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RI=김귀혁 기자] 시즌 시작 후 어떤 팀은 우승을 목표로, 또 다른 팀은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티켓 혹은 상위 스플릿 진출을 목표로 한 시즌을 보낸다. 그리고 시즌 종료 때마다 이를 이룬 팀과 그렇지 못한 팀으로 나뉘게 된다. 한 가지 확실한 점은 목표를 이룬 팀은 다음 시즌에도 그 성과를 지키고, 또 더욱 발전된 팀을 위해 노력해야 하며, 이루지 못한 팀 역시 다음 시즌을 위해 구슬땀을 흘린다.

그러나 이런 모습도 강등이라는 단어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다. 강등을 당할 경우 위에 상기한 목표들 대신 승격이라는 목표로 좁혀지게 된다. 여기서 문제는 팬들의 관심은 이전보다 적어지며, 선수 이적에 따른 전력 손실도 불가피하다. 이런 잔인함 덕택에 선수와 팬들은 강등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31일 탄천 종합운동장에서 펼쳐진 하나원큐 K리그1 2020 27라운드 성남FC와 부산 아이파크의 시즌 최종전에서 잔류를 두고 싸우는 양 팀의 선수와 팬들의 간절함을 확인해볼 수 있었다.

이 경기 이전 순위는 최하위 인천이 승점 24점에 24득점인 상황에서 FC서울 원정 경기를 떠났고, 성남과 부산이 승점 25점 동률에 다득점에서 부산이 24점, 성남이 22점에 머물렀다. 탄천에서 경기를 가졌던 양 팀은 승리할 경우 자력으로 잔류를 확정지을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치열함이 예상됐다.

경기장에 들어서자마자 성남 서포터즈석에서 준비한 걸개가 눈에 띄었다. ‘너와 나의 역사에 다시 강등을 새기지 마라’, ‘부탁이다 제발 잔류하자 할 수 있어’, 죽일 듯이 너네를 욕했지만 죽을 만큼 너네를 응원한다‘ 등 잔류를 위해 몸부림치는 팬들의 염원이 걸개를 통해 전달됐다.

특히 성남은 지난 2016시즌 강원FC와 승강 플레이오프 접전 끝에 강등이라는 쓰디쓴 현실을 맞이한 적이 있다. 이러한 과거에 ’161120 치욕의 역사를 반복하지 말자‘는 걸개로 선수들의 동기를 자극하기도 했다.

부산 역시 2015년 강등 이후 3년간 승격 문턱에서 좌절한 끝에 지난 시즌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승리하며 K리그1에 진출했었다. 성남과 마찬가지로 강등의 아픔을 알고, 1년 만에 떨어질 수 없다는 강한 동기도 있었다.

그런 간절함과 간절함의 맞대결 속에 경기가 시작됐다. 경기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관중석 분위기는 평소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그러다 전반 31분 탄천 종합 운동장의 분위기에 찬 물을 끼얹는 부산의 골이 이동준의 발끝에서 터졌다. 성남의 서포터즈 석에서는 계속해서 깃발을 돌리며 지지를 보냈지만 탄식과 함께 떨어진 분위기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 순간 운명의 장난처럼 타 구장 소식이 들려왔다. 인천이 아길라르의 선제골로 1-0 앞서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경기장 곳곳에는 “인천이 골 넣었대”라는 음성이 들리며 당혹스러운 상황에 빠진 성남이었다. 이대로라면 부산이 승점 28점, 인천이 승점 27점으로 1부리그에 잔류하며, 성남이 승점 25점으로 강등을 확정 짓는 상황이었다. 급해진 성남은 계속해서 부산의 골문을 두드렸지만, 소득 없이 결국 전반이 마무리됐다.

다급해진 성남의 분위기는 후반 시작 이후에도 느낄 수 있었다. 후반 3분 성남 수비수 연제운과 이동준이 경합 과정에서 이동준이 얼굴을 가격당하며 쓰러졌고, 이를 일부 관중들이 탄식하며 경기 속행을 요구했다. 후반 9분에는 페널티 박스에서 접촉이 일어나자 관중들이 일제히 항의하기도 했다. 그만큼 성남에게는 시간적ㆍ정신적인 여유가 없었다.

