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싱 선수들의 대전료 보안 방안 #2에 이어서
1) 선수들의 최소한의 처우 개선을 위한 킷스폰서 유치
지금까지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했던 것은 선수 대전료 문제였다. 대전료 지급이 늦어지거나 하는 것들은 논외로 치더라도 그 규모 자체가 기본적인 삶을 영위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었다. 세계적인 선수들이 거액의 지원을 받고 경기 당일 날 스폰서 기업들을 바지에 새겨 넣는 것과 달리, 한국 프로 복싱은 애초에 시장 자체가 협소하기 때문에 개인 스폰서 유치는 언감생심 꿈도 못 꾼다. 이런 상황에서 필자는 종합격투기 UFC의 사례를 참고하고자 한다. UFC는 1993년 설립하여 현재 명실공히 한 종합격투기 1위 단체다(홍진환, 2013). 사실 UFC도 복싱과 같은 개인스포츠에 가깝기 때문에 개인 스폰서를 받아 경기에 나서는 선수들이 많았다. 각 투기 종목 관련 제조사에서 선수 맞춤 파이트 쇼츠를 제작해주거나 선수가 후원받은 업체들의 기업명을 파이트 쇼츠에 새겨넣는 식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2015년 복싱과 종합격투기를 통틀어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됐다. 바로 리복과의 킷 스폰서 계약이었다. 이는 선수들이 입는 경기복이나 코치들이 입는 트레이닝복까지 경기 당일에는 리복에서 제공한 것으로 입어야 한다. 이로 인한 문제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리복과의 계약은 곧 선수들의 개인 스폰서를 일제히 금지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이를 주 수입원으로 삼던 선수들 입장에서는 뼈 아팠다. 그러나 이는 스타 선수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였다. 실제 개인 스폰서를 구하기 어려웠던 신인 혹은 무명 선수들에게 있어서는 리복의 옷을 입는 대가로 일정 부분 보너스를 보장받았다. 아래 표는 실제 리복과 UFC가 계약할 때 선수들의 전적에 따라 받기로 한 금액으로 대전료 자체가 적은 무명 선수들에게 이 같은 보너스는 단비 같은 존재다.
이는 현재 한국의 복싱산업과도 유사하다. 세계 타이틀전을 해도 관심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국내 단체 선수가 개인 후원을 받는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여기에 대전료 자체도 그것으로 삶을 영위할 만큼 받는 것도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UFC와 같은 킷스폰서 계약은 호재로 작용할 수 있다. 물론 계약 규모에 있어서 UFC 사례는 둘째치고 현재 책정되어있는 대전료보다도 못 받을 가능성은 크다. 하지만 선수의 권익 보호라는 차원에서 첫걸음이라고 생각한다면 비단 나쁜 시도만은 아니다.
출처: UFC announces how much fighters will be paid through Reebok deal
그리고 이와 같은 계약을 체결하기 위해 가장 적합하다고 사료되는 브랜드는 프로스펙스다. 사실 시장성 자체가 거의 없는 현 한국 프로 복싱의 상황에 외국 유명 브랜드는 그들이 자선 사업가가 아닌 이상 스폰서십을 맺기는 힘들다. 그렇다면 결국 스토리와 감성적인 면을 승부를 봐야 하는데 그런 면에서 프로스펙스의 최근 광고가 이에 부합한다.
‘잘됐으면 좋겠어 대한민국 오리지널’이라는 키워드로 1988년 서울올림픽 복싱 금메달리스트인 김광선 선수가 나와 예전 프로스펙스 복싱화를 보며 향수를 자극했다. 최근 레트로 감성과 더불어서 이 광고가 인상을 줬던 이유는 바로 전성기를 거의 비슷한 시기에 보냈기 때문이다. 1980년대 정점을 찍었던 한국 복싱과 같이 이 당시 교복 자율화와 함께 소위 메이커라 불리는 신발과 가방이 프로스펙스로 귀결되던 시기였다. 이는 영화 써니에서도 잘 드러나는 부분이다. 그런 면에서 현재 레트로를 무기로 시장에 들어와 있는 프로스펙스 입장에서 복싱과 동일성을 확립할 수 있다.
