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RI=노은담 기자] 스포츠 경장은 치맥과 파도타기, 떼창의 무대로 변했다. 그 사이, 정작 ‘경기’는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
푸드트럭과 굿즈 매장이 입구를 가득 채운다. 관중들은 포토존 앞에서 인증샷을 남기고, 손에는 응원봉과 생맥주가 들려 있다. 경기장의 낯익은 풍경이지만, 이 안에는 스포츠 본연의 가치와 상업화 흐름 사이의 묘한 긴장이 깔려 있다. ‘함께 보고, 응원하고, 즐긴다’는 스포츠의 공동체 정신은 여전하지만, 관람의 중심이 경기에서 ‘경험’으로 옮겨가면서 그 의미는 점점 달라지고 있다.
국내 프로야구장을 찾는 관객의 모습은 이제 전통적인 스포츠 팬과는 조금 다르다. 많은 이들이 경기장에 오기 전 SNS 업로드를 위한 OOTD(오늘의 착장)를 고민하고, 자리를 잡자마자 ‘치맥 인증샷’을 남긴다. 경기 중간에는 인기 푸드 부스를 찾아 긴 줄을 서고, 돌아와서는 치어리더의 율동에 맞춰 떼창에 참여한다. 이 모든 행위는 ‘경기를 더 즐기기 위한 수단’일 수 있지만, 점차 그 수단이 목적화되면서 경기 자체에 대한 집중도는 떨어지고 있다.
이는 경기장의 운영 구조에도 반영된다. 일부 구단의 경우, 홈경기 수익의 30% 이상이 식음료 및 굿즈에서 발생하고 있으며, 관중 1인당 F&B 지출은 티켓가의 80%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승부보다 소비가 중심에 놓이게 되는 순간, 스포츠는 더 이상 ‘경기를 보는 행위’만으로 정의되지 않는다.
물론 이런 흐름은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젊은 세대의 유입을 촉진하고, 경기장을 ‘머물고 싶은 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는 데에 분명 효과적이다. 하지만 ‘스포츠는 경기력이 주인공’이라는 원칙이 흐려지는 순간, 충성도 높은 팬보다 ‘재방문율 낮은 소비자’만 남게 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환경은 뒷전…폭증하는 일회용 쓰레기
경기장 내 탄소 발자국 문제도 심각하다. 야구장은 하루 수천에서 수만 개의 일회용 플라스틱 컵, 접시, 용기가 소비되는 ‘탄소 폭탄’ 공간이다. 특히 PET, 알루미늄 컵 등 단일 사용 제품은 사용 후 대부분 소각되거나 매립되며, 환경적 비용이 사회 전반에 전가된다.
환경단체 Upstream의 보고서에 따르면, 스포츠 경기 및 페스티벌 현장에서 단 한 번 사용되는 컵들만으로도 수십만 킬로그램의 탄소가 배출되며, 처리 비용 또한 시민의 세금으로 전가되고 있다. 예컨대 알루미늄 일회용 컵은 탄소 배출량이 약 60만 kg에 달하는 반면, 재사용 가능한 PP(폴리프로필렌) 컵을 300회 재사용하면 탄소 배출량을 90% 가까이 줄일 수 있다.

Upstream은 실제로 미국 워싱턴주의 프로팀과 협업해 ‘리유저블 컵 프로그램’을 도입한 사례를 소개한다. 해당 팀은 다회용 컵을 사용해 연간 수십만 개의 일회용 폐기물을 줄였고, 이를 통해 비용 절감은 물론 팬들로부터 높은 만족도도 이끌어냈다. 팬들은 리유저블 컵을 반납하거나 기념품처럼 가져갈 수 있었고, 일부는 컵에 QR코드를 붙여 팀 정보와 친환경 캠페인을 연결하는 방식도 도입했다. 이는 스포츠 관람이 환경 교육의 장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하지만 국내 스포츠 경기장은 여전히 ‘편의성’과 ‘속도’에 방점을 둔 운영에 머무르고 있다. 일부 구단은 ‘텀블러 반입 불가’ 지침을 고수하거나, 재사용 컵 반납소조차 마련돼 있지 않은 상황이다. 소비자의 의지가 시스템에 의해 좌절되는 구조다.
이처럼 관중 체험과 편의를 명목으로 한 ‘일회용 중심 관람문화’는 장기적으로 ESG 가치와도 충돌하며, 구단 브랜드의 지속가능성을 해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실제로 팬 커뮤니티 내에서도 “한두 시간 즐기자고 지구를 망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으며, 향후 기업 후원사들의 ESG 평가 기준에서도 ‘경기장 환경 관리’가 하나의 항목으로 포함될 가능성도 있다.
