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넥센 히어로즈 홈페이지

모든 선수가 잘 할 수는 없다. 팀에서 선수의 실력이 부족하다고 해서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프런트의 우두머리가 흔들리고 구단 자체가 존폐 위기라면 그 구단에게 희망은 존재할까?

이장석의 그늘 아래
지난 6일 검찰은 투자금 사기와 횡령ㆍ배임 혐의로 넥센 히어로즈의 구단주 이장석(51)에게 징역 8년을 구형했다. 동시에 남궁종환(48) 부사장에게도 같은 혐의로 6년을 구형했다. 아직 실형이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그렇지 않아도 재정난에 허덕이던 넥센은 큰 위기를 맞았다. 구단 고위 관계자가 구속 위기에 처한 상황 아래 구단이 멀쩡하게 돌아갈 리가 없다. 검찰의 구형은 시즌이 끝난 이번 달 초에 내려졌지만 혼란은 올 시즌 내내 지속되어 왔다.

넥센은 이름만 넥센 타이어의 이름을 빌려왔을 뿐 다른 팀처럼 대기업 주체로 운영되는 구단이 아니기 때문에 항상 팀의 재정을 고려해야 했다. 창단 이후 몇 번의 트레이드에는 현금이 얽혀있는 것이 아니냐는 소문이 무성했다. 그리고 올해, 이런 소문들이 극에 달해 시즌 내내 현금 트레이드나 구단 재정과 관련된 ‘카더라’가 끊이지 않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선수들과 코칭스태프 역시 불안하긴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매년 계속되는 주전 이탈 속에서도 특유의 화수분 야구로 순위를 지켰던 넥센은 올해 결국 7위까지 순위가 쳐졌다. 힘든 상황에도 꾸준히 5할 이상의 승률을 지켰던 넥센은 9월 이후 자멸하며 5강 싸움에서 멀어졌다. 최종 성적은 69승 73패 2무(승률 0.486)로 6위 LG 트윈스보다 0.5게임 차 뒤지며 7위를 기록했다.

넥벤져스, 다시 출사표를 던지다
최근 몇 년간 넥센은 리그에서 ‘넥벤져스’라 불리는 최강의 타선을 자랑했다. 박병호, 강정호를 필두로 서건창, 유한준 등 막강한 타자들이 상대 투수들을 압박해왔다. 그리고 올해, 과거만큼의 화력을 갖추진 못했지만 젊은 타자들이 선전했고 득점 전체 3위에 올랐다. 이들은 넥벤져스의 부활을 예고했다.

올해 넥센 최고의 히트 상품을 꼽자면 첫 번째로 떠오르는 선수가 바로 슈퍼루키 이정후다. 이정후는 1998년생으로서 고졸 신인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의 활약을 보여줬다. 시즌 초반에는 여러 타순을 거치며 순조롭게 프로 무대에 적응해 갔고 6월 이후로는 줄곧 1번 타석에서 팀의 공격을 이끌었다. 이정후는 데뷔 첫해에 144경기 전 경기 출장해 역대 신인 최다 안타(179), 최다 득점(111) 기록을 갈아치웠다. 이종범의 아들이란 점이 본인에게 부담으로 다가왔음에도 잘 이겨내 역시 남다른 유전자를 갖고 있음을 입증했다. 이정후는 곧바로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APBC) 국가대표에 선발되어 리드오프로 활약했다. 미래가 더욱 기대되는 선수임이 분명하다.

이정후가 팀 공격의 시작을 열었다면 중심타선에는 김하성과 마이클 초이스가 있었다. 김하성은 시즌 중반부터 줄곧 4번 타자로 나섰고 제 역할을 다 해냈다. 대니 돈을 대신해 7월 말 합류한 초이스는 짧은 기간 동안 임팩트 있는 활약을 보여줬다. 주로 3번 타자로 출장했고 46경기에 나와 홈런 17개, 타점 42개를 때려냈다. 타율-출루율-장타율은 0.307-0.388-0.653으로 장타력에서 강점을 보였다. 22일 공식적으로 재계약이 발표되면서 내년에도 이 둘을 함께 볼 수 있게 됐다.

리드오프와 중심타선을 이어주는 역할은 서건창이 훌륭하게 소화했다. 타율 0.332는 MVP를 받았던 2015년에 이어 개인 통산 두 번째로 높은 타율이었고 76타점은 개인 최고기록이다. 또한, 좋지 않은 팀 분위기 속에서도 주장으로서 팀을 이끌었다. 그밖에도 김민성, 고종욱 등이 꾸준히 출전하며 팀 타선에 보탬이 됐다.

