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30일, 한국시리즈가 막을 내리면서 이번 시즌 KBO 리그가 마무리됐다. 지난 3월 말 개막부터 약 7개월간의 대장정이었다. 그 어느 때보다 다사다난했던 2017년이었다. 심판 금품수수 논란으로 야구계가 떠들썩했고 선수들의 크고 작은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그 속에서도 관중 수는 역대 최고치를 찍었고 마지막 경기까지 치열한 순위 싸움이 이어졌다. 결국 우승을 차지한 KIA 타이거즈만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10개 구단 모든 팀은 저마다의 얘기를 가지고 있다. 어떤 팀들은 일찌감치 내년을 준비하고 있었고 또 다른 팀들은 아직까지 아쉬움에 잠 못 이루고 있을지도 모른다. 오늘부터 10번에 걸쳐 모든 구단의 올 시즌을 되돌아보려 한다.
kt의 2017년
첫 번째로 살펴볼 팀은 kt 위즈다. kt는 1군 진입 3년 차로 올해도 10위에 머물렀다. 신생팀으로서 창단 초기에는 어려움을 겪는 것이 당연하지만 3년 연속 최하위는 다소 아쉬운 모습이다. 0.347의 승률은 그 전 두 시즌보다 못한 성적이다. 몇 해 전 9번째 구단으로 창단됐던 NC 다이노스의 초기 모습과 비교해보면 아쉬움은 더욱 크다.
지난겨울 김진욱 감독이 새로 부임하고 이번 시즌 kt의 시작은 좋았다. SK 와이번스를 상대로 한 개막전에서 3연승을 기록했고 1경기 패배 이후 다시 4연승으로 돌풍을 일으켰다. 그 기간 한 경기 최다 실점은 2실점으로 투수진에서 안정된 모습을 보여주며 초반 선두 자리를 지켰다. 하지만 지난 시즌 팀 선발의 희망이었던 주권이 연속해서 무너지는 등 부진하며 4월을 8위로 마쳤다.
전반기 투수진에서 라이언 피어밴드가 고독한 에이스로 팀을 이끌었고 뒷문은 김재윤과 엄상백,심재민이 단단히 잠갔다. 특히 김재윤은 최고구속 150km가 넘는 강속구를 앞세워 6월 초까지 평균자책점 0을 지켰다. 하지만 나머지 선수들의 부진과 부상이 겹치며 팀은 위기를 맞았다. 외국인 타자 조니 모넬은 1할대 타율로 크게 부진하며 5월에 방출됐다. 맹타를 휘두르던 오정복은 6월에 부상을 당하며 1달 넘게 경기를 뛰지 못했다. kt는 5월 10승 16패, 6월 5승 20패, 7월 3승 16패로 갈수록 부진했고 최하위로 내려앉았다.
시즌 중반부터 믿었던 마무리 김재윤은 점점 힘을 잃었고 엄상백은 부상으로 1달 이상 결장했다. 야수들의 수비는 불안정했고 타격 역시 좋지 못했다. 새로 영입된 외국인 타자 멜 로하스 주니어와 트레이드로 합류한 윤석민이 타선에 힘을 보탰지만 둘만으론 역부족이었다. 돈 로치와 피어밴드, 고영표는 분전했지만 야수들의 도움을 받지 못해 승수를 챙기기 어려웠다. 8월 역시 8승 16패로 좋지 못했다. 9월이 돼서야 고춧가루를 뿌리며 kt는 반등에 성공했다. 9월 이후 12승 12패로 5할의 승률을 기록하며 다른 팀들의 순위경쟁을 방해했다. 유한준과 정현, 로하스가 선전하며 타선을 이끌었고 이상화가 불펜의 중심이 되어 뒷문을 틀어막았다. 막판의 좋은 모습은 내년을 기대할 수 있게 만들었다. kt는 최종성적 50승 94패 승률 0.347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시즌 MVP: 고독한 에이스 피어밴드
이번 시즌 kt 최고의 선수를 뽑아보라면 십중팔구 피어밴드를 뽑을 것이다. 피어밴드는 작년 시즌 도중 넥센에서 퇴출당했고 kt가 곧바로 영입해온 선수다. 그리고 올해 그 결정이 신의 한 수가 됐다. 올 시즌 리그 정상급 에이스로 팀을 묵묵히 이끌었다. 평균자책점 3.04는 리그 1위에 해당된다. 그럼에도 8승 10패의 성적표를 받게 된 것은 운이 안 좋았다고 볼 수 밖에 없다.
피어밴드는 시즌 초부터 2경기 연속 9이닝 무실점의 괴력을 보여줬다. 다만 두 번째 경기는 경기가 연장까지 가는 바람에 완봉으로 기록되진 않았다. 중간에 계속 변동이 있었지만 피어밴드는 시즌 마지막까지 평균자책점 1위 자리를 지켰다. 8월까지 쭉 2점대 내로 평균자책점을 유지했지만 9월 초 SK를 상대로 한 경기에서 7실점하며 2점대가 붕괴됐다. 9월 중순에 시즌을 조기 마감하며 이닝은 160이닝으로 많지 않았지만 kt 최고의 에이스였음은 틀림없다. kt는 놓쳐서는 안되는 이 선수를 1년 105만 달러에 재계약 하는 데 성공했다. 이 선수는 내년에도 kt에서 뛴다.
