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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RI=김귀혁, 유한결 기자] 현영민. 이름 석자만 들어도 웬만한 축구 팬들은 그를 알아본다. 2002년 월드컵 멤버로서, 또 이들 중 가장 마지막으로 은퇴했으며 그 과정에서 본인만의 개성 넘치는 플레이로 기억을 각인시켰다. ‘롱 스로인’과 ‘경운기 드리블’은 그의 상징과도 같았으며, 측면에서의 활발함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은퇴 이후에도 현영민은 해설위원이라는 길을 택하며 그만의 또 다른 매력을 대중들에게 뽐내고 있다. 선수 출신이 해설하는 것이 뭐 그리 특별한 일인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선수 출신 해설위원이 월드컵이나 아시안게임 등 굵직한 대회에서 주로 활동하는 반면, 그는 무려 4시즌 동안 K리그 현장을 누비고 있다.

스포츠미디어 시리는 서울의 한 카페에서 그와 이야기를 나눴다. 만나자마자 자연스럽게 주먹 인사를 건네며 유쾌한 인터뷰를 예고했다. 직업적 특성인지는 몰라도 인터뷰 내내, 마치 해설을 듣는 것처럼 나도 모르게 경청하고 말았다.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해설위원으로서 승승장구하는 그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SIRI INTERVIEW-현영민①] 찬란했던 월드컵부터 아쉬웠던 아시안게임까지

[SIRI INTERVIEW-현영민②] 한국인 최초 러시아 프리미어리거가 들려주는 그 당시 이야기

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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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제니트 시절을 뒤로하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울산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

2006시즌에 러시아에서 1년 보내고 그 해에 12월에 결혼식이 예정되어있어서 2주 앞두고 한국에 들어왔다. 12월 초에 들어와서 결혼식 때 김정남 감독님께서 참석해주시고 따로 불러서 다시 제안을 해주셨다. 내가 생각이 있다고 한다면 울산에서도 돌아올 수 있게끔 도움을 줄 테니 잘 생각해서 좋은 선택을 내렸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우선 계약 기간이 당시에 아직 2년이 남아있었고 구단과 확실하게 이적에 대한 이야기를 한 상황은 아니어서 정말 감사했다.

결국 이적은 아드보카트 감독님은 오케이 해주셨는데 제니트 구단에서는 1년 더 뛰어주기를 고위층에서 바랐다. 그런데 이제 가족도 있고 한국에 돌아가서 다시 시작해보고 싶다고 강하게 어필하고자 러시아로 다시 갔었다. 메디컬 테스트를 앞두고서는 이적이 잘 안 풀려서 테스트를 받지 말고 기다리라고 해서 결국에는 에이전트 통해서 일을 잘 풀고 울산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돌아오는 과정에서 이적료가 생기지 않나. 그래서 그 이적료를 사비로 구단에 지불하면서 왔었다. 울산도 나를 원해서 많이 도와줬고, 나도 울산이기 때문에 돌아온 것이다.

 

Q. 김동진 선수나 이호 선수가 많이 아쉬워했을 것 같다.

두 선수가 같이 살면서 서로 의지할 수 있는 선후배가 있으니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아쉬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유럽 생활이 짧았고 너무 빨리 돌아왔나 싶기도 하다. 왜냐하면 지금 선수들 보면 벨기에도 진출하고 독일 2부도 가고 해서 유럽에서 좀 더 부딪쳤더라면 하는 생각이 있다.

 

Q. 울산에 대해 감사한 마음이 클 것 같다.

그렇다. 또 대학 졸업하자마자 울산에 가서 목표가 있었다. 일단 내 포지션에서 가장 좋은 기록을 남기고, 그 다음이 영구결번이었다. 그게 되려면 원클럽맨까지 해야 했는데 그 발판이 울산이 됐던 거고 중간에 유럽에 가긴 했지만 30대 초반까지는 울산에서 보냈기 때문에 아직도 울산에 대한 애정은 많이 남아있다.

