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의 시대. 어려운 시대

“평창!”
삼수의 노력을 끝내고 평창의 시대를 알린 국제올림픽위원회(이하 IOC) 위원장의 발표는 아직도 우리 귀에 선하다. 그런데 올림픽까지 이제 1년도 채 남지 않았다니, 시간이 빠름을 실감하게 된다.

IOC 회장이 2018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평창’을 발표하는 모습
출처: www.chinadaily.com.cn

평창 동계올림픽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의미들이 있다.

첫째, 같은 대륙 3번의 올림픽개최의 시발점이 되는 경기이다. 2018년 평창 이후 2020년 도쿄, 2022년 베이징까지, 평창을 시발점으로 동아시아지역에서만 3번의 올림픽이 연이어 열리게 된다. IOC는 그동안 대륙별로 개최지를 안배하기 위해 비교적 노력해왔기 때문에, 이는 올림픽의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올림픽의 대륙별 쏠림 현상은 왜 나타나는 것일까? 엄청난 개최 비용 대비 낮은 경제효과와 함께, 환경 파괴 등과 같은 사회 문제의 양산 등이 주요 원인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최근 각국에 팽배한 올림픽 기피 현상과 함께, IOC가 처한 조직의 위기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이다. 그러므로 평창의 성공 여부는 이후 개최될 올림픽의 흥행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물론, 아시아 지역 전체에 대한 세계의 관심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둘째, 2018년 평창올림픽은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정확히 30년 만에 다시 찾아온 올림픽이란 점이다. 강산이 세 번이나 변하고도 남을 지난 30년. 서울올림픽이 한국전쟁의 폐허를 극복하고 우리나라의 발전상을 세계에 뽐내는 기회였다면, 평창올림픽은 지난 30년 동안 우리나라가 얼마나 성숙했는지를 보여줄 새로운 기회이다. 조화로운 지역사회 발전의 원년이 될 수 있는 것은 물론, 우리 사회가 선진사회로 발전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렇듯 여러모로 중요한 의미가 있는 평창올림픽이지만, 최근 들어 비선실세 국정농단 사태 등 정치적 이슈로 평창을 향한 대중의 관심은 급속도로 식고 있다. 정부와 강원도는 물론, 조직위 차원에서도 일 년이 채 남지 않은 지금, 평창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온 힘을 다해야 할 것이다. 만약 국민적 관심사를 끌어내지 못하고 올림픽의 흥행에마저 실패하게 된다면, 평창을 위해 사라진 가리왕산 자연 원시림, 막대한 세금, 관련된 정치적 이슈 등으로 정부와 조직위는 엄청난 비난과 비판을 맞게 될 것이다.

불명예로 쌓아 올린 성(城), 도쿄올림픽

평창올림픽 개최 2년 뒤, 이웃 나라 일본에서 도쿄올림픽이 열리게 된다. 따라서 두 올림픽은 원하든 원치 않든 직간접 비교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왼쪽) 벨기에의 극장 Théâtre de Liège in Belgium 로고, 오른쪽) 왼쪽 로고
표절 논란이 된 도쿄올림픽의 로고 / 출처: http://kotaku.com/

도쿄올림픽의 경우도 일본 입장에서는 나름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먼저 일본에서 열리는 4번째 올림픽이자, 1964년 도쿄올림픽 이후 56년 만에 같은 도시에서 열리는 아시아 최초의 올림픽이다. 하지만 평창올림픽이 가리왕산 훼손 문제, IOC의 올림픽 어젠다 2020의 적용으로 일본과의 분산개최가 논란이 되었던 것처럼, 도쿄올림픽도 현재 여러 가지 논란에서 힘겨운 과정을 겪고 있다. 그 중 가장 큰 논란이 되었던 것은 올림픽 공식 엠블럼의 표절 사건이다.

도쿄올림픽 조직위 측에서 발표한 공식 엠블럼은 발표 직후부터 표절 논란에 빠지게 된다. 그러자 IOC 측에서는 조직위를 옹호하며 최초안과 수정안에 해당하는 원안을 공개했는데, 문제는 이 원안마저도 또 다른 로고를 표절했다는 논란이 제기된 것이다. 결국, 원안은 폐기되고 새로운 엠블럼이 제작된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이번에는 뇌물이었다.

지난해, 도쿄올림픽 유치위원회가 국제육상경기연맹의 전 회장이자, IOC 당연직 의원인 디악에게 약 60억의 뇌물을 제공했고, 이를 대가로 디악이 도쿄에 투표했다고 세계반도핑기구가 폭로했다.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 뇌물 사건 이후 다시 발생한 메가톤급 뉴스였다. 이에 따라 올림픽 취소 등의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IOC는 제대로 된 심층 조사도 없이 의혹을 부정했고 현재 취소 논란은 잠잠해진 상황이다. 사실 정의나 도덕은 제쳐두고 재정적으로 큰 무리 없이 올림픽을 개최할만한 나라가 세계경제순위 3위인 일본 정도밖에 없는 상황에서, 올림픽 취소는 처음부터 어불성설이었던 것이다.