불안한 투수진, 그 속에서 떠오른 토종 에이스
이번 시즌에도 넥센의 투수진은 좋다고 말하기 어려웠다. 팀 방어율 5.06으로 전체 7위를 기록했다. 지난 시즌 신인왕 신재영은 혹독한 2년 차를 보냈고 2년 만에 돌아온 조상우는 다시 통증을 느끼며 제대로 나오지 못했다. 지난 시즌 세이브왕 김세현은 깊은 부진의 늪에 빠졌고 트레이드 마감 직전에 KIA 타이거즈로 팀을 옮겼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만 20세 최원태가 팀의 희망으로 떠올랐다. 최원태는 4월 5경기에서 평균 7이닝을 소화하며 팬들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이후에도 좋은 활약으로 팀 선발진의 새로운 에이스가 됐고 11승으로 프로 2년 차에 두 자릿수 승수를 올리는 데 성공했다. APBC 국가대표로 뽑히기도 했지만 시즌 막판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아쉽게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을 수는 없었지만 차기 국가대표 선발 투수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한 해였다.

넥센은 110만 달러를 주고 야심 차게 외국인 투수 션 오설리반을 영입했다. 하지만 오설리반은 단 3경기를 던지고 퇴출되어 금방 짐을 싸게 됐다. 대신해서 합류한 제이크 브리검이 기대 이상으로 빈자리를 잘 메꿔줬다. 브리검은 5월부터 경기에 나왔음에도 팀에서 최원태에 이어 두 번째로 10승을 달성했다. 그리고 딱 144이닝으로 아슬아슬하게 규정이닝 진입에 성공했다. 3점대 평균자책점으로 시즌을 마무리하나 싶었으나 마지막 경기에서 NC 다이노스를 상대로 2.2이닝 8자책으로 무너졌다. 이 경기로 평균자책점은 훌쩍 뛰어 4.38을 기록했다. 내년에도 브리검은 넥센에서 뛰게 됐다.

팀의 마무리 자리는 변화가 심했다. 지난 시즌에 이어 김세현이 마무리로 시작했으나 크게 부진했다. 이후 이보근, 김상수, 한현희가 돌아가며 뒷문을 지켰다. 그중에서도 김상수가 15세이브로 팀 내 가장 많은 세이브를 기록했다. 팀 불펜에서 3점대 방어율을 기록한 것도 김상수가 유일했다. 한현희, 신재영은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각각 100이닝 이상 소화했다.

시즌 MVP: ‘소년가장’ 김하성
김하성은 올해 넥센 타선에서 가장 빛난 선수였다. 작년에 이어 20-20을 달성하는 데는 실패했지만 타격 전반적인 부분에서 개인 커리어 최고의 성적을 거뒀다. 김하성은 5월까지 2할 중반대 타율에 머물며 부진했지만 여름이 시작되고 서서히 타격감을 끌어올렸다. 8월에 3할대 타율에 진입했고 비슷한 타율을 유지하다가 0.302로 시즌을 마무리하며 개인 첫 3할을 달성했다. 홈런 역시 23개로 개인 최다였고 볼넷은 예년과 비슷했으나(15-16-17: 56-60-58) 삼진이 크게 줄었다(115-80-65).

8번 타자로 시즌을 시작한 김하성은 상황에 따라 여러 타순을 오갔고 타격감이 살아난 6월부터 4번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4번 타자 김하성은 주자가 있을 때 더욱 빛났다. 주자가 없을 때 더 많은 타석에 들어섰지만 홈런은 주자가 없을 때(8)보다 있을 때(15) 더 많았다. 특히 득점권 타율-출루율-장타율은 0.357-0.448-0.656 10홈런으로 맹타를 휘둘렀다. 득점권에서 좋은 성적을 바탕으로 개인 최다이자 리그 4위 기록에 해당하는 114타점을 기록했다. 김하성은 만 22세의 젊은 나이에 4번 타자로서 팀의 중심을 지켰다.

불투명한 미래, 넥센의 내년 시즌은?
넥센은 내년 시즌 역시 희망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현재도 어렵지만 팀 사정상 영입을 통해 전력 보강이 이루어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22일 열린 2차 드래프트에서도 한 명도 지명하지 않았고 오히려 강지광(SK), 금민철(kt), 김건태(NC), 장시윤(LG)이 다른 팀에 지명을 받아 팀을 떠났다. 지금껏 내부 육성을 통해 선수단을 잘 꾸려왔지만 언제까지 좋은 선수들이 계속 등장한다고 보장할 수는 없다.

이제 장정석 체제 2년 차를 맞이하게 된다. 장 감독은 염경엽 감독(現 SK 단장)과 마찬가지로 비 스타플레이어 출신, 프런트 출신 감독이다. 1년 차만 놓고 봤을 때 염 감독에 비해 좋은 성과를 만들어 내지 못했다. 하지만 그때는 박병호도 있었고 강정호도 있었다. 구단이 적극적으로 지원해도 모자랄 판에 구단에 지원을 기대할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히어로즈도 어느새 내년이면 창단 11년 차로 슬슬 우승에 목이 탈 것이다. 여력이 안 되는 구단주가 계속 팀을 이끄는 것이 맞는지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영재 기자
leeyj8492@siri.or.kr
[2017-11-23, 사진= 넥센 히어로즈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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