정갑연(2016)에 따르면 최근 소비의 트렌드가 개인의 감성과 취향이 기준이 되어 구매 의사를 결정하고 있다고 말한다. 또한 박상윤(2019)의 연구에서는 프로스펙스 레트로 로고의 속성이 브랜드 이미지에 유의한 영향을 끼치며, 특히 로고의 속성 중 전통성과 친근감을 높게 평가한다고 밝혔다. 복싱 산업이 과거 전성기를 통해 레트로한 면을 부각할 수 있는 점, 그리고 최근 소비의 트렌드를 따져 볼 때 프로스펙스와의 만남은 분명 침체되어 있는 시장에 불씨를 불어넣을 것이다. 프로스펙스 역시 선수의 권익 보호 차원에서 킷 스폰서를 제공하고 서비스를 주는 것에 대해 CSR의 가치 측면에 있어서 선한 영향력을 미칠 것이다. 이종학(2020)의 연구에서도 CSR을 기업이 이익 창출을 넘어 이해관계자를 포함한 사회와 환경 등에 실천하는 행위로 정의한다.
2) 보험의 체계화
연구 배경에서 언급한 대로 최요삼 선수와 배기석 선수의 사망과 관련해 지급돼야 할 건강보험기금이 전달되지 않아 논란이 생긴 바가 있다. 복싱의 건강보호기금이란 선수의 보호를 위해 10회전 이상 뛰었던 선수들에게 대전료의 1%를 출전하여 혹시나 발생할 심각한 부상이나 사망 사고에 대해 보상해주는 제도다. 하지만 위와 같은 과정에서 이를 제도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여지는 없었다. 법적 시스템이 체계적으로 정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재산을 위탁하는 신탁적 성격이 강한 선수보호기금의 특성 덕에 기금이 한국권투위원회의 채권자에 의해 강제집행 되는 사례까지 있었다.
이때 선수들이 권리 주장 하기 애매했던 것이 한국권투위원회가 사단법인이기 때문에 민법 제257조에서 규정하는 총유의 형태로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김영균, 2007). 결국 신탁의 개념에서 따져봐야 하는데 김영균(2007)에 의하면 프로복싱선수보호기금의 당사자 규정이 모호하다고 지적한다. 선수와 위원회가 관계를 형성한다고 봤을 때 위탁자는 한국권투위원회이며, 당사자는 선수가 될 것이다. 그런데 10회전 이상의 선수들에게만 파이트 머니의 1%를 걷는다. 이는 다시 말해서 10회전 이하 선수들에게 당사자의 권리를 부여하는 것에 문제가 생긴다. 기금을 아직 내지 않았기 때문에 당사자가 아닌 관점이 있을 것이고, 반대로 잠재적인 기금 대상자이므로 당사자 권리를 부여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사단 법인 소속의 한국권투위원회가 관리하는 측면에서 기금을 보호할 수 있는 법적 테두리가 마땅치 않기 때문에 신탁 당사자의 명확한 규정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와 더불어 보험사와의 연계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사단법인인 위원회가 관리하는 것은 법의 허점이 많기 때문에 대전료 일부를 보험사에 맡기고, 보험사는 위원회와 합의한 규정에 따라 이를 지원하는 것이다. 일방적인 관계의 위원회와 선수보다는 제삼자인 보험사의 개입이 계약이라는 틀 안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훨씬 체계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3) 단체의 일원화
다음으로 살펴볼 해결 방안은 난립해 있는 단체의 일원화다. 사실 위 두 방안 모두 결국에는 행정적으로 일원화가 되어야 할 수 있는 것이다. 원래 한국 프로 복싱 단체는 KBC라는 한국권투위원회를 중심으로만 운영했었다. 그러다 앞서 설명했던 최요삼 선수와 배기석 선수의 건강보험기금 문제와 관련해 여러 논쟁이 터지자 단체가 분리되기 시작했고 현재는 큰 갈래로서 5개의 단체가 나와있는 형태다.
그런데 단체가 많아지다 보니 여러 문제가 생겼다. 우선 선수층이 점점 얇아지는 마당에 단체가 분리되자 각 단체의 선수층 역시 더 얇아질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되면 상대적으로 수준이 낮은 선수들이 단체에 난립할 수 있고, 이는 경기 수준의 저하로 이어진다. 넓은 관점에서 경기 수준의 저하는 이를 찾는 소비자들의 감소를 유발하고, 결과적으로 찾는 사람이 없어 돈을 벌 수 없는 구조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또한 여러 단체로 분리되다 보니 각 단체를 이끄는 수장을 선택하는 것도 능력보다는 서로 간 인맥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많다. 이에 대해 김한상 권투체육단장은 아무도 모르는 이사들 몇 명이 모여서 회장을 만드는 구조를 지적한 바 있다(시사매거진 2580, 2014).