논란의 마지막은 도쿄올림픽 주경기장 건축에서 불거졌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를 설계한 세계적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도쿄올림픽 주경기장을 설계하였는데, 예상보다 높아진 건축 금액과 길어진 시공 기간 등으로 재정적 부담이 커지자, 아베 총리는 돌연 자하 하디드의 원안을 백지화시킨다. 그리고는 자국 건축가에게 설계를 맡기는데, 문제는 일본 건축가의 작품이 자하 하디드 설계를 모방하여 또 다른 표절 논란이 발생한 것이다.

정리하자면, 도쿄올림픽의 경우도 지금까지 매우 많은 논란, 특히 표절 논란에 휩싸이면서 그동안 자신들이 구축해온, ‘다양한 문화콘텐츠의 천국’, ‘지적재산권 강국’, ‘디자인 선진국’ 등의 이미지에 스스로 먹칠을 하는 결과를 만들어왔다. 즉 온갖 불명예를 감수하면서까지 쌓아 올린 성(城)의 결과가 바로 도쿄올림픽인 것이다.

깨지기 시작한 시소게임

사실 한일 양국에서 개최되는 올림픽의 중요성이야 서로 엇비슷하다 할지라도, 평창의 경우 자연파괴 등의 문제가 있긴 했지만 삼수를 감내할 만큼 꾸준히 원칙을 준수하였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도쿄보다는 당연히 비교우위에 있었다고 많은 이들은 믿어왔다. 그런데 평창 쪽으로 쏠린 무게추가 급속하게 반대방향으로 이동하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평창의 경우 개회식장 신축 및 경기장 사후활용에 대한 결정이 평창주민의 이익이 아닌 정치권의 논리로 결정됐지만, 도쿄의 경우 지적재산권의 표절로 야기된 문제들을, 역으로 자신들의 지적재산권을 최대한 활용하여 도쿄주민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반전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반전의 시작은 바로 브라질 리우올림픽의 폐막식 중 차기 개최지인 도쿄를 홍보하기 위한 공연에서부터 감지되었다. 도쿄올림픽의 홍보공연 자체가 올림픽경기장 전체를 무대로 활용한, 일본의 세계적 미디어아트 기술을 뽐낸 매우 수준 높은 공연이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더욱 인상 깊어했던 것은 공연에서 상영된 영상 중간에 슈퍼마리오 복장을 하고 나타난 아베 총리와 다양한 캐릭터였다. 영상에서 아베 총리는 일본에서 리우까지 제시간에 도착하기 위해 슈퍼마리오 굴뚝 안으로 뛰어든다. 그리고 잠시 후 리우 경기장에 설치된 굴뚝에서 아베 총리가 실제로 나타났다.

https://www.youtube.com/watch?v=1eJkL1Jssto

슈퍼마리오 복장과 슈퍼마리오 특유의 배경 음악과 함께 말이다. 또한, 일본은 이 영상에 일본을 대표하는 망가, 게임 및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을 적극적으로 등장시켰다. 2분짜리 영상에 등장하는 캐릭터만 해도 도라에몽, 팩맨, 캡틴 츠바사, 헬로키티, 슈퍼마리오까지 총 5종이다. 다양한 캐릭터를 활용해 눈을 뗄 수 없을 만큼의 몰입도를 보여준 홍보 영상과 압도적이라 할 만큼 훌륭했던 공연. 사람들은 과거에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를 이미 잊은 듯했고, 일본은 올림픽을 매우 훌륭하게 준비하고 있는 나라로 세계인 앞에 등장하고 있었다. 즉, 지적재산권의 침해로 발생한 문제를 자신들의 지적재산권인 캐릭터 등을 활용하여 깨끗하게 극복한 것이다.

도쿄올림픽 홍보대사로 구성된 기념품 / 출처: https://tokyo2020shop.jp/

우리는 무엇을 보는가?

일본이 올림픽을 위해 자신들이 자랑하는 게임·망가·아니메의 캐릭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을 보고 단순히 부러워해서도, 아니면 “소위 ‘덕후’들이 많아서인지 올림픽 홍보대사에도 가상의 캐릭터를 넣다니. 나라까지 ‘덕후’인가”라고 비판할 필요도 없다. 핵심은 왜 캐릭터들을 올림픽 홍보대사로까지 활용하는지를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다.

일반 마케팅에서 홍보의 역할은 결국 세일즈의 극대화로 귀결된다. 그렇다면 결국 올림픽에서 홍보대사를 사용하는 목적과 당위성은 올림픽에서의 세일즈, 즉 올림픽을 통한 유무형 경제효과 극대화와 이를 가능케 하는 자국민의 관심 증대를 동반해야 한다. 즉, 홍보대사는 대중의 눈요깃거리도, 구색 맞추기를 위한 생색내기용도 아니다. 오히려 철저하게 실용적이면서 실제적·실질적인 도움을 줘야 하는 것이 홍보대사의 진짜 목적이다.

