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RI=정재근 기자] 류은규, 강현석과 같은 선수들이 라크로스 경기뿐만 아니라 JTBC 축구 프로그램 ‘뭉쳐야 찬다’에서도 활약을 하며 국내 라크로스 선수들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추세에 따라 스포츠미디어시리(Sport Industry Review&Information)에서는 빛나게 활약하고 있는 한국 라크로스 선수들을 알리는 기사를 작성하고자 한다.

 

이 시리즈의 열 번째 인터뷰 대상 선수는 윤은호 선수이다.

 

(아래 인터뷰는 2024년 10월 7일에 진행됐습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입니다.

 

Q. 지난 시즌(2023-24시즌)도, 이번 시즌(2024-25시즌)도 라크로스를 향한 뛰어난 열정으로 달려나가는 걸로 알고 있어요. 지난 시즌과 이번 시즌을 한 문장으로 표현해주실 수 있나요?

뻔한 문구일 수도 있지만 ‘새로운 원점’이라고 하겠습니다. 지난 시즌 9월경부터 골리를 시작했기 때문에 실제로 새로운 것이었기도 했고요. 저는 제가 골리를 시작하고 진정으로 라크로스를 했다고 보기 때문에 이를 원점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원점에서의 마음을 그대로 품고 달려나가고 싶어요.

 

Q. 라크로스는 언제부터 시작하셨나요? 그리고 어쩌다가 시작하게 됐나요?

공식적으로 라크로스를 시작하게 된 건 2021년도 2학기인데, 제 첫 학기 훈련 참석률은 5%도 안 되기에 사실상 2022년도 초반이라고 말하고 다닙니다(웃음).

입문 계기도 거창할 건 없는데요. 동아리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었고 이왕이면 운동 동아리가 좋겠다 싶어서 이것저것 알아보던 참에 연세라크로스가 눈에 들어왔었습니다.

Q. 골리로서 항상 든든하게 골문을 지켜주고 있어요. 골리를 하시면서 가장 좋았던 순간 그리고 힘들었던 순간을 한 가지씩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가장 좋은 순간은 단연 세이브 성공 직후인 것 같아요. 볼이 제 헤드에 꽂히는 순간의 무게감이나 몸에 맞아서 튕겼을 때의 짜릿함이 좋아요. 개중에도 슈터의 움직임으로부터 예측한 지점을 성공적으로 틀어 막았을 때의 쾌감이 가장 큽니다.

힘든 순간은 제 실수로 인해 팀과 경기에 피해를 끼쳤을 때인 것 같습니다. 골리를 처음 시작했을 때는 형편 없는 클리어 패스, 볼 컨트롤 실패로 자책골 넣기 같은 기억들로 스스로를 책망했었고요. 요즘은 막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슛이 연달아 먹힐 때 종종 타격을 받습니다. 물론 그러다가도 ‘다음에 잘해내면 그만’이라고 털어내려고 해요.

 

Q. 필드 플레이어로서도, 골리로서도 활약하고 계세요. 만능 플레이어라고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골리를 도전하게 된 계기를 여쭤봐도 될까요?

대단히 과찬입니다만, 감사합니다.

원래 2022년 초부터 2023년 중반 정도까지 약 2년 정도는 디펜스 포지션으로 뛰었는데요. 2023년도 초쯤부터 오른쪽 무릎 통증이 심해져서 라크로스를 반년 가량 쉬었습니다. 짧은 고민 끝에 같이 하던 친구들이랑 한 학기만 더, 달릴 일이 적은 역할으로라도 라크로스를 계속해보자 마음 먹고 포지션을 바꿨어요.

그 뒤로는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재미가 붙어버려서 이젠 골리가 아니면 안 되겠다 여기고 있습니다. 이전에 보신 필드 플레이 도전은 친선전용 이벤트로만 생각해주세요(웃음).

