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런은 야구의 꽃이라고 불린다. 그리고 이번 시즌 문학에선 꽃이 만발했다.
SK의 2017년
6번째로 만나볼 팀은 이번 시즌 5위를 차지한 SK 와이번스다. SK는 2년 만에 다시 5위로 와일드카드에 진출했지만 이번에도 1경기 만에 포스트시즌이 끝났다. 올 시즌을 앞두고 SK는 감독과 단장이 모두 바뀌었다. 지난 2년간 김용희 감독이 팀을 이끌었지만 재계약이 불발됐다. 그리고 구단 역사상 처음이자 제리 로이스터(前 롯데 자이언츠)에 이어 KBO 역사상 두 번째 외국인 감독이 탄생했다. 과거 일본 프로야구에서도 감독 경험이 있었던 트레이 힐만이 감독 자리에 올랐다. 민경삼 단장이 떠난 자리는 지난 시즌 넥센 히어로즈 감독이었던 염경엽이 대신했다. 지난 몇 년간 중위권에 머물렀던 SK의 파격적인 행보였다.
FA였던 김광현은 팀에 남았지만 수술과 재활로 이번 시즌을 통째로 뛸 수 없었다. 팀의 토종 에이스가 부재한 상황 속에서 SK는 시즌을 시작했다. 개막 후 6연패에 빠지는 등 최악의 모습으로 시즌을 시작했지만 4월 7일이 반등의 분수령이 됐다. SK는 KIA 타이거즈와 4:4 대형 트레이드를 시행했다. 이홍구-노수광, 이명기-김민식을 주축으로 양 팀은 4명씩 선수를 맞교환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봤을 때 이 트레이드는 양 팀 다 이득을 본 윈윈 트레이드로 꼽힌다. 팀을 옮긴 선수들은 각자 팀의 가려운 구석을 긁어주는 역할이 됐다. SK는 트레이드 이후 가파른 상승세를 탔고 4위로 4월을 마쳤다. 이후 넥센 히어로즈에 김성민을 내주고 김택형을 데려오는 트레이드가 한 차례 더 있었지만 김택형은 재활로 이번 시즌 팀 전력에 보탬이 되진 못했다.
이번 시즌 SK는 펜스까지의 길이가 짧은 홈구장의 이점을 살려 홈런 야구의 진수를 보여줬다. 하지만 불펜은 크게 흔들렸고 홈런으로 점수를 내도 후반에 뒤집히는 양상이 많이 나왔다. 이런 SK의 상황을 가장 잘 보여준 경기가 바로 7월 5일 열렸던 KIA와의 홈 경기다. SK는 이날 4회까지 12:1로 앞섰지만 5회 초에만 12점을 실점하며 역전당했다. 이후에도 치고받는 양상 속에 가까스로 18:17 승리를 거뒀다. 이날 양 팀 합쳐 10개의 홈런이 나왔다. 이렇게 많이 치고 많이 얻어맞는 경기가 시즌 내내 지속됐다.
SK는 전반기를 3위로 마감했으나 이후 조금 내려앉아 시즌 막판까지 넥센, LG와 치열하게 5위를 놓고 싸웠다. 결국 최종 성적 75승 68패 1무(승률 0.525)로 마지막 가을야구 티켓을 따내는 데 성공했다. 가까스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으나 와일드카드 경기는 싱겁게 끝났다. 시즌 내내 좋은 모습을 보여주던 에이스 메릴 켈리가 쳣 경기에서 무너지면서 NC에게 패배했다. 시즌은 길었지만 SK에겐 너무나도 짧은 가을이었다.
치면 넘어간다: 역대급 홈런 공장
이번 시즌 SK는 역대 한 시즌 팀 홈런 1위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종전 1위였던 2003년 삼성(213개)를 넘어 234개의 홈런을 때려냈다. 올 시즌만 놓고 봤을 때는 더 압도적이다. 2위 두산(178개)보다도 훨씬 많은 홈런을 기록했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홈런에 비해 득점력이 뛰어났던 것은 아니다. 팀 타율은 전체 10위였고 팀 득점은 5위였다. 정교함은 다소 부족했다.
홈런 타선의 선봉장이 됐던 선수가 바로 최정이다. 최정은 4월에만 12개의 홈런을 때렸고 이후 6월에도 마찬가지로 12개를 쳤다. 리그 홈런 순위 1위는 단연 최정이었다. 최정은 2년 연속 홈런왕이 됐다. 그리고 한동민이 최정 뒤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줬다. 입대 전, 그리고 상무에서도 펀치력을 인정받았던 한동민은 정교함까지 더해져 어김없이 자기 능력을 발휘했다. 8월 초에 안타까운 부상으로 시즌을 조기에 마감했지만 홈런을 29개나 때려내며 존재감을 보여줬다. 홈런 29개는 역대 규정타석을 채우지 못한 선수 중 최다 기록에 해당한다.
