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2019년 마지막 날 중국당국이 정체불명의 폐렴 환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WHO에 보고하면서 세상에 알려진 코로나19는 특유의 전염성으로 우리 생활 곳곳에 영향을 끼쳤다. 특히 감염자의 비말이 호흡기로 침투하며 발열과 기침, 폐렴 증상 등을 동반하기 때문에 다양한 산업 곳곳에 영향을 끼쳤다(조영기, 2020). 그러면서 경제적으로 침체기를 맞이한 가운데 호황을 맞이한 몇 가지 산업이 있다. 그중 대표적인 산업이 자전거다. 코로나의 장기화로 감염 위험성이 큰 실내보다는 실외로, 단체보다는 소수의 인원으로 즐길 수 있는 스포츠가 인기를 끌며 그 흐름에 편승한 것이다. 이런 특징은 자전거 업계에도 호황을 불러일으키며 실제 삼천리자전거는 올해 1ㆍ4분기에만 440억원 매출, 95억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했다. 이는 작년과 비교해 각각 83%, 533% 증가한 수치다. 알톤스포츠도 1ㆍ4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118억원과 21억원을 올리며 작년 대비 29%, 950% 증가했다(명순영, 2021). 서울시의 공유자전거인 따릉이 역시 이용 건수가 2019년 1,908만건에서 2020년 2,370만건으로 약 24% 증가했다(서울시, 2020).
이처럼 코로나에 대한 역설로 자전거에 대한 수요가 증폭한 상황에서 사실 자전거 자체의 역사는 다른 운송수단에 비해 역사가 긴 편은 아니다. 바퀴 달린 차량의 경우 실질적인 운용은 1470년 무렵으로 알려졌고 중세의 대표적인 운송 수단인 마차 역시 16세기 후반에 도로 위에 자주 나타나기 시작했다(박천홍, 2003). 현재 인류의 보편적인 운송 수단인 자동차는 1769년 프랑스의 니콜라 조셰프 퀴뇨의 증기자동차를 시작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강준만, 2008).
이에 비해 자전거는 1790년 프랑스의 콩트 드 시브락이 만든 것을 세계 최초의 자전거로 간주한다. 당시 두개의 나무 바퀴를 활용해 만든 자전거였기 때문에 지금의 것과는 제법 차이가 있었다. 이후1818년에 만들어진 소에르브륑 남작의 나무자전거 드레지엔은 사람이 직접 발로 땅을 박차며 동력을 발생시킨 시스템이었다(정영일, 2017). 자전거가 상업적으로 최초의 성공을 거둔 것은 1885년이었다. 기존 자전거들과 달리 앞뒤바퀴의 크기가 똑같았으며 다이아몬드형 프레임에 체인으로 구동하는 방식이었다. 현재의 자전거와 비슷한 모습을 보이며 당시 큰 인기를 끌었고 이를 자전거의 제1혁명이라 부른다. 이 혁명에 더해 영국의 존 보이드 던롭이 발명한 공기 주입식 타이어는 자전거의 수요를 대폭 증가시켰다. 이를 계기로 자전거 산업은 전성기를 맞이하며 일상적인 교통수단의 하나로서 입지를 굳혔다. 그뿐만 아니라 여성의 자전거 이용은 당시 영국에서 여성 인권 운동의 산물로서도 자리 잡았다(강준만, 2008).
영국의 사례와 같이 우리나라도 자전거가 교통수단 이상의 시대적 아이콘 역할을 수행했다. 최초로 자전거가 등장한 기록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1886년 미국 선교사인 다리지엘 벙커가 자전거를 탄 기록이 전해진다. 그러다가 1893년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당시 세브란스 의과대학의 설립자인 올리버 에비슨이 고종 황제를 치료하기 위해 궁궐로 드나들었는데 이때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닌 것이 고종의 눈에 띄었다(강준만, 2008). 이후 윤치호가 처음으로 자전거를 수입하여 타고 다니며 일반 국민들의 이목을 사로잡았다(문화체육관광부, 2015). 특히 그가 독립협회 회장이 된 이후 연설회장은 그의 연설뿐만 아니라 자전거를 보기 위해 달려온 사람들도 많았을 정도였다. 이어서 전차와 철도가 차례로 도입되면서 자전거와 함께 근대적 수송수단으로 당시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줬다. 1906년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자전거 경주가 당시 육군 소위였던 권원식과 일본인 오사카의 대결로 이뤄졌다(안수현, 2015).
