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RI = 최유나 기자] “인간의 한계를 넘겠다”는 거창한 선언과 함께 출범한 ‘약물 허용 스포츠 대회’ 인핸스드 게임(Enhanced Games)이 정작 기대했던 폭발적인 기록 경신에는 실패했다. 금지 약물과 첨단 장비 사용까지 전면 허용됐지만, 첫 대회에서 나온 세계신기록은 단 한 개뿐이었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이번 대회는 시작 전부터 ‘도핑 올림픽’, ‘스테로이드 게임’이라는 논란 속에 주목받았다. 선수들은 기존 국제 스포츠계에서 금지하는 경기력 향상 약물(PED)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고, 일부 종목에서는 이미 퇴출된 장비까지 허용됐다.
주최 측은 “과학 기술을 통해 인간 퍼포먼스의 한계를 재정의하겠다”며 수많은 세계신기록 탄생을 예고했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유일한 기록 경신은 남자 자유형 50m에서 나왔다. 그리스의 크리스티안 골로메에프는 20초81로 터치패드를 찍으며 기존 세계기록(20초88)을 0.07초 단축했다. 그는 우승 상금 25만 달러에 비공인 세계신기록 보너스 100만 달러까지 챙겼다.
다만 기록 과정 역시 논란과 함께 남았다. 골로메에프는 국제수영계에서 이미 금지된 전신 수영복을 착용하고 경기에 나섰다. 이른바 ‘기술 도핑’ 논란으로 2009년 퇴출된 장비다. 여기에 약물 사용까지 허용된 환경이었다는 점에서 기록의 상징성은 제한적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오히려 더 화제가 된 건 약물을 사용하지 않은 선수들의 선전이었다. 미국의 헌터 암스트롱은 약물을 투약한 경쟁자들을 제치고 남자 배영 50m 정상에 올랐다. 육상 남자 100m 우승자인 프레드 컬리 역시 약물 없이 우승을 차지한 뒤 “훈련을 더 열심히 하든가, 약을 더 먹어야 할 것 같다”며 경쟁자들을 향한 뼈 있는 농담을 남겼다.
대회 전까지 인핸스드 게임은 ‘도핑이 곧 퍼포먼스 혁명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이미지를 강조해왔다. 그러나 실제 결과는 약물만으로 기록이 자동으로 향상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역설적으로 보여줬다.
특히 일부 종목에서는 주최 측이 사실상 기록 경신을 돕기 위한 환경까지 제공했지만 결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역도에서는 기존 규정을 수정해 선수들에게 추가 시도를 허용했음에도 세계기록은 나오지 않았다. 남자 접영 50m에 출전한 벤 프라우드 역시 약물 복용 상태에서 경기에 나섰지만 세계기록에 0.05초 부족했다. 이 과정에서 인핸스드 게임이 내세웠던 ‘인류 능력 확장’이라는 명분도 설득력을 잃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세계 스포츠계는 여전히 강한 반대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세계수영연맹(World Aquatics)은 인핸스드 게임을 두고 “스포츠의 공정성을 훼손하는 서커스”라고 비판했고, 세계도핑방지기구(WADA) 역시 약물 사용 정상화가 선수 건강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의료계 우려도 크다. 전문가들은 장기간 스테로이드 및 PED 사용이 심혈관 질환과 간·신장 기능 저하, 호르몬 이상 등 치명적 부작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반면 대회 측은 “모든 약물은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 범위 안에서 관리됐다”고 반박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대회 운영 기업이 선수들이 사용하는 약물을 상업적으로 판매하고 있다는 점에서 윤리성 논란은 더욱 커지는 분위기다.
결국 첫 인핸스드 게임은 “약물을 허용하면 인간의 한계가 크게 확장될 것”이라는 기대보다, 스포츠의 본질이 단순히 약물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 보여준 대회로 남게 됐다.
최유나 기자(cyuna595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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