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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RI=황주희 기자, 김귀혁 기자] 남자 축구 사상 최초로 FIFA 주관 대회 결승에 진출한 2019 FIFA U-20 월드컵, 뒤이어 벌어진 2019 FIFA U-17 월드컵 8강 진출의 쾌거와 2020 AFC U-23 챔피언십 우승까지. 이 같은 성적은 K리그의 유스 시스템이 빚어낸 결과로 평한다. 10년 넘게 추진해온 유소년 시스템 육성의 결과가 서서히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K리그는 2000년대 후반부터 유소년 육성의 필요성을 깨닫고, 이를 체계화했다. 대표적으로 모든 구단의 유소년 시스템을 의무화했고, 2008년에는 ‘고교클럽 챌린지리그’라는 명칭으로 처음 출범하여 현재 ‘K리그 주니어’라는 이름으로 그 명목을 이어오고 있다. 2009년에는 전국 초중고 축구 리그가 창설되었다.

이와 같은 정책들과 더불어, 성인팀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2013년부터 만 23세 이하 국내 선수를 반드시 스쿼드에 등록하도록 하였으며, 2014년에는 2명, 그리고 2015년에는 2명의 의무 등록과 더불어 1명을 무조건 선발출전 시키도록 하였다. 2019년에는 이 연령을 만 22세 이하로 낮추었으며, 올해부터는 군경팀도 이 규정을 받도록 하였다. 2018년에는 준프로 계약 제도를 신설하여 각 구단 유스 출신의 고등학생들도 K리그 무대를 밟는 것이 가능해졌다. 대표적으로 수원의 오현규가 이 제도를 통해 K리그에 모습을 비췄다.



위에 상기한 내용은 분명 유소년 축구에 문외한이던 한국 축구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끼쳤다. 유망주들의 해외 진출이 늘어났고, 국제 대회에서도 굵직한 성과들을 냈다. U-20 월드컵에서 K리그 유스 출신은 12명에 달했고, 지난 1월 태국에서 치러진 AFC U-23 챔피언십에서도 유스 출신 선수들의 활약이 빛났다.

그러나 이 같은 성과에 가려진 채 어두운 이면도 존재한다. 바로 U리그 선수들의 설 자리가 부족해진다는 점이다. 그 구조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먼저 K리그 이적 시장의 변화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김종부 파동

1983년 창설한 K리그는 자유 계약 제도를 근간으로 운영했다. 그러다 1987년부터 드래프트 제도를 시행했는데, 그 배경에는 전 경남FC 감독이었던 김종부가 중심에 있다.

1983년 고려 대학교에 입학한 김종부는 FIFA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 4강 신화에서 핵심 멤버로 활약하며 당대 최고의 스타로 이름을 날렸다. 모든 클럽의 레이더망에 포착된 김종부는 당시 대우행을 희망했지만, 울산 현대가 고려 대학교에 엄청난 계약금과 파격 조건 등을 내걸며 김종부를 적극적으로 콜했다.

학교 측은 김종부의 현대행을 적극적으로 권했고, 결국 현대와의 가계약을 체결했다. 다음 날 현대는 언론에 이 사실을 알리며 사실을 공론화했다. 그러나 계약 체결 12일 만에 김종부는 현대가 계약 조항을 어긴 것과 함께 학교 측의 강요가 있었다는 이유로 현대가 아닌 대우 로얄즈로 가겠다고 선포하며 사건이 시작된다.

오랜 고생과 노력 끝에 김종부를 영입했다고 생각한 현대는 격분하며 그를 데려오지 못한다면 팀 해체까지 하겠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고려대 역시 김종부를 축구부에 제명하겠다고 통보한 뒤, 대한축구협회에 그의 이름을 말소시켰다.

이는 김종부 개인뿐만 아니라 32년 만에 월드컵 무대를 밟는 대표팀 입장에서도 엄청난 손해였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을 앞두고 축구협회로부터 선수 등록이 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김종부는 뛸 수 없었다. 그러나 청소년 월드컵에서 맹활약한 당대 최고의 스타를 데려가지 않은 것은 전력상 큰 손실이었다.