이처럼 국민적 관심을 증폭시켰던 상황에서 일제강점기가 시작된 이래 자전거는 교통수단 그 이상의 역할을 하게 됐다. 1907년부터 자전거 상인들의 후원으로 한국과 일본 선수 간 경주회가 열렸으며, 1913년에는 엄복동과 황수복이 경주회에서 우승하며 일제의 억압으로부터 국민들의 울분을 풀어주었다. 당시 서울 용산 연병장에서 열린 대회는 무려 10만 관중이 몰려드는 등 자전거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가 얼마나 높은지도 보여줬다(강준만, 2008). 그리고 같은 해에 인천에서 개최된 자전거 대회 사진은 한국 스포츠 신문 사진의 최초 사례로 알려져 있다(최인진, 1999).
이후에도 엄복동은 1920년 경성시민 운동대회 자전거 경주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이름을 알렸고, 이러한 엄복동의 모습에 국민들은 열광했다. 특히 ‘조선일류선수권대회’, ‘조선일류선두책임경주대회’등에서 연달아 우승하자 일본인 심판의 견제가 시작됐다. 대표적으로 1923년 5월 경성윤업 주최 조선자전거경기대회에서 심판들은 편파 판정과 더불어 일본인 관중들은 술병을 던지며 엄복동을 견제했고, 결국 3위로 레이스를 마쳤다. 이에 격분한 조선인 관중들과 일본인 간 충돌 사건이 동아일보에 보도되기도 했다(동아일보, 1923). 그만큼 엄복동이라는 인물은 당시 국민들의 독립에 대한 희망과 대일투쟁의 상징이었다. 엄복동이 이길 때 나오는 환호와 감동은 일제에 대한 저항 의식이었고, 일본의 석연찮은 방해 및 편파 판정으로 패배하며 쏟아낸 울분은 일제가 침탈하고 있는 상황 자체를 대변했다(이준호, 2016).
그렇게 자전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해방 직전에는 우리나라에 약 60만대의 자전거가 굴러다녔다고 전해진다(윤홍식, 1993). 1800년대 후반 처음 소개된 이래 50년 만에 이뤄낸 것이다. 하지만 60만이라는 숫자에 무색하게 국내의 자전거 산업은 처참했다. 국내에서 자체적으로 생산하지 못하다 보니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실제 윤홍식(1993)에 따르면 국내 자전거 산업의 수준이 낙후된 가장 큰 원인은 일본의 방해였다고 말한다. 자전거 개발 시 필요한 철강, 화학, 전기 등의 기계 공업에 발전할 여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설상가상 6ㆍ25 한국전쟁의 발발로 산업시설은 마비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국산 자전거를 향한 열망은 계속됐는데 그 선봉장에는 기아산업의 창업주 김철호가 있었다.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으로 넘어가 철공소에서 일했던 그는 해방되기 1년 전인 1944년에 귀국하여 그해 12월 1일 경성정공을 개업했다. 시작은 중고 자전거의 프레임이나 부품 관련 조립에만 치중했으나 이후 계속된 자전거 수요에 1946년 1월 영등포 공장을 앞세워 본격적인 자전거 개발에 들어갔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1952년 1월 기아산업으로 이름을 변경한 뒤 그해 3월 삼천리호라는 이름의 자전거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윤홍식, 1993). 자전거의 국내 생산이 가능해지자 자전거 산업과 이에 대한 수요는 더욱 증가했다. 특히 일제 강점기와 한국 전쟁을 거치면서 어려웠던 시기에 삼천리호 자전거는 새로운 희망이자 전후부흥의 상징이었다. 기름의 공급이 원활치 않을 때는 국가적 차원에서 자전거를 권장하기도 했다. 1954년 10월 국무총리는 공무원들에게 휘발유 난을 이유로 국산 자전거를 타도록 지시했고, 1956년 1월에는 이승만 대통령이 장관들에게 혼자 어딘가로 갈 때는 자동차 대신 자전거를 사용하라고 말했다(강준만, 2008).
이러한 사회적인 자전거 권장 운동은 1960년대에도 이어지며 선전했지만 이어진 자동차의 급격한 성장으로 빛을 잃기 시작했다. 1962년 새나라자동차에서 근대적 생산라인 체제에 최초로 출시한 ‘새나라’를 시작으로 1970년까지 여러 종류의 자동차를 출고하기 시작했다(중앙일보, 2014). 동시에 1970년 7월 7일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됨에 따라 자동차라는 새로운 운송 수단 시대의 도래를 알렸다(도로교통부, 2020). 정부에서도 급속한 경제 발전을 추진하고 있던 터라 자동차 위주의 교통정책이 우선됐다. 가령 1973년 서울시에서 자전거 통행 제한 구역을 기존 9곳에서 24곳으로 확대하려 했다(조선일보, 1973).
