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RI=이영재 기자] 투수 전향, 개명, 그리고 결혼까지… 데뷔 5년 차, 나균안은 모든 것이 바뀌었다.
지난 15일, 롯데 자이언츠의 나균안이 데뷔 첫 선발 등판에서 5이닝 무실점으로 호투했다. 사사구 없이 피안타는 4개뿐이었고 삼진 역시 4개를 기록했다. 투구수는 73개로 이닝당 15개가 안 되는 효율적인 피칭이었다. 승리투수 요건을 갖춘 채 내려왔지만 이후 팀이 역전을 당해 데뷔 첫 승리는 다음을 기약하게 됐다.
나균안. 롯데 팬들에겐 애증의 이름이다. 일반 야구팬들에겐 익숙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나종덕이라고 했을 땐 어느 정도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지난 2018, 2019년에 KBO리그를 봤던 야구팬이라면 ‘나종덕’이라는 이름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강민호가 떠난 이후 갑작스레 비워진 롯데 주전 포수 자리를 메우기 위해 등장했던 선수다. 강민호의 뒤를 이을 선수로 많은 기대를 받았지만 그 자리는 데뷔 2년 차에 감당하기에 너무 버거웠다. 성적은 리그 최하위권을 맴돌았고 이후 1군에서 그를 볼 수 없었다.
그리고 2021년, 리그 최하위 포수에서 팀의 기대주로서 나균안이 사직으로 돌아왔다.
롯데의 깜짝 지명, 그리고 데뷔까지
나균안은 2017년 신인드래프트 2차 1라운드에서 전체 3번으로 롯데의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당시 롯데의 지명은 의외라는 평이 많았다. 리그 최고의 포수 중 하나인 강민호가 주전 자리를 지키고 있는 가운데 안중열과 김준태라는 괜찮은 백업 자원까지 있었기 때문이다. 앞서 1, 2순위로 이정현과 손주영이 뽑힌 상황에서 경남고 좌완 투수 이승호(현 키움 히어로즈)의 지명이 유력해보였으나 롯데의 선택은 나균안이었다. 당시 롯데의 조현봉 육성팀장은 나균안을 ‘1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포수’라고 평했다.
입단 첫해인 2017년은 나균안에게 적응의 시기였다. 강민호가 주전을 굳건히 지키고 있었고 나균안을 2군에서부터 천천히 적응시키는 것이 롯데의 육성 방향이었다. 그해 퓨처스리그 성적은 69경기에서 타율 0.211 출루율 0.294로 평균 이하의 모습이었으나 홈런을 12개 때려내는 등 장타 능력을 뽐냈다. 고졸 신인 포수임을 감안했을 때 나쁘지 않은 성적이었다. 팬들은 나균안을 보며 장타툴을 갖춘 포수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시즌 중반에 잠시 1군에 올라오기도 했으나 5경기에 4타석 출전했을 뿐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그렇게 데뷔 1년 차가 지나가고 시즌 이후 강민호라는 거대한 산이 사라진다.
잊고 싶은 2018, 2019년
하루아침에 롯데의 주전 포수가 사라졌다. 누구도 예상 못 한 결과였다. 롯데는 겨우내 새로운 주전 포수를 찾는데 사활을 걸었다. 강민호의 보상 선수로 입단한 나원탁을 비롯해 안중열, 김사훈, 그리고 나종덕까지 그 후보로 꼽혔다. 롯데의 새로운 안방마님 자리를 놓고 여러 선수들이 각축을 벌인 끝에 개막전 엔트리에 나원탁과 나균안이 이름을 올렸다. 이른바 ‘나나랜드’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두 선수다.
시작은 ‘나나랜드’ 두 선수로 출발했으나 이후 김사훈과 안중열이 경쟁에 합류하는 등 모든 포수들이 1군과 2군을 오가며 경쟁했다. 누구 하나 확실히 주전 자리를 차지하는 선수가 없어 롯데의 포수 자리는 1년 내내 혼란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포수로서 가장 많은 경기와 타석을 소화한 것이 나균안이었다.
그렇지만 성적은 처참했다. 106경기 동안 타율/출루율/장타율은 0.124/0.201/0.175로 리그 평균을 한참 밑돌았고, WAR은 -1.71로 리그 전체 선수 중 최하위였다. 1군 경험이 적고 수비 부담이 많은 만 20세 포수임을 감안하더라도 좋게 볼 수 없는 성적이었다.