 

Q. 울산에 대한 애정은 있었지만 2010년에 서울로 트레이드됐고, 그 과정에서 논란이 있다.

2009시즌이 끝나고 울산이 김정남 감독님에서 김호곤 감독님 1년 차셨는데 그때 중앙 수비가 많이 부족했다. 그래서 중앙 수비를 찾다 보니 트레이드 카드로서 다른 팀에서 선택을 해야 하는데 거기에 내가 포함되어있었다.

그래서 2009시즌이 끝나고 마지막 뽑아가는 날에 김호곤 감독님이 방에 부르셔서 트레이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으며 에이전트를 통해 듣게 될 것인데 서운한 점이 있을지라도 프로의 세계가 이러니 그 상황에 맞춰 잘 따라가 줬으면 좋겠다고 말씀해 주셨다. 그리고 휴가라서 해외여행 가 있을 때 에이전트한테 이야기를 듣게 됐다. 이후 해외 갔다 오고 기사를 통해 FC서울 김치곤 선수랑 1:1 트레이드가 됐다고 들었다.

사실 2009년에 감독님이 새로 오시면서 일본에 진출할 수 있었던 기회가 있었는데 울산이 3년 계약을 제시해주셔서 받아들였고 그 1년 차가 2009년이었다. 그렇게 2년이 남은 시점에서 구단에서는 중앙 수비가 필요하니 상대 팀에서 트레이드 카드를 보던 중에 내가 언급됐고 그러면서 진행이 됐다. 그래서 여행 마치고 구단 사무실 방문하고 또 서울 올라와서 서울 구단에 인사드리고 하면서 최종적으로 트레이드가 완료됐다.

그렇게 인사드리고 짐 빼서 올라오는 과정에서 사실 서운하긴 했다. 원클럽맨이나 영구결번이라는 목표가 그 순간 끝난 것 아닌가. 프로라면 내가 선택해야 하는 순간도 있지만 그때는 프로 구단에서 선택을 하면 그대로 따라가야 하는 방식이라 감독님 심정이 충분히 이해 가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다른 팀에서 나를 선택했다는 것이 가치를 알아봐 준 거니까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편해지기는 했다.

그래도 울산에서 짐 싸는 과정에서 울컥하는 감정들이 올라오긴 했다. 정들었던 선수나 클럽하우스 식당 아주머니, 버스 기사, 장비 담당 등 그런 부분들이 계속 떠올라서 그랬던 것 같다. 또 여기 올 수 있을까부터 시작해서 당시 30대 초반이니까 서울에서 잘할 수 있을까 등 여러 생각이 교차했다. 그래도 2009년에 개인 성적이 가장 좋았을 때라 자신 없지는 않았다. 어쨌든 이후 서울에 와서 리그 우승을 하고, 그 과정에서 주전으로 결과물을 내서 아 이런 인생도 있구나 싶은 2010년이었다.

Q. 이후 서울에서 2013년에 성남으로 가고, 전남을 마지막으로 은퇴했다.

2012시즌 마치고 성남 안익수 감독님이 지휘봉 잡으시고 동계 때 오퍼를 해주셨는데 서울에서도 내가 경험이 있고 ACL을 나가야 하니 이적이 안 됐다. 그러다가 시즌 2~3경기 치르고 갑작스럽게 이적 이야기가 나와서 전남은 트레이드, 성남은 이적을 원하던 상황이었다.

그때 서울에서 자리 잡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다시 지방으로 내려가기에는 나도 가족들도 부담이었다. 그래서 당시 서른다섯 나이임에도 성남에서 안익수 감독님이 불러주셔서 감사했다. 그렇게 성남에 가게 됐을때는 시즌이 진행 중이었고, 시즌 말로 향해갈 때 성남이 막 시민구단으로 전환되거나 연고를 옮긴다는 말이 있었다.

