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VO, 자체 매뉴얼 뒤집고 포스트시즌 취소 번복
번복의 이유는 뭐니뭐니해도 ‘돈’?
매뉴얼 만든 지 한 달 만에 ‘없던 일로’…나쁜 선례 만들어
[SIRI=김민재 기자] 한국배구연맹(KOVO)이 자신들이 만든 코로나19 매뉴얼을 뒤집었다. 11일(금), KOVO는 이사회를 열고 여자부 포스트시즌을 취소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사건은 여자부 페퍼저축은행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나온 것에서 시작됐다. 선수단 집단 감염이 터지며 경기 진행을 위한 최소 엔트리 12명을 채울 수 없게 됐고, KOVO의 ‘코로나19 매뉴얼’에 따라 리그는 또다시 중단됐다.
KOVO는 ‘리그 중단 기간이 ▲14~23일이면 포스트시즌 일정 축소 ▲23~28일이면 포스트시즌 취소 ▲28일 이상이면 시즌 조기 종료’라는 자체 매뉴얼을 세웠다. 이번 집단 감염으로 리그 중단 기간은 ‘26일’이 됐다. 이로써 여자부 포스트시즌은 취소되는 듯 보였다.
하지만 KOVO는 즉시 이사회를 열고 포스트시즌을 진행한다고 발표했다. 그 이유로 ▲여자부 인기 상승 유지 ▲팬서비스 제공 ▲일정상 포스트시즌 진행 가능 등을 들었다.
일리가 있다. 여자 배구는 최근 몇 년 간 상승 가도를 달렸다. 특히 지난 도쿄 올림픽 4강 신화로 그 인기가 더 치솟았다. 중계 시청률만 봐도 여자부가 1.15%로 0.71%의 남자부를 압도한다.(2021-22시즌 전반기 기준) 특히 지난 시즌 포스트시즌 시청률은 2%를 돌파하며 높아진 인기를 증명했다. 이 상황에서 포스트시즌 취소는 배구 인기에 분명한 악재다.
자본 논리도 무시할 수 없다. 스포츠를 움직이는 건 역시 ‘돈’이다. 한 경기 한 경기에 수많은 이해관계가 달려있다. 작년 KBO리그에서는 잇따른 파행으로 중계4사가 손해를 배상해달라고 요구한 적도 있다. 리그 중단과 포스트시즌 단축, 규정 변경 등으로 시청률과 광고 매출이 하락했다는 이유였다. 이런 상황에서 KOVO가 포스트시즌을 취소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비단 KOVO뿐만 아니라 각 구단, 스폰서, 중계사를 위해서 말이다.
‘절차적 정당성’도 강조한다. KOVO는 이번 결정에 7개 구단이 ‘만장일치’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작년 KBO리그에서는 일방적 리그 중단 결정으로 큰 논란이 일었었다. 당시에도 ‘선수단 확진자 발생 시 2군에서 대체 선수를 수혈해서라도 일정 중단없이 운영’한다는 매뉴얼이 지켜지지 않았다. KBO 총재가 의사결정 과정에 개입했다는 의혹도 나왔다. “우리는 KBO와 다르다”는 것을 KOVO가 강조하고 싶어 보인다.
하지만 스스로 만든 원칙을 지키지 못했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게 됐다. KOVO가 이 매뉴얼을 만든 건 불과 한 달도 되지 않은 일이다. 지난달 24일, 당시 확진자 폭증으로 선수단 감염이 잇따라 벌어지며 시즌 진행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필요해지자 새로이 매뉴얼을 만들었다. 하지만 한 달도 되지 않아 없던 일이 됐다.
KOVO가 내세운 ▲여자부 인기 상승 유지 ▲팬서비스 제공 ▲일정상 포스트시즌 진행 가능이라는 이유 역시 극히 주관적이며 이기적이기까지 하다. 마치 인기가 많으면 안 되는 것도 가능하다는 얘기처럼 들린다. 이런 이유를 내세울 거였으면 애초에 매뉴얼을 만들지 말았어야 했다.
만약 또 다시 집단 감염이 사태가 터져 리그가 중단된다면 KOVO는 어떻게 할 것인가? 코로나 바이러스가 ‘오미크론’으로 변이되며 그 강도는 약해졌지만 전파력은 강해졌다. 스포츠계는 단체 생활을 하는 특성상 감염에 더 취약할 수밖에 없고, 한 번 터지면 집단 감염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자신들이 세운 매뉴얼은 이미 휴지 조각이 됐다. 다시 객관적 기준에 의해서가 아닌 주관적인 판단으로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 번의 잘못된 선택은 다른 곳에도 영향을 미친다. 남자부는 코로나 집단 감염으로 총 18일 간 리그가 중단된 바 있다. 만약 집단 감염으로 남자부가 또다시 중단된다면, 매뉴얼 상 ‘포스트시즌 취소’ 단계에 해당한다. 하지만 여자부에서 이미 포스트시즌 취소 번복 결정이 내려진 이상, 남자부도 같은 길을 갈 가능성이 높다.
이 글은 포스트시즌 진행 자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규정과 원칙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규정과 원칙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KOVO는 자신들이 만든 규정도 깨뜨릴 수 있다는 나쁜 선례를 만들었다.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김민재 기자(minjae@siri.or.kr)
[2022.03.15, 사진=한국배구연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