Q. 라크로스 경력이 꽤 오래되셨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 하나만 소개해주실 수 있나요?

비교적 최근 기억 중에 꼽자면 올해 상반기 교환학생으로 간 일본 릿쿄대학교의 V리그 Division 2 내 츄오대학교와의 경기가 있겠네요. 이전까지 쭉 난관이었던 클리어의 실마리가 드디어 보인 경기라서 저에게 뜻깊은 성공의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팀의 모두가 힘을 합해서 볼을 필드 위로 끌어올렸을 때, 그래서 어택의 슛까지 직결되는 걸 봤을 때 ‘골리에게도 세이브만큼이나 기분 좋은 플레이가 무궁무진하게 더 있구나’하는 두근거림이 느껴지더라고요. 앞으로 뛸 팀들에서도 그런 클리어를 함께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Q. 골리로 경기를 하실 때 공을 막기 전 스틱으로 폴을 두 번 치고 막으시는 모습이 계속 보였어요. 본인만의 징크스나 루틴인가요? 혹은 본인만의 경기 루틴이 있을까요?

관찰력이 좋으시네요. 하도 두드려 대서 들켰나(웃음).

원래 골리는 골대 안에서 본인의 포지션을 인지하기 위해, 그리고 정확한 가운데 지점을 찾기 위해 폴대 양옆을 친다고 배웠습니다. 거기서부터 시작된 습관인데, 저는 긴장하거나 들뜬 순간에 마음을 가라앉히려는 용도로도 하게 됐습니다. 반대로 기가 죽었을 때는 일부러 텐션을 올리려고 더 세게 때리기도 합니다.

루틴이라면 루틴인데, 골대 안으로 들어갈 때 팬에서부터는 항상 조깅걸음으로 들어갑니다. 그렇게 골대 안에 서고, 양 폴대를 쳐서 자리를 찾고, 무릎과 양 어깨를 한번씩 풀어주고 스틱을 바로 잡아요.

 

Q. 연세라크로스뿐만 아니라 서울진도스에서도 윤은호 선수를 볼 수 있어요. 각 팀에서 본인이 맡은 역할이 궁금해요.

아직 공식적인 소속은 연세라크로스뿐입니다. 연세라크로스에서는 아무래도 학번 높은 장기간 활동자에 속하다 보니 의지할 수 있는 선배 역할을 수행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서울진도스와는 2024년도 오키나와컵에서의 인연을 이어가 감사하게도 KNSL 막바지 두 경기를 함께하게 됐는데요. 저보다 라크로스에 쏟아부은 시간과 노력이 많은 선배님들께 많이 배워가는 입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그분들께 의지하듯이 저도 언제든지 믿고 수비를 맡길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싶어요.

 

Q. 조심스러운 질문이에요. 지난 KNSL 1위 결정전에서 골리를 맡으셨고 서든데스 상황까지 이어졌어요. 부담감이 크셨을 텐데 그 순간 들었던 윤은호 선수의 생각과 감정을 여쭤봐도 될까요?

순간의 부담감은 무의식의 방어 기제인지 크게 느껴지지 않았던 것 같아요. 의식하지 않으려고 애썼던 걸지도요.

저희(서울진도스)가 초반에 조금씩 앞서가다가 슬슬 엎치락뒤치락하며 점수를 따라잡힌 경기였는데요. 도중에 제가 실수하거나 좋지 못한 플레이를 지속적으로 보였음을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서든데스 전 마지막 실점을 허용했을 때 든 생각은 ‘결국 왔구만’ 하는 정도? 4쿼터가 종료된 뒤에는 실점과 실수를 떠올리려 하지 않고 ‘다음 거 막죠’라고 팀원들한테 말했었는데 금방 뚫린 게 아쉬움으로 남긴 합니다. 그래도 다음에 진도스로 뛰게 되면 팀을 우승시키겠다고 말씀드렸으니, 이번에 뱉은 말은 열심히 지켜보려고 합니다.