어둠 속에서 희망을 찾다
kt에게 우여곡절이 많은 시즌이었지만 안 좋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한 줄기 빛처럼 희망으로 다가온 선수들이 있었다. 고영표와 정현이 바로 그들이다. 공수에서 모두 어려움을 겪었던 kt 속에서 두 선수는 투타의 미래로 떠올랐다.
고영표는 2015년 1군에서 데뷔해 두 시즌 동안 평범한 불펜 투수였다. 꾸준히 등판했으나 두시즌 모두 5점대 중반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고 선발 등판은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올해 선발로 전환하면서 팀의 확실한 선발투수로 자리 잡았다. 개막전에 불펜으로 한 경기 등판한 이후 24경기를 모두 선발로 나왔다. 어깨 부상으로 시즌을 조기 마감하면서 141.2이닝을 소화하며 아쉽게 규정이닝을 채우진 못했다. 하지만 선발로 나온 24경기 중 5이닝 미만으로 던진 경기는 3경기뿐이었다.
제구력. 올 시즌 고영표를 이 세 글자로 정리할 수 있다. 고영표가 141.2이닝 동안 허용한 볼넷은 단 16개에 불과하다. 각각 57이닝, 56.1이닝을 소화하면서 19개씩 기록했던 15, 16시즌 때보다 적은 볼넷을 허용했다. 9이닝당 볼넷 허용(BB/9)은 무려 1.02를 기록했다. 이는 한 시즌 140이닝 이상 소화한 투수 중 역대 2위에 해당한다(1위=15우규민). 다만 몸에 맞히는 공이 18번으로 좀 많았다. 사구(死구)가 볼넷보다 많은 특이한 경우다.
제구력이 좋았다고 공의 힘이 덜했던 것은 아니다. 고영표는 적은 볼넷을 허용하는 동시에 125개의 탈삼진을 기록했다. 이는 올 시즌 토종 평균자책점 1위 장원준과 같은 수치다. 삼진/볼넷 비율은 7.81로 단연 이번 시즌 1위에 해당한다. 역대 기록으로 살펴봐도 한 시즌 140이닝 이상 소화한 투수 중 91년 선동열에 이은 2위다. 이것이 바로 고영표가 kt뿐만 아니라 국대 투수의 미래로 뽑히는 이유다.
야수진에선 정현이 빛났다. 삼성 라이온즈에서 특별지명으로 넘어온 정현은 군 복무를 마치고 올해가 kt에서 뛰는 첫 번째 시즌이었다. 동시에 자신의 첫번째 풀타임 시즌이기도 했다. 정현은 내야 유틸 자원으로서 시즌 내내 2루와 3루, 유격수를 돌아가며 소화했다. 막판에는 주로 유격수로 나서며 주전 자리를 굳혔다.
전반기의 정현은 적응의 기간이었다. 이전까지 정현의 1군 경험은 삼성 시절 25타석 나온 게 전부였다. 사실상 1군 경험이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했다. 그마저도 3년 전이었기 때문에 정현에겐 적응이 필요했다. 시즌 초에 정현은 확고한 주전은 아니었다. 유틸 플레이어의 장점을 살려 내야의 빈자리를 돌아가며 채워나갔다. 대타와 선발, 그리고 여러 포지션을 돌아가면서 출전하다 보니 타격 성적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타율 0.255와 OPS 0.723으로 전반기를 마쳤다.
빠르게 적응을 마친 정현에게 후반기는 성장의 기간이었다. 후반기부터 정현은 거의 매 경기 선발로 나오기 시작했다. 타격감은 상승 곡선을 탔고 타순 역시 점점 상위 타선에 배치되기 시작했다. 마지막 10경기는 모두 1번 타자로 선발 출장했다. 2할대에 머물던 타율은 9월 중순에 드디어 3할대로 진입했다. 그리고 시즌 마지막 경기까지 3할을 유지하는 데에 성공했다. 내야수로서 풀타임 1년 차가 3할 100안타를 기록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실력을 인정받아 정현은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 2017(APBC 2017) 국가대표팀에도 승선했다.
고영표와 정현은 올해보다 내년이 더욱 기대되는 선수들이다. 그밖에도 주권, 엄상백, 강백호 등 kt에는 젊고 잠재력을 갖춘 선수들이 많이 있다. 이들의 성장이 kt의 가장 큰 과제가 될 것이다.
Kt가 내년에 반등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구단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해 보인다. 이번 스토브리그는 유독 좋은 야수 자원들이 많이 풀린다. 그간 kt는 FA를 통해 비교적 계약 규모가 작은 선수들을 위주로 영입해왔다. 그 선수들은 kt의 성적을 끌어올리기엔 역부족이었다. 이번 FA에는 무리를 해서라도 팀의 중심이 되어 순위를 높일 수 있는 선수들을 영입해야 한다.
kt의 2018시즌은 이번 FA 시장이 열림과 동시에 시작된다. 미리 준비해야 남들보다 앞설 수 있다.
이영재 기자
leeyj8492@siri.or.kr
[2017-11-06, 사진=kt 위즈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