이듬해에도 성적은 다를 바 없었다. 2019년에도 WAR은 -1.34로 2년 연속 리그 최하위를 기록했다. 1군 선수로 지켜보기 어려운 기록이었다. 그해 롯데 역시 리그에서 압도적인 최하위로 뒤숭숭한 시즌을 보냈다.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갑작스레 1군 주전 마스크를 쓰게 되고 팀 성적마저 곤두박질 치는 등 어린 선수에게 너무나 큰 부담과 비난이 쏟아졌다. 그렇게 팀에게도, 나균안 개인에게도 기억에서 지우고 싶을 2018년, 2019년이 지나갔다.
포수 마스크를 내려놓다
2020년 4월, 롯데 성민규 단장의 인스타그램에 뜻밖의 영상이 하나 올라온다. 바로 나균안이 마운드에 올라 NC 타자들을 상대하는 모습이었다. 성 단장은 “2달이 걸린 프로젝트, 무난한 데뷔전”이라는 코멘트를 함께 올렸다. 이날 나균안은 2이닝 동안 3피안타(1피홈런) 2탈삼진 2실점을 기록했고 최고 구속 142km의 공을 던졌다.
이 경기로부터 두 달 전, 나균안은 왼쪽 팔목 유구골 골절을 입어 최소 3개월의 재활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포수와 타격 훈련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나균안은 투수 글러브를 잡아 들었다. 그리고 두 달 만에 투수로서 마운드에 올랐다.
나균안의 어깨는 이전부터 검증되어 있었다. 2018, 2019시즌 나균안은 2018년 리그 포수 중 도루 저지율 2위(36.9%), 2019년엔 1위(38.5%)로 어깨 하나만큼은 돋보였다. 이런 장점을 살려 마운드에까지 오르게 된 것이다.
일단 투수로 완전히 전향하는 것은 아니었고 투수와 타자를 겸업하며 시즌을 시작했다. 2군이었지만 투수로서 나름 안정적인 모습이었다. 강속구를 뿌리는 것은 아니었지만 안정적인 제구와 뛰어난 완급조절로 합격점을 받았다. 그리고 2020년 7월쯤 투수로의 완전한 전향을 결정하게 된다.
새로운 시작
나균안에게 2020년은 야구 인생에서 새로운 시작이었다. 오랫동안 끼고 있던 포수 마스크를 내려놓고 투수로서 마운드에서 새롭게 출발했다.
이름 역시 새롭게 바뀌었다. 2020년 6월 개명을 신청해 기존 ‘나종덕’에서 ‘나균안’으로 이름을 변경했다. ‘개간할 균(畇), 기러기 안(雁)’을 써서 “노력한 만큼 높이 올라가는 사람이 되자”라는 뜻을 담았다. 야구선수들에게 ‘개명의 성지’라 불리는 작명소에서 받은 이름이다. 이 작명소는 손아섭(기존 손광민)이 이름을 받은 곳으로 유명하다. 손아섭이 개명 이후 승승장구하면서 한유섬(한동민), 배정대(배병옥), 오태곤(오승택) 등 많은 야구선수들이 이곳을 거쳤다.
시즌 이후, 나균안은 1살 연상의 신부와 화촉을 밝히며 유부남 대열에 합류한다. 야구선수로서, 그리고 한 명의 남편으로서 제2의 인생이 시작됐다.
다시 돌아온 사직
2021년 5월 2일, 나균안이 1군 엔트리에 등록됐다. 2019년 이후 두 시즌 만에 돌아온 1군 무대였고 투수로는 처음이었다. 그리고 5일, 투수로서 1군 데뷔전을 가지게 됐다. 최고 구속 147km의 빠른 공을 뿌렸고 실점은 있었으나 인상적인 데뷔전이었다.
이후로도 몇 경기를 구원투수로 나온 나균안은 15일에 선발 투수로 나서게 됐다. 그리고 이날 홈 팬들 앞에서 최고의 피칭을 선보였다. 포심부터 투심, 슬라이더, 커브, 포크볼, 그리고 체인지업까지 다양한 구종을 섞어 타자들을 솎아냈다. 5이닝 동안 한 점도 허용하지 않았고 박수갈채를 받으며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2년 전까지 받았던 비난과 야유가 환호성으로 돌아온 순간이었다.
롯데는 새로운 선발 투수 후보를 찾았고 나균안은 새로운 기회를 잡았다. 올 시즌 팀 평균자책점 최하위의 롯데는 무언가 변화가 간절히 필요한 상황이다. 붕괴된 롯데 마운드에서 나균안이 새로운 희망이 될 수 있을까? 이전에 겪었던 실패를 밑거름 삼아 날개를 펼칠 나균안의 행보를 기대해본다.
이영재 기자(youngjae@siri.or.kr)
[2021.05.16, 사진= 롯데 자이언츠 홈페이지]