그러던 중 국제 원유값의 폭등으로 잠시 자전거 부흥 운동이 일며 1975년 영동 지구 간선도로를 포함한 3곳에 자전거 전용도로가 건설되기도 했다. 하지만 자전거 전용도로라는 말이 무색하게 그곳은 주차장으로 변모하고 말았다(조선일보, 1976). 이미 국민들의 의식은 자동차가 우선이었다. 그러면서 자전거는 도로보다는 공원이나 광장에 어울리는 처지가 됐다. 그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1991년 삼천리자전거공업의 상표 변경이다. 1990년 어린이나 청소년들에게 부합하는 상표를 공모하여 그다음 해 모든 대리점의 간판을 레스포로 바꿨다. 레저와 스포츠를 합성하여 만든 레스포는 자전거가 레저라는 인식에 방점을 찍었다. 실제 레스포라는 브랜드명 변경 후 1993년 삼천리 자전거공업에서 생산해낸 약 80만대의 자전거 중 절반인 40만대가 레저용 자전거였다(윤홍식, 1993). 자전거의 종류 자체는 다양해졌으나 전체적인 수요 자체는 내리막길을 걸었다(강준만, 2008). 가끔 유가가 급증하거나 환경에 대한 캠페인에 1회성으로만 활용될 뿐이었다. 물론 그 켐페인이 끝나면 어김없이 도로는 자동차들이 점령하고 있었다. 실제 1995년 서울경찰청은 떨어진 근무초소를 다니는 데 목적으로 시내 26개 경찰서 교통초소에 자전거 666대를 지급했지만, 의경들은 자전거타기를 포기했다. 난폭운전이 성행하는 서울 시내에서 자전거 타는 것이 너무 어렵다는 이유에서였다(조철환, 1995).
레퍼런스
강준만(2008). 한국 자전거 문화의 역사: 자전거를 ‘레저’로 만든 ‘자동차 공화국’. 인물과사상, 161-201
고준호(2011).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시의 친환경 교통정책. 월간교통, 87-91
박근화(2020). 코로나19로 인한 국민의 국내 여행 행태 변화. 한국관광정책, (82), 138-144
신희철, 이훈기 (2009). 녹색성장을 위한 자전거 중심 교통체계 구축 방안. 한국교통연구원 기본연구보고서,1-190
이성원, 구세주, 김민정, 김태승, 김희경, 설재훈, 성낙문, 송기한, 신희철, 심재익, 안근원, 안정화, 이재민, 이주연, 최연혜, 최진석, 한상용 (2012). 교통경제학의 관점에서 본 교통문제 분석. 한국교통연구원 수시연구보고서, 1-256
이은진 (2015). 대중교통 중심 도시를 위한 도로다이어트 확대. BDI 정책포커스(284), 1-12
이준호, 신승환, 유도상(2016). 자전거 영웅 엄복동의 체육활동과 그의 활동이 대한제국민들의 독립의식의 고취에 미친 영향. 한국체육과학회지, 25(6), 1-12
오원철(1996). 한국형 경제건설 4. 기아경제연구소, 188
우승국(2014). 공공자전거 이용자 특성 및 온실가스 감축 효과. 대한토목학회 예술대회, 707-708
장성훈(2021). [해외통신원 소식] 전기자전거 도입이 통행행태에 미치는 영향 : 네덜란드 사례. 월간교통, 52-55.
