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RI = 권소현 기자] 프로야구계가 한동안 뜨겁게 요동쳤다. 한 에이전시가 주도한 유료 팬소통 플랫폼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단순한 ‘신규 서비스 논란’이 아니었다. 야구계는 이를 야구 생태계를 뒤흔들 구조적 문제로 받아들였고, 결국 서비스는 출시 직후 중단됐다.

그 중심에 있었던 것은 리코스포츠에이전시가 운영한 ‘스포디’이다. 팬들이 구독료를 내면 선수들과 개별적으로 대화를 나누고 전용 콘텐츠를 볼 수 있는 구조다. 겉으로만 보면 새로운 팬서비스 실험처럼 보이지만, 야구계의 반응은 단호했다.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다”는 것이다.

에이전시가 ‘판’을 주도하는 순간, 야구 생태계는 흔들린다

유료 소통 플랫폼은 다른 종목에서는 이미 등장한 적이 있다. 배구 일부 팀은 팬 멤버십 기반 소통 서비스를 운영해 왔고, e스포츠 T1 역시 선수 팬소통 플랫폼 론칭을 검토한 바 있다.
그러나 이들 사례는 팀과 리그가 중심이 되어 운영을 통제하고 일정·노출·콘텐츠 생산에 대한 조율을 총괄했다는 특징이 있다.

반면 이번 스포디 사태의 핵심 문제는 주체가 에이전시였다는 점에 있었다.
활동 기간 중 선수의 이름·사진·등번호 등 초상권 및 퍼블리시티권은 구단과의 협의 없이 상업 활동에 사용할 수 없는데, 이 기본 절차조차 생략됐다. 선수협, KBO, 구단 모두 “사전 논의가 없었다”고 한 목소리를 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에이전시가 선수단을 하나의 브랜드처럼 묶어 자체 이벤트 경기까지 열며 영향력을 확대해 온 가운데, 이번 플랫폼은 사실상 야구 리그 외부에 또 다른 ‘독자 생태계’를 구축하려는 시도로 받아들여졌다.

왜 야구팬들은 더 민감하게 반응했나?

“선수의 상품화”라는 감정적 반발보다 더 깊은 층위가 있다.

야구 팬덤은 규모가 크고, 길게는 144경기 이상을 함께하는 ‘일상형 팬덤’이다. 그러다 보니 선수와 팬이 이미 비교적 가까운 구조를 갖고 있다. 출퇴근길, 2군 경기, 공개 훈련만 봐도 팬과 선수의 접점이 넓다.

이런 맥락에서 팬 1:1 유료 메시지 서비스가 도입될 경우, 팬 접근성의 불균형, ‘구매력’이 선수 접근성의 기준이 되는 현상, 선수의 사생활 침투 우려 등과 같은 문제들이 즉시 불거질 수밖에 없다.

즉, 야구는 이미 팬과 선수의 접점이 자연스럽게 형성된 종목이다. 그래서 아이돌식 유료 소통 모델이 들어올 때의 파장이 더 크다.

반면 배구나 e스포츠는 상대적으로 접점이 적고, 팬서비스가 구조적으로 구단·팀 관리 아래 있기 때문에 상업화 논란이 있어도 ‘통제된 시스템’이 전제된다.
야구는 그 통제의 주체가 흔들렸다는 점에서 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서비스 구조의 근본적 위험

가장 큰 우려는 책임 소재 불명확성이다. 선수가 앱 내에서 팬과 주고받은 메시지에서 부적절한 표현이 포함되면, 실제로 사과문을 내는 것은 구단과 감독이다. 경기 중 집중력 저하, 비난 폭주로 인한 멘탈 문제 역시 구단이 떠안게 된다.

그러나 앱 수익은 에이전시가 가져간다. 리스크는 구단·리그·선수가, 수익은 제3자가 가져가는 구조가 과연 정당한가?

이 질문이 이번 논란의 본질이다.

배구와 e스포츠에서는 왜 비슷한 소통 서비스가 큰 반발을 부르지 않았을까

문제는 소통 앱 자체가 아니라, ‘누가’ 그리고 ‘어떻게’ 운영하느냐이다.

