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RI=이수영 기자] 티켓을 예매한다. 경기장에 도착한다. 카메라를 켜 외관을 담는다. 스토어에 들어가 셔츠를 하나 구매한다. 표를 검사한다. 경기장에 입장한다. 음료를 한잔 마신다. 열렬히 응원한다. 우리 팀이 이겼다. 집에 돌아온다.

그런데 뭔가 아쉽다. 경기에 이겼는데도 아쉽다. 이유를 고민해 본다. 경기장으로 향하는 버스의 배차간격이 너무 길었다. 외관이 더 예뻤으면 좋았을 텐데, 밋밋했다. 잔디 상태가 안 좋아 선수들이 고생하는 게 눈에 보였다. 비바람이 불어 경기 보기가 힘들었다. 새로 산 셔츠는 비에 젖었다. 경기가 끝나고 택시를 잡는 데 1시간이 걸렸다. 기사님이 경기가 있는 줄 알았으면, 콜을 잡지 말 걸 그랬다며 하소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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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경기장 개장 소식은 언제나 축구 팬들을 설레게 한다. 현대스포츠에서 경기장이 가진 의미가 단순히 경기를 보는 공간을 넘어서면서 관람객들은 더 많은 ‘구장 경험’을 얻고자 한다.

물론 경기장 신축이 언제나 환영받는 것은 아니다. 사후 관리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 수립 없이 지어져 거액의 유지, 운영 비용만을 남겨둔 사례들도 분명 있다.

대게 메가스포츠이벤트 개최를 위해 급하게 지은 경기장이 이에 해당한다. 대회 이후 활용 가치가 떨어지면서 투자 대비 유지 비용이 추가 수익을 내지 못하는 것이다.

스포츠계에서는 이러한 애물단지를 가리켜 ‘White Elephant(하얀 코끼리)’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하지만 경기장이 프로스포츠 구단을 위해 지어진다면 이야기가 조금은 다를 수 있다. 프로구단의 대표적 수입원 세 가지는 입장권 수익, 커머셜 딜(스폰서 수익), 그리고 중계권 수익이다.

이 중 가장 가변적인 수입원이 바로 입장권 수익이다. 우리는 코로나19 당시 무관중 경기의 진행으로 구단들이 얼마나 많은 재정적 손해를 보았는지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반대로 이해해 보면 코로나19와 같은 변수가 없을 때, 프로구단이 매 시즌 홈경기를 통해 일정한 수익을 거둘 수만 있다면 이는 매우 꾸준한 수입원이자 무기가 된다.

글로벌 리서치 전문기관 STATISTA가 올해 발표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지난 22/23시즌 전 세계 축구팀 중 가장 많은 수익을 올린 레알 마드리드는 관중 수익으로만 1억 2,200만 유로(한화 약 1,764억 원)를 벌어들였다. 물론 중계권과 스폰서 수익이 입장 수익보다 더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수입원의 가변성을 고려할 때 위 수치는 프로스포츠 구단 운영에서 관중 수익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더욱이 프리미어리그는 현재 중계권료의 공동 분배 정책을 운용하고 있어, 입장권 수익이 구단 간 수익 차이를 만들어내는 핵심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따라서 구단들은 관중 동원을 기반으로 한 최고의 ‘구장 경험’을 고객들에게 제공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할 수밖에 없다.

관람객들의 니즈 역시 구단의 노력과 맥을 같이한다. 현대 프로스포츠에서 경기장은 더 이상 경기를 보는 공간에 그치지 않는다. 관중들은 경기장에서 이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다양성을 추구한다. 더 많은 볼거리와 편의성을 제공받기를 원한다. 최첨단 기술을 통해 새로움을 얻고자 한다.

이뿐일까? 스포츠업계가 최근 환경문제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가운데, 구장의 설계, 시공 면에서도 친환경적 접근이 필수적이다. 구장이 지역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와 사회적 책임도 고려해야 한다.

관객들은 구장의 접근성은 물론이거니와, 외관과 디자인까지도 관심을 둔다. 더 이상 축구장이 경기만 하는 장소에 그치는 시대가 아니다. 스타디움은 관중들의 니즈와 다양한 고객 경험을 제공해야 하는 장소로 그 역할이 바뀌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오래된 경기장들은 노후화로 인해 고객들의 니즈를 충족하는 데 한계가 있다.

우리가 그토록 열광하는 영국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 20개 구단을 예시로 살펴보자. 20개 구단 홈구장 가운데 1800년대에 개장한 경기장이 차지하는 수는 10개(셰필드1855/첼시1877/번리1883/리버풀1884/울브스1889/뉴캐슬1892/에버턴1892/풀럼1896/빌라1897/노팅엄1898)다.

1930년 이전으로 범위를 넓히면 4개(루턴1905/맨유1910/본머스1910/펠리스1924) 구장이 추가된다. 20개 구장 가운데 무려 14곳이 1930년 이전에 지어졌다는 말이다.

