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RI=이수영 기자] [유로2020 파헤치기]는 이번 유로2020의 표면적인 경기 결과 리뷰를 넘어, 대회 배후에 놓인 흥미로운 요소들을 파헤쳐보기 위해 기획됐다.
지난 기사에서는 스포츠에서 스폰서가 어떤 의미를 지니며, 왜 중요한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번 기사에서는 조금은 가벼운 주제로 왜 국제 스포츠 대회에서 종종 업로드되는 도시별 경기 시작 시각(일명 global kick-off times)에서 서울은 대부분 제외되는지 다루고자 한다.
# 유로2020 결승전 ‘Global Kick-off Times’
어제 12일 새벽 4시(한국 시간) 이탈리아와 잉글랜드의 유로2020 결승전이 팽팽한 승부 끝에 이탈리아의 승부차기 승리로 마무리됐다.
대회 내내 탄탄한 수비를 바탕으로 균형 있는 공수 밸런스를 보여준 이탈리아와 두터운 스쿼드 댑스를 기반으로 홈 ‘웸블리 스타디움’의 이점을 살릴 수 있는 잉글랜드의 결승전 매치는 경기 전부터 전 세계 축구팬들의 이목을 끌었다.
이번 유로2020의 경우 우리나라 기준 새벽 1시, 4시에 치러지는 경기가 대다수였다. 따라서 아침 일찍 출근해야 하는 직장인이나 등교해야 하는 학생들은 라이브로 경기를 시청하기에 다소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결승전 매치 역시 한국 시간 새벽 4시에 킥오프됐다. 그럼에도 많은 국내 축구팬들은 밤잠을 포기해서라도 경기를 실시간으로 시청했다.
그런데 우리나라 축구 팬으로써 유로2020에 다소 아쉬운 부분을 결승전을 앞두고 발견할 수 있었다. 정확히는 유로2020뿐만 아니라 많은 국제대회에서 공통되게 발견할 수 있는 사실이기도 했다.
바로 세계 각지에서 경기가 킥오프되는 시간을 사진 하나로 정리해 SNS에 업로드 한 유로2020의 결승전 ‘Global Kick-off Times’ 게시물에서 우리나라 서울은 확인할 수가 없었다는 점이다.
더욱더 아쉬움이 남은 점은 옆 나라 일본의 도쿄는 명확하게 표시돼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왜 도쿄는 있고, 서울은 없는 것일까? 과연 그 기준은 무엇인 걸까?
# 일본 표준시를 사용하는 대한민국
정오(正午)란 태양이 표준 자오선을 지나는 순간, 다시 말해 낮 열두 시를 일컫는 말이다. 그렇다면 표준자오선은 무엇일까?
표준자오선은 한 나라의 표준시의 기준이 되는 경선이다. 우리나라의 표준자오선은 동경 135도 선으로, 표준시의 기준이 되는 영국의 그리니치천문대보다 9시간 빠르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점이 생긴다. 바로 우리나라의 중앙자오선은 동경 127.5도 선이라는 점이다. 중앙자오선은 표준자오선과 의미가 조금은 다른데 쉽게 말하면 한반도의 중앙을 통과하는 자오선이다.
따라서 엄밀히 따지면 우리나라는 현재 사용하고 있는 표준자오선보다 중앙자오선을 사용해야 표준시가 보다 정확할 수 있다.
그리고 중앙자오선을 표준시의 기준으로 삼으면 정확하게 우리나라는 영국의 그리니치천문대와 9시간이 아닌, 8시간 30분의 시차를 지니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나라에서 12시가 아닌, 12시 30분에 해가 가장 높이 뜨는 이유다. 정상적인 표준시를 사용한다면 정확히 12시에 해가 가장 높이 뜨는 것이 옳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왜 중앙자오선이 아닌 동경 135도 선을 표준시의 기준으로 삼는 것일까? 여기서 동경 135도 선은 일본의 중앙 자오선(동시에 표준 자오선)을 의미한다.
역사적으로 우리나라는 일본의 표준시와 우리나라의 중앙 자오선을 기준으로 한 시간을 꽤 많이 번갈아 가며 사용했다.
그 변화의 마지막은 1961년 5.16 군사 정변 때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우리나라의 표준자오선을 동경 135도로 바꿨을 때다. 한반도 내 전쟁 발생 시 일본에 주둔한 미군이 전쟁 수행에 차질이 없도록 하기 위한 방책이었다.
