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육강식의 세상이라고들 하지만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경우가 종종 있다. 보다 노골적으로 힘의 논리가 작동하는 스포츠판에서도 강자를 쓰러뜨리는 약자들이 심심찮게 보인다.
말콤 글래드웰(Malcolm Gladwell)이라는 작가가 흥미로운 접근을 시도했다. ‘다윗과 골리앗’이라는 저서에서 약자가 강자를 제압하는 노하우를 색다른 관점에서 조명한 것이다. 일례로, 약자였던 다윗이 최강의 전사 골리앗을 어떻게 상대했는지를 독특한 시각으로 해석하며 약자의 필승 전략을 소개하고 있다.
흔히 사람들은 약자인 다윗이 불리한 여건을 극복하고 기적적으로 승리했다고 믿지만, 저자는 단호히 ‘오히려 강자는 다윗이었다’라고 말한다. 괴변 같다.
다윗은 들에서 양을 치던 홍안의 소년이었고, 완력으로 보나 실전경험으로 보나 당연히 골리앗에게 유리한 싸움 아니었던가? 그런데도 저자는 ‘그 싸움은 골리앗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싸움이었다’고 재차 강변한다.
나름의 이유가 있다.
골리앗은 거인이었다. 그 키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긴 한데 대략 2m 70cm쯤으로 추정된다. 게다가 골리앗은 전신에 갑옷을 입고 거대한 칼과 방패까지 들었다. 반면 소년 다윗은 물맷돌만 지녔을 뿐 어떤 무장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 연약해 보이는 다윗이 골리앗을 제압할 수 있었던 이유는 싸움의 방법이 달랐다는 것이다.
싸움의 방법?
고대의 전쟁은 주로 3개의 부대로 이뤄진 군대가 맞붙었다고 한다. 3개의 부대는 칼이나 창을 들고 걸어 다니는 보병, 말을 탄 기병, 그리고 돌을 던지는 투석병으로 이뤄졌다. 보병은 또 경보병과 중보병으로 구분되는데 가벼운 무기만을 소지한 경보병과 달리 중보병은 갑옷을 입고 칼이나 창을 들었다. 중보병, 자연스레 골리앗이 연상된다.
특기할 점은, 이 중보병은 겉보기에 위력적으로 보이나 무릿매(긴 끈 끝에다 돌을 얹어 돌리다가 명중시키는 장비)로 돌을 던지는 투석병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고 전해진다. 투석이 원심력을 이용해 발사되는 것이라서 파괴력도 클 뿐만 아니라 뜻밖에 명중률이 높았다고 하는데 숙련된 투석병이라면 100m 정도의 거리에서도 정확히 상대를 타격할 수 있었다고 한다. 투석병, 무릿매로 맹수를 사냥했다는 다윗이 그려진다.
무릿매질에 능했다는 다윗이 불과 몇 미터 정도의 거리에서 골리앗을 상대했다고 하니 그 싸움의 약자는 다윗이 아니라 이제 골리앗이 되는 것이다. ‘어른 vs. 아이’의 싸움에서 ‘둔한 중보병 vs. 촌철살인의 투석병’으로 구도와 신분이 바뀐 셈이다.
심지어 저자 글래드웰은 이 싸움을 ‘청동기시대의 칼을 든 전사와 45구경 자동권총을 든 현대 군인의 대결’로 묘사하기도 했다. 애초에 상대가 안 되는 싸움으로 봤기 때문이다.
과장이 보태졌다는 생각이 들지만, 또 한편으로 이해가 되는 것이, 다윗의 상대는 갑옷을 입었으나 거구에 느린 발을 가졌다. 그만큼 물맷돌을 명중시킬 수 있는 확률이 높은 상대였다는 것. 덩치가 크면 그만큼 얼굴도 클 것이고, 급소인 눈과 눈 사이도 보통사람보다 훨씬 넓었을 것이다.
여기에다 일설에 따르면 골리앗은 가까운 물체도 명확히 식별하지 못할 정도로 시력이 나빴다고 전해지는 데다, 자신의 실력을 과신하여 상대를 깔보며 방심하고 있었다. 방심이 화를 부른 싸움이 어디 한 둘이던가? 뒤집어 보면 다윗에게 이만큼 유리한 조건도 없다. 다윗이 이길 수밖에 없는 싸움으로 볼만하다.
스포츠에도 이런 원리가 적용될 수 있다.
