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RI = 권소현 기자] 2025~2026 KBO 스토브리그가 예년과 달리 극도로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전개되고 있다. FA(자유계약선수) 시장이 문을 연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KBO는 ‘계약 0건’이라는 이례적인 침묵을 기록 중이다.
예년 같으면 시장 개장과 동시에 하루 두세 건씩 계약 소식이 터져 나오며 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지만, 올해는 다르다. 구단들의 지갑이 단순히 얼어붙은 것만은 아니다.
아시아쿼터 제도의 전격 도입, 샐러리캡 상한선의 현실적인 압박, 그리고 리그 전반에 가속화된 세대교체 바람. 이 세 가지 거대한 변화가 동시에 작용하며 각 구단의 ‘지출 구조’와 ‘전력 보강 방식’을 뿌리부터 뒤흔들고 있다.
7일째 무계약, FA 시장이 멈췄다
FA 시장 개장 7일째, 주요 FA 선수들의 협상 테이블은 여전히 조용하다. 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선수는 아무도 없다.
지난 2024년 스토브리그만 해도 개장 첫 주에만 7건의 굵직한 계약이 성사되며 시장을 달궜다. 하지만 올해(2025)는 ‘0건’이다. 최근 5년간 FA 첫 주 계약 건수 추이를 살펴봐도 유례없는 ‘거래 절벽’이다.
수도권 구단의 한 단장은 “시장에 돈이 마른 것이 아니다. 쓸 돈은 있지만, ‘어떻게’ 써야 할지 모두가 숨죽이고 눈치만 보는 중”이라며 “아무도 먼저 총대를 메고 싶어 하지 않는 분위기”라고 현 상황을 전했다.
이러한 ‘눈치 보기’의 배경에는 복합적인 요인이 자리한다.
첫째, 샐러리캡의 압박이다. 2026시즌 샐러리캡 상한(115억 원)에 근접한 구단이 다수다. 이미 지난해 ‘큰 손’ 역할을 했던 팀들은 내부 FA 단속과 기존 선수 연봉 인상만으로도 캡이 한계에 다다른 상황. 무리하게 외부 FA를 영입했다가 샐러리캡 초과 페널티(벌금 및 신인 지명권 제한)를 감수할 여력이 없다.
둘째, 세대교체 기조다. 각 구단은 ‘미래 가치’에 더 큰 비중을 두기 시작했다. 30대 중반을 넘어선 베테랑 FA에게 거액을 안기기보다, 이미 확보한 20대 초중반의 젊은 유망주를 보호하고 육성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이득이라는 계산이다.
가장 결정적인 변수는 셋째 요인이다. 내부 육성 외에, ‘값싼 즉시전력감’을 확보할 새로운 루트가 열렸기 때문이다. 바로 아시아쿼터 제도다.
20만 달러의 변수, 아시아쿼터의 등장
지난 11일, 한화 이글스가 대만 출신 좌완 투수 왕옌청(王彦程)과 계약하며 ‘아시아쿼터 1호 영입’을 발표했다. KBO 리그에 ‘저비용 고효율’ 전략의 신호탄이 쏘아 올려진 순간이다.
2026시즌부터 본격 도입되는 아시아쿼터 제도는 KBO 구단이 기존 외국인 선수 3명 외에, 아시아(대만, 일본, 호주 등) 국적 선수 1명을 추가로 보유할 수 있게 한 제도다. 핵심은 ‘비용’이다. 이들의 연봉과 옵션은 최대 20만 달러(약 2억 6천만 원)로 제한된다.
이는 FA 시장을 직접적으로 흔들고 있다. 당장 한화는 왕옌청 영입으로 부족했던 좌완 불펜을 저렴하게 보강했다. NPB(일본프로야구) 라쿠텐 골든이글스 2군에서 뛰었던 왕옌청은 즉시 전력감으로 꼽힌다.
한화 외에도 롯데 자이언츠, NC 다이노스 등 복수의 구단이 아시아 시장에서 활발하게 선수를 물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구단 운영팀 관계자는 “냉정하게 말해, 국내 FA 시장에서 B급으로 분류되는 선수 한 명을 잡는 데 3~4년 20억은 든다. 아시아쿼터 20만 달러는 국내 FA 중간급 선수의 1년 연봉도 안 되는 돈”이라며 “이 돈이면 아시아 선수 3~4명을 스카우트하고 테스트할 수 있다. 구단 입장에서는 매력적인 카드”라고 평가했다.
아시아쿼터의 등장은 향후 시장 구조를 완전히 바꿀 전망이다.
전력이 부족한 중하위권 팀에는 ‘틈새 보강’의 절호의 기회다. 상위권 팀이라도 샐러리캡에 여유가 없다면, 비싼 국내 FA 불펜 요원 대신 아시아쿼터 카드를 ‘샐캡 절감용’으로 활용할 수 있다. 10억 원짜리 국내 FA 대신 2억 원짜리 아시아쿼터 선수를 쓰는 순간, 샐러리캡 8억 원이 절약된다.
세대교체와 비용 절감, 구단의 새 계산법
샐러리캡과 아시아쿼터라는 강력한 규제와 변수 속에서, 구단들은 달라진 시장 논리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비용 절감’과 ‘지속 가능성’이 스토브리그의 새로운 화두가 됐다.
LG 트윈스, SSG 랜더스, 한화 이글스 등을 중심으로 확산하는 ‘젊은 팀’ 전략이 대표적이다. 이들 팀은 30대 베테랑 FA 영입에 소극적인 대신, 20대 주전급 선수들의 성장에 투자를 집중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30대 이상 베테랑 FA의 시장 가치는 하락하고 있으며, 이들의 계약 소식은 시장 후순위로 밀려나는 패턴이 굳어지고 있다.
샐러리캡을 초과할 경우, 단순 벌금을 넘어 1라운드 신인 지명권 순위가 하락하는 등 리스크가 구체화되면서 ‘FA=오버페이’라는 공식은 이제 옛말이 됐다.
지방 구단의 한 단장은 “이제 FA 영입은 전력 보강의 ‘메인’이 아니다. 팀의 코어는 내부 육성으로 만들고, 샐러리캡과 팀 컬러에 딱 맞는 ‘마지막 퍼즐’을 맞추는 용도로만 FA 시장을 활용하게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결국 이번 스토브리그의 침묵은 단순한 불황이 아니다. ‘KBO 스토브리그 경제학’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다.
FA 계약 총액이 아니라, 샐러리캡 대비 효율성과 아시아쿼터의 활용법이 구단의 성패를 가르는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조용한 스토브리그’는 사실,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계산의 시간’이다.
스포츠미디어 시리(Sport Industry Review&Information)
권소현 기자 (so_hyu@naver.com)
[25.11.13, 사진제공 = KBO 공식인스타그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