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RI=이수영 기자] 도쿄올림픽이 폐막한 지 어느덧 2주가 지났다. 축구로 범위를 좁히더라도 아직 한 달이 채 되지 않았다.
지난달 말일 올림픽 축구 8강전에서 멕시코에 패배하며 메달 획득에 실패한 선수단은 곧바로 국내외 소속팀으로 복귀했다.
귀국 후 소속팀 경기를 곧바로 소화한 선수들도 있다. 대표적으로 울산의 원두재, 이동경, 설영우, 이동준, 대구의 정태욱, 김재우는 8월 4일에 펼쳐진 K리그 경기에서 서로를 상대하기도 했다.
한편 국제대회가 개최되곤 하면 대회에서의 인상적인 퍼포먼스를 계기로 스카우터들의 레이더망에 포착돼 이적을 단행하거나, 이전과는 다른 경기력을 보여주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지난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본인의 이름을 알린 뒤 레알 마드리드행을 확정 지은 바 있던 하메스 로드리게스를 떠올리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국내에서는 해외만큼 이러한 경우가 자주 발생하지는 않는다. 한국 대표 팀이 유럽이나 남미의 축구 강국만큼 높은 순위로 대회를 마감하는 경우를 비교적 찾기 힘들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국내 축구팬들은 선수의 이적과는 별개로 대회에서의 인상적인 활약을 소속팀 복귀 이후에도 얼마나 꾸준히 이어가는지에 주로 관심을 두곤 한다.
필자는 이번 도쿄올림픽 축구 대표 팀의 아쉬운 4강 진출 실패를 뒤로하고, 대회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줬던 선수들이 소속팀 복귀 이후에 얼마나 활약을 곧잘 이어가고 있나 분석해봤다.
참고로 올림픽에 참가했던 선수들은 국내 복귀 후 자가 격리가 면제된다. 현재 질병관리청은 국내에서 백신 접종 후 2주경과 뒤 출국해 귀국한 경우, 무증상이거나 변이 바이러스 유행 국에서 입국하지 않았을 때 수동 감시 대상자로 관리하고 있다.
이에 따라 문화체육관광부 역시 선수들이 기존 리그로 곧바로 복귀하더라도 감염 확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견해를 밝히며 귀국한 선수단에 추가적인 자가 격리는 면제하고 있다.
표1은 도쿄올림픽에 출전한 K리그 소속 선수 중 올림픽 축구 4경기(예선 3경기, 8강)에 모두 출전했거나, 공격 포인트(득점 혹은 도움)를 1개 이상 기록한 선수들의 대회 기록이다.
올림픽에서의 인상적인 활약과 이후 리그에서의 활약을 연관 짓기 위해서는 올림픽에서 합당한 출전 시간을 부여받거나, 공격 포인트를 생산한 선수를 대상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특히 공격 포인트는 생산하지 못했지만 상대의 퇴장, 자책골, 페널티킥을 골고루 유도한 이동준과, 와일드카드를 제외하고 이강인과 함께 가장 많은 공격 포인트를 올린 이동경의 활약이 돋보인다.
더불어 전 경기 출전이라는 확실한 신뢰를 받았던 전북의 송범근, 제주의 강윤성, 대구의 정태욱, 광주의 엄원상 역시 주목됐다.
강윤성의 경우 전 경기 선발 출전이라는 성과를 달성하긴 했지만 8강 멕시코 전에서 치명적인 실수로 수차례 실점의 빌미가 됐다는 점에서 이후 리그에서의 활약이 더욱 궁금했다.
표2는 앞선 표1에 기록된 선수들의 올림픽 이후 K리그 기록이다. 많은 경기가 치러지지는 않았지만 이야깃거리가 적지는 않아 보인다.
선수들의 활약을 논하기 전에 미리 전제로 깔고 가야 할 점이 있다.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들(와일드 카드 제외)은 모두 만 23세 이하다.
이 말은 대표 팀에 선발됐다고 한들, 기존 소속팀에서 확고한 주전 자리를 꿰차고 있는 선수가 아닐 가능성도 농후하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따라서 올림픽 이후 선수들의 활약을 살펴볼 때, 단순한 공격 포인트나 실점 이외에도 이전과 경기 출장에서 어떠한 미묘한 차이를 선수가 만들어내고 있나 역시 필자는 주목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가장 눈에 띈 선수는 단연 울산의 이동경이었다. 이동경은 멕시코 전에서 엄청난 중거리 두 방을 꽂아 넣은 후 복귀한 국내 무대에서 네 경기 모두 선발 출장해 1골을 뽑아내고 있다.
올림픽 이전에는 선발 출전한 경기가 6경기에 불과했지만 올림픽 이후 벌써 선발 출전만 4경기째다. 팀에서의 입지가 점점 굳건해지고 있다고 이해할 수 있다.
이동준은 복귀 후 치러진 4경기 중 1경기 선발, 3경기 교체 출전했지만 3골이라는 순도 높은 활약을 펼치고 있다.
올림픽 온두라스 전과 멕시코 전에서 보여준 저돌적이고 빠른 장기를 리그에서도 그대로 이어 보이고 있다. 이제는 슈팅이 득점으로까지 곧잘 이어지고 있어 앞으로의 득점 행진이 더욱 기대된다.
