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도핑(technology doping)’, 지난해 말 나이키가 ‘첨단 운동화’를 출시한 계기로 육상계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기술 도핑이란 스포츠에서 도구나 장비가 기량 증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현상을 말한다.

나이키는 지난해 12월, 스포츠에 첨단 과학기술을 접목해 현재 2시간 2분 57초(데니스 키메토·케냐)인 마라톤 풀코스(42.195㎞) 세계기록을 2시간 이내로 줄이겠다는 계획으로 ‘브레이킹2’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나이키는 특히 첨단 운동화 개발에 심혈을 기울였다. 나이키 운동화는 지난해 리우 올림픽에서도 큰 효과를 봤다. 엘리우드 킵초게(케냐), 페이사 릴레사(에티오피아), 갈렌 루프(미국)가 같은 모델의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금·은·동메달을 땄다. 나이키는 브레이킹2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성능을 강화한 ‘콘셉트 카’ 개념의 새 모델을 개발했다.

하지만 지난 7일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이 나이키의 새 운동화에 대해 “신발이 규격에 맞게 제작됐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밝히면서 논란이 시작됐다.뉴욕타임스는 지난 8일 자에서 “IAAF는 나이키의 새 운동화 깔창에 포함된 탄소섬유 바닥재가 용수철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이 운동화는 무게가 184g에 불과하다. 신발 중창에 스펀지처럼 가늘고 뻣뻣한 탄소 섬유판이 박혀 있다. 나이키 측은 “탄소 섬유판이 일종의 새총 또는 투석기 역할을 한다. 기존 운동화보다 착지 후 내딛는 힘을 13% 정도 높여준다. 또 에너지 소모를 4% 줄여 피로도를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뉴욕타임스는 스포츠 과학자인 로스 터커의 말을 인용해 “나이키 설명이 사실이라면 이 신발을 신은 선수는 (평지보다) 1~1.5% 경사진 내리막길을 줄곧 뛰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전했다.

그렇다면 과연 신발 바닥에 용수철을 단 운동화를 신고 뛰어서 세계 신기록을 달성하면 인정할 수 있을까? 첨단 기술을 접목한 운동용품을 이용해 기록을 세우면 공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를 금지해야 할지가 스포츠계에 화두가 되고 있다.

본격적으로 첨단기술이 적용된 운동화 이야기에 앞서 베이징 올림픽이 열렸던 2008년으로 돌아가 보자. 발목이 없는 상태로 태어난 남아프리공화국의 장애인 육상선수 오스카 피스토리우스가 탄소섬유 재질의 스프린터용 의족을 착용하고 출전하려 하자 IAAF는 다른 선수보다 ‘불공정한 이점’을 누린다며 금지했다. 이후 피스토리우스는 국제스포츠 중재재판소에 제소해, 출전 제한이 부당하다는 결정을 얻어내기도 했다. 또한, 앞서 세계 유수 수영선수들에게 첨단기술로 만든 전신 수영복이 기록단축에 도움이 돼 주목받다가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부터 ‘불공정한 부력과 속도 증강’ 효과 문제로 금지된 바 있다.

비판론자들은 이 정도로 탄력이 향상됐다면 용수철을 사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며, ‘기술 도핑’으로도 볼 수 있다면서 국제 공인 경기에서 사용이 금지되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장비나 도구 ‘등의 도움을 받지 않고 오로지 선수의 인체만으로 경쟁해야 하며 경제력과 기술이 떨어지는 나라의 선수들이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는 점 등을 든다. 더불어 2년 안에 마라톤 풀코스에서 2시간 벽을 돌파한다는 나이키의 목표에 대해 당장 업계는 “실현 불가능한 목표” “나이키의 상술”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스포츠용품업체들은 물론 일부 선수들과 학자들은 금지에 반대하면서 오히려 스포츠가 이런 기술들을 수용함으로써 발전해왔다고 주장한다.

IAAF의 관련 규정은 “모든 경기에 사용되는 운동화는 승인받아야 한다”고 돼 있고 “운동화는 선수에게 어떠한 불공정한 추가 도움을 주도록 만들어져서는 안 된다. 여기엔 착용자에게 불공정한 이점을 줄 수 있는 어떠한 기술의 적용도 포함된다”고 돼 있다. 그러나 불공정한 이점이 무엇인지 등에 관한 자세한 설명이 없어 혼란과 논란이 이어지고 있으며, IAAF가 부패사건 등 각종 스캔들로 몸살을 앓는 가운데 열리는 기술위원회 회의도 적지 않은 진통을 겪을 것으로 예상한다.

박영웅 기자
yeongung98@siri.or.kr
[2017년 3월 15일, 사진 = 나이키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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