사업이기도 했다. 지난 2011년에는 전 구단주 로만이 CPO(첼시 피치 오너스 그룹) 지분 구매를 통한 구장 이전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했다. 2017년에는 구장 이전에서 증축으로 가닥을 다시 잡고 해머스미스와 풀럼0 의회로부터 이전 승인까지 받았으나, 로만과 러시아 간 정치 문제로 무산됐다.
첼시가 구장을 이전하거나 증축하는 데 계속된 어려움을 겪었던 이유는 다양하다. 자세한 이해를 도모하기 위해 현재 구장의 지리적 요건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1) 현재 구장 북쪽으로는 브롬턴 공원과 주택가가 있고, 동쪽으로는 철도와 브롬턴 묘지가 자리 잡고 있다. 남쪽으로는 주택가가 있으며, 서쪽으로는 영국 퇴역군인들의 거주 주택이 있다. 어느 방향으로도 뻗어 나가기 어려운 경기장의 위치다.
(2) 이러한 지리적 요건 속 첼시는 오래전부터 구장 이전을 꿈꿨다. 그러나 구장 이전은 구장의 소유권과 관련해 계속된 현실 문제에 부딪혔다. 첼시의 홈구장 스템포드 브릿지(이하 SB)의 소유권은 첼시 피치 오너스 그룹(CPO)이 갖고 있다.
1900년대 후반 구장 소유권의 경영난을 겪으며 당시 첼시 구단주였던 켄 베이츠(Ken Bates)는 구장 소유권이 재매각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이를 주식 개념으로 나눠 팔고자 했다. 그렇게 탄생한 단체가 비영리단체 CPO다. CPO는 구단의 역사를 지키고자 설립된 구단 변화 견제 기구다. 따라서 구단과 보드진에 휘둘리지 않는 성격을 가졌는데, 문제는 이 CPO가 구장 이전을 원하지 않는다.
로만도 2011년 CPO를 설득해 구장 이전을 단행하고자 했지만, 61%의 찬성표밖에 얻지 못했다. (75% 이상 찬성률이 필요하다)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구장에 대한 소유권과 명명권을 함부로 내주고 싶어 하지 않는 CPO의 마음도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지역 주민들 역시 구장 이전에 부정적인 입장이다. 지금의 위치에서 100년이 넘는 역사를 보낸 구장이 이전하게 되면 주변 상권이 어려워지고 땅값에도 영향을 받게 된다.
(3) 사실 CPO만 협조해 준다면 첼시로서 구장 이전만큼 좋은 선택지는 없다. 현 부지에서 재건축하는 것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구장을 지을 수 있으며, 관중석 또한 더 많이 마련할 수 있다. 투자자들 입장에서도 구장 이전이 더 저렴하다. 영국의 저명한 축구 기자 데이비드 온스테인(David Ornstein)은 자신의 칼럼을 통해 “현재 첼시의 상황을 고려할 때 증축보다는 구장 이전이 더 현실적이다”라는 말을 내비치기도 했다.
(4) 구단과 CPO 간 복합적인 이해관계 속 구장 이전이 불가능해 보이자, 가닥은 현 부지에서의 해결로 잡혔다. 그러나 현 부지에서는 증축이 어렵다. 경기장 증축을 하게 되면 낙후된 브롬톤 묘지와 공원과 관련해 지반 붕괴 및 훼손 가능성이 존재한다. 더욱이 브롬턴 묘지 아래는 박쥐 보존 구역이기도 하다.
인근 지반 공사를 다시 해 경기장을 더 높게 증축하도록 고려해 봐도 주변 주택가들의 조망권(자연, 역사 유적 등 밖의 경관을 볼 수 있는 권리), 일조권(태양 광선을 확보할 수 있는 권리) 문제에 봉착한다. 그리고 그 비용과 공사 기간 역시 막대하다. 현 상황에서 증축은 말 그대로 ‘초대형 프로젝트’다.
(5) 결국 첼시가 취할 방법은 구장도, 증축도 아닌 재건축뿐이다. 그리고 자연스레 문제는 처음으로 돌아간다. 이 좁은 부지에서 어떻게 재건축하느냐는 말이다.
