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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RI=이수영 기자] 15일(한국시간) 새벽 펼쳐진 21-22 UEFA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F조 1차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영 보이즈의 경기에서 후반 32분 한 관중이 경기장에 난입하는 해프닝이 발생했다.

맨유의 프리킥 상황을 틈 타 정체 모를 흰색 물체와 함께 등장한 관중은 약 10초간의 도주 끝에 안전요원에게 붙잡혔다.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이 있었다. 이후 단 한 차례도 중계 카메라가 난입한 관중을 비추지 않고 프리킥을 재차 준비하려는 선수들만을 비췄다는 점. 약 30초가 더 지난 후에서야 카메라는 경기장 전체를 담아냈고 해당 화면에서는 난입한 관중을 더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이러한 중계 모습은 최근 축구 경기에서 꽤 자주 나타나곤 한다. 지난 유로2020 결승전 잉글랜드와 이탈리아의 경기에서도 후반 41분 한 팬이 상의를 탈의한 채 경기장에 난입하는 장면이 연출됐지만, 중계 화면은 곧바로 선수들을 비췄다. 그리고 약 1분이 지나고 나서야 경기는 정상 진행됐다. 물론 이때도 경기장 전체로 화면이 바뀌었을 때 난입한 관중의 모습을 더는 확인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왜 경기장에 관중이 난입했을 때 카메라는 관중을 집중 조명하지 않는 것일까? 관중 난입도 경기 속 하나의 흥밋거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다소 의아할 수도 있다.

사실 중계 카메라가 난입한 관중을 비추지 않기 시작한 것은 그 역사가 오래되지 않았다. 불과 7년 전 14-15 UEFA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레알 마드리드와 FC 바젤의 경기만 돌려보더라도 후반 44분 두 명의 관중이 경기장에 난입하자 중계 화면은 난입한 관중을 확대 조명했다. 이로 인해 카메라를 들고 경기장을 촬영하던 해당 관중의 모습은 TV를 통해 경기를 시청하고 있던 전 세계 축구 팬들에게 나름의(?) 흥밋거리를 제공해줬다.

스포츠 경기장에서의 관중 난입은 대게 상업적 혹은 일종의 메시지 홍보 수단으로서의 이유가 주를 이룬다. 대표적인 예로 18-19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토트넘과 리버풀의 경기에서 난입한 수영복 차림의 여성을 살펴볼 수 있다. 경기 이후 러시아 성인용 비디오 배우 킨세이 볼란스키로 밝혀진 그녀는 남자친구의 사업을 홍보하기 위해 그가 운영하는 성인용 사이트가 가슴팍에 새겨진 수영복을 입고 경기장에 난입했다.

순식간에 안전요원들로부터 붙잡혀 경기장을 나갔지만, 경기 직후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가 30만 명에서 300만 명까지 폭등하는 등 엄청난 홍보 효과를 거두었다. 사전에 인터뷰나 영상을 미리 제작해 두었고 난입 이후에는 본인 프로필에 비즈니스 광고문 연락처까지 기재하는 등 치밀하고 계획적인 범행이었다.

하지만 관중의 경기장 난입은 매우 위험한 행위다. 자칫 선수 생명까지 위협할 수 있는 범죄 행위이며 관중 난입으로 인해 경기 흐름이 끊기고 지연돼 선수들뿐 아니라 경기를 시청하는 전 세계 수많은 축구 팬들에게 피해를 끼친다. 더군다나 해당 대회와 경기를 통해 자사를 홍보하고자 천문학적인 금액을 투자하고 후원한 광고주들에게도 엄청난 실례다.

유로 2020 결승전을 중계했던 배성재 캐스터는 당시 관중 난입 장면을 보며 “꼭 이렇게 큰 대회 결승전 같은 무대에서는 관종들이 나타납니다”라며 재치 있지만 임팩트 있는 비난을 남겼다.

이러한 영향을 계기로 최근 스포츠 중계에서는 난입한 관중을 카메라가 비추는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유사 행위를 독려하고 자극할 수 있다고 판단해 아예 난입한 관중 화면을 잡아주지 않는다. 상업적 혹은 일부 메시지로부터 그들이 얻을 수 있는 홍보 효과를 애초에 차단해버리는 것이다. 대신 관중이 경기장 밖으로 나갈 동안에는 선수들과 감독 및 일반 관중들을 비춘다.

