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RI=노은담 기자] 스포츠 산업에서도 지배구조가 무너지면, 아무리 화려한 친환경과 사회책임 활동도 결국 팬의 신뢰를 잃는다.
친환경 캠페인, 사회공헌 활동, 공정 무대 조성. 스포츠계 전반에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바람이 불고 있다. 특히 탄소중립, 인권 보호 등은 대중의 관심과 기업의 후원까지 이끌며 눈에 띄는 성과를 내고 있다. 하지만 그 화려한 ESG 전략 속에 ‘G’, 지배구조(Governance)는 여전히 사각지대에 머물고 있다. 최근 한국 축구계를 휩쓴 각종 논란은 ‘G 없는 ESG’가 얼마나 공허할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2024년 대한축구협회는 홍명보 감독과 유르겐 클린스만 전 감독의 선임 과정에서 심각한 절차적 위반을 저질렀다. 기술위원회 및 전력강화위원회를 사실상 배제한 채, 일부 임원이 단독으로 후보자를 면접하고 인사 결정을 밀어붙였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문화체육관광부의 감사 결과, 이는 협회의 내부 규정을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었으며, 정몽규 회장을 포함한 고위 임원 16명에게 징계가 권고됐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같은 해 7월부터 시작된 문체부 감사에서 총 27건의 법령 및 절차 위반이 추가로 확인됐다. 보조금 집행 오류, 회계 처리 부적정, 예산 관리 부실 등 협회의 운영 전반에 걸친 문제가 드러난 것이다. 이에 따라 문화체육관광부는 회장의 직무 정지까지 권고했지만, 협회 측의 법적 대응으로 징계 절차는 일시 정지된 상태다.
2025년 제55대 회장 선거는 혼란의 정점을 찍었다. 선거인단 구성과 선거운영위원회의 권한을 둘러싼 갈등으로 일정이 수차례 연기됐고, 결국 무기한 연기 사태로 이어졌다. 회원사와 후보자들 사이에서 “공정성·투명성이 무너졌다”는 비판이 이어졌으며, 팬들 사이에서도 불신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런 반복되는 절차적 혼란은 축구 산업 전체의 신뢰 기반을 흔들고, 장기적으로 관중 수 감소와 후원 철회를 유발할 수 있는 리스크로 번지고 있다.
정부 감사와 징계 논란은 국제 사회로까지 번졌다. FIFA는 문체부의 감사가 협회의 자율성을 침해할 수 있다며 “스포츠 단체 운영은 외부 간섭 없이 이뤄져야 한다”는 경고 서한을 공식 발송했다. FIFA 정관상 정치적 독립은 핵심 가치이며, 이를 위반할 경우 국제 대회 참가 제한 등 중대한 제재가 뒤따를 수 있다. 한국 축구의 국제적 신뢰에도 빨간불이 켜진 셈이다.
그렇다면 왜 ‘G’는 ESG 담론에서 늘 뒷전일까? 전문가들은 우선 측정 지표의 부재를 지적한다. 환경은 탄소 배출량, 사회는 다양성과 인권 지표 등으로 수치화가 가능하지만, G는 의사결정 구조나 이사회의 투명성 같은 질적 요소가 많아 정량화가 어렵다. ESG 평가에서 G 항목이 형식적으로 처리되기 쉬운 구조적 이유다. 더불어 미디어와 투자자들은 흥미 요소가 큰 탄소중립, 인권, 젠더 이슈 등에 주목하며, 상대적으로 거버넌스에는 무관심하다. 이러한 구조적 편중은 G에 대한 실질적 관심과 개혁 의지를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는다.
국내 스포츠 연맹의 폐쇄적 구조도 문제다. 오랜 역사와 기득권 구조를 지닌 협회일수록 이사회는 내부 인사 중심으로 구성되고, 외부 견제는 형식에 그친다. 장기 집권 체제, 친분 중심의 인선, 회의록 미공개 관행 등은 공정성과 책임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해왔다. 특히, 권한과 책임의 불균형은 의사결정의 독립성과 투명성을 해치고, 이사회가 특정 세력에 의해 좌우될 수 있는 구조를 고착화시킨다.
여기에다 성적 중심의 단기 성과주의도 거버넌스 개혁을 지연시키는 결정적 요인이다. 당장의 경기 성과를 위해 예산은 스타 영입과 감독 교체에 몰리고, 시스템 개선이나 내부 투명성 강화를 위한 투자와 논의는 후순위로 밀린다. 이는 일종의 ‘성과 중독’으로, 장기적 지속가능성보다는 눈앞의 결과에 몰두하는 조직 문화를 고착화시킨다.
이제는 변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스포츠 산업의 G를 실질적으로 강화하기 위한 다각적인 로드맵을 제시하고 있다. 우선, 외부 감사와 팬 대표, 여성, 전문가가 포함된 독립 이사회 구성이 필요하다. 단순 자문이 아니라 실질적 의결권을 부여하는 구조 개편이 핵심이다.
또 예산, 회의록, 티켓 매출 등을 실시간 공개하는 투명성 대시보드를 운영하고, 블록체인 기반의 추적 시스템을 활용하면 위변조 방지도 가능하다. 성별·전문성·연령 다양성 등 이사회 구성에 대한 공시와 목표치 설정도 제도화되어야 하며, ISO 37001 같은 부패방지 인증, 스포츠윤리센터 외부 인증을 도입하는 등 국제 표준과의 연계를 강화할 필요도 있다. 최근에는 AI 기반 리스크 탐지 시스템을 통해 선수 이적, 계약, 회계 등에서 이상 징후를 조기 감지하는 시도도 등장하고 있다.
무엇보다 팬과 선수의 ‘직접 참여’가 열쇠다. 이사회 내 일정 비율을 팬과 선수가 직접 선출하도록 법제화하고, 자문이 아닌 실질적 의결권을 부여하는 방안은 스포츠 조직에 ‘주인의식’을 되살릴 수 있는 중요한 제도적 전환점이 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상징적 제스처가 아니라, 실제 의사결정 구조에 시민사회의 통제권을 부여하는 민주적 실험이기도 하다.

실제로 G의 부실은 E와 S를 무너뜨린다. 2023년 울산 문수축구경기장에서 진행된 재활용 캠페인은 내부 혼란과 예산 부족으로 후속 운영이 무산됐다. 팬 자문단, 청소년 축구교실 등 시민 참여형 프로그램도 방향을 잃고 있다. 사면 번복, 선거 지연, 감독 선임 혼선으로 인한 팬들의 불신은 경기장 내 ‘퇴진’ 구호와 야유로 표출되고 있고, 이는 관중 수 감소와 후원사의 이탈로 이어질 가능성도 크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스포츠 조직들이 ESG라는 이름으로 화려한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진정한 지속가능성은 눈에 보이는 캠페인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구조 속에서 시작된다. 이제 한국 스포츠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투명성은 비용이 아니라 보험’이라는 말처럼, 진짜 ESG는 권한을 분산시키고 시민 참여를 보장하는 구조 개편에서 출발한다. 환경(E)과 사회(S)만으로는 부족하다. G 없는 ESG는, 결국 무너진다.
스포츠미디어 시리(Sport Industry Review&Information)
노은담 기자(ddaltwo9@naver.com)
[25.06.28 사진 = KFA 로고, 울산문수경기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