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RI=김귀혁 기자] 무협지에서는 흔히 정파(正派)와 사파(邪派)의 대립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해간다. 정파는 주로 주인공 역할에 전통적인 의와 협을 중심으로 올바르고 정석적인 행위를 중시한다. 이에 맞서는 사파는 흔히 악역으로 등장하며, 정해진 규율 없이 어떠한 수단을 통해 목적을 이뤄내는 집단으로서 정파와 대립한다.

어떠한 수단을 이용할 때 온갖 악의적인 방법을 사용하기 때문에 사파는 흔히 악역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서 그 의미가 변모하기 시작했다. 이미 있는 정형화된 것에 환멸을 느낀 사람들이 사파의 매력에 빠져들며 그 의미 자체도 정석적인 것에 변모하여 독특한 매력을 주는 성격으로 변했다.

스포츠 역시 이러한 정파와 사파의 맞대결에 큰 관심을 쏟는다. 마치 무협지의 내용처럼 각 분야에서 정점의 기량으로 붙는 대결이 관심을 받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특히 스포츠는 이른바 교본이라 불리는 전술이나 동작들을 근간으로 발전해왔기 때문에, 이것을 개량한 사파의 등장은 특히 독특한 것에 매력을 느끼는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정파와 사파의 대립은 어떤 스포츠에서 찾아볼 수 있는지 알아보자.

#탁구

탁구의 라켓은 크게 일본식 펜홀더 라켓과 세이크 핸드 라켓으로 나뉜다. 펜홀더는 라켓의 단면에만 러버를 붙여 가벼운 무게를 바탕으로 빠른 속공과 강력한 드라이브로 무장하는 반면, 세이크 핸드는 양면에 모두 러버를 붙여 포핸드와 백핸드의 뻐른 전환으로 넓은 수비범위를 커버한다.

1980년대만 하더라도 전진 속공형이 대세였기 때문에 일본식 펜홀더가 강점이었다. 특히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탁구가 정식종목에 채택되고 첫 금메달을 거머쥔 유남규와 당시 은메달 김기택 모두 빠른 풋워크를 바탕으로 하는 드라이브나 속공을 바탕으로 경기를 운영했다.

그러나 펜홀더는 단면만 사용했기 때문에 백핸드 커버가 어렵다는 단점이 있었다. 백핸드 범위를 따라가기 위해 많은 풋워크를 사용해야 했으므로 체력적 부담도 더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바로 중국식 펜홀더다.

지금의 위상은 아니지만 당대 세계 최강 중국이 스웨덴을 필두로한 유럽에 밀리기 시작하며 류궈량이 기존 펜홀더 라켓을 중국식으로 고안한 것이 라켓의 시초다. 중국식 펜홀더는 일본식 펜홀더와 달리 그립은 같으면서도 양면에 모두 러버를 붙임으로서 일본식 펜홀더의 태생적인 단점을 커버하며 급부상했다. 이른바 탁구 라켓계 사파의 등장이다.

물론 많은 선수들이 이를 사용할 수 있던 것은 아니었다. 일본식 펜홀더의 기본 기술은 물론, 이면에서의 타법도 따로 익혀야 했으며, 이것을 경기에서 자유자재로 사용하기까지 많은 노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또한 초기에는 창시자였던 중국의 류궈량만이 사용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다른 선수들은 사용하기까지 시간이 제법 걸렸다.

이러한 특수성 덕에 중국식 펜홀더 라켓 전형의 선수와 맞붙으면 평소보다 다른 움직임과 구질, 회전량 등으로 상대는 어려워했다. 반면 독특한 타법과 라켓에 팬들은 호기심과 함께 큰 관심을 보였다.

팬들 사이에서 탁구계 사파의 대표주자를 꼽을 때 역시 대부분 중국식 펜홀더 전형의 선수들이다. 대표적으로 창시자였던 1996년 아탈란타 올림픽 금메달 리스트 류궈량을 필두로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리스트 마린, 이면 타법의 완성형이라 평가받는 왕하오, 그리고 현역 펜홀더 최강자 쉬쉰 모두 중국식 펜홀더를 사용한다.

같은 탁구계 사파 계열로 묶이지만, 이들 사이에서도 스타일은 조금 다르다. 류궈량이 중국식 펜홀더의 아이콘과 같은 존재라면, 마린은 중국식 펜홀더를 사용함에도 일본식 펜홀더와 같은 움직임을 보여준다. 왕하오는 포핸드와 백핸드 모두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기술적으로 완성형 선수로 평가받으며, 쉬신은 괴랄한 풋워크와 구질 등 묘기와 같은 플레이로 팬들을 열광시킨다.

이러한 선수들은 세계 최강으로 평가받으며 이른바 정파라 불리는 선수들과 끊임없는 경쟁 구도에 있었다. 류궈량의 경우 일본식 펜홀더 전형의 김택수와 자주 맞붙으며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 남자 탁구 단식 결승전에서 32구 랠리라는 하이라이트를 만들기도 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는 서로 코치로 만났는데 이때 선수들이 일본식 펜홀더 전형의 유승민과 중국식 펜홀더 전형의 왕하오였다. 선수는 물론 감독으로서도 정파와 사파의 대결이 지속된 것이다.

최근에는 중국이 세계 탁구를 독식하며 그 안에서 라이벌 구도를 만든다. 기술적인 면에서 정점의 기량으로 탁구 역사상 최강이라 평가받는 마롱과 중국식 펜홀더의 대표주자 쉬신의 경기는 매 경기 초인적인 랠리를 선보이며 탁구 팬들의 눈을 즐겁게 한다.

김귀혁 기자(rlarnlgur1997@siri.or.kr)

[2021.05.20 사진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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