부상으로 방출된 외국인 타자 대니 워스를 대신해 시즌 중간에 합류한 제이미 로맥은 SK의 팀 색깔과 가장 잘 어울렸다. 로맥은 전형적인 공갈포 유형으로 정확도가 부족했지만 선구안과 힘이 좋았다. 타율은 0.242로 낮았지만 시즌을 5월에서야 시작했음에도 홈런을 31개나 때려냈다. 전체 안타 87개 중 반 이상인 50개가 장타였다. 재계약에 성공한 로맥은 풀타임으로 시즌을 소화했을 때 홈런을 몇 개나 때려낼지 궁금하다.
해외 진출 이후 지난 시즌에 처음으로 한국 무대에 데뷔한 김동엽은 작년의 인상적인 활약을 이어갔다. 작년보다 비율 기록은 좋지 않았으나 첫 풀타임을 소화했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김동엽은 규정타석을 채우진 못했지만 주로 중심타선에 나와 22홈런 70타점으로 팀 타선에 힘을 더했다. 나주환은 본업인 유격수 자리로 돌아와 오랜만에 규정 타석을 채웠다. 두 자릿수 홈런이 딱 한 번 있었던 나주환은 19홈런으로 개인 최다기록을 세웠고 타율, 안타, OPS 등 전반적인 타격 부문에서 개인 최고 성적을 기록했다.
포수 자리는 이재원이 주로 맡았다. 하지만 이재원은 주전으로 활약한 이래 가장 부진한 성적으로 본인의 장기인 타격을 살리지 못했다. 그러면서 포수 마스크를 KIA에서 온 이성우, 이홍구와 나눠 꼈다. 셋 중 이홍구가 가장 적은 100타석을 소화했고 저조한 타율을 기록했지만 17개의 안타 중 홈런만 10개였다. 세 선수 합쳐 포수 자리에서 20개의 홈런이 나왔다. KIA에서 온 또 다른 한 명, 노수광은 주로 팀의 리드오프 역할을 했다. 상위 타선치고, 그리고 작년보다 좋지 않은 성적이었다. 첫 풀타임이었고 후반기에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준 것으로 보아 개선될 여지는 있다.
정의윤은 시즌 초반에 부진했으나 여름 이후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5월 중순까지 2할대 초반의 타율로 부진해 1군에서 말소됐다. 하지만 6월에 다시 1군으로 올라온 이후 원래의 타격감을 되찾았고 3할 2푼대 타율로 시즌을 마감했다. 작년보다 장타는 줄었으나 정교함이 살아났다. 그 밖에도 정진기, 박정권 등이 홈런 군단에 포진했고 올 시즌 SK는 두 자릿수 홈런을 친 선수만 9명이었다.
고장 난 자물쇠, 헐거웠던 뒷문
SK의 올 시즌 최대 약점은 단연 불펜이었다. 경기 후반에 불펜이 무너져 승리를 내주는 경우가 잦았다. 기록상으로 봤을 때도 팀 블론세이브가 22개로 리그 최다였다. 시즌 내내 고정된 마무리 없이 컨디션에 따라 돌아가며 뒷문을 막았다. 실제로 팀 평균자책점은 5.03으로 리그 평균(4.98)보다 약간 높은 정도였지만 극적인 패배가 많았던 만큼 체감은 더 좋지 않았다.
흔들리는 투수진 속에서도 기둥이 된 선수가 바로 메릴 켈리다. 켈리는 탈삼진 부문 리그 전체 1위 투수로서 리그에서도 손꼽히는 에이스다. 그동안 좋은 성적에 비해 승수를 많이 챙기지 못했던 불운의 투수였지만 올 시즌엔 16승을 기록했다. 지난 두 시즌보다 9이닝 당 볼넷 개수(2.13)는 줄었고 9이닝 당 탈삼진 개수(8.95)는 늘었다. 지난달에 재계약 역시 순조롭게 완료됐다. 켈리는 이미 역대 팀 외국인 선수 중 최고다. 나이는 내년에 만 30세로 아직 몇 년간 좋은 기량을 더 유지할 수 있다. 해외 진출이라는 변수가 아니라면 팀의 전설로 향하는 길은 탄탄대로다.