결국 시즌 마치고 시민구단으로 전환되면서 감독님이 물러나게 됐고, 8~9월경에 하석주 감독님께서 전화를 주셨다. 기회가 되면 같이 해보고 선수 생활을 할 수 있을 만큼 도움을 주겠다는 내용이었다. 대화하면서도 감독님은 나이에 대한 선입견도 없었고 마침 선수 시절에도 동일 포지션이셔서 선수 생활 막바지에 배울 것이 많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2013시즌 마치고 전남으로 가게 됐다. 가족들도 그렇게 찾아주시는 감독님이 계신다면 함께 가겠다고 해서 그때부터 팀은 광양에 있지만 생활은 순천에서 했다. 출퇴근으로 오가면서 처음에는 1+1계약으로 갔는데 4년이나 있을 줄은 몰랐다.

지금 생각해보면 결국 다 감독님들 덕분이었다. 하석주 감독님부터 시작해서 노상래 감독님이 이어받고도 나이에 대한 선입견 없이 대해주셨고, 마지막에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포지션을 변경할 정도로 배려를 해주셔서 4년이라는 시간을 전남에서 보내지 않았나 싶다.

이후 딱 39살까지만 하고 40살에 은퇴식을 했다. 이렇게 10대부터 30대 마지막까지 그라운드에 머무를 수 있었던 이유는 지도해주신 여러 선생님과 부모님, 아내, 그리고 운동할 수 있는 원동력인 아이들까지 해서 모든 것들이 굴곡이 심하지 않고 평탄하게 선수 생활을 잘 마치지 않았나 생각한다.

 

Q. 가치를 알아봐 주시는 감독님들도 많았던 것 같다.

그렇다. 사실 최용수 감독님도 형으로 시작해서 코치님에서 감독님이 되셨던 일련의 과정들도 있었고 나를 지도해주신 외국인 감독님, 개성을 존중해주신 김형남 감독님, 나이가 많음에도 선택해주신 안익수, 하석주, 노상래 감독님 등 감독님 복이 많았던 것 같다. 김호곤 감독님도 1년밖에 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선수 생활을 더욱더 다른 환경 속에서 만들어주시고 그 계기를 통해서 한 단계 더 성숙해질 수 있었다. 너무 한팀에만 있었다면 그 상황에 안주했을 수도 있었는데 그것을 깨주신 것 같기도 해서 좋았다.

Q. 은퇴 이후에는 바로 해설위원의 길을 걸었다. 그 전부터 생각이 있었는지.

처음에는 크게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내가 어떤 팀에 가서도 모임 같은 것들을 하다 보면 회장이나 총무가 있듯이 그런 역할을 많이 했다. 그런 모임을 가지면서 선수들과 유대감도 많이 생겼고, 그 과정에서 말하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까 해설이라는 기회가 왔을 때 하게 됐다.

사실 캐스터분이 경기를 이끌어가시고 해설이 그 상황에 대해 설명하는 것인데 이를 알려준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처음에 가서 해봤더니 캐스터분이 이렇게 캐스터를 편안하게 해주시는 해설분은 처음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이러면서도 새로운 일에 대해 긴장감보다는 재미를 느꼈고, 전반전만 해보고 몇 가지 자주 쓰는 단어들을 줄이시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듣고 느낌이 왔다. 방송은 이렇게 하는 거고 캐스터가 이런 식으로 하면 해설이 이렇게 하면 되 식으로말이다.

이후 유심히 대화를 나눈 뒤 리허설 한 번 더 해보자고 하시더라. 원래 하프타임 정도 하려고 했는데 20분 정도하고 멈추셨다. 그러면서 많이 준비하고 와서 이렇게 하면 현장에서 직접 해도 될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자주 쓰는 단어를 빼고 해설이 캐스터를 따라가는 형태가 되니까 긍정적으로 말씀 해주시더라.

이후에 바로 현장에 나가서 중계하게 됐다. 많이 부족한데도 스포티비에서는 은퇴한 지가 얼마 안 됐기 때문에 K리그에서도 전 시즌까지 감독이나 선수들과 함께 한 점에서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올 것이라고 판단해서 투입한 것이다.

