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RI = 권소현 기자] 잠실에서 밤 경기가 끝난 시각은 오후 10시를 넘겼다. 하지만 선수들의 하루는 그때부터 다시 시작된다. 간단한 샤워와 인터뷰, 트레이닝 파트의 긴급한 치료를 마친 선수단 버스가 대형 캐리어를 싣고 움직이는 시간은 이미 자정을 향한다. 고속도로 위를 달려 원정 숙소 로비에 도착하면 새벽 2시를 훌쩍 넘기기 일쑤. 짐을 풀고 쉽게 가라앉지 않는 경기 흥분 상태를 가라앉히며 잠을 청하면 이미 창밖은 푸르스름하게 밝아온다. 그리고 불과 몇 시간 뒤인 오후 2시, 선수들은 다시 뜨겁게 달아오른 그라운드 위에서 플레이볼 선언을 맞이한다.

프로야구 선수들에게 장기 원정과 연전 체제는 매 시즌 반복되는 ‘소리 없는 전쟁’이다. 특히 최근 인기 구단들을 중심으로 한 촘촘한 중계 편성, 전국을 가로지르는 이동 거리, 그리고 주말 낮 경기 일정이 겹치면서 현장의 체력 과부하가 임계점에 달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 시즌 팀당 서너 번의 ‘지옥문’… 9연전이 남긴 상처

사실 KBO리그에서 ‘원정 9연전’은 결코 흔치 않은 예외적 상황이 아니다. 홈앤드어웨이 편성의 한계와 우천 취소로 인한 재편성, 그리고 리그 중단기나 시설 공사 등의 변수가 겹치면 매 시즌 서너 개 구단이 많게는 한두 차례씩 9연전 이상의 장기 원정 릴레이에 내몰린다.

실제로 한 달에 가깝게 집을 떠나 수도권과 지방을 오가는 ‘원정 잔혹사’는 구단 순위 싸움의 가장 큰 분수령이 되곤 한다. 이동 거리만 수천 킬로미터에 달하는 이 기간, 선수들이 느끼는 피로도는 홈 경기와 비교해 2배 이상이라는 것이 데이터로도 증명된다.

최근 한화 이글스의 중심 타자로 활약 중인 강백호는 일정과 관련된 현장의 솔직한 심경을 토로해 야구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는 “저녁 경기를 치르고 곧바로 다음 날 오후 경기를 소화하는 것이 선수 입장에서 결코 쉽지 않다”며 누적되는 피로도를 언급했다. 이는 비단 한 선수의 불만이 아닌, 144경기 대장정을 치르는 KBO리그 구성원 전체의 공통된 비명이다.

왜 이런 일정이 반복될까. 핵심은 방송 편성과 관중 흥행이라는 야구 외적인 비즈니스 논리에 있다. 주말 흥행과 지상파 및 스포츠 채널의 중계 시간 맞춤형 편성으로 인해 금요일 밤 경기 이후 토요일 낮 경기, 혹은 일요일 낮 경기 이후 곧바로 이어지는 주중 원정 이동이라는 가혹한 스케줄이 완성된다. 팬들의 볼 권리와 구단의 흥행 수입도 중요하지만, 그 이면에 숨겨진 선수 보호 장치는 지나치게 취약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새벽 3시의 수면 전쟁, 트레이닝 파트의 숨은 헌신

가혹한 일정 속에서 선수들이 버텨내는 과정은 철저한 ‘생존 서바이벌’에 가깝다. 가장 먼저 무너지는 것은 수면 패턴이다. 원정 버스 안에서 목베개에 의지해 쪽잠을 청하지만, 덜컹거리는 차 안에서의 수면이 온전할 리 없다. 원정 연전이 길어질수록 선수들의 생체 리듬은 파괴된다.

식단 관리 역시 비상이다. 새벽에 도착해 먹는 야식은 소화 불량과 생체 리듬 붕괴의 주범이지만, 경기 중 소모한 엄청난 에너지를 보충하기 위해 ‘회복식’이라는 이름으로 최소한의 음식물을 섭취해야만 한다.

