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은 스포츠 팬들에게 정말 즐거운 한 해가 될 것 같다. 사상 유래없는 FA전쟁으로 스토브리그부터 뜨겁게 달아오른 프로야구와 각종 대형영입들이 자고 일어나면 이루어지는 K리그,각종 대회를 휩쓸 예정인 남,녀 골프 등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다가 각종 하계 올림픽과 유로컵 등 각종 국제대회까지 준비되어 있어 벌써부터 설레는 팬들이 많을 것이다.

많은 국제대회 중에서도 특히 유로컵을 기다리는 축구팬들이 많을 것이다. 사실 축구를 잘 모른다면 이해가 가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가 참가하는 대회도 아니고, 월드컵도 아니다. 하지만, 수많은 축구팬들이 유로컵을 손꼽아 기다린다. 왜 그럴까? 올해 열릴 유로2016이 재미있을 이유를 한 번 알아보자.

‘남미없는 월드컵’, 그래도 꿀잼 보증합니다!

유로컵은 흔히 남미없는 월드컵이라고 불리는데, 사람들은 왜 유로컵에 열광할까. 답은 간단하다. 유럽대륙은 축구의 본고장이자 현대축구의 정수라고 볼 수 있으며 현대축구를 이끌어가는 선도국가들이 다수 존재하기 때문이다.

덕분에 유로컵은 월드컵과는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월드컵은 애초에 대륙별로 안배된 출전권이 존재하기 때문에 유럽 내에서 강호들이라고 볼 수 있는 국가들이 출전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기도 한다. 그러나 유로컵에서는 유럽 내에서 축구 좀 한다는 국가들은 대부분 본선에 참여하게 되고, 대륙별로 안배된 월드컵과 비교해 보았을 때 경기력이 우수한 경우도 많다.

더불어 월드컵에서 보기 힘든 스타선수들을 볼 수 있는 것 역시 큰 메리트다. 웨일스를 이끄는 가레스 베일이나 오스트리아의 다비드 알라바와 같은 선수들은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정상급 선수임에도 월드컵에서는 보기 힘든 선수들이다. 이런 선수들을 만나 볼 수 있는 국제대회가 바로 유로컵인 것이다.

월드컵에서 보기 힘든 가레스 베일, 유로에서는 볼 수 있다! ⓒ EekaGFX
월드컵에서 보기 힘든 가레스 베일, 유로에서는 볼 수 있다! ⓒ EekaGFX

유럽이라는 대륙의 특수성도 한 몫 한다. 수 백년간 서로를 침략해온 역사로 인해 대부분의 유럽국가들은 라이벌 관계가 다수 존재한다. 또한 유럽축구의 전반적인 질적 향상으로 언더독의 반란도 종종 이루어지기도 하는데 멀게는 유로2004에서 그리스의 우승이 있고 가깝게는 이번 유로 예선에서 아이슬란드와 터키에 밀려 예선탈락을 한 네덜란드의 예시도 있다.

이렇듯 우수한 경기력과 예상하기 힘든 전개, 월드컵에서는 보기 힘든 스타선수들의 출전이라는 요소들 덕분에 유로컵은 유럽인들 뿐만 아닌 전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는다.

강호 탈락-처녀 출전…벌써부터 ‘이변’ 예고한 유로 2016

올해로 15번째인 유로컵이 개최되는 장소는 프랑스다. 그에 따라 개최국인 프랑스는 자동으로 본선 진출했고 나머지 53개의 국가 중 23개의 국가가 본선진출을 위해 혈투를 벌였다. 예선 과정은 역대 다른 예선과는 달리 예상치 못한 상황들이 속속 발생했다. 우선 가장 큰 뉴스는 앞서 언급했던 네덜란드의 예선 탈락이었다.

같은 조에 소속되었던 터키와 함께 2강으로 평가된 네덜란드였으나 예상치 못한 체코와 아이슬란드의 약진에 조 3위에게 주어지는 플레이오프행 티켓을 두고 터키와 단두대 매치를 벌였으나 이 기회 마저 3대0의 무기력한 패배와 함께 놓치면서 유로84 프랑스 대회 이후 또 다시 프랑스행이 좌절됐다.

다른 핫 키워드는 축구 변방국들의 유로 처녀출전이다. 네덜란드와 같은 조에 있던 아이슬란드는 인구가 30만을 겨우 넘기는 소국이다. 따라서 축구인구 역시 타 국가들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고, 월드컵과 유로 모두 단 1회도 본선진출 경험이 없는 국가였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서는 강호 네덜란드와 터키, 다크호스 체코를 차례대로 격파하며 조 1위로 본선진출을 확정지었다.