결국 일시적으로 월드컵 기간까지 김종부의 선수 등록 말소를 유보하기로 했다. 그리고 월드컵에서 김종부는 불가리아를 상대로 동점 골을 집어넣으며 대한민국 축구 사상 처음으로 월드컵에서의 승점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월드컵 종료 후에도 현대와 대우의 싸움은 계속됐고, 결정적으로 현대가 팀 해체를 선언하며 큰 파동을 불러일으켰다. 이로 인해 당시 최순영 대한축구협회장은 사퇴했고, 여러 중재 끝에 김종부를 대우나 현대가 아닌 제3의 구단으로 보내기를 합의했다. 결국 1988년 김종부는 포항 제철 아톰즈로 이적하였으나 이미 그의 몸과 마음은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포항에서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한 채 대우와 성남 등을 전전하다 결국 1995년 은퇴했다.

선수 의사와 상관없이 계약이 사실상 이루어진 점에서 현재의 자유 계약의 개념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 당시에는 자유 계약의 폐단이 드러났다는 명목으로 이를 폐지하고 1988년부터 드래프트 제도를 도입하게 된다.

 

#드래프트 제도

신인 선수 공개 선발 제도인 드래프트 제도가 시행된 지 4년째 만에 문제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 제도의 기본 토대는 직전 시즌 성적이 좋지 않은 순으로 지명권이 우선 부여되며, 선수는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지목받는 대로 그 팀에 입단해야 했다.

이로 인해 당대 최고의 스타였던 홍명보와 황선홍이 1991년 드래프트 신청을 거부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1991년 포항 제철 아톰즈가 이들을 영입했다. 드래프트 신청 거부를 할 경우 K리그 구단에 입단할 수 없는 조항이 있었지만, 이들은 포항의 산하 아마추어팀에 입단했다. 이런 방식으로 입단한 선수들의 경우 3년 후에 드래프트 조항 없이 곧바로 프로행이 가능하다. 그리고 포항은 이 둘을 3년 동안 해외로 축구 유학을 보내기로 발표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당시 신인선수 계약금을 크게 상회하는 금액을 둘에게 지급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비난 여론에 휩싸이게 된다. 이와 동시에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대표팀의 주축이었던 서정원, 신태용, 정광석, 김병수 네 명의 선수가 낮은 계약금과 연봉 및 팀 선택의 자유 상실을 이유로 드래프트 신청을 거부한다.

김종부 파동과 지난해 황선홍과 홍명보 트레이드 거부에 이어 또 한 번 논란이 불거질 것을 대비한 연맹은 결국 드래프트 신청 추가 기한을 연장함으로써 서정원과 신태용의 신청서를 끝내 받아냈고, 홍명보 역시 전역 이후 드래프트에 참여하기로 포항과 합의했다. 한편 정광석과 김병수는 끝내 드래프트 신청을 거부했다.

우여곡절 끝에 진행된 드래프트 결과 서정원은 LG 치타스에 1순위로, 신태용은 2순위로 대우 로얄즈에 지명되었으며 홍명보는 유공 코끼리에 1순위로 지명된다. 그러나 계약금으로 상당한 금액을 지출한 포항 입장에서 홍명보를 그대로 잃을 수 없었다. 결국 포항은 당시 드래프트로 지명한 김진형과 조정현 그리고 기존 포항 선수인 이석경까지 1:3 트레이드를 성사시키며 4시간 만에 홍명보를 다시 복귀시키는 데 성공했다.

대우 역시 이러한 방식의 트레이드를 진행했고, 신태용은 홍명보와 달리 트레이드 대상자가 되며 일화에 입단하게 된다.

한편 다음 해인 1993년 드래프트에서는 해외에서 복귀한 황선홍이 전년도 홍명보의 선례에 따라 드래프트에 참여하게 되었다. 당시 드래프트 1순위 지명권은 창단팀인 완산 푸마에 있었고, 황선홍을 1순위로 지명하게 된다. 그러나 홍명보 사례와 마찬가지로 황선홍을 데려오기를 원했던 포항 제철은 사상 초유의 1:4 트레이드를 강행하게 된다. 선수 1명을 위해 무려 4명의 선수를 내준 것이다. 이 4명에는 포항 핵심 멤버로 활약했던 이흥실도 포함되어 있었다.

