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CSL(중국 슈퍼리그)을 아는가? 최근 중국 프로축구 시장은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중국 주석 시진핑의 ‘축구굴기’라는 구호 아래, 중국 프로축구의 각 구단들은 무서운 자금력을 바탕으로 자기 자신과, 리그를 빠른 속도로 성장시키고 있다.

우리나라에게 중국 축구는 그저 ‘거칠고, 한국 보다 한 수 아래’인 이미지였다. 하지만, 최소한 프로축구 리그에서는 이러한 공식이 깨지고 있다. K리그의 스타 플레이어들이 중국 무대로 진출하고, 영입 경쟁에서도 중국에게 밀리고 있다. 이는 곧 ACL(AFC 챔피언스리그)과 같은 국제 대회 성적에서도 명백히 드러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중국 축구, 그리고 CSL을 더욱 잘 알아야 한다. 중국의 빠른 경제 성장과 함께 중국 축구 시장은 더욱 커질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중국 축구를 아직도 얕잡아 보고 있다. 바로 옆 나라에 무한한 스포츠 산업 시장이 열리고 있지만, 우리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래서, SIRI는 4편의 기사를 통해 여러분께 CSL을 이해할 수 있는 흥미롭고, 주목할 만한 정보들과 이야기를 제공하려고 한다. 이번 특집을 통해 중국 시장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편집자 주>

주쥔. 한국의 각종 포털 사이트에서 이 이름을 검색하면 정말 수 많은 동명이인이 등장한다. 중국 CCTV의 MC, 베이징대학 교수, 중국 정부의 다자녀정책 관계자 등등… 심지어 ‘군대를 주둔하다’는 뜻으로 사전에서 찾아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다루려는 주쥔은 이런 사람들이 아니다. 중국 게임 업계의 큰 손이자 대표 기업 중 하나로 꼽히는 ‘더 나인(The Nine)’의 회장, 주쥔이 바로 여기서 다루려고 하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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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SL 특집에서 게임 업체를 운영하는 회장의 이야기를 다룬다고 하니 뜬금없을 수도 있다. 사실 주쥔의 이름은 게임 관련 기사에서 더욱 많이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수많은 한국 게임 업체에게 그가 운영하는 ‘더 나인’은 중국 시장 진출을 위해 꽤 중요한 곳. 각종 합작 퍼블리싱이나 중국 내 서비스를 위해서 ‘더 나인’과 계약을 맺는 게임 업체들이 많다.

‘더 나인’은 중국 내에서 ‘MU(뮤 온라인)’와 ‘WOW(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등으로 유명하다. 해외의 유망한 게임을 퍼블리싱 해와 중국 내에서 서비스 하는 업체이기 때문. 중국 게임 시장의 성장에 발맞춰 이 회사도 엄청난 수익을 거뒀다. WOW 퍼블리싱 하나로 전년 대비 2000% 상승한 매출액을 거두기도 했다.

여튼, ‘더 나인’과 게임에 대한 설명은 여기까지 하고, 지금부터는 주쥔과 얽힌 중국 축구계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읽는 사람에 따라 주쥔과 중국 축구의 인연은 악연으로 느껴질 수도 있고, 필연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주쥔과 축구의 인연은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8년 50만불을 가지고 Gamenow(게임나우)라는 회사를 홍콩에서 설립했다가 ‘더 나인(The Nine)’이라는 이름으로 개명했던 그는 2002년 운명적인 한 게임을 만나게 된다. 한국의 게임 업체 웹젠(WEBZEN)이 개발한 ‘뮤 온라인’이었다.

그는 퍼블리싱 계약을 통해 이 게임을 중국 시장에 소개시켰고, 중국 내에서 동시 접속자 30만 명을 기록할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누리면서 단 2년 만에 중국 최고의 게임이라는 타이틀을 얻는데 성공한다. 당연히, 주쥔의 재산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뮤 온라인’을 퍼블리싱한 지 단 1년 만에 그는 중국 부자 순위 66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해낸다. 이후 WOW 퍼블리싱, ‘피파 온라인’ 퍼블리싱 등을 연달아 성공 시키며 기하급수적으로 재산을 모았다.

평소 주쥔은 축구에 엄청난 관심이 있던 인물이었다. 그는 게임을 통해 벌어들인 수익을 축구에 투자할 계획을 세우게 된다. 그는 2003년 을리그(3부리그)를 전전하던 상하이 티엔나(上海天娜)를 인수해 본격적으로 축구 구단주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 이후 상하이 티엔나는 모기업 명인 ‘더 나인’의 이름을 따서 상하이 지우청(上海九成)으로 변경된다.