이제는 팬의 쓰레기만 책임질 것이 아니라, 경기장을 설계하는 구단과 리그 차원의 구조적 전환이 필요하다. 친환경 식기 사용, 반납·세척 시스템 구축, 지역 비영리 단체와의 연계 같은 선순환 구조를 통해 경기장을 ‘소비 공간’에서 ‘지속 가능한 공공문화 공간’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응원과 경험의 상업화가 만든 ‘관람 격차’
스포츠는 본래 계층, 성별, 나이, 소득 수준을 막론하고 누구나 함께 즐길 수 있는 가장 민주적인 문화 중 하나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최근 경기장에서는 그 ‘평등성’이 점점 무너지고 있다. 구단들이 수익 극대화를 목적으로 프리미엄 좌석, 프리미엄 관람 패키지, 전용 응원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관중 간의 ‘관람 격차’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프리미엄석에는 단순히 시야 좋은 좌석을 넘어, ‘전용 응원단’의 퍼포먼스, ‘프라이빗 응원 키트’, 고급 음식과 음료가 포함된 ‘식음 패키지’까지 포함된다. 반면 일반석 관람객은 동일한 응원단의 참여 기회는커녕, 관람 동선에서조차 제약을 받는 경우가 많다. 이는 단순한 서비스 차이를 넘어 ‘응원의 불평등’으로 이어진다. 같은 팀을 응원하더라도, 자리에 따라 응원 리듬과 참여 경험이 달라지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상업화가 스포츠의 공공성을 훼손하고 있다는 점이다. 본래 스포츠 경기장은 팬과 선수가 한 호흡으로 교감하는 공간이다. 그러나 좌석 등급에 따라 서로 다른 경험을 하게 되는 구조는, 스포츠를 함께 즐기기 위한 공동체적 감각을 희석시킨다. “같은 경기를 봐도, 어떤 팬은 공연장처럼 즐기고 어떤 팬은 참관인처럼 머문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또한 가격 구조의 불투명성은 팬들 간 불신을 부추긴다. 입장권 자체는 비슷한 가격대이더라도, 경기장 내 음식 가격과 구성은 좌석 위치와 연계돼 급격히 달라진다. 일부 매장은 프리미엄 메뉴만 판매하거나, 카드 결제만 가능해 이용에 제약을 주기도 한다. 동일한 금액을 지불했지만, ‘내가 손해 본 듯한 경험’을 겪은 팬들은 점차 이탈하게 된다.
‘돈을 많이 낼수록 더 즐길 수 있는 경기장’이라는 구조는 스포츠 팬층을 ‘충성도 높은 지지자’에서 ‘재방문율 낮은 소비자’로 바꿔버린다. 경험의 차별은 곧 애정의 차별로 이어지고, 이는 장기적인 팬덤 붕괴로 연결된다. 특히 가족 단위 관람객, 청소년, 중장년층 팬들은 가격과 체험의 간극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예전보다 스포츠가 멀어졌다”는 박탈감을 토로하기도 한다.
이 같은 격차 구조는 사회 전반의 양극화와도 맞물린다. ‘VIP존에서 치어리더와 함께 인증샷을 찍는 팬’과 ‘일반석에서 빈자리만 바라보는 팬’ 사이의 간극은 단순한 관람 차이를 넘어 스포츠 문화의 위계를 암시한다. 이는 스포츠가 추구해야 할 평등과 참여의 가치를 정면으로 훼손하는 구조적 문제다.
결국 상업화된 응원과 경험의 구조는 단기 수익에는 도움이 될 수 있어도, 팬 충성도와 공동체성, 장기적 브랜드 신뢰에는 악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경기장을 채우는 것은 좌석 판매가 아니라, 팬들의 진정성 있는 참여와 감정이다. 그 ‘공유된 경험’을 특정 계층만 누리게 될 때, 스포츠는 점차 소비재로 전락하고 만다.
규칙보다 리듬? 파도타기와 떼창의 ‘과잉 몰입’
집단 응원 퍼포먼스도 양면성을 갖는다. 떼창, 파도타기, 단체 율동은 공동체 결속을 돕는 도구지만, 지나치게 퍼포먼스 중심으로 응원이 구성되면 경기의 흐름을 방해하기도 한다. 특히 상대팀 투수 투구 중 발생하는 의도적 소음, 루틴 방해 행위는 스포츠맨십과 공정성이라는 경기의 기본 원칙에 위배된다.
이 같은 응원 문화의 ‘과잉’은 외국에서도 풍자의 대상이 된다. 한 미국 야구장 전광판에는 다음과 같은 경고문이 등장했다.
“DOING THE WAVE WILL, YES, WILL CAUSE TEARS TO THE SUPRASPINATUS MUSCLE… ANY CHILDREN DOING THE WAVE WILL BE SOLD TO THE CIRCUS.”
의학적 경고에 이어 “파도타기를 하는 아이들은 서커스에 팔린다”는 문구는 농담이지만, 그 안에는 집단 응원의 비합리성과 과도함을 꼬집는 냉소가 담겨 있다. 이 안내문은 이어서 “파도타기는 프로풋볼과 마일리 사이러스 콘서트에서는 안전합니다”라고 덧붙이며, 야구장—즉 ‘경기 그 자체가 주인공이어야 하는 공간’—에서는 응원이 주객전도가 되어선 안 된다는 메시지를 유쾌하게 전달한다.
이처럼 응원이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 될 때, 스포츠는 경기 중심의 몰입과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다. 반대로 퍼포먼스 중심의 응원에 지나치게 의존할 경우, 야구장은 공연장이 되고, 경기는 그 배경으로 전락할 수 있다.
스포츠미디어 시리(Sport Industry Review&Information)
노은담 기자(ddaltwo9@naver.com)
[25.06.28 사진 = 잠실 야구장 직접 촬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