  •  선수 부상과 중계 카메라

스포츠 중계의 문화적 변화에는 관중 난입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선수들의 끔찍한 부상에 대해서도 최근 중계 카메라는 되도록 비추지 않는 경향을 보인다.

지난 6월 펼쳐진 유로 2020 조별 예선 B조 1차전 덴마크와 핀란드의 경기를 떠올리면 이해가 더 쉬울 것이다.

해당 경기에서는 전반 42분 동료의 스로인을 받으러 달려가던 에릭센이 그 어떤 외부적 충격도 없던 상태에서 쓰러지는 충격적인 상황이 발생했다. 급성 심장마비가 원인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충격적인 상황 속에서도 돋보였던 것은 바로 선수들의 신속한 조치였다. 선수들은 곧바로 의료진을 호출했고 주장 시몬 키예르는 에릭센의 혀가 말려 들어가지 않도록 직접적인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감동적이었던 점은 쓰러지고 치료받는 에릭센의 모습이 관중들과 방송에 그대로 노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에릭센을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보호한 그들의 행동이었다. 그들은 에릭센이 경기장을 나가는 동안에도 곁을 지키며 에릭센의 프라이버시를 지켜줬다. 특히 핀란드 팬이 던져준 대형 국기를 가지고 에릭센을 보호했다는 점은 축구로 모두가 하나가 되는 감동적인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주목이 가는 점은 중계 화면 역시 에릭센의 구체적인 치료 과정을 방송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독일 방송사 ZDF는 에릭센이 갑작스러운 기절을 하자 곧바로 중계 화면을 스튜디오를 돌리는 등 재빠른 대처를 취했다.

하지만 대조적으로 많은 축구 팬들의 비판을 받은 방송사도 있다. 바로 영국의 대표 공영 방송사 BBC. BBC는 에릭센의 실신한 모습과 응급처치 상황, 충격을 받아 눈물을 보인 아내 모습 등 거의 모든 경기장 장면을 담아내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리버풀의 로버트슨은 본인 SNS에 에릭센을 둘러싸 보호한 선수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포스팅하며 “유일하게 공유돼야 했던 장면은 이 장면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수많은 축구인들의 비판이 끊이질 않자 BBC 해설위원 리네커는 “여러분이 우리의 미숙한 화면 조정 능력에 화가 나 있는 것을 안다”라며 사과하면서도 “하지만 해당 중계 장면은 대회 주최 측인 UEFA에서 송출한 장면이고, 우리는 이것을 통제할 수 없었다. 에릭센의 빠른 쾌유를 바란다. 우리의 대처로 화가 났을 사람들에게 사과한다”라며 해당 실수가 본인들만의 착오가 아니었음을 언급했다.

우리나라에서 유로 2020 독점 중계권을 따냈던 tvN 역시 에릭센의 응급처치 및 이송 장면을 담아내며 다소 아쉬운 중계를 진행하긴 했지만 이후 자사 사이트 내 경기 하이라이트 및 전체 다시 보기 콘텐츠에서 해당 장면을 통편집 삭제하며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후 대처에서 박수를 쳐줄 법하다.

  •  알 권리냐 일말의 인간됨이냐

한편 경기 중 관중 난입이나 선수의 부상을 카메라에 담아내지 않도록 노력하는 최근 중계방송 트렌드를 보며 이런 행위가 도리어 시청자들의 ‘알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프로 스포츠는 대중들에게 흥밋거리를 제공하는 일종의 엔터테인먼트 사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소한 선수 부상과 관련해서는 이러한 의문에서 탈피해야 한다. 누군가의 위급한 상황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흥밋거리가 돼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선수 부상 장면에서까지 시청자의 알 권리를 요구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드물다. 일종의 ‘인간됨이 내재한 상대적인 개념의’ 알 권리라고 표현할 수 있다.

자극적인 장면을 최대한 송출하지 않으려는 최근의 스포츠 방송 트렌드. 이러한 방송국들의 노력이 보다 바람직한 스포츠 문화를 만드는데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길 바란다.

이수영 기자(dnsall123@gmail.com)

[2021.09.17. 사진=UEFA 공식 홈페이지, PL 공식 홈페이지, 로버트슨 공식 S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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