이후 성남의 공세 속에 부산이 수비 라인을 내려서며 막아내는 전개 양상이었다. 그렇게 침울해져 가는 분위기 속에 반전의 서막이 열렸다. 후반 11분 왼쪽 측면에서 서보민이 올린 크로스를 19살 홍시후가 침착한 터닝 슈팅으로 연결하며 자신의 시즌 첫 골이자 팀의 동점 골을 만들어냈다. 무거웠던 탄천의 분위기가 다시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물론 인천이 여전히 서울을 리드 중이었고, 성남과 부산이 승점 1점씩을 나눠 가질 경우 다득점에 밀리는 쪽은 성남이었다. 홍시후도 이를 알았는지 득점 이후 세리모니 없이 재빨리 자기 진영으로 갈 것을 팀원들에게 손짓했다.

성남은 선제 득점 이후 흐름을 타며 계속해서 공격을 전개해나갔고, 부산 역시 1골만 더 허용할 경우 위험해지는 상황이었기에 간간이 역습으로 성남의 골문을 노렸다.

이후 후반 32분 결정적인 득점이 성남에서 나왔다. 김현성이 얻어낸 프리킥을 토미가 올렸고, 문전 혼전 상황에서 홍시후의 발에 맞은 뒤 흘러나온 볼을 마상훈이 골문 안으로 밀어 넣으며 역전에 성공했다. 득점에 성공한 마상훈은 곧장 성남 벤치로 달려가 기쁨을 만끽했고, 벤치도 함께 흥분하며 이에 응답했다.

그런데 갑작스레 관중석이 조용해졌다. 부심의 깃발이 올라와 있었고, 주심이 VOR과 메시지를 주고받는다는 뜻으로 손을 귀에 올렸다. 그렇게 한참 동안 교신을 주고받았고, 이 과정에서 조용한 적막만이 탄천 종합운동장을 둘러쌌다.

그리고 주심은 최종 시그널로 센터 서클을 가리키며 득점을 인정했다. 마상훈을 포함한 성남 선수들과 벤치는 다시 환호했고, 부산 선수들은 당혹감을 감출 수 없는 표정이었다. 이대로라면 성남이 승점 28점으로 잔류를, 인천 역시 FC서울을 상대로 리드하며 승점 27점의 상황이었고, 승점 추가를 하지 못하는 부산이 25점으로 강등 위기에 내몰렸다.

상황이 급반전됐다. 성남이 후반 초반까지 보여준 급한 모습이 부산 쪽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파울이 많아지며 이동준과 김동우가 잇달아 경고를 받기도 했다.

부산은 이정협 대신 김현을 넣으며 시간 절약을 위해 공중볼 플레이에 의존했고 성남은 이를 필사적으로 막아냈다. 후반 추가시간 코너킥 상황에서는 최필수 골키퍼까지 공격에 가담했으나 무위로 그쳤고, 결국 주심의 휘슬과 함께 경기가 종료됐다.

검은색 유니폼의 성남 선수들과 흰색 유니폼의 부산 선수들이 한 그라운드에 머무르며 희비가 교차한 순간이었다. 양 팀 혈전 속에 모두 지친 모습으로 그라운드에 주저앉았지만, 성남 선수들은 먼저 일어나며 잔류의 기쁨을 만끽했다. 반면 부산 선수들은 슬픔의 무게에 짓눌리며 쉽사리 일어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성남 선수단과 코칭 스태프 등은 E석과 N석, W석을 차례로 돌며 더욱 강해진 모습으로 돌아오기를 다짐했고, 관중들은 이에 응원과 환호로 답했다.

그렇게 인천과 성남의 잔류, 부산의 강등으로 2020 하나원큐 K리그1 파이널 B그룹의 일정이 모두 마무리됐지만, 상황은 경기장 밖에서 계속 이어졌다.

부산 서포터즈들이 부산 선수단 버스 앞에서 위로와 격려의 박수로 선수단을 맞이했다. 그 과정에서 일부 팬들의 불만 섞인 목소리가 나왔고, 버스가 떠난 뒤 김지운 골키퍼 코치가 팬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부산 입장에서는 막판 두 경기에서 선제골을 넣고도 역전당하며 결국 강등이라는 결과를 맞이했기 때문에 팬들의 아쉬움은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한 팬은 부산이라는 구단은 강등과 어울리지 않는다며 이전 대우 로얄즈 시절의 영광을 강조했고, 몇몇 팬은 울먹거리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겉보기에 별것 아닌 공놀이가 누군가에게는 눈물이 날 정도로, 또 누군가에게는 환희의 순간이 될 정도로 축구가 주는 인생의 희로애락이 마지막까지 탄천 종합운동장을 휘감았다.

김귀혁 기자(rlarnlgur1997@siri.or.kr)

[사진=네이버 스포츠 경기 전 순위표 캡쳐, 스포츠미디어 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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