중국의 거부가 인수한 상하이 티엔나는 승승장구하기 시작했다. 인수 직후 첫 시즌에 이 팀은 ‘무패우승’을 기록하며 갑리그(2부리그) 승격에 성공한다. 이것이 프로 스포츠에서 자본력의 힘이 아닐까? 여튼, 이 때까지만 해도 주쥔은 ‘자수성가해 축구 구단주로 뛰어든 거부’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이후 이 팀은 한 번 더 명칭이 바뀐다. ‘더 나인’을 미국 나스닥에 상장시키기 위해 상장에 악영향을 끼칠 만한 축구단을 회사 소유에서 개인 소유로 전환한 다음, 상하이 리엔청(上海联城)으로 변경한다. 이 때까지는 좋았다. 문제는 그 이후 시작됐다. 주쥔의 기행도 함께 시작됐다. 발단은 2005년 상하이 리엔청이 CSL 승격에 실패한 것. 승격 실패에 대한 실망감이 컸던 것일까, 아니면 단 기간에 CSL의 구단주가 되고 싶었던 것일까? 2006년 주쥔은 돌연 상하이 리엔청을 매각하고 CSL 소속 팀이었던 광동 종방을 인수한다.

광동 종방(广东中帮)은 애초에 다리엔에 있다가 광동성 주하이 시로 연고지를 한 차례 옮겼던 팀이었다. 그런데, 주쥔은 이 팀을 인수하고는 다시 상하이로 연고이전을 시킨다. 그리고는 팀 명을 상하이 리엔청으로 바꾼다. 이른바 상하이 리엔청을 팔고 상하이 리엔청을 산 셈이다. 이후 2007년, 그는 상하이 션화를 구매해 상하이 리엔청과 합병한다.

농담 삼아 중국의 축구팬들은 상하이 리엔청의 진정한 ‘유나이티드화’가 이 때 이루어졌다고 말한다. 상하이 리엔청의 영문 명이 ‘UNITED’였기 때문. 리엔청과 션화가 합쳐진, 약간은 기괴한(?) 방식으로 주쥔은 자신이 팀 이름에다가 새긴 ‘UNITED’를 이룩하게 된다.

5년도 안되는 기간 동안 주쥔은 3개의 구단을 샀고, 1개의 구단을 팔았으며, 4번 팀 이름을 바꿨다. 게다가 상하이는 중국에서도 꽤 큰 시장에 속한다. 지금도 CSL에는 상하이 상강, 상하이 션화 두 팀이 뛰고 있을 정도. 비록 상하이 내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상하이라는 시장의 파급력과 광동 종방의 일까지 고려 한다면, 그는 짧은 기간 동안 CSL에 꽤 많은 사건을 던져준 셈이다.

이 때 그의 나이는 고작 41세였다. 하지만, 이는 예고편에 불과했다. 션화를 인수한 이후, 주쥔은 아예 대놓고 구단주 놀이(또는 FM 놀이)를 하며 클럽을 좌지우지 하기 시작했다.

비난을 환호로 돌려놓은 신의 한 수, ‘스타 플레이어 영입’

2007년, 주쥔은 상하이 리엔청과 상하이 션화를 합병한다. 합병 당시 션화의 서포터들은 보이콧을 선언하기도 했다. 새로운 구단의 주요 요직에 리엔청 출신의 인물들이 임명됐기 때문. 그들은 기존의 투자사와 단장이 다시 돌아와야 한다고 요구했다. 하지만, 주쥔은 이러한 요구를 받아줄 사람이 아니었다. 대신, 합병 후 첫 감독을 서포터들의 요청대로 우진구이(現 산동 루넝 감독), 합병 전 션화의 감독을 임명하는 것으로 서포터들의 불만을 어느 정도 잠재우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서포터들의 지지를 받던 우진구이 감독을 단 한 시즌 만에 해임했다. 서포터들의 불만은 늘어났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성적 마저 하락한다. 상하이 션화의 서포터들은 “돼지 병균(猪菌, 그의 이름 주쥔朱骏과 발음이 같다) 꺼져라!”는 현수막을 들고 항의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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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에 대한 주쥔의 열정은 그 어느 구단주보다 많았다고 평가 할 만 하다. 서포터들의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그는 직접 팬들을 만나 소통하려고 했고, 때로는 경기장 벤치에 직접 앉아서 선수들을 아낌없이 격려(?)하기도 했다(심지어는 선수 기용까지 조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2011년까지 그는 비난 속에서 인고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주쥔이 어떤 구단주인가를 떠나서, 어쨌든 션화를 응원하던 팬들에게 주쥔은 멀쩡한 팀을 날름 먹어버린 도둑이자 엄연히 다른 팀인 리엔청의 구단주일 뿐이었다. 그래서 션화의 성적이 부진하거나 구단 내에 문제가 생기면 서포터들은 가장 먼저 주쥔에게 비난의 화살을 퍼부었다. 물론, 2008년 상하이 션화의 A3 챔피언십 우승으로 주쥔에게 우호적인 여론이 생겨나기도 했지만, 대다수는 주쥔을 탐탁치 않게 생각했다.