일본이 다양한 캐릭터들을 홍보대사로 사용하고 있는 이유는 첫째, 실질적 수익의 증대이다. 도쿄는 일본의 사회·문화·경제의 중심지이자 수많은 캐릭터의 고향이기도 하다. 이런 캐릭터들의 천국인 도쿄에서 열리는 올림픽에 게임·망가·아니메의 캐릭터를 홍보대사로 쓴다는 것은 생색내기용이 아님을 쉽게 알 수 있다. 망가만으로도 연간 4조가 넘는 시장을 보유한 일본이다. 올림픽 기념품 제작, 관련 에피소드 및 한정판 제작 등 가능한 아이디어만 무궁무진하다. 실제로 새롭게 오픈한 도쿄올림픽 온라인 기념품 샵에는 각종 캐릭터와 올림픽로고 및 이미지가 결합한 기념품들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고 있다고 한다.

둘째, 너른 관심, 특히 젊은 층으로부터의 지지확보이다. IOC와 올림픽 주관 방송사인 NBC의 고민 중 하나가 젊은 층의 올림픽 시청감소 현상이다. 특히 모바일 시대로 접어들면서 올림픽에 대한 젊은 층들의 관심도는 급속도로 약해지고 있다. 따라서, 일본과 같이 캐릭터를 활용한 올림픽의 홍보는 단기적으로는 구전효과 등을 통해 이벤트의 직간접홍보 효과에 도움이 될 것이고, 장기적으로는 수익성에도 분명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또한 캐릭터와 모바일기술이 가상현실이나 증강현실과 결합한다면 새로운 경험의 제공으로 적어도 자국민 및 젊은 층으로부터의 반응은 상당히 뜨거울 전망이다.

평창은 어떠한가? 물론 우리도 국내외 유명스포츠선수 출신, 아나운서, 문화예술 종사자와 오케스트라 팀 및 경제인 등 호화 라인업의 홍보대사를 구축했다. 하지만 솔직히 몇몇 선수를 제외하곤 올림픽과 큰 관련이 없는 그들이 과연 올림픽을 위해 어떤 실제적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의문이다. 또한, 대회가 1년도 채 남지 않았는데, 우리는 아직 공식 기념품을 구매할 수 있는 공식 홈페이지조차도 갖추지 못했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보여주기가 아닌 내실 다지기, 과신이 아닌 성숙함일 텐데, 이제는 30년 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일 때이다.

평창올림픽 마스코트 ‘수호랑’과 ‘반다비’ / 출처: https://www.pyeongchang2018.com/

희망으로 맺으며

도쿄올림픽은 평창보다 2년 뒤에 개최됨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준비는 이미 평창을 앞지른 것 같다. 여기서 말한 ‘준비’는 경기장과 하드웨어 같은 물리적 준비나 대회운영과 같은 오퍼레이션이 아니다. 오히려 이런 부분에서는 한국 특유의 조직력과 추진력으로 일본보다 충분히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 오히려 문제는 그와 같은 대회 운영에 모든 것이 매몰되어있기 때문에 올림픽보다 훨씬 더 중요한, 올림픽이 가져다줄 긍정적 파생효과의 극대화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개최지가 대도시가 아니라 그동안 반세기 넘게 개발에서 소외되어온 강원도와 평창이라면, 올림픽 이후 남겨진 유산을 통해 지역사회 주민들의 직접적인 삶의 질, 복지 및 건강 수준 향상방안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 앞서 말한 ‘준비’란 올림픽 이후에 대한 준비, 즉 올림픽 유산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준비이다.

우리가 일본에게 배울 수 있는 건 자기의 것들을 적재적소에 투입해 내실을 추구하면서도 세계에 알리는 것과, 흥행과 수익 극대화를 통해 올림픽이 아니라 올림픽 이후 를 생각하는 그들의 노력이다. 획득한 메달 수나 안전사고 0건 등이 성공적 올림픽의 잣대가 되는 시대는 지났다. 성공적 열매의 전제조건은 자국민들로부터의 고른 관심, 즉 올림픽에 대한 세대를 아우르는 관심과 애정이다. 그리고 이 위대한 유산은 평창올림픽이 남기게 될, 모든 칭송과 오욕을 오롯이 짊어지고 갈 평창주민들에게 상속되어야 한다. 우리가 만약 아버지라면, 우리는 자녀들에게 어떤 유산을 물려주고 싶을까? 답은 자명할 것이다.

글 = 박성희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스포츠레저학부 교수)

※ 본 칼럼은 KOFICE(한국문화산업교류재단) ‘한류스토리’ 2017년 3월호에 기고된 글로 필자의 동의를 받아 게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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