특히 이동경과 이동준은 단순 공격 포인트 수치뿐 아니라 경기에서 행사하는 영향력 역시 전보다 늘어났다는 점에서 올림픽 효과를 그대로 맛보고 있다.
이는 k리그 선수들의 최근 경기 활약을 간접적으로 순위 매기는 ‘DYNAMIC POINT’에서도 엿볼 수 있는데 8월 10일 시점, 이동준은 5계단 상승한 전체 4위, 이동경은 무려 93계단 상승한 20위로 처음으로 순위권에 본인의 이름을 올렸다.
올림픽에 출전한 울산 4인방(원두재, 이동준, 이동경, 설영우) 모두 올림픽 이후 4경기에 전부 출전하며 충분한 기회를 보장받고 있다. 설영우는 오늘 열린 수원과의 리그 26라운드에서 시즌 첫 도움이자 두 번째 공격 포인트를 생산하기도 했다.
올림픽에서는 다소 불안한 모습을 보였던 송범근 골키퍼는 리그 복귀 후 다시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송범근은 올림픽 이후 치른 4경기에서 3실점만을 하며 경기 당 실점을 0점대로 유지하고 있다. 시즌 전체로 범위를 늘려도 22경기 22실점을 기록하며 경기 당 실점이 1점밖에 되지 않는다.
전북 현대라는 전통 강호의 수문장이라는 점도 고려해야하긴 하지만 리그 내에서의 송범근의 활약은 올림픽 때보다 훨씬 안정적인 모습이다.
대구의 정태욱은 리그 복귀전에서 시즌 첫 골을 뽑아냈다.
멕시코 전 이후 4일 만에 치러진 경기에 바로 출전했음에도 세징야의 프리킥을 정확한 헤더로 연결하며 팀의 동점골을 만들어냈다. 올림픽 전이나 후에나 팀 수비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며 활력을 불어넣어 주고 있다.
다만 매 경기 2골씩을 꾸준히 실점하며 전체적인 수비 조율에서는 다소 아쉬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정태욱의 직접적인 실책으로 인한 실점은 없었지만 전북 전에는 구스타보를 재빠르게 압박하지 못하며 실점 빌미를 제공했고, 강원 전에는 강원 선수들의 티키타카에 그대로 당하고 말았다.
제주의 강윤성은 최근 세 경기에 연속해서 출장하며 남기일 감독의 신뢰를 점차 받아가고 있다.
올림픽 이전에는 리그 19경기 중 13경기(교체 10경기)에 그치며 윙백 자리에서 정우재에 완전히 밀린 모습을 보이기도 했으나, 올림픽 이후에는 4경기 중 3경기(교체 2경기)에 출전하며 계속된 경쟁을 펼치고 있다.
이 밖에도 올림픽에 출전해 인상적인 활약을 펼친 K리그 선수들은 리그 복귀 이후에도 올림픽 스타다운 활약을 펼치며 이에 대응하는 기회를 부여받고 있다.
어린 선수들의 빼어난 활약은 22세 이하 선수를 의무적으로 선발 라인업에 포함해야 하는 구단으로서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우리 대표 팀이 올림픽에서 더 높은 순위로 대회를 마감했다면 잠재력 있는 선수들이 해외 무대로 진출할 수 있는 긍정적인 발판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난 2012 런던올림픽에서 동메달이라는 놀라운 성과를 거둔 뒤 기성용은 셀틱에서 프리미어리그 스완지시티로 이적한 바 있다.
윤석영 역시 이듬해 1월 전남에서 프리미어리그 QPR로 이적했다. 올림픽 직전 이적 발표가 나긴 했지만 김보경과 김영권 또한 J리그에서 각각 영국 카디프시티, 중국 광저우 에버그란데로 이적했다.
준우승을 차지했던 2015 호주 아시안컵 이후에도 2월에는 이청용이 영국의 볼턴에서 크리스탈 펠리스로, 8월에는 박주호가 독일 마인츠에서 도르트문트로, 손흥민이 독일 레버쿠젠에서 프리미어리그 토트넘으로 이적을 확정지었다.
물론 모든 이적이 국제대회의 영향 아래 있는 것은 아니며, 손흥민의 경우 기존에 분데스리가에서 워낙 뛰어난 활약을 펼쳤기 때문에 예외적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었을 때 핵심적인 해외 이적이 다수 나타난 사실을 보면 국제대회에서의 성과와 선수들의 행방이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점을 재차 확인할 수 있다.
원하던 결과는 아니었지만 우리 대표 팀은 올림픽을 통해 K리그의 높은 수준과 선수들의 유망함을 몸소 증명했다. 활약을 바탕으로 얻은 리그에서의 기회와 신뢰에 이제는 그들이 보답할 때다.
이수영 기자(dnsall123@gmail.com)
[2021.08.22. 사진=K리그 공식 SNS, 울산현대 공식 SNS, 전북현대 공식 SNS, 대구FC 공식 SNS, 제주유나이티드 공식 SNS, KFA 공식 SNS 및 홈페이지, FIFA 공식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