2000년대 개장된 구장은 6개(맨시티2003(축구경기장)/아스날2006/브라이튼2011(준공)/토트넘2019/브렌트포드2020)에 불과하다. 신식 구장이 무조건 더 좋다는 의미가 아니다. 경기장을 신축, 증축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한두 푼도 아니며, 경기장을 지으려면 예산, 지리, 정치, 법률 등 뒤따르는 다양한 이해관계가 모두 한 대 맞아야 한다. 나아가 오래된 구장에는 그에 걸맞은 역사와 시간의 흔적이 그대로 묻어 있다. 전통을 중요시하는 구단이 단순히 트렌드를 따라 목적 없이 구장을 신축해야 할 의무는 없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점은 1800년대 지어진 구장과 2000년대 지어진 구장이 제공할 수 있는 고객 경험에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의 주장 손흥민 선수가 몸담은 토트넘 핫스퍼 FC다.

토트넘은 지난 2019년 4월 기존 경기장 화이트 하트 레인을 허물고, 토트넘 핫스퍼 스타디움을 개장했다. 이로써 토트넘은 62,850명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게 됐다. 기존 구장이 수용 가능했던 36,283석에서 확연히 늘어난 수치다. 런던에 위치한 프리미어리그 구장 중에서는 가장 큰 수용 인원이며, 영국 전체로 범위를 넓히더라도 올드 트래프드(맨유)에 이은 두 번째다. (웸블리스타디움은 국가대표팀 경기장이기에 배제했다.)

그러나 토트넘 핫스퍼 스타디움이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히 수용인원 증가에만 있지는 않다. 토트넘은 구장 신축 설계 및 시공 과정에서부터 다양한 최첨단 기술과 활용성을 선보였다.

토트넘 핫스퍼 스타디움은 스포츠 시설 전문 건설업체 파퓰러스(Populous) 영국 지부의 설계 아래, 약 10억 파운드(한화 약 1조 6,939억 원)를 들이며 지어졌다. 경기장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지붕에는 자동차에 주로 활용되는 스포크 휠 시스템을 기반으로 한 최첨단 루프(roof) 시스템이 사용됐다. 특히 무게와 기술, 에너지 효율성과 같은 구조적 유연성과 극한의 날씨 조건으로부터 대처할 수 있는 기후적 유연성까지 모두 갖추었다는 점이 눈에 띈다.

또한 구장을 다목적 경기장으로 지으면서 NFL(미국 미식축구리그) 구장으로도 이용하고 있다. 개폐식 잔디 구장 공법을 사용해 축구용 잔디 아래 미식축구용 잔디를 깔고, 종목에 따라 유연하게 바꿔가며 스포츠뿐 아니라 콘서트 등 다양한 이벤트를 개최하고 있다. 구장의 활용성과 수입원을 동시에 끌어올리는 셈이다.

경기장 내부는 백화점을 떠올리게 하는 깨끗한 시설과 다양한 음식 거리, 무선 인터넷 서비스 등으로 관중이 존중받는 고객이 된 듯한 느낌을 심어준다.

토트넘은 경기장 신축을 통해 기존의 노후화된 시설에서 탈피하고, 깨끗하고 새로운 경험 거리를 제공하는’ 토트넘적 브랜드가치’를 새로이 갖출 수 있게 됐다.

한편 토트넘뿐 아니라 많은 구단이 새 구장 마련을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에버턴은 2025년 개장을 목표로 ‘브램리 무어 도크 스타디움(가칭)’을 짓고 있다. 기존에 사용하던 ‘구디슨 파크’는 1892년 개장해 130년 이상을 사용해 온 노후화된 구장이다. 에버턴은 구장 신축을 통해 약 13,000명 가까운 관중을 더 수용할 수 있게 될 뿐 아니라, 약 13억 파운드(한화 약 2조 2,081억 원) 가치에 가까운 영국 경제사회 기여, 수천개의 일자리 창출, 140만 명의 리버풀 방문객을 유치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아스톤빌라 역시 1897년 개장된 홈 경기장 ‘빌라파크’ 부지를 새로 조성하고 관중석을 증축할 계획이다. 빌라는 경기장 재건축을 통해 영국 중부 지역 최고의 경기장이자, 지역사회를 위한 공공장소, 그리고 이를 통한 새로운 팬 유입을 꿈꾸고 있다.

이제는 구장도 트렌드인 시대다. 관중은 경기를 하나의 경험으로써 이해한다. 구장은 소비자의 경험을 극대화하기 위해 그들의 니즈를 만족시켜야 한다. 더 많은 관중에게 더 많은 볼거리와 편의성을 제공하고, 지역사회와 밀접한 관계를 맺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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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켓을 예매한다. 버스를 놓쳤는데, 다음 버스가 곧바로 왔다. 경기장 바로 앞에서 내렸다. 화려한 그래픽의 외관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외관을 배경으로 사진을 몇 장 담는다. 지문 인식을 통해 경기장에 입장한다. 와이파이가 빵빵하게 터진다. 화장실이 깨끗하고, 음식 종류도 많다. 경기장 내부에 들어오니 비가 온다. 지붕이 비를 막아주어 경기를 보는 데는 지장이 없다. 잔디 상태가 좋아 선수들이 편하게 뛰는 듯 보인다. 경기에 이겼다. 바로 앞 역에서 지하철을 탔다.

경기장은 더 이상 경기만을 보는 공간이 아닌, 다양한 고객 경험을 제공하는 복합문화공간이다.

이수영 기자(sdpsehfvls@naver.com)

[24.03.08. 사진 = 토트넘, 에버턴, 첼시, 아스날 공식 유튜브 캡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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