F조에 있던 북아일랜드 역시 처음으로 유로 본선행의 기쁨을 맛봤다. 조 추첨단계에서부터 확실한 강팀이 없던 구성이라 그나마 유로 본선의 단골손님이라 할 수 있는 그리스가 유력한 1위후보로 평가되었고, 나머지 루마니아와 헝가리, 북아일랜드의 2위싸움 구도가 예상되었으나 뚜껑을 열고보니 전혀 예상치 못했던 상황이 벌어졌다.

집중력 있는 한방을 보여준 북아일랜드와 단단한 수비를 보여준 루마니아가 초반 기세를 타고 날아오른 반면 그리스는 초반 3경기에서 고작 승점 1점을 얻었고 심지어 유럽 최약체로 분류되던 페로제도에게도 2패를 당하는 등 이전 대회 8강과 브라질 월드컵 16강까지 갔던 그리스의 예전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결국 조 1,2위는 각각 북아일랜드와 루마니아가 차지하였고 플레이오프 티켓은 헝가리에게 돌아갔다.

더불어 베일이 이끄는 웨일즈 역시 쉽게 무너지지 않는 모습을 보이며 24강에 합류하였다. 벨기에,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와 같은 조에 편성이 되어 3위인 플레이오프행이 점쳐졌으나, 조별예선에서 짜임새 있는 수비와 베일을 중심으로 한 공격진의 완성도 높은 공격을 보이며 한 때 1위까지 차지하였고, 결국 벨기에에 이어 조 2위를 확정지었다.

또한 알바니아는 북유럽의 강팀인 덴마크와 동유럽 최강의 팀 세르비아를, 슬로바키아는 우크라이나를 밀어내고 조 2위를 차지해 유로컵 처녀출전의 꿈을 이뤘다.

‘역사’가 만들어준 더비 매치의 향연

현지 시각 11월 17일에 플레이오프까지 마무리 되어 24강 국가들이 모두 확정되었다. 사상 처음으로 24개국이 유로 본선에 참여하기 때문에 시드 분배를 하는데 있어 강팀과 약팀이 비교적 명확하고 세부적으로 갈렸기 때문에 본선 조 추첨에서도 눈에 띄는 죽음의 조는 탄생하지 않았으나, 역시 조 추첨 결과로 인해 유럽 국가들의 역학관계에 따른 뒷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눈에 띄는 구도는 폴란드-독일이 같은 조에 편성되어 있는 것이다. 1,2차 대전을 거치며 서로에게 적대적인 관계가 형성된 양국은 이후에도 축구경기를 할 때면 양국의 훌리건들이 날뛰기로 유명하다. 2006년 월드컵 당시 같은 조면서도 개막전 경기였던 두 나라의 맞대결은 경기가 있기 전인 2006년 6월 15일에 무려 300명의 양 측 훌리건들이 체포되기도 하는 등 늘 돌발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 경기다. 게다가 최근에는 폴란드가 독일을 잡기도 하는 등 객관적인 지표만으로 결과를 예상하기 어렵다.

독일과 폴란드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루카스 포돌스키 ⓒ Steindy
독일과 폴란드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루카스 포돌스키 ⓒ Steindy

같은 조는 아니지만 축구팬들이 기대하는 라인업 역시 다수 존재한다. 유럽의 강호들 사이에서도 가장 강팀으로 분류되는 팀인 독일은 적이 많다. 앞서 언급했던 폴란드 외에도 스페인을 필두로 한 유럽의 축구강호들에게 제1 목표는 독일이다.

2014년 월드컵을 우승했으며 최근 유로에서도 우수한 성적을 보여줘 이번 대회 우승후보 1순위이기 때문에 견제 세력이 다수 포진해있다.  하지만 이런 독일에게도 천적관계가 있다. 바로 이태리다. 독일은 무려 18년간 단 한번도 이탈리아에게 이기지 못했으며 국제대회에서는 8전 4무 4패라는, 이름값에 어울리지 않는 경기력만 보이며 아주리 징크스를 이어갔다.

이런 징크스는 잉글랜드에게 역시 존재한다. 잉글랜드는 이름값으로는 분명 세계에서 손꼽을수 있는 강팀이지만 유독 상대적으로 약한 팀이 있다. 바로 바이킹의 후예, 스웨덴이다. 바이킹 징크스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잉글랜드 선수들은 스웨덴 선수들 앞에서 고양이 앞의 쥐마냥 작아졌다.

