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RI=이수영 기자] [유로2020 파헤치기]는 이번 유로2020의 표면적인 경기 결과 리뷰를 넘어, 대회 배후에 놓인 흥미로운 요소들을 파헤쳐보기 위해 기획됐다.
지난 기사에서 ‘사상 첫 유로2020 분산 개최’라는 흥미로운 소재를 다룬 데 이어, 이번 편에서는 유럽축구연맹(이하 UEFA) 주관 대회에서의 ‘구장 명명 권’을 소재로 다루고자 한다.
# ‘알리안츠 아레나’가 아니라 ‘푸스발 아레나 뮌헨’이라고?
UEFA는 유로2020 개최를 앞두고 다음과 같이 경기가 열리는 11개 경기장을 발표했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UEFA 명칭이 존재하는 경기장이 있고, 그렇지 않은 경기장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UEFA가 유로2020 개최지를 발표할 당시, UEFA는 통상적으로 불리는 구장 명칭이 아닌 UEFA 명칭을 사용했다. 과연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 명명 권(naming rights)이란?
스포츠 구단이 수익을 창출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에서 경기장과 관련한 수익 창출원에는 명명 권(naming rights)이라는 개념이 존재한다.
명명 권은 사전적으로 ‘경기장, 극장 ,박물관, 프로 스포츠 구단, 이벤트 등의 명칭에 기업명 또는 기업의 브랜드명의 붙여 정식 명칭으로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한다. 스포츠 경기장으로 범위를 좁혀 명명 권을 재해석한다면 기업이 스포츠 구단의 경기장 이름에 대한 독점적인 권리를 획득하는 경우를 일컫는다.
기업은 경기장에 대한 명명 권을 획득하게 되면 상상 이상의 브랜드 노출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경기장 이곳저곳에 기업(브랜드) 로고를 도배함으로서 관람객뿐 아니라 TV로 경기를 시청하는 사람들에게도 자사 브랜드를 손쉽게 노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많은 기업은 거금을 들이고도 브랜드 홍보 마케팅의 수단으로 경기장 명명 권을 획득하곤 한다.
경기장 명명 권을 판매한 대표적인 구단으로는 영국의 맨체스터 시티, 아스날, 레스터시티 등이 있다. 각각 아랍에미리트의 ‘이티하드 항공’, 아랍에미리트의 ‘에미레이츠 항공’, 태국의 여행 소매 그룹 ‘킹 파워’가 경기장의 명명 권을 획득해 ‘이티하드 스타디움’, ‘에미레이츠 스타디움’, ‘킹 파워 스타디움’으로 자사를 홍보하고 있다.
앞선 표에서 확인한 세 경기장도 다르지 않다. 제니트는 러시아의 국영 천연가스 회사 가즈프롬에 명명 권을 판매해 ‘가즈프롬 아레나’라는 구장 명칭을 사용하고 있으며, 쾨벤하운은 스웨덴과 핀란드의 전화 및 이동 통신사 텔리아소네라에 명명 권을 판매해 ‘텔리아 파르켄’이라는 구장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더불어 바이에른 뮌헨은 독일의 손해보험회사 알리안츠에 명명 권을 판매해 ‘알리안츠 아레나’라는 구장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눈여겨볼 점이 있다. 바로 UEFA가 UEFA 주관 대회에서는 스폰서의 이름이 포함돼있는 경기장 명칭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UEFA가 주관하고 있는 대회에는 챔피언스리그, 유로파리그,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유로), 슈퍼컵, 네이션스리그 등이 있다. 세계적인 빅 클럽들과 축구 강국들이 유럽에 다수 포진해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UEFA의 이러한 규정은 구단들로 하여금 골칫거리가 아닐 수가 없다.
따라서 현재 많은 구단이 구장의 UEFA 명칭을 따로 분류해 UEFA 주관 대회에 출전할 때 사용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앞서 언급한 맨체스터 시티의 경우 UEFA 주관 대회 출전 시 ‘이티하드 스타디움’이 아닌 ‘시티 오브 맨체스터 스타디움’이라는 구장 명칭을 사용하며, 아스날은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이 아닌 ‘아스날 스타디움’을 구장 명칭으로 사용한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대표적으로 대구FC는 DGB대구은행에 명명 권을 판매해 ‘DGB대구은행파크’라는 구장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국내 축구 구단 중에는 유일한 명명 권 판매 사례다.
같은 맥락에서 표에 표시된 세 경기장은 이번 유로2020에서 기존 명칭이 아닌, UEFA 명칭으로 공식적으로 불리고 있다고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UEFA는 UEFA 주관 대회에서 스폰서의 이름이 포함돼있는 경기장 명칭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규정하는 것일까?
UEFA뿐 아니라 FIFA, IOC 등 대부분의 국제기구가 주관하는 대회에서는 기업 이름이 들어간 구장 명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규정한다. 대부분의 국제기구 주관 대회에는 대회 공식 스폰서가 뒤따르기 때문이다. 구장 명명 권을 획득한 기업이 국제기구 주관 대회에서 손쉽게 홍보 효과를 누리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받아들이면 이해가 쉽다.
이러한 까닭에 국제기구 주관 대회에서 사용되는 경기장들이 대회 기간 동안 일시적으로 중립적인 원래의 구장 명칭을 사용하게 된다.
이렇듯 스포츠 시장의 규모가 전 세계적으로 커지고 있는 가운데 구단의 수익을 창출 방법은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고, 기업이 스포츠 구단을 이용해 자사를 홍보하고자 하는 움직임 역시 분주해지고 있다.
이럴수록 글로벌 시대 스포츠를 운동 종목 이상으로 바라보는 안목은 스포츠를 소비하는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소양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이수영 기자(dnsall123@gmail.com)
[2021.07.06. 사진=유로2020 공식 sns, 직접 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