복싱을 경험하고 잘 아는 사람의 역량도 물론 필요하지만, 스포츠는 마케팅, 재무, 경영 등 다양한 학문의 융ㆍ복합적인 산업이다. 이렇듯 단체를 일원화해서 행정체계를 단일화한 뒤, 각 분야의 전문가와 복싱 사정을 잘 아는 인력 간 시너지 효과를 발휘해야 복싱이라는 산업을 부흥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높아진 시장성은 아마추어를 통해 국가대표로서 좋은 성적을 거둔 뒤 프로로 직행하는 선순환 구조가 이루어진다. 현재 한국 복싱 시장은 이러한 세계적 흐름에 역행하며 아마추어에서 프로로 가는 루트가 거의 없다. 이는 아마추어에서 실업팀 선수로서 일정 부분의 연봉을 보장받다가 불안정한 프로 세계로 들어올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단체 일원화가 안 되다 보니 어떤 단체의 챔피언이 국내 1등인지를 가늠할 수가 없다. 이는 국내 복싱뿐만 아니라 세계 복싱 역시 4개의 메이저 단체가 난립하는 와중에 어떤 단체의 선수가 그 체급의 1등 인지에 대해 정리가 안 되기 때문에 팬들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UFC가 성공했던 이유 중 하나 역시 브랜드의 단일화였다. UFC는 2007년 PRIDE FC 인수를 시작으로 IFL, WEC, StrikeForce 등의 단체를 차례로 인수 합병했다(홍진환, 2013). 그러면서 기존 브랜드의 족적은 남기지 않은 채 회사의 역량을 끌어올리는 데 집중했다. UFC라는 하나의 브랜드로서 자신들이 MMA 시장에서 가장 강력한 존재라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이 결과 종합격투기 시장에서 소위 월드클래스라 불리는 선수들의 대부분은 UFC로 향해간다. 이는 곧 UFC 챔피언이 MMA 챔피언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게 했다.
Ⅲ. 결론
전통적으로 복싱은 대한민국 역사에 있어서 근현대사를 함께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제 식민통치의 시대 속에 우리 민족이 상무 정신과 이에 따른 자주성을 일깨워주는 하나의 수단으로서 역할을 했다. 또한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기 똑같은 어려움을 겪는 와중에서도 세계 무대에서 경쟁력을 입증한 헝그리 복서들의 활약은 국민들에게 희망과 자신감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급격한 시대 변화 속에 복싱은 아직 구시대의 산물에 머물며 이에 편승하지 못하고 있다. 다른 대체 스포츠들의 등장과 함께 국민의 인식도 변화하자 복싱을 찾는 인구가 줄었다. 다른 스포츠에 비해 인프라 확충 규모가 크지 않은 복싱이었기에 그 시절 활약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굳이 복싱이 아니더라도 다른 스포츠나 기타 산업으로도 돈을 벌거나 국위 선양을 할 수 있게 됐다. 이 과정에서 행정적 체계를 정비하면서 1980년대까지 이어오던 역량을 한층 강화할 필요가 있었지만, 이런 역할을 해야 할 기구나 사람들은 서로 다투기만 하며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그 결과 프로 복싱 단체의 선수들은 몇 개월 노력한 대가인 대전료가 처참한 수준에 이르렀고, 이 와중에 단체는 서로 자신들만의 독립 기구를 창설했다. 이는 안 그래도 선수층이 얇아지는 흐름 속에서 5개로 나누어 지자 단체별로 선수층은 더욱 축소된 형태로 운영중이다.
이러한 가운데 본 연구에서 해결책으로 제시한 것이 UFC의 리복이나 베넘과 같은 킷 스폰서 유치와 건강보호기금의 체계화 및 정비였다. 그리고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단체의 일원화다. 행정적으로 하나의 집단 속에서 기존 권투 사정을 잘 아는 인원들과 경영, 마케팅, 재무 등 각 분야의 전문가가 함께 협력해서 이러한 것들을 추진해야 한다. 이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때 프로 복싱 시장의 활성화와 함께 시장성이 갖춰지고, 그 시장성은 아마추어 복싱에서 프로 복싱으로 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준다. 우리 국민의 희로애락과 함께한 복싱이 다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며 부활하는 모습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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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혁 기자(rlarnlgur1997@siri.or.kr)
[21.10.19, 사진=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