농구경기에는 공식 같은 것이 하나 있다. 곧, 공격과 수비가 구분되어 경기가 진행된다는 것인데 보통의 농구경기를 봐도 축구처럼 중앙선 근처에서 치열하게 볼 경합이 이뤄지지 않는다. 상대가 우리 진영에서 득점에 성공하면 자기 진영으로 돌아가 수비를 하고 우리는 천천히 상대 골대 근처까지 가서 공격을 한다. 그러니까 공격은 상대진영에서 하고 수비는 우리 진영에서만 하는 패턴인 것이다.
물론 경기 막판 뒤지고 있는 팀이 부랴부랴 상대진영에서부터 강압 수비를 하는 올코트 프레싱이 나오기도 하지만 이런 작전은 그냥 변칙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선수들 체력소모가 너무 커서 ‘급할 때 잠깐씩만 써먹는 전술’이라는 게 일반적인 생각이다.
그런데 이 올코트 프레싱을 경기 내내 구사하는 팀이 있다. 그게 가능할까?
글래드웰은 가능하다고 말한다. 처음부터 올코트프레싱을 하면 금방 지쳐서 경기를 그르칠 것 이라는 생각 자체를 극복할 수만 있다면, 이것은 얼마든지 다윗의 무릿매와 같은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미국 실리콘밸리의 한 중학교 클럽 여자농구팀(레드우드)의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이 팀의 여학생들은 거의 전원이 작은 키에 슛 성공률도 형편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어차피 들어가지도 않을 중장거리 슛 연습을 해봐야 시간 낭비니까 오로지 레이업슛 위주로 훈련 했고, 체력증진에 비중을 두면서 이 팀의 유일한 작전인 ‘경기 내내 압박’을 하는 연습만 줄곧 했다고 한다.
결과는?
놀랍게도 레드우드는 거의 모든 경기에서 이겼다. 만년 꼴찌팀이 1년 만에 리그 최고의 팀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방전되지 않는 체력. 올코트 프레싱. 단신 선수들의 스피드. 그리고 속공 플레이…
아무리 키가 크고 슛 성공률이 출중한 상대라도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공격을 하려 해도 시종일관 두 명이 달라붙어 압박하고, 수비 때에도 작은 선수들의 스피드를 따라잡지 못해 속수무책으로 레이업을 허용하는 장면이 반복되니 좋은 경기를 할 리 만무하다.
어디서 많이 본 장면 같다.
그렇다. 2002년 히딩크의 아이들이 그랬다. 극강의 스테미너, 질식 압박, 빠른 공격전개…유럽의 덩치들, 그들의 고급 기술과 대등하게 맞서려면 그 방법밖에 없었다. 오죽하면 우리 대표팀과 경기했던 잉글랜드의 누군가가 그랬다지 않은가? ‘한국은 13명이 뛰는 팀 같았다…’
어딜 가도 두세 명씩 달라붙어 조여오니 숫자상으로 열세인 것으로 느낀 탓이다. 변방인 줄만 알았던 아시아 팀의 속도전에 당황했다는 얘기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당시의 잉글랜드 대표팀에게 있어 한국팀은 그때까지 싸워온 상대와 꽤나 ‘다른 존재’였다는 사실이다.
다른 존재.
실리콘밸리의 레드우드 팀이 그랬고, 몇 천년 전 당대의 거인과 맞선 다윗이 그랬다. 약자들은,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영리한’ 약자들은 그렇게 강자들과 맞섰고 자신들의 방법으로 그들을 무너뜨렸다.
<맺으며>
기적은 다윗이 물맷돌로 골리앗의 미간을 명중시킨 장면 이전에 시작된 것 같다. ‘모름지기 전투란 튼실한 갑옷을 입고 칼을 든 상태에서 해야 된다’는 고정관념을 떨쳐버린 그 순간에 이미 시작이 된 것으로 봐야 한다.
즉, 골리앗의 방법으로는 희망이 없다는 사실을 간파한 그 시점, 자신만의 무기로 자신에게 유리한 방법과 룰로 겨뤄야만 승산이 있다는 것을 감지한 그때를 기적의 출발점으로 보는 것이 옳아 보인다.
스포츠 역시 마찬가지. 온갖 강자들을 상대해온 스포츠계의 영리한 약자들이 말한다.
‘강자들의 방법을 존중할 필요는 없다.’
한남대 한동유 교수 (napoli1987@hnu.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