 

#제2기 드래프트

이 같은 드래프트 제도는 결국 2001년을 끝으로 막을 내리게 되고, 다시 자유계약 체제로 변화를 꾀했다. 그러나 자유 계약제도 역시 여러 문제점을 노출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신인 선수들의 몸값이 지나치게 상승했다는 점이었다. 이는 당시 구단별 유스팀 체제가 정립되기 전 일부 팀만 운영 중이던 유소년팀 보유 구단이 많은 자본을 앞세운 기업 구단에 선수를 빼앗길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또한 자금력이 부족한 시민 구단의 유망주 수급도 어려워졌다.

이런 상황에서 박주영의 FC서울 이적으로 자유 계약 제도의 폐해가 결정적으로 드러난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청소년 시절부터 축구천재로 불리며 주목받은 박주영은 청구고등학교 시절 포항 스틸러스로부터 프로 계약 시 우선 협상의 조건으로 축구 유학을 보내주기로 하며 지원을 하게 된다. 이후 고려대학교에 입학한 박주영은 1년 만에 모든 팀의 주목을 받으며 프로의 문을 두드렸다. 많은 팀이 파격적인 조건으로 러브콜을 보냈으나 그가 선택한 팀은 서울이었다.

격분한 포항 구단은 계약 위반 조항을 대며 5000만원의 보상금을 요구했다. 사실 포항의 우선 협상권과 박주영의 서울 입단 과정에는 여러 이야기가 있고, 보상금 문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혀진 바가 없기 때문에 잘잘못을 따지기는 어렵지만, 확실한 것은 이 파동을 계기로 K리그는 다시 드래프트 제도로 회귀하게 된다.

자유 계약이 가지고 있던 병폐는 어느 정도 막았으나, 여전히 드래프트 제도가 가지고 있는 계약 금액 제한과 팀 선택의 자유 측면에서의 본질적인 문제는 남아있었다. 대표적으로 2009년 FIFA U-20 월드컵 8강 신화의 멤버였던 김민우, 김보경, 김영권 등 수준급 자원들이 전술했던 이유로 K리그가 아닌, J리그로 진출했다.

직업 선택의 자유에 대한 침해와 선수들의 해외 유출 문제가 계속해서 제기됐고, 결국 연맹은 2013년부터 점진적으로 자유선발 제도를 도입했다. 2013년 1명을 시작으로 다음 해에 2명, 2015년에는 3명으로 확장하고, 2016년에는 드래프트 제도를 폐지하고 완전한 자유선발 체제로 변모했다.

 

#현재

2016년부터 자유선발 체제로 전환됨과 동시에 신인 선수들은 자유선발 혹은 클럽 우선지명, 그리고 구단의 선수 선발 테스트를 통해서만 K리그에 입성이 가능해졌다(준프로 계약 제도 제외). 여기에 2013년부터 이어져 오며 현재 22세 이하 선수들을 의무 출전하도록 하는 규정이 더해지면 아마추어 축구에 큰 영향을 끼친다.

위의 제도로 선수 스카우트 연령대가 낮아짐에 따라 구단들은 유망한 자원들을 어린 나이에 산하 유스팀으로 데려간다. 유스팀에서 즉시 전력감의 자원들은 졸업과 동시에 프로에 데뷔시키거나 일찍부터 준프로 제도로 데뷔시키며, 가능성 있는 자원들은 우선지명을 통해 대학교에서의 활약을 지켜본다.

이렇게 우수 자원들을 모두 선별하고 나면 구단은 대학 무대에 비교적 적은 관심을 가지게 된다. 우선지명 선수들 역시 언제 지명을 철회할지 모르는 불확실한 미래 아래 대학 무대에서 뛰어야 한다. 여기에 U-22 제도가 겹쳐지면 구단은 해당 나이가 지난 고학년 선수와 계약을 맺을 동기가 더욱 적어진다. 선수의 부상 등의 이유로 구단이 갑작스럽게 우선 지명을 철회하게 되면 더욱 막막하다.

 

#선수들이 체감하는 U22 제도

이와 관련하여 직접 대학 축구선수 A군에게 대학 선수들이 프로에 갈 수 있는 경로와 제도에 대해 의견을 물어보았다.

먼저 프로 직행이 아닌, 대학에 간 선수들이 K리그로 가는 루트는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로 프로 산하 고등 팀에서 뛰던 선수들이 졸업 당시에 우선 지명을 받은 상태로 대학에 진학해 대학교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 오다가 구단의 부름을 받고 데뷔하는 경우이다. 실제로 이 루트로 데뷔하는 선수들이 가장 많으며 이로 인해 실력 있는 중등 선수들은 프로 산하 고등 팀으로 진학하기를 희망한다. 두 번째 방법으로, 우선 지명을 받지 못한 선수들은 대회 혹은 리그에서 실력을 입증해 스카우트되는 방법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구단에서 개최하는 신인 선수 선발 테스트를 통해 입단하는 방법이 있다.