Q. 국내 리그를 너머 오키나와컵도 출전하셨어요. 출전을 결심하게 된 이유와 해외 리그에서 느끼신 점 그리고 배운 점을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골리를 시작한 지 두어 달쯤 되어가던 차에 슈팅세션에서 만난 서울진도스 강지승 언니가 오키나와컵에 대해 말을 꺼내셨어요. 슬슬 고민을 하던 중에 연세라크로스 대선배시자 국가대표팀 골리 출신 이주연 선배께서 연락을 주셨고, 그때를 기점으로 마음이 훅 기울었습니다. 안 하면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도 있었고, 다른 사람도 아닌 주연 선배가 제안해주셨으니까요.

배우고 느낀 점은 무수히 많습니다만, 대표적으로는 ‘그래도 하는 것’의 정신을 꼽을 것 같습니다. 오키나와 오픈을 준비하면서 처음으로 골리로서 특정 능력치를 보여줄 것을 요구 받았어요. 이를 달성하려는 과정에서 라크로스와 연관된 감정적인 변화를 많이 겪었죠. 농담처럼 친구들한테, 요즘 라크로스를 하면 네 번은 괴롭고 관두고 싶어지는데 마지막 한번이 꼭 그 네 번을 뛰어넘을 만큼 재밌어서 계속 하게 된다고 말했었거든요.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늘고 있든 갑갑하든 그냥 일단 나가서 하자’라고 스스로를 다잡을 수 있게 됐습니다. 묵묵하게 연습하는 다른 팀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해요.

 

Q. 이번 시즌 꼭 세우고 싶은 목표가 있나요?

보다 강한 연세라크로스를 만들고 싶습니다. 탄탄한 디펜스, 민첩한 패스플레이, 정확하고 유효한 슈팅이 가능한 팀이 되었으면 해요. 특출난 개인의 힘이 아닌 팀의 능력으로 플레이가 가능한 연세라크로스로 거듭났으면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디펜스진의 중심에서 컨트롤타워처럼 기능하는 골리가 되는 게 목표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기본기 증진과 함께 필드 전체를 보는 눈을 기르고 싶어요. 넓은 시야와 빠른 판단력, 정확한 지시와 소통 능력 등을 과제로 삼고 있습니다.

 

Q. 롤모델이 있다면 소개해주실 수 있나요? 라크로스 관련 인물이 아니더라도 상관없습니다!

올해 오키나와컵에서 만난 대표팀의 홍유리 선수로부터 많은 자극을 받았습니다. 보통이라면 낙담할 법한 때에 ‘그럼에도 어떻게 해야 이걸 이룰 수 있을까?’라며 해법을 찾는 낙천적 사고방식이 인상 깊었어요. 그렇게 높은 곳에 있는 꿈을 쫓는 모습이 꼭 소년만화 주인공처럼 낭만적으로 보이기도 했고요. 스포츠에서도 인생 전반에서도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라크로스에서 자기만의 강점을 발견하여 갈고 닦은 것도 닮고 싶은 지점입니다. 약점에 굴하지 않고 그걸 뛰어넘을 수 있는 다른 강점을 찾는 것, 그것으로 자신만의 라크로스를 하면서 탑레벨의 선수가 된 것. 그 점이 진심으로 멋있어요. 유리 언니에게 그 이야기를 들은 뒤부터 저도 곱씹어가며 답을 찾으려는 중에 있습니다. 나만의 라크로스는 무엇일까, 내가 제련해야 할 무기는 뭘까, 하고요.

Q. 라크로스 동료들에게 한 마디 하자면 어떤 말을 해주고 싶나요?

제가 존경하는 주연 선배의 말씀을 빌리자면, “잠시 잠시 스트레스더라도 대세는 즐겁게 라크로스 합시다.”

그리고 질릴 때까지는 할 수 있도록, 건강하게 라크로스 해요. 주변에 부상으로 고생하는 선수들이 많아서요. 라크로스와 스포츠 세계를 사랑하는 마음을 알기에 그 마음이 다할 때까지는 건강히 뛸 수 있었으면 합니다.

 

스포츠미디어 시리(Sport Industry Review&Information)

정재근 기자(jjk8869@naver.com)

[24.10.12. 사진 = 윤은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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