이는 1968년부터 무려 38년간 이어졌으며 이 기간동안 잉글랜드는 고작 5승 8무를 기록하는데 그쳤다. 그러나 그 이후 잉글랜드는 달라지고 있다. 2011년 친선경기에서 가레스 배리의 결승골에 힘입어 1:0 신승을 거둔 이후 유로2012 조별예선에서 역시 3:2 펠레스코어를 기록하는 등 바이킹 징크스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그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인 2012년 말 다시 스웨덴에게 충격적인 4:2 대패를 기록했으며 이 날 오버헤드킥을 넣은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는 이 골로 그 해 푸스카스상을 거머쥐기도 했다.

북아일랜드와 잉글랜드, 웨일즈의 집안싸움도 흥미롭다. 전통의 명가 잉글랜드는 늘 지역예선을 쉽게 뚫고 올라오지만 본선에서 만족할만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특히 황금세대라고 평가받던 유로2004때는 포르투갈에게 일격을 맞고 8강에서 짐을 싸는 등 늘 이름값을 못하기로 유명했다.

하지만 이번 유로에서는 젊은 피의 수혈과 베테랑 선수들의 조화를 바탕으로 더 높은 곳까지 바라보는 중이다.  이런 잉글랜드를 늘 아니꼽게 보는 나라가 바로 같은 영연방임에도 국제대회에서는 모습을 찾기 힘들었던 북아일랜드와 웨일즈다.

특히 북아일랜드는 기본적으로 오랜 분쟁의 역사를 지니고 있기에 잉글랜드와 축구를 할 때면 늘 전투적으로 경기에 임한다. 수백년에 걸친 케케묵은 갈등은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으며 아일랜드 독립군인 IRA는 2005년 공식적으로 무장해제를 선언했으나 여전히 강경파들에 의한 위험요소가 남아있다. 이렇게 남아있는 앙금들은 축구경기에서도 서로를 죽일듯이 뛰는 선수들을 통해 확인 가능하다.

처녀 출전국인 알바니아 역시 지리적, 역사적 라이벌이 유럽 내에 다수 있다. 특히 코소보 사태를 매개로 현재 세르비아와는 서로 등을 돌린 상태. 유로 예선에서 같은 조에 편성되어 경기를 치를 당시 세르비아 선수들이 알바니아 관중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며 경기가 중지될 정도였다.

결국 이 경기를 알바니아가 몰수승으로 승점 3점을 가져갔고, 이 경기는 후에 알바니아가 사상 첫 유로 본선에 오르는 중요한 디딤돌이 됐다. 다행히도 예선에서 알바니아와 대립각을 세우는 나라들이 다 탈락해 폭력사태에 대한 우려는 없다.

이와는 반대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경기는 거의 ‘일어나서는 안 될’ 경기 중 하나로 취급받는다. 근래 우크라이나에서 비롯된 친러 분리주의로 인해 크림반도가 정치적으로 러시아의 손에 넘어가게 됐고 이후에는 우크라이나에서 내전의 상황까지 발생했으며, DPR/NPR이 러시아의 대리임무를 수행하며 공식적으로는 휴전을 했으나 비공식적으로는 ‘돈바스 전쟁’이 펼쳐지는 중이다. 이로 인해 역대 어느 때보다 양 국가간의 국민적 정서가 극에 달해있어 만약 본선에서 두 나라가 맞붙게 된다면 유혈사태가 벌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존재한다.

그래서, 우리는 왜 유로컵에 열광할까?

유로컵이 축구팬들에게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단 하나일 것이다. 바로 ‘스토리텔링’이다. 단순히 축구만 따지자면 남미에서 열리는 대회인 코파 아메리카 역시 유로컵 만큼의 인기를 얻었을 것이다. 하지만, 코파 아메리카보다 유로컵이 더 인기가 많은 이유는 아마 ‘스토리텔링’의 우위를 점하고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물론, 해외 중계 기술의 발달로 인해 예전보다 유로컵을 즐기기 훨씬 쉬워졌다는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미디어의 홍수 속에서도 매력적인 콘텐츠가 없다면, 유로컵이 지금과 같은 인기를 한국에서도 자랑할 수 있었을까?

독일과 폴란드가 맞붙는다면, 자연스럽게 루카스 포돌스키에게 많은 관심이 쏟아지고, 알바니아가 첫 승을 거둔다면 또 다시 스포트라이트가 그들에게 향할 것이다. 게다가 유로컵에 출전한 모든 국가들은 각자의 사연을 다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대회보다 유로컵이 재밌는 것이다.

이제, 유로컵이 다가온다. 수많은 스타들이 단 한 팀만이 차지하는 우승컵을 향한 여정에 돌입한다. 우리는 그들을 보고 열광하고, 밤을 새워 그들을 기다릴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만들어내는 스토리텔링에 대해서도 한 번 쯤은 생각해보자. 우리 역시 유로컵 못지 않은 대회를 직접 즐길 수 있는 날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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