그렇다면 대학 재학 중에 프로에 입단하지 못하고 졸업을 한 선수들은 어떻게 선수 생활을 이어갈까? 대부분의 대학 졸업 선수들은 우선 실업팀 등의 세미프로 리그에 들어가려고 노력한다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세미프로란 K3, K4 등의 리그에 속해있는 팀을 말한다. 혹은 앞서 우선 지명을 받지 못한 대학 선수들이 거치는 경로와 마찬가지로 테스트 등을 통해 프로에 입단하려고 노력한다.

주목할 만한 점은, 이러한 상황에서 U22 제도가 겹쳐지면 대학을 졸업한 선수들은 해당 나이에 속하지 않기에 프로에 가기 더 힘들어진다는 것이다. 이미 구단 혹은 스카우트들의 관심을 받는 선수들은 우선 지명을 받았거나 U22 제도의 나이 안에 프로팀에 입단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대학을 졸업한 선수들은 그들의 관심 대상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선수들은 보통 프로에 갈 수 있는 선수들은 미리 정해져 있다고 평가하며 실제로도 우선 지명을 받고 나온 선수와 그렇지 않은 선수, 대학에 재학 중인 선수와 대학을 졸업한 선수들의 입장은 모두 다르다.

U22 제도는 해당 나이대의 선수들에게는 끊임없는 관심을 받을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에, 누군가에겐 해당 나이를 넘었단 이유로, 주목받을 기회를 잃을 수도 있다는 위험성이 동반된다.

선수의 기량은 각기 다른 시점에 나타나곤 한다. 어렸을 때부터 유망주로 주목받는 선수가 있는가 하면, 무명 선수 시절을 거쳐 뒤늦게 전성기를 맞이하는 선수도 있다.

대표적으로 전북 현대에서 활약하는 한교원은 고등학교 졸업할 때만 하더라도 눈에 띄는 선수가 아니었다. 대학교 역시 갓 창단한 2년제 학교인 조선이공대학교에 입학하였다. 그러나 대학 시절부터 그의 기량이 만개하기 시작하며 2011년 K리그 드래프트에서 5순위로 인천에 입단하게 된다. 이후 인천에서 존재감을 보인 후 강팀인 전북 현대에 2014년부터 꾸준히 활약 중이며 국가대표에도 뽑히게 된다.

U22 제도가 현재까지 각종 연령별 국가대표 대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축구의 목적이 국가대표에만 초점을 맞춰서는 안 된다. 프로와 대학 무대, 세미프로까지 모두 한국 축구의 중요한 유산이자 뿌리다.

학원 축구의 장단점을 떠나서, 현재 한국 축구에서 학원 축구의 영향력은 상당하다. 프로 직행의 꿈을 이루지 못한 대부분의 선수가 대학 무대로 발길을 돌리는 현 시점에서 그들의 기회마저 무시할 필요는 없다. 전술했듯이 선수의 기량은 각기 다른 시점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과거에 비해 삶의 질 향상 및 선수 관련 여러 체계적인 프로그램이 생긴 이래 앳된 얼굴의 어린 선수들이 이미 성인의 기량에 맞먹는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22살이 넘는 23살 이상의 나이도 결코 적은 나이가 아니다. 오히려 상기했던 어린 선수들이 증가했던 이유를 고령 선수에 대입하면 그들의 기량이 증가할 가능성도 이전에 비하면 분명 높다.

현재 U-22 제도가 한국축구에 가져다주었던 이점은 상당했고, 앞으로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그 제도에 가려진 채 빛을 보지 못하는 선수들도 분명 존재한다. 한국 축구의 미래가 단지 국가 대표의 성적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를 위해 여러 선수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장기적으로 선수들의 기량을 평가하고 인정해줄 필요가 있다. 냉혹한 프로의 세계에서 기회만큼은 공정해야 하지 않을까.

황주희 기자(juhee_h10@siri.or.kr)

김귀혁 기자(rlarnlgur1997@siri.or.kr)

[20.11.26 사진=KFA 공식 SNS, 홈페이지, K리그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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