이것이 결국 러시아 월드컵도 다녀오게 된 계기가 되었고, 그런 것들이 모여서 해설을 4년 동안 하게 됐다. 그런데 사실 이 기간 동안 해설을 하게 될 줄 몰랐다. 한 1~2년 정도 방송하고 이후에 현장에서 코치부터 시작해서 지도자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이 가장 첫 번째다. 가족이 나에 대한 헌신이나 희생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족과 함께하면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뭐가 있을까 해서 보니까 이 일이 제일 좋더라. 제주도 가지 않는 이상은 당일치기로 가능하면서 아이들과 시간도 많이 쓸 수 있고, 사실 해설하면서 어떤 팀이 이기든 스트레스가 없지 않은가.

예를 들어 울산하고 서울이 붙었을 때도 사실 어느 팀이 이기고 지든 아무 상관이 없다. 물론 예전에 애정을 갖고 뛰었지만 지금은 관여가 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축구 팬들을 위해 좋은 경기와 함께 많은 득점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마인드로 경기에 접근한다. 그리고 만약 지도자를 하고 있더라면 승리나 패배에 따라 분위기가 하늘을 날거나 땅속으로 파고드는 경험을 했을 텐데 그런 스트레스가 없다 보니 내 얼굴도 많이 밝아졌다고 생각해주시더라.

또 일에 대한 자부심이나 축구 관련된 일을 하면서도 즐겁게 하다 보니까 앞으로 언제까지 방송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이 삶을 즐기려고 한다. 그리고 나중에는 지도자나 행정가에 대해 생각도 하고 있다. 요즘으로 따지면 K리그 프로팀에 전력 강화나 나아가서는 단장이나 사장, 그렇지 않으면 협회나 연맹에서도 좋은 기회가 주어지면 그런 일도 흥미롭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일단 방송일을 잘하면서 자연스럽게 가다가 기회들이 왔을 때 어떤 선택을 내리느냐가 중요할 것 같다. 사실 지금도 방송하면서 현장에 대한 제안도 들어오기는 했는데 너무 감사하지만 일단은 이 삶을 즐기기 위해 정중하게 거절을 했고, 다른 기회가 온다면 그때는 어떤 선택을 내릴지는 잘 모르겠다.

 

Q. 마지막으로 해설을 하면서 철학이 궁금하다.

일단 들으시는 분들이 그 경기에 함께 현장에 온 듯한 느낌을 받도록 중계를 매끄럽게 끌고 가고 싶은 것이 제일 큰 철학이다. 나아가서는 선수나 감독님께 되도록 비판을 안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 역시 그 과정을 겪어왔고 누구보다도 선수나 감독님의 심정을 잘 알고 있는 한 사람이기 때문에 내 입으로 그들의 땀을 한 경기로서 평가하고 싶지 않다. 물론 선수가 해야 하는데 못하는 것들, 예를 들어 공격수가 슈팅을 때려야 하는데 공이 무서워서 피한다든가 하는 것들은 단호하게 끄집어낼 수 있다. 하지만 패스 미스나 크로스 실수 같은 것들은 세계 아무리 잘하는 선수도 나오기 때문에 이러한 것들을 되도록 안 하려고 한다.

심판들 역시 마찬가지다. 사실 전에는 심판에 대해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싸워봤는데 또 심판 교육을 받다 보니까 굉장히 난감한 상황이 많겠다고 느꼈다. 그래서 일부 팬분들이 봤을 때 보기에는 너무 못하고 있는데 비판을 안 한다고 말씀하시기도 한다. 핵심은 못 하는 것은 짚어주되 내 입을 통해 일반적인 실수에 대해 비판을 함으로서 누군가에게 상처 주고 싶게 하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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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내내 현역 시절 그의 오버래핑처럼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해설위원다운 그의 생각도 엿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가장 강렬했던 한 마디는 누구에게도 상처 주고 싶지 않다는 그의 철학이었다.

그가 이 직업을 얼마나 책임감 있게 여기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몇 년 후의 모습에 대해서는 다양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확실한 것은 그가 해설할 때의 책임감처럼 활약할 것이라는 믿음이다. 어떤 자리에 있든 그의 앞길이 기대되는 이유다.

김귀혁 기자(rlarnlgur1997@siri.or.kr)

[21.08.12 사진 = 스포츠미디어 SIRI, KFA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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