정대영, 이수진(2020). 코로나19, 여행의 미래를 바꾸다. 이슈&진단, 1-25
조영기(2020). 코로나19 이후를 준비하면서. 한반도전진화재단, 4-15
최인진(1999). 한국사진사 1631-1945. 눈빛, 294
홍석기(2011). 자전거 관광도시 서울을 위한 정책방향. 정책리포트(99), 1-22
인터넷 참조
김광현(2012). ‘자전거 천국’ 日 도쿄, 전용 주차장ㆍ도로 편의 눈길. SBS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1179484
김귀수(2021). “한국은 선진국” 공식 인정… UNCTAD ‘개도국→선진국’ 지위 변경. KBS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224508
김사모(1992). 교통사고 세계1위. KBS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3714881
김영환(2015). [자전거타는기자]동해안 보며 라이딩..전국 자전거 도로. 이데일리
https://www.edaily.co.kr/news/read?newsId=01180806609372200&mediaCodeNo=257
김정호(2021). 퍼스널 모빌리티시대…외면 받는 제주 공공자전거. 제주의 소리
http://www.jejusori.net/news/articleView.html?idxno=326566
김호(2021). 예산 11억원 XNDLQ…꽁유짜쩐꺼 3분의 1만 이용. KBS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315596&ref=A
곽용석(2020). 코로나 봉쇄 완화 속… 유럽은 자전거 열풍, ‘왜?’. 초이스 경제
https://www.choice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70746
구민지(2021). 서울시”한강 자전거도로, 2023년까지 보행로와 전면 분리”. MBC
https://imnews.imbc.com/news/2021/society/article/6293791_34873.html
국가통계포털(2021). 자전거도로 현황. 국가통계포털
국토교통부(2020). 경부고속도로 개통 50주년 ‘도로의 날’ 기념식 개최.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https://www.korea.kr/news/policyNewsView.do?newsId=148874417
권영란(2020). [지역에서] 거꾸로 가는 자전거 도로 / 권영란. 한겨레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943590.html
도로교통법(2021). 도로교통법. 국가법령정보센터
https://www.law.go.kr/%EB%B2%95%EB%A0%B9/%EB%8F%84%EB%A1%9C%EA%B5%90%ED%86%B5%EB%B2%95
동아일보(1923). 운동 끝에 충돌. 동아일보
명순영(2021). 코로나19로 자전거 실적 ‘씽씽’…삼천리ㆍ알톤스포츠 주가 기대감. 매일경제
https://www.mk.co.kr/economy/view/2021/687308
문화체육관광부(2015). 70년 동안 한반도를 달려온 삼천리자전거. 문화체육관광부
박문오(2016). 자전거ㆍ보행자 겸용도로에서의 사고. 울산신문
https://www.ulsanpress.net/news/articleView.html?idxno=207543
박천홍(2003). 매혹의 질주, 근대의 횡단: 철도로 돌아본 근대의 풍경. 산처럼, 60
박태우(2020). 서울 자전거도로 ‘눈에 확 띄게’ 바꾼다. 한겨레
https://www.hani.co.kr/arti/area/capital/970054.html
서울특별시(2020). 2019 서울 자전거길 안내지도. 서울특별시, 자전거정책과 자전거시설팀
https://news.seoul.go.kr/traffic/archives/501852
서울특별시(2020). 데이터에 담긴 서울교통 2020. 서울특별시
https://topis.seoul.go.kr/refRoom/openRefRoom_8.do
신동호(1994). 자동차 자전거 추월/1세기만의 ‘역전극’. 한겨레
https://www.hani.co.kr/arti/legacy/legacy_general/L297066.html
안수현(2015). 자전거 이용자 1200만 시대 대한민국, 그 시작은 ‘개화기’. 바이크조선
http://bike.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2/12/2015021201364.html
양영전(2021). ‘위드코로나’ 첫 주말, 제주 관광객 일평균 1300명 증가. 뉴시스
https://newsis.com/view/?id=NISX20211106_0001641604&cID=10813&pID=10800
이대희(2017). 한국 교통사고 사망률 OECD 최상위권… 암사망률은 최하위. 연합뉴스
https://www.yna.co.kr/view/AKR20170929206300002
유한일(2020). 韓자동차 생산량 세계 4위…현대ㆍ기아차, 수소차 판매 독식. 투데이코리아
http://www.today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277387
윤흥식(1993). 기아산업 삼천리호자전거(기업살린 히트상품:16). 국민일보
http://news.kmib.co.kr/article/viewDetail.asp?newsClusterNo=01100201.19930201000000901
정영일(2017). [마켓&][숫자로 알아보는 국내 最古 32] 72년을 한결같이…국내 자전거 산업의 산역사 ‘삼천리자전거’. 넥스트데일리
http://www.nextdaily.co.kr/news/articleView.html?idxno=37249
조선일보(1973). 손수레-자전거 통행제한 24개 구역으로 확대. 조선일보, 1973년 6월 3일, 7면
1973년 6월 3일 조선일보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naver.com)
조선일보(1976). 주차장으로 변한 ‘자전거 전용로’. 조선일보, 1976년 3월 25일, 6면
1976년 3월 25일 조선일보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naver.com)
조철환(1995). 험악한 서울교통/경찰도 “자전거타기 무섭다”. 한국일보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199503060072866639
중앙일보(2014). 대한민국 자동차의 역사. 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16590121#home
Sustrans(2008). The Economic Impact Of Cycling and Walking on the Celtic and Taff Rails. Http://www.sustrans.org.uk
김귀혁 기자(rlarnlgur1997@siri.or.kr)
[21.10.22, 사진=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