지난 2년 동안 SK는 켈리와 함께 짝을 이룰 외국인 투수 영입에 골머리를 앓았다. 최상은 아니었지만 스캇 다이아몬드는 그 몫을 어느 정도 했다. 부상으로 24경기, 134.1이닝을 소화하는 데 그쳤지만 4점대 평균자책점과 10승으로 준수한 활약을 했다. 다만, SK가 재계약을 포기하면서 내년 시즌에도 함께할 수는 없게 됐다. 김광현이 빠진 토종 에이스 자리는 박종훈이 채웠다. 2015년부터 꾸준히 선발 기회를 받은 ‘잠수함 투수’ 박종훈은 올 시즌 꽃을 피웠다. 12승으로 생애 첫 두 자릿수 승수를 기록했고 이닝, 삼진, 평균자책점 역시 개인 최고 성적이다. 그간 가장 큰 문제였던 제구력은 개선되어 작년과 비교했을 때 볼넷 허용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문승원은 팀 내에서 켈리 다음으로 많이 선발 등판한 투수다. 올 시즌 6승 12패로 승보다 패가 2배 더 많았지만 전반적으로 지난 시즌보다 한결 좋아진 모습이었다. 처음으로 규정이닝을 채웠고 평균자책점도 많이 낮아졌다. 다만 리그 전체 1위였던 피홈런(25개)을 줄이는 것이 내년 시즌의 숙제다. 남은 선발 한 자리는 윤희상이 주로 맡았다. 윤희상은 평균자책점을 제외하고는 작년과 비슷한 성적이었다. 하지만 주자가 나가 있을 때는 작년과 많이 달랐다. 잔루율이 73.8%에서 올해 63.1로 줄었다. 그러면서 방어율은 4점대에서 6점대로 치솟았다. 아쉬움이 남는 시즌이었다.
불펜에선 지난 시즌 마무리 박희수가 무너졌다. 박희수는 마무리가 아닌 중간 계투로 시즌을 시작했다. 이후 잠시 마무리 보직을 맡기도 했지만 이전에 보여줬던 위력은 없었다. 38이닝 동안 홈런을 8개나 허용했고 피안타율로 3할대로 치솟았다. 그러면서 6점대 평균자책점으로 시즌을 마감했다. 그 속에서 박정배가 불펜의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16개의 홀드는 팀 내에서 가장 많았고 종종 마무리를 맡기도 했다. 만 35세의 나이에도 불펜으로만 61경기 출전해 68이닝을 소화했다. 많은 이닝을 소화하면서도 3.57의 평균자책점으로 40이닝 이상 소화한 팀 내 투수 중 1위다.
가장 많은 이닝을 책임진 구원 투수는 올해 2년 차 김주한이다. 김주한은 63경기 나와 69.2이닝을 소화했는데 둘 다 팀 내 불펜 중 1위에 해당한다. 다만 성적은 데뷔 시즌이었던 작년보다 좋지 않았다. 9이닝 당 볼넷 허용은 크게 늘었고(2.12 -> 4.13), 9이닝 당 탈삼진은 오히려 줄었다(7.58 -> 5.81). 김주한 역시 시즌 도중에 마무리 보직을 맡았다. 하지만 5개의 세이브를 올리는 동안 블론세이브 역시 5개를 기록하며 팀의 승리를 지키지 못할 때가 많았다.
올 시즌 SK의 첫 마무리 투수는 서진용이었다. 하지만 서진용은 마무리로 등판한 첫 경기부터 블론세이브를 기록했고 이후에도 여러 차례 같은 상황이 반복됐다. 결국 마무리 자리에서 내려왔고 3세이브 6블론세이브를 기록했다. 서진용은 적은 점수 차일 때 유독 불안한 모습을 보여줬다. 3점 차 이내일 때 서진용은 피안타율 0.348, 피OPS 0.960으로 필승조로서는 매우 불안했다. 반면 5점 차 이상일 경우엔 피안타율 0.111, 피OPS 0.409로 타자들을 압도했다. 이에 따라 5점 차 이상일 때만큼은 오승환이라며 ‘5승환’이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하지만 여전히 서진용은 내년 시즌 마무리감으로 뽑힌다. 최고 구속 153km의 강속구를 앞세워 삼진 능력만큼은 매우 뛰어나다. 긴박한 상황에서도 좋은 성적을 유지할 수 있다면 마무리 자리에 충분히 오를 수 있는 선수다.