이 시기 가장 바빠지는 곳은 구단의 트레이닝 파트다. 연전이 길어질수록 트레이너들의 역할은 감독만큼이나 중요해진다. 이들은 선수단보다 먼저 움직여 원정 라커룸에 아이싱 장비와 마사지 베드를 세팅한다. 경기 직후 선수들의 근육 피로도를 체크하고, 무너진 밸런스를 잡기 위해 새벽까지 치료실 불을 밝힌다. 한 구단의 베테랑 트레이너는 “시즌 중반 원정 연전에 들어가면 선수들의 근육 긴장도가 평소의 두 배 이상 올라간다. 이때 부상을 막지 못하면 한 시즌 농사가 끝난다는 각오로 매달린다”고 전했다.

불펜과 포수, ‘연투’와 ‘체력 방전’의 최전선

이러한 일정 압박을 가장 온몸으로 받아내는 포지션은 매일 대기해야 하는 불펜 투수들과 장비를 차고 앉아야 하는 포수, 그리고 전 경기 출장을 불사하는 주전 야수들이다.

특히 필승조 불펜의 연투 횟수와 출장 경기 수는 일정의 빡빡함과 직결된다. 이동 거리가 길고 휴식이 부족한 상태에서 마운드에 오르면 구속 저하는 물론, 부상 위험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앉았다 일어서기를 수백 번 반복하는 포수의 체력 저하는 팀 전체의 전력 약화로 이어진다. 최근 많은 구단들이 지명타자 로테이션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주전 야수들에게 ‘수비 휴식’을 부여하는 이유도, 데이터상으로 일정 후반부 타격 지표가 급격히 떨어지는 현상을 방지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제도적 개선 시급… KBO가 나아가야 할 해결책은

미국 메이저리그의 경우, 장거리 이동이 잦은 특성을 고려해 일정 편성에 엄격한 규정을 둔다. 전날 야간 경기를 치른 팀이 다음 날 장거리 비행 이동을 해야 할 경우, 해당일 경기는 반드시 낮 경기로 편성하거나 이동일을 철저히 보장하는 식이다. 선수노조와의 협약을 통해 이동 스케줄의 마지노선을 제도적으로 묶어두었다.

반면 KBO리그는 국토가 좁다는 이유로 이동 거리에 대한 배려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그러나 대전, 창원, 부산, 광주에서 수도권으로 이어지는 동선은 결코 만만치 않다. 그렇다면 KBO가 직면한 이 일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현실적인 대안은 무엇일까.

첫째, 이동 거리를 고려한 ‘블록형 연전 재배치’ 도입이다. 현행 일정 편성은 구단 간 홈·원정 경기 수를 기계적으로 맞추는 데 치중해 있다. 이를 인접 지역 구단들과의 연전을 묶어 동선을 촘촘하게 짜서 불필요한 왕복 이동 동선을 최소화하는 소프트웨어적 접근이 필요하다.

둘째, ‘월요일 이동일’의 실질적 보장과 휴식기 확대다. 우천 취소나 방송 중계 등의 이유로 월요일 경기가 편성되거나 일요일 야간 경기 후 월요일 새벽에 이동하는 일이 잦다. 특정 구간 이상의 장거리 이동이 예정된 경우, 월요일은 온전한 ‘이동 및 휴식일’로 규정하는 강제성이 도입되어야 한다.

셋째, 혹서기 주말 낮 경기 편성의 전면 재검토 및 더블헤더 운영의 유연화다. 체력 소모가 극심한 한여름이나 주중 야간 경기 직후의 주말 낮 경기는 부상 위험을 직결시킨다. 현장에서는 관중 흥행성도 중요하지만, 경기력 저하를 막기 위해 경기 개시 시간을 유연하게 조정하고, 일정 소화를 위한 더블헤더 편성 시 선수 엔트리 확대(특별 엔트리)를 더욱 과감하게 보장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단순히 “프로 선수가 돈을 많이 받으니 참아야 한다”는 식의 논리는 이제 통하지 않는다. 144경기의 긴 레이스에서 결국 승부를 가르는 건 단순한 실력만이 아니다. 끝없는 이동과 빡빡한 일정 속에서도 몸 상태를 온전히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 원정 연전은 단순한 일정이 아니라, 한국 프로야구의 지속 가능성을 시험하는 ‘체력 전쟁의 축소판’이기 때문이다.

스포츠미디어 시리(Sport Industry Review&Information)

권소현 기자 (so_hyu@naver.com)

[26.05.28, 사진제공 = KBO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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