특히, 성적 부진의 경우 주로 감독에게 책임을 묻는 경우가 많지만, 션화의 팬들은 구단주인 주쥔을 비난했다. 주쥔이 월권 행위를 저지르고, 벤치에 앉아서 선수 기용에 대해 참견하는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주쥔에 대한 팬들의 악감정이 어느 정도 반영됐을 것으로 보인다. 션화 서포터들이 내건 현수막을 보면, ‘선수와 감독’이 아닌, ‘선수와 구단주’를 비난하는 내용이 더 많을 정도다.

하지만, 2012년에 주쥔은 자신에게 공격적이던 팬들의 태도를 완전히 뒤바꾸는데 성공한다. 바로 아넬카와 드록바를 영입한 것. 주쥔은 그들의 입단식 때 직접 마이크를 들고 일일 MC를 맡으며 영입의 기쁨을 한껏 드러내기도 했다.

팬들은 주쥔의 이런 행보를 (당연히도) 환영했다. 경기 후 퇴근하는 주쥔의 차를 막고 엄지 손가락을 치켜 올리는 팬들도 있었고, 그에 대한 시선 역시 호의적으로 변했다. 그리고, 상하이 션화의 경기장에서는 주쥔에 대한 욕으로 가득했던 현수막 대신 이러한 내용의 현수막이 걸렸다. “주쥔, 우리는 당신에게 정복 당했습니다”. 주쥔과 팬들 사이의 ‘밀고 당기기’가 결국 주쥔의 승리로 끝나는 순간이었다.

문제는 이미 주쥔이 축구단 경영에 흥미를 잃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그는 현지 언론을 통해 “축구단을 운영하는데 흥미를 잃었다”며 “축구계를 떠나겠다”는 폭탄 선언을 했다. 그러자 서포터들이 앞장서서 “션화와 우승으로부터 떠나지 말라”며 그를 붙잡았다. 상황이 완전히 역전된 셈.

주쥔의 발언에 어떠한 속내가 숨어있는 지는 여러 가지 추측이 있지만, 주쥔의 재산이 한계에 다다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주를 이뤘다. 주쥔의 투자 자금이 클럽의 지분으로 완전히 인정되지 못했고, 이미 2012년쯤에는 CSL 주요 구단들의 자금 규모가 주쥔이 상하이 션화에 투자하는 규모(약 3~400억 원)를 뛰어 넘어 감당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이었다.

결국 주쥔은 2014년 뤼디 그룹에게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상하이 션화의 전 지분을 넘기면서 축구계, 그리고 상하이 션화와 이별한다.

주쥔의 저돌적 성격이 만든 상하이 션화

외부에서 평가하는 주쥔은 ‘추진력이 강하지만, 그만큼 저돌적인 인물’로 평가 받는다. 자신이 한 번 마음먹은 일은 끝까지 밀어붙여 성사 시켜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라는 뜻. 주쥔에 대한 평가를 바탕으로 리엔청 인수 사태를 바라보면 어느 정도 이해되는 면이 있다. 그는 무조건, 그리고 빨리 CSL로 진입하고 싶었던 것일 수도 있다.

그의 성격이 가장 잘 드러난 것은 바로 션화 인수 이후 영입한 스타 플레이어들의 명단을 통해 알 수 있다. 주쥔은 상하이 션화를 인수하면서 공격적인 경영 방침을 내세웠다. 따라서 세계적인 스타 플레이어들을 자신의 팀으로 데려오고자 했다.

가장 먼저 션화의 유니폼을 입은 스타 플레이어는 바로 니콜라스 아넬카였다. 당시 아넬카는 은퇴를 앞두고 있는 선수도 아니었고, 실제로 유럽 여러 클럽에서 입단 제안을 받은 상황이었다. 심지어 멀쩡히 EPL(잉글리쉬 프리미어 리그)의 명문 구단 첼시에서 뛰고 있던 선수였다.

그런 아넬카를 주쥔 회장은 2011년 말 파격적인 조건으로 그의 마음을 사로 잡았고, 결국 자신의 팀으로 데려오는데 성공한다. 아넬카는 입단 인터뷰에서 “션화의 축구선수로 뛸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구단의 제안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며 주쥔의 구애가 결국 자신의 마음을 돌렸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션화의 선수로 뛸 뿐 만 아니라 주쥔의 사업체인 ‘더 나인’이 퍼블리싱한 게임 ‘파이어볼’의 홍보 대사로도 활동했다.

심지어 주쥔은 아넬카에게 감독의 중책까지 맡기기도 했다. 2011 CSL이 개막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4월 초, 구단은 코치진 개편을 통해 아넬카에게 플레잉코치를 맡겼고, 이후 일주일 만에 장 티가나 감독을 경질하면서 그에게 감독의 자리까지 맡겨 버렸다. ‘선수 겸 감독’이 공식 직책이었다.

