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RI=김귀혁 기자] 파울루 벤투 감독의 한국 축구 대표팀이 15일(한국시각) 오스티리아 빈의 비너 노이슈타트슈타디온에서 펼쳐진 멕시코와의 평가전에서 2-3으로 패배했다.

초반 황의조의 선제골로 기분 좋게 출발한 한국이었지만, 멕시코의 강한 압박에 여러 차례 약점을 노출하며 결국 후반 22분부터 5분도 안 되는 사이 3골을 내주며 역전을 허용했다. 후반 42분 권경원의 추격 골이 터졌지만 추가 골을 내는 데 실패했다.

이번 경기가 끝나고 여러 커뮤니티가 들썩였다. 스코어로만 보면 박빙의 경기였던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3골 이상의 실점이 나와도 할 말 없는 경기였다. 벤투 감독이 강조하는 후방 빌드업 전개 과정에서 멕시코의 강한 압박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일각에서는 지난 2019년 아랍에미리트에서 열린 아시안컵부터 노출한 약점을 물고 늘어지며 경질을 주장하기도 한다.

어디선가 많이 본 시나리오다. 매번 월드컵 2~3년을 앞두고 좋은 경기력이 나오지 못했을 때 팬들의 외침이다. 월드컵 이후에 나와야 할 평가가 이미 훨씬 전부터 나오고 있다.

괄목할만한 성과를 냈던 2002년과 2010년 월드컵에서의 공통점은 감독의 재임 기간이 다른 월드컵 때보다 길었다는 점이다. 거스 히딩크 감독은 2001년 1월 1일부터 2002년 6월 30일까지 지휘봉을 잡으며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끌었다. 허정무호 역시 2008년 1월 1일부터 2010년 6월 30일까지 감독 자리에 있으면서 첫 원정 월드컵 16강이라는 성과를 일궈냈다.

반면 이 두 번의 월드컵을 제외하고 최근 월드컵에서 감독들의 재임 기간은 1년 남짓이다. 2006년 딕 아드보카트 감독이 2005년 10월 1일부터 다음 해 6월 30일까지 감독 자리에 올랐으며,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을 이끌었던 홍명보호와 2018년 러시아 월드컵의 신태용호 역시 1년 조금 넘는 기간 동안 감독 자리에 오르며 월드컵 무대를 이끌었다.

대표팀 감독과 클럽팀 감독은 엄연히 다르다. 클럽팀의 경우 한 시즌을 놓고 봤을 때 대부분의 기간을 선수들과 함께 훈련하며 지낸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본인의 전술적 색을 입혀 나가지만, 대표팀의 경우 1년에 몇 안 되는 A매치 기간에 소집하여 훈련이 가능하다. 당연히 클럽팀 감독보다 본인의 색을 입히는 데 더 오랜 시간이 걸린다.

2002년 이후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던 3번의 월드컵에서 감독들은 1년의 시간만을 부여받았다. 클럽팀 감독도 그들의 축구를 실현하는 데 보통 2년 차부터 시스템과 사고가 팀에 투영되는데, 고작 1년의 시간으로 성적을 바랐던 것이다.

이런 과거 덕택에 김판곤 국가대표 감독 선임 위원장은 당시 감독 선임을 앞두고 당장의 성적뿐만 아니라 장기적인 관점에서 한국 축구에 도움을 줄 만한 인물들을 선정해내는 데 주력했다. 그리고 그에 맞는 적임자로서 벤투 감독을 선택한 것이다.

특히 벤투 감독이 포르투갈 대표팀을 이끌고 유로 2012 4강 진출을 이뤄낸 성적뿐만 아니라, 선진적인 훈련 시스템과 각 분야 전문성을 갖춘 코칭 스태프진 등 한국 축구에 좋은 이상향을 제시할 것이라고 김판곤 위원장은 설명했다.

그뿐만 아니라 벤투는 부임 후 기자회견에서 후방에서부터 빌드업해나가며 많은 기회를 창출하는 점유율을 강조하며 본인의 축구 철학을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한국 축구의 방향성을 강조했다.