그 밖에도 임준혁, 채병용, 신재웅 등 여러 선수들이 중간 투수로 나왔다. SK가 불안한 불펜이 해소된다면 충분히 다시 대권을 노려볼 수 있다.
시즌 MVP: ‘소년 장사’에서 팀의 가장으로, 최정
두말할 것도 없이 올 시즌 SK의 MVP는 최정이다. 최정은 리그 전체에서 MVP를 받아도 손색없는 활약을 보여줬다. 실제로 MVP 투표에서도 양현종에 이어 2위에 올랐다. 팀에서 가장 많은 경기에 출전했고 안타, 홈런, 타율, 출루율, 장타율 등 거의 모든 부문에서 팀 내 1위를 기록했다.
작년에 이어 2년 연속 홈런왕을 기록했고 정교함은 더해졌다. 규정 타석 기준 2013년 이후 오랜만에 3할 타율에 복귀했고 OPS는 처음으로 1.000을 넘었다. 타율-출루율-장타율의 소수점 첫 자리가 3-4-5일 때 이상적이라고 하지만 최정은 3-4-6이었다. 타-출-장 0.316-0.427-0.684를 기록했고 장타율과 OPS는 리그 1위였다. 몇 년 전까지 최정은 꾸준히 두 자릿수 도루를 기록할 만큼 도루에도 소질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타격에만 집중하고 있고 그에 따라 타석에서 투수에게 더 큰 위압감을 주고 있다.
국내 3루수 계보에서 최정은 이미 전설의 반열에 올랐다. 통산 성적으로 봤을 때 역대 3루수 중 가장 높은 WAR을 기록하고 있는 것은 김동주(66.35)고 최정(56.58)은 2위를 달리고 있다. 하지만 순수 3루수로서 평가했을 때는 다르다. 김동주는 지명타자로 출전한 경우도 많기 때문에 이 경우에는 커리어 대부분을 3루수로 출전한 최정(56.04)이 1위에 올라선다. 아직 올해 만 30세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앞으로도 누적될 기록은 남아있다. 현재 통산 홈런 개수는 271개로 큰 변수가 없다면 300홈런은 확실히 넘을 것으로 보이고 400홈런도 충분히 노려볼 수 있다.
최정은 내년 시즌 이후 두 번째 FA 자격을 얻게 된다. 이런 활약이 내년에도 이어진다면 몸값이 폭등하고 있는 시장 속에서 어떤 규모의 계약을 맺을지도 큰 관심사다.
2018년, 이제는 대권을 향해
SK는 7일 FA 정의윤과의 재계약을 완료했다. 이번 겨울 FA를 통한 영입은 없지만 전력은 업그레이드될 예정이다. 일단 가장 큰 변화는 ‘에이스’ 김광현의 복귀다. 성공적으로 수술을 마치고 재활 중인 김광현은 내년 시즌 2년 만에 마운드에 설 예정이다. 물론 복귀 첫 시즌인 만큼 풀타임을 소화할 수 없고 팀은 최대 110이닝으로 제한한다고 밝혔다. 100이닝 내외로 등판한다고 하더라도 김광현의 존재감은 무시할 수 없다. 예년과 비슷한 공의 위력을 보여준다면 팀 전력에 분명 큰 보탬이 될 것이다.
새로 합류한 외국인 투수 앙헬 산체스도 기대해볼 만 하다. 메이저리그 경험이 거의 없는 투수지만 공은 위력적이다. 이번 시즌 산체스의 포심 평균 구속은 155km에 달했다. 이번 시즌은 줄곧 불펜으로 나왔다는 점이 걸리지만 SK는 40인 명단에 든 선수를 바이아웃으로 영입했을 만큼 산체스의 가능성을 믿고 있다. 실제로 한국과 일본에서 여러 구단에 산체스 영입에 참전했고 SK가 승리했다. 여러 팀이 관심을 가졌다는 데엔 이유가 있다.
힐만 감독과 염경엽 단장은 2년 차를 맞이한다. 힐만 감독은 KBO에 성공적으로 적응했다. 힐만 감독은 니혼햄 파이터스 시절에 부진했던 1년 차에 비해 2년 차에 더 좋은 성적을 거뒀고 4년 차에는 일본시리즈 우승까지 경험했다. 이번 시즌이 KBO 적응, 그리고 선수단 파악이었다면 내년에는 성적이다. 내년 시즌 SK는 충분히 5위, 그 이상을 노려볼 수 있다.
이영재 기자
leeyj8492@siri.or.kr
[2017-12-08, 사진= SK 와이번스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