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SIRI=김민재 기자] 정부가 단계적 일상 회복, 즉 위드 코로나로의 전환을 예고하면서 스포츠 관람에도 숨통이 트이고 있다. 그동안 무관중 경기가 진행되었던 수도권에서는 이번 주부터 백신 접종 완료자에 한해 관람이 가능해졌다. 지난 19일(화) 잠실 야구장에는 3개월 만에 1,624명의 관중이 들어찼다. 프로축구 K리그도 이번 주말 경기부터 수도권 경기 입장이 가능하다. 하지만 축구장이 다른 경기장과 큰 차이를 보이는 게 있다. 바로 원정팬이다. 코로나 이후 K리그 경기장엔 원정팬이 들어갈 수 없다. 왜일까?

라이온즈 아빠와 타이거즈 엄마, 축구장에선 볼 수 없는 장면이다 / 사진=중계화면 캡쳐

원정석의 엄격한 구분

축구는 다른 종목과 달리 특별한 원정팬 문화를 가지고 있다. 일단, 축구장은 ‘원정석’이 엄격하게 구분되어 있다. 펜스를 설치하거나 인력을 배치하여 원정석을 다른 관중석과 물리적으로 완전히 분리한다. 반면, 야구장은 원정석의 개념이 상대적으로 옅다. 1루 쪽은 홈, 3루 쪽은 원정 구역(혹은 반대)이라는 인식만 있을 뿐 관중석이 물리적으로 분리되어 있진 않다.

그래서 홈팀 응원석에 원정팬이 앉아 있는 모습이나, 서로 다른 팀을 응원하는 일행이 나란히 앉아있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반면 축구장에서는 이런 모습을 보기 쉽지 않다. 원정팀 유니폼을 입고 홈팀 관중석에 있다면? 주위에서 곱지 않은 시선을 받는 것은 물론 물론 경기장에서 쫓겨날 수도 있다. 대부분의 구단이 원정팀 유니폼을 입은 관중은 퇴장시킬 수 있다고 티켓에 명시하기 때문이다.

계급과 투쟁의 역사

이런 특성은 축구의 기원과 역사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축구의 종주국인 잉글랜드에서는 엘리트층을 중심으로 축구의 대중화가 시작됐다. 하지만 1883년 FA컵 결승에서 노동자의 팀인 ‘블랙번’이 사립학교 출신 엘리트로 구성된 ‘올드 이토니안’을 꺾고 우승하면서 판도가 바뀌었다. 노동자들은 축구를 통해 그동안 쌓인 응어리를 해소했다. 신분 상승과 사회적 성공이라는 욕망을 품고 대리 만족을 했다. 주말마다 축구장에 가며 자신들의 팀에 열렬한 응원을 보냈다. 그들에게 축구는 전쟁이었고 상대팀과 그 팬은 적군과도 같았다.

이는 훌리건으로 대표되는 열렬한, 혹은 과격한 응원 문화를 형성했다. 그들에게 축구장은 단지 축구를 보는 장소가 아닌 자신들의 욕망 해소를 위한 장소다. 그래서 팬들 간의 충돌, 각종 사건 사고 소식이 심심찮게 들려온다. 최근에는 유로 2020 결승전에서 입장권을 구하지 못한 훌리건들이 바리케이드와 안전요원을 뚫고 경기장에 무단 진입하고 각종 난동을 부려 문제가 되었다.

서포터즈: 축구장의 자발적 결사체

또한 축구에는 ‘서포터즈’ 문화가 있다. 서포터즈란 자신들의 팀을 응원하는 팬들의 모임이다. 다른 종목의 응원단장이나 치어리더처럼 구단의 지원을 받는 게 아니라 팬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만들어지고 운영된다. 이는 사회학에서의 ‘자발적 결사체’에 해당한다. 자발적 결사체는 공통되는 이해와 목표를 추구하는 사람들에 의해 형성된 조직이다. 결사체의 운영이 자발적이기 때문에 조직원들의 목표와 신념이 뚜렷하고 소속감이 강하다.

또한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운영된다는 특징이 있다. 서포터즈 역시 경기장에서 ‘콜리더’로 대표되는 수장의 지휘 아래 조직적이고 열렬한 응원을 보낸다. 수원 삼성의 서포터즈 그룹인 프렌테 트리콜로는 최고위원회와 산하 각 분야 팀으로 조직되어 있다. 그들은 상호 협의를 통해 조직을 운영한다. 서포터즈 내 ‘소모임’이라는 하위 조직은 그들만의 존재감을 뽐낸다.

수원 삼성 서포터즈는 최고위와 각 팀, 소모임으로 구성되어 있다 / 사진=프렌테 트리콜로

서포터즈의 이런 특성은 원정 응원 문화에도 영향을 주었다. 그들은 원정 경기에서도 조직적이고 집단으로 움직인다. 코로나가 있기 전까지, 원정 경기가 있으면 서포터즈 차원에서 전세버스를 대절해 이동했다. 구단 차원에서도 이를 지원했다. 2010년에는 FA컵 결승 부산 원정을 위해 800여 명의 수원 팬들이 특별 편성된 KTX로 이동하며 원정 응원의 새 지평을 연 바 있다.

서포터즈 문화 때문에

이런 특성은 간혹 부작용도 낳는다. 과격한 응원 문화로 경기장을 찾은 일반 관중들이 괴리감을 느끼게 하고, 자신들만이 응원의 기준이라 생각하고 삐뚤어진 선민의식을 갖거나, 타 서포터즈와의 물리적 충돌이 일어난다. 2012년, 서울 서포터즈들은 수원과의 경기에서 패하자 선수단 버스와 경찰에 난동을 피워 논란을 빚었다. 같은 해 인천 서포터즈와 대전 서포터즈가 충돌하고 팬이 경기장에 난입하여 마스코트를 폭행해 징계를 받은 적도 있다.

조직의 이익만을 강조하여 사회 전체의 이익과 대립이 일어날 수 있고, 배타성과 폐쇄성을 지닐 수 있다는 자발적 결사체의 부작용과 똑 빼닮았다.

서포터즈의 이러한 특성 때문에 그동안 K리그 원정석을 개방하지 않았던 것이다. 조직적⋅집단적 행동 양태를 보이고, 지역 간 이동이 필연적이며 최악의 경우 물리적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 이는 집단 모임과 지역 간 이동 자제라는 방역 지침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전주월드컵경기장을 찾은 울산 원정팬들 / 사진=울산 현대

위드 코로나, 그리고 위드 원정팬?

하지만 이 조치에 대한 실효성 문제가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지역 간 이동은 원정팬 뿐만 아니라 홈팬 사이에서도 일어날 수 있고, 원정석을 개방하지 않는다고 해도 원정팬이 오는 것을 원천적으로 막지 못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반 관중석 구석구석에 잠입(?)한 원정팬 때문에 여러 차례 구설수가 발생한 바 있다.

며칠 전에 AFC 챔피언스리그 8강, 4강전이 치러졌다. 코로나로 인해 전주에서 단판 중립 경기로 치러졌는데, K리그 팀 간의 맞대결이 성사되었고 원정석 미개방이라는 로컬룰이 적용되지 않아 2년 여 만에 원정팬도 들어찬 경기장을 볼 수 있었다. 단계적 일상 회복을 앞둔 지금, 언제쯤 K리그에서도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을지 주목된다.

Reference

오병돈, 유영설(2013). 프로축구 서포터즈의 아비투스 형성과정 탐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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