이후 추가적인 변화 없이 우리나라는 일본 표준시를 우리나라 표준시로 사용하기 시작했고, 결국 12시가 아닌 12시 30분에 해가 가장 높이 뜨는 현상을 겪게 됐다.
사실 일본의 표준시를 우리나라가 사용한다고 해서 크게 불편한 점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시계에 따라 움직이고 생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한은 2015년 표준시를 동경 127.5도 선으로 변경했다. 우리나라와의 협의 없이 북한이 표준시를 변경했긴 하지만, 이와 별개로 우리나라가 꼭 일본 표준시를 사용해야 하는지가 중요하게 생각해볼 문제임은 분명하다.
# 일본 표준시를 사용했기 때문에 서울이 ‘Global Kick-off Times’에서 배제된 걸까?
그렇다면 본 주제로 돌아가 수많은 국제대회 ‘Global Kick-off Times’에서 우리나라 서울이 철저히 배제되는 이유를 단순히 일본 표준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을까? 다시 말해 옆 나라 일본의 수도 도쿄가 대부분 명시돼있기 때문에 서울의 표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것일까?
공교롭게도 이러한 주장은 납득하기 힘들어 보인다. 유럽의 경우 영국을 제외한 각 나라는 서유럽 표준시, 중앙 유럽표준시, 동유럽 표준시의 세 가지 시간을 사용해 자국의 표준시를 설정한다. 따라서 비슷한 지역에 있는 나라들은 같은 표준시를 사용하게 된다.
예를 들어 서유럽에 속한 독일, 이탈리아는 영국의 시간과 1시간 차이나는 표준시를 사용한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두 나라가 동일한 표준시를 사용하지만 ‘Global Kick-off Times’에서 두 나라의 도시 모두 명시가 돼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우리나라가 일본의 표준시를 사용하기 때문에 서울이 ‘Global Kick-off Times’에 표시되지 않았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쉽게도 20-21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UCLFINAL KICK-OFF TIMES’를 보더라도 세계 24개 도시 가운데 서울은 찾아볼 수 없다. 우리나라 축구팬으로서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 우리나라 서울을 ‘Global Broadcast Timings’에 명시한 ‘AFC 본머스’
그런데 이와 다르게 서울을 ‘Global Broadcast Timings’에 표시한 구단도 있다. 바로 현재는 잉글랜드 2부 리그 챔피언십에 속해있는 AFC 본머스다. 더욱 이목을 끄는 점은 본머스와 우리나라 사이 특별한 인연이 있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위 사진은 지난 5월 프리미어리그 승격을 앞두고 치러진 브랜트포드와의 플레이오프 준결승 2차전 경기를 앞두고 본머스가 업로드한 ‘Global Broadcast Timings’다. 본머스는 매 경기 전에 구단 SNS에 ‘Global Broadcast Timings’를 업로드하는데, 표시해둔 세계 13개 도시 가운데 우리나라의 서울이 존재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일본의 도쿄와 중국의 베이징은 제외돼있다. 대부분의 국제 대회에서는 이와 반대로 도쿄와 베이징을 명시하고 서울을 배제하는 경향이 있는데 본머스의 이러한 움직임은 우리나라 국민으로서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 서울이 표시되는 그날까지
사실 서울이 위와 같은 게시물에 표기돼있지 않다고 해서 해당 구단들과 기관을 비난할 이유는 없다. 그들도 각자만의 기준을 가지고 게시물을 제작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대한민국은 이제 더 이상 세계에서 모르는 나라가 없는 선진국이다. 더불어 손흥민을 비롯한 선수들이 유럽 무대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치고 있는 요즘, 유럽 구단과 국제기관이 대한민국을 보다 적극적으로 고려한다면 마케팅을 비롯해 그들이 얻을 수 있는 효과는 분명 클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번 유로2020 결승전 ‘Global Kick-off Times’에서 서울이 표시되지 않은 점은 국내 축구팬들에게 여러모로 아쉬운 결정으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이수영 기자(dnsall123@gmail.com)
[2021.07.13. 사진=유로2020 공식 SNS, 본머스 공식 SNS, UCL 공식 SNS, 위키 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