첼시가 선택한 방법은 경기장 서측 부지(Sir Oswald Stoll Mansions)를 매입한 후 경기장의 방향을 바꿔 재건축하는 방법이다. 이는 말 그대로 증축이 아닌, 재건축이다. (위 사진 참고)
첼시는 지난해 말 해당 주택단지 소유자이자 퇴역 군인들의 복지를 담당하는 자선단체 스톨(Stoll)로부터 약 8,000만 파운드(한화 약 1,300억 원)에 달하는 금액을 지불하고 부지를 매입했다. 재건축으로 노선을 정한 구단의 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하지만 이 과정 역시 순탄하지 않았다. 첫째로 부지 가격 때문이었다. 첼시는 영국, 그중 런던에서도 가장 땅값이 비싼 동네다. 8,000만 파운드라는 천문학적인 액수가 부지를 매입하는 데 들어간 셈이다.
두 번째로는 당연히 거주자인 퇴역 군인들이 좋아하지 않았다. 해당 주택은 퇴역한 영국 군인이나 사망 군인들의 미망인 약 100여 명이 거주하는 주택단지다. 실제 ‘데일리 메일’에 따르면 주택 거주자들은 첼시의 부지 매입에 매우 비판적이었다. 런던에서 가장 안전하기로 소문난 현 거주지에서 퇴거해 다른 곳으로 강제 이동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기 때문이다.
(6) 그럼에도 스톨은 지난해 부지를 매각했다. 스톨의 운영책임자 윌 캠벨-로위는 “첼시 구단이 제공한 자금을 통해 거주민 불안감을 해소하고 더 오랜 기간 지원할 수 있을 예정”이라며 매각을 공개 시인하기도 했다.
이로써 첼시는 구장 재건축을 위한 부지 확보가 가능해지며, 그나마 걱정을 한시름 놓을 수 있게 됐다.
(7) 하지만 부지를 매입했다고 해서 모든 게 원활해질 것으로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일단 부지도 비싸게 매입했지만, 공사 자체도 고가에 장기간이 될 전망이다. 로만이 구단주로 있을 당시에는 사비를 통해 어느 정도 보탬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컨소시엄 형태다. 구단주의 사비 이용이 불가능한 시스템이다.
더군다나 많은 전문가가 현 부지에서의 재건축은 많아야 6만 석 근처가 상한이라고 말한다. 라이벌 구단들은 진작에 6만 석 이상의 구장을 짓고, 이제는 그 이상까지도 바라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6만 석 상한의 좌석은 구단으로서 그리 달갑지 않은 뉴스다. 더불어 지반 붕괴와 훼손 등 증축 시 우려한 문제들이 재건축 시에도 조금씩은 잇따라온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볼리 컨소시엄이 구장 재건축에 적극적이라는 점이다. 그는 이미 첼시 운영 일선에서는 물러나 증축에 매진하고 있으며, 자금 조달권에서도 구체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그럼에도 첼시 지역의 비싼 땅값을 고려할 때 구장 재건축 사업이 물 흐르듯 흘러가지는 않을 전망이다. 6만 석 이상의 구장을 짓기 위해서는 구장 남쪽 부지도 추가로 매입해야 하고, 현재 해당 구역 부동산 소유자들이 완강히 반대하고 있다고 한다. 나아가 언제 또 구단이 구장 이전으로 마음을 바꿀지도 알 수 없는 바다.
(8) 해당 프로젝트는 이사회 멤버인 조나단 골드스타인(Jonathan Golstein) 과 LA다저스의 기획 개발 총괄 부사장 자넷 마리 스미스(Janet Marie Smith)가 감독할 계획이라고 전해진다. 프로젝트가 확정적으로 시작되면, 자주 없는 초대형 공사인 만큼 다양한 전문가들이 프로젝트에 합류할 것으로 보인다. 공사는 약 4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첼시는 재건축을 단행할 경우 공사 기간 다른 구장에서 홈경기를 치러야 한다. 현재로서는 토트넘의 선례처럼 웸블리스타디움 사용 가능성이 가장 높은 상황이다. 첼시가 복잡한 이해관계 속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해 나갈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이수영 기자(sdpsehfvls@naver.com)
[24.03.10. 사진 = 첼시, MLB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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