당시 아넬카의 반응은 그야말로 ‘어리둥절’이었다. 아넬카는 프랑스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상하이에서 감독까지 될 줄은 전혀 몰랐다”면서 “내 의사에 의해 감독이 된 것은 아니지만, 새로운 도전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고 말한 바 있다. 주쥔의 저돌적인 성격이 이런 해프닝을 만든 것으로 보인다. 더욱 재밌는 사실은 아넬카는 이후 또 다시 ‘선수 겸 감독’ 자리에 오르게 된다. 상하이가 아닌 인도 뭄바이에서 말이다.

어쨌든, 다방면으로 활용할 수 있는 아넬카를 데려온 이후, 주쥔의 다음 타겟은 ‘드록신’ 디디에 드록바였다. 이미 그의 영입은 아넬카가 입단했을 때부터 예고된 일이었다. 아넬카는 중국 언론을 통해 “드록바가 조만간 합류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역시나 그는 다음 이적시장인 2012년 여름 상하이 선화의 유니폼을 입었다.

디디에 드록바

하지만, 이 스타 플레이어들과의 마지막 이별은 아름답지 못했다. 주쥔이 점차 축구계에 마음을 떠나면서 스타 플레이어들의 연봉을 감당할 수 없게 된 것. 아넬카와 드록바 역시 짧은 기간을 중국에서 보내고 구단을 떠나야 했다. 유종의 미는 없었지만 상하이 션화와 주쥔이 앞장서서 스타 플레이어들을 영입한 것은 다른 CSL 구단에게 분명히 영향을 미쳤고, 이후 시진핑 주석의 ‘축구굴기’와 함께 CSL 구단들이 적극적인 투자로 해외의 유명 스타 플레이어들을 영입하게 되는 하나의 기초를 만들어낸 것은 결코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주쥔을 통해 K리그가 배워야 할 것은?

분명 CSL 구단주로서의 주쥔은 장단점을 분명하게 나눌 수 있다. 겉으로만 보면 마냥 부러운 구단주였지만, 속사정을 살펴보면 꼭 그렇게 부럽지만은 않았다.

과감한 투자는 수많은 K리그 팬들이 부러워할 만한 대목이다. 하지만, 주쥔의 장점은 막대한 자금력보다는 팬들과의 스킨십에 적극적이었다는 것을 더욱 꼽을 만 하다. 앞서 언급했듯이 구단의 인수와 합병 과정에서 팬들의 주쥔에 대한 지지도는 바닥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쥔은 끊임없이 팬들의 마음을 돌리려고 노력했고, 팬들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려고 했다. 스타 플레이어의 영입도 이 과정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엄청난 재력을 소유한 구단주지만, 그는 팬을 두려워할 줄 알았고, 팬들의 말에 귀를 기울일 줄 알았다. 구단주의 독단적인 언행으로 속앓이하고 있는 일부 K리그 구단의 팬들에게는 부러울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구단주의 역할을 넘어선 행동들은 비판 받아야 한다. 선수단 고유의 장소인 벤치에 앉아서 감독에게 전술적 조언을 가장한 간섭을 일삼았고,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수많은 구단을 사고, 다시 팔고, 합병하는 행위를 거리낌없이 저질렀다. 이러한 점은 향후 CSL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고, 최근 CSL은 연고이전을 금지하는 조항을 신설하기도 했다.

주쥔이 다시 CSL로 복귀할 확률은 많지 않지만, 적지도 않다. CSL 시장이 커져가면서 기업들에게 축구단 운영은 실보다 득이 더 많기 때문. 중국 최대의 게임 퍼블리싱 기업을 운영하는 주쥔 역시 사업적인 측면에서 이러한 트렌드를 거부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변수는 이미 그는 CSL 구단을 운영하며 여러 가지 일을 겪은 경험이 있다는 것.

앞으로 그의 앞날은 어떻게 될 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주쥔이 CSL에 머무르면서 리그 내에 미친 영향력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K리그 역시 옆 나라의 모습을 보면서 배워야 한다. 좋은 것은 우리의 것으로 만들고, 나쁜 것은 지양하는 자세로 주쥔의 행보를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할 것이다.

글 = 김덕용

편집 = 조성룡

[SIRI CSL 특집 시리즈]

[CSL 특집①] ‘축구굴기’, 중국 축구가 일어나고 있다
[CSL 특집②] 대륙의 패권을 놓고 경쟁하는 16龍
[CSL 특집③] 중국을 뒤흔든 괴짜 구단주, 주쥔
[CSL 특집④] 중국판 ‘마드리드 더비’, 톈진을 주목하라
[CSL 특집⑤] 한국 미디어-팬의 CSL 향한 편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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