위에 상기했던 내용만으로도 현재 한국 축구는 기회를 잡고 있다. 아시아의 맹주라 자부하지만, 한국 축구는 세계의 시선에서 바라볼 때 여전히 중심에서 멀다. 그런 한국에 뚜렷한 축구 철학과 선진화된 시스템을 바탕으로 팀을 꾸려나가며 방향성을 제시 중인 벤투 사단에 대한 과도한 비난은 지양해야 할 필요가 있다.

경기 내용에 대한 비판은 팬으로서 충분히 가능하다. 그러나 비판의 요점을 정확히 맞추고, 전후상황도 살펴봐야 한다.

이번 평가전의 경우에도 수비 핵심인 김민재와 김영권, 박지수가 소속팀 차출 거부로 합류하지 못했고, 경기를 앞두고 권창훈, 이동준, 조현우, 황인범 및 스태프 1명이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이후 진행된 추가 검사에서도 나상호와 김문환까지 확진 판정을 받았고, 경기 시작 몇 시간 전에 진행 여부가 결정됐다.

벤투가 강조하는 전술의 핵심은 후방에서의 볼 전개와 더불어 윙백들의 전진이다. 그런데 이미 발밑 좋은 센터백인 김영권과 김민재가 합류하지 못했고, 홍철과 김진수도 각각 부상과 코로나 확진이라는 악재 속에 대체 발탁된 이주용만이 왼쪽 윙백을 소화할 수 있는 선수다. 오른쪽도 이용의 쇄골 부상과 함께 김문환의 코로나 확진 판정으로 이 자리에는 김태환과 A매치 경험이 없는 윤종규만 있었다. 벤투가 구상하고 있던 철학에 맞는 선수들을 기용하기 쉽지 않은 환경이었다.

결국 이날 수비는 권경원-정우영-원두재로 구성된 3백에 좌ㆍ우측 윙백은 이주용과 김태환이 도맡았다. 특히 중앙 수비 조합에서 전문 센터백은 권경원뿐이었다. 이 조합은 빌드업 과정에서 멕시코의 압박에 당황하며 여러 차례 기회를 내줬다. 경기 종료 후 멕시코에 무려 18개의 슈팅을 허용했다는 기록은 그만큼 많은 슈팅 찬스를 내줬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졸전 속에 비판은 당연하다. 그러나 평가전이라는 성격을 잊어버려서는 안 된다. 우선 상대는 피파 랭킹 11위의 강국이다. 객관적인 전력에서 분명 열세이며, 특히 이날 보여줬던 강팀을 만났을 때의 후방에서의 빌드업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향후 경기에서 찾는 것이 경기의 승리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일부 팬들은 해외 리그만을 보며 높아진 수준을 국가대표팀에 투영하여 바라보고, 이는 곧 요점 없는 비판으로 흘러간다. 평가전은 월드컵에 가기 위한 하나의 과정임에도 말이다. 이러한 이들이 부임 초기 프랑스와 체코에 5-0으로 패배했던 히딩크의 열렬한 지지자인 것도 재밌는 사실이다.

일부이기는 하지만 벤투 아웃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직 월드컵 시작은커녕 2차 예선도 끝마치지 못했음에도 말이다. 대안을 제시하라고 말하면 연령별 대표팀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김학범 감독과 정정용 감독을 이야기한다. 이렇게 주장하는 이들은 7년 전 그와 같은 배경에서 선임된 홍명보 감독의 사례를 잊어버렸나 보다.

물론 김학범 감독과 정정용 감독의 능력을 의심해서도 아니고, 홍명보 감독 역시 전후 맥락을 떠나서 전술했듯이 월드컵에서 성적을 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필자가 전하고자 하는 요지는 4년이라는 기간을 온전히 자신의 색깔과 플랜으로 월드컵 무대를 나서는 감독을 보고 싶다는 것이다.

설령 월드컵에서의 실패, 혹은 월드컵 진출 실패라는 결과가 나와도 평가는 그때 이뤄져야 한다. 우리에게는 양은 냄비 같은 여론이 아닌, 뚝배기 같은 진득한 인내가 필요하다.

김귀혁 기자(rlarnlgur1997@siri.or.kr)

[20.11.16, 사진 = KFA 공식 SNS]

 

 

LEAVE A REPLY

Please enter your comment!
Please enter your name he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