배구에서 제공되는 팬 멤버십 기반 소통 서비스들은 대부분 구단이 직접 운영하거나, 리그의 관리 체계 안에서 작동한다. 선수의 이미지·이름·노출 일정·콘텐츠 성격 등을 모두 구단이 조율하고, 선수의 훈련·휴식 시간을 침해하지 않도록 엄격한 기준을 둔다.

즉, 배구에서의 소통 서비스는 선수 개인이 상품화되는 것이 아니라, ‘팀 브랜드 서비스’의 일부로 운영되는 구조다. 구단이 통제 주체이기 때문에 위험 요소가 비교적 적고, 팬들 역시 이것을 ‘확장된 구단 서비스’로 받아들인다.

e스포츠에서도 팬소통 앱 논의는 꾸준히 있어 왔다. T1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당시 T1은 선수 개별 소통 서비스를 준비했지만, 월드 챔피언십 시즌에는 선수들의 경기력에 방해될 것을 우려해 출시 시점을 과감히 미뤘다. 이 과정에서 팀은 팬들에게 “경기력이 최우선이며, 선수 보호가 핵심”이라는 원칙을 명확히 밝혔다.

즉, e스포츠에서는 팀이 전적으로 모든 일정을 관리하며 선수들의 심리적 부담을 최소화하는 구조가 자리 잡아 있다. 팬들도 이러한 원칙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소통 플랫폼 자체가 논란의 중심이 되지는 않았다.

야구계의 반발이 더 컸던 이유는 단 하나로 귀결된다. 배구·e스포츠와 달리, 플랫폼의 기획·운영 주체가 ‘구단이 아니라 에이전시’였다는 점이다.

에이전시는 팀 조직이 아니다. 시즌 일정, 훈련 루틴, 선수 보호 시스템, 초상권과 퍼블리시티권 등 선수의 공식적 활동을 관리할 권한이 없다. 그런데도 에이전시는 선수 개인을 중심으로 한 ‘독자 플랫폼’을 만들고, 유료 DM·유료 영상 메시지 등 아이돌식 수익 모델을 적용했다.

결과적으로 야구계가 느끼는 위험은 단순 상업화가 아니었다. 그것은 리그와 구단의 관리 체계를 벗어난 곳에서, 선수들이 별도의 경제 생태계 안에 놓이는 구조였고, 이는 결국 프로야구의 질서·권한·책임 구조를 뒤흔드는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로 확대됐다.

소통’이 중요하다고 해서 모든 소통이 정답은 아니다

프로선수의 정체성은 결국 경기력에서 나온다.

스포츠 선수에게 팬과의 소통은 분명 필요하다. 오늘날 프로스포츠는 팬 없이는 존재할 수 없고, 팬서비스는 선수의 의무 중 하나다.

그러나 팬서비스는 경기력이라는 본업을 기반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경기력과 훈련 일정, 정신적 안정은 선수의 자산이자 생명이다. 이 균형을 무너뜨리는 소통 방식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되기 어렵다.

야구계가 이번 사안을 강하게 제동 걸며 “좌시하지 않겠다”고 밝힌 이유는 단순 반감이 아니라, 프로야구라는 생태계 전체의 질서와 선수의 본질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팬소통 앱은 가능하다. 하지만 ‘누가, 누구를 위해, 어떤 방식으로’가 더 중요하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플랫폼 출시 논란이 아니라 에이전시의 권한과 선수의 역할, 구단의 책임, 리그의 질서라는 네 가지 축이 충돌한 사건이었다.

스포츠 선수가 팬과 가까워지는 것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프로선수의 정체성은 결국 경기력에서 나온다. 팬과의 소통은 그 경기력을 빛내기 위한 부가적 요소이지, 본질을 대체할 수 없다.

선수에게 가장 중요한 건 운동선수로서의 실력, 경기 집중력, 그리고 경기장에서의 퍼포먼스다. 그 기반이 흔들린다면 그 어떤 팬서비스도 오래갈 수 없다.

스포츠미디어 시리(Sport Industry Review&Information)

권소현 기자 (so_hyu@naver.com